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85화 (185/225)
  • 185화. 전쟁의 서막 (2)

    알람 마법이 울린 곳은 픽시들의 숲이었다.

    숲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테네? 자네가 여기 무슨 일인가.”

    마을 중앙에 선 여자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숲이 고요했던 이유는 바로 저기 선 레드 드래곤 테네 헬베르트 때문이었다.

    난데없는 드래곤의 등장에 겁을 먹고 모두 집으로 도망친 거겠지.

    “테네?”

    하셀이 테네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

    ‘왜 저러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테네. 왜 대답이 없는가?”

    “잠깐.”

    루카스가 테네에게 다가서려던 하셀을 막아섰다.

    “기운이 이상하다.”

    테네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이상했다. 아니, 기운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영혼이…….’

    텅 비어있었다.

    “……!?”

    그제야 하셀도 이상한 것을 눈치챘는지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 저건…….”

    아만도 알아차리고 말았다.

    “젠장 할!!!”

    마족 놈들이 기어코 일을 치고야 말았다.

    “어쩌면 좋습니까.”

    하셀이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먼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픽시들을 모두 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테네…….”

    하셀이 테네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쿠오오오오!

    테네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순식간에 화염이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막아!”

    테네의 주위로 펼쳐진 방어 장막.

    “이렇게 되면……!”

    장막 안에 갇힌 화염이 테네를 덮칠 것이다.

    -쿠와아아아앙!

    “아만, 마법을 거둬라.”

    화염이 소용돌이쳤다.

    “안 된다!”

    하셀이 방어 장막을 거두고, 뒤따라 아만이 거둬내자, 홀로 막고 있던 루카스가 소리쳤다.

    “봉인이라도 해야합니다! 이대로 테네가 죽게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마을은 모두 불타 없어져도 괜찮으냐?!”

    “…….”

    루카스가 힘겹게 버티며 말했다.

    -쿠오오오오!!!

    불 속에 선 테네가 다시 한번 화염구를 하늘에 소환했다.

    “크윽…….”

    자신을 잃어버린 테네의 마법은 거침이 없었다. 제 몸이 다치는 것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장막 안쪽에서는 어떻게든 장막을 깨보려 화염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장막을 향해 화염구가 떨어지고 있었다.

    테네의 사고는 딱 거기까지였다. 방어 장막을 깨는 것.

    “하셀!!!”

    루카스가 하셀의 이름을 외쳤다.

    -콰아아앙!

    하셀이 방어 마법을 넓게 펼쳐 마을 전체를 보호했다.

    “아만!”

    -콰아앙! 쾅! 콰쾅!

    그 위에 다시 한번 덮이는 방어막.

    “로드! 이러다가 테네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

    하셀이 간절히 외쳤다.

    “정신 차려라. 하셀.”

    루카스가 테네의 마법을 힘겹게 막으며 말했다.

    “저 아이는 지금 테네가 아니다.”

    “로드!”

    “아만. 막아라.”

    하셀은 제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루카스의 말을 들은 아만은 하셀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버텨라.”

    루카스가 순식간에 바닥을 차고 나가더니 화염이 가득 찬 방어 장막 안으로 몸을 내던졌다.

    “로, 로드!!!”

    아만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장막 안으로 들어서자, 뜨거운 화마가 자신을 덮쳐왔다.

    -투화아아악!

    제 몸에 방어 마법을 아무리 둘러봐도 뜨거운 열기는 그대로 전해졌다.

    ‘이러다 녹겠어.’

    이미 그 안에 선 테네의 모습은 넝마가 되어있었다. 아무리 높은 화염 내성을 지녔다 해도, 이런 불길 안에서 멀쩡하기란 힘들 것이다.

    게다가 계속해서 방어 마법을 뚫으려 마법을 써대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테네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루카스를 향했다.

    ‘테네…….’

    이 아이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힘겹게 걸음을 내디뎠다.

    ‘정신 차려라…….’

    이미 영혼이 사라진 것을 알면서도 빌었다.

    손을 뻗었다.

    -콰쾅! 콰콰쾅! 쾅!

    사정없이 루카스를 향해 쏘아지는 마법에도 힘겹게 버티며 걸음을 내디뎠다.

    -콰쾅! 콰아앙!

    방어막에 막힌 마법의 파편은 다시 테네를 향했다.

    ‘테네……!’

    루카스의 손이 결국 테네에게 닿았다.

    “크으윽!”

    테네에게 닿자마자 손이 새까맣게 그을려 신음이 터져나왔다.

    -파앗!

    그대로 테네를 데리고 텔레포트한 루카스가 제 손을 내려볼 새도 없이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 이곳이라면 누구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로드!”

    다행히 곧장 저를 따라온 하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오오오오오!

    “테네!!!”

    곧장 시전된 마법이 루카스를 향했다.

    -콰아앙!

    방어 마법에 막혀 사그라 들고.

    -쿠아아앙!

    다시 쏘아지고.

    -콰쾅!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걸 얼마나 반복했을까. 하셀과 아만의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크윽…….”

    하셀이 결국 눈물을 삼켜 냈다.

    “이제 알겠느냐.”

    루카스는 기다린 것이다. 방법이 없다는 걸 저들이 받아들일 시간을.

    “봉인을 해도…….”

    루카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영혼이 없지 않느냐.”

    “그, 그럼 테네는…….”

    테네의 영혼은 소멸되었다.

    주신의 자리가 공석이 아니었더라도 소멸된 영혼을 찾는 일은 어려웠다.

    잃어버린 것도 아닌 영영 사라진 것이니까.

    “미안하구나.”

    “크윽…….”

    루카스 역시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고 저려왔다.

    감히 드래곤을 손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오만했다.’

    생각했어야 했다. 저들이 와이번의 영혼을 빼앗아 조종하고, 웨어울프를, 다른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안일했다.

    저들 역시 한낱 몬스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었다.

    ‘젠장 할.’

    미친 듯 쏘아지던 마법이 잠잠해지고, 테네의 몸이 빛에 휩싸이자, 루카스는 직감했다.

    본체로 돌아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파앗!

    순식간에 텔레포트한 루카스의 손에 쥐어진 얼음 창.

    “로드!!!”

    그를 보며 소리치는 하셀과 아만.

    ‘안 된다.’

    얼음 창에 둘러지는 강화 마법과 테네에게 쏟아지는 디버프가 그녀의 본체화를 조금 늦췄다.

    불과 일 초도 안 되는 시간.

    -콰직!

    루카스가 내지른 얼음 창이 테네의 가슴을 꿰뚫었다.

    -콰지직-!

    가슴에 꽂힌 얼음 창 주변에 새하얗게 피어나는 서리가 너무 시려웠다.

    “미안하다.”

    테네의 눈동자가 제 가슴에 얼음 창을 박아넣은 루카스를 향했다.

    아무리 영혼을 잃었다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었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얼음 창을 단박에 드래곤 하트에 박아 넣었다. 반격을 당하면 그 뒤는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디버프를 걸었다 해도 그걸 한 번에 꿰뚫긴 어려웠기에, 꽂은 채로 다시 한번 강화 마법을 시전해 안에서 창의 크기를 키웠다.

    “미안하구나…… 테네.”

    -콰직……!

    한 번 더.

    -파스스스…….

    테네의 몸이 하얀빛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가 파괴된 드래곤은 죽음을 맞이한다.

    드래곤에겐 가장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이다.

    힘주어 꽂아 넣었던 창을 쥔 루카스의 손이 파르르 떨리며 툭 떨어졌다.

    “미안하다. 테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었다. 테네가 본체로 돌아가 날뛰는 순간 이처럼 쉽게 그녀를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공격에 능한 편이었으니, 하셀이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하필이면 왜…….’

    루카스의 머릿속에 나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죽을 날을 받아둔 고룡들도 많건만 왜…….’

    아직 얼마 살지도 못한 테네에게 이런 일이 닥친 것이 너무나도 슬펐다.

    -스스스스…….

    빛무리가 흩어져 하늘로 사라지자, 그곳에 더 이상 테네는 없었다.

    ***

    테네의 죽음이 가져온 파장은 엄청났다.

    하셀은 드래곤 장로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도 몰라 아직도 레어에 처박혀 머리를 싸매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알아야 했다. 테네처럼 어처구니없이 당하는 드래곤이 또 나와서는 안 되니까.

    “이건 우리를 향해 보내는 경고나 다름없다.”

    루카스가 고요를 깨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만했다. 적들이 턱 아래까지 치고 들어왔음에도 오만하게 굴었어.”

    하셀이 주먹을 꽉 쥐었다.

    “테네가 당했습니다. 그 아이는 똑똑한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 당했어요.”

    그 이야기는 다른 드래곤들 역시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오만했다는 것이다. 제 강함을 믿고 우리는 방어조차 하지 않았어.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하셀. 너는 지금 당장 장로들과 다른 드래곤을 찾아가 이 사실을 전해라.”

    “…….”

    “테네가 당했다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부터 전쟁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들을 죽이고 쳐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돌아왔다는 것도 전해라.”

    그러자 아만과 하셀의 눈이 동시에 커다랗게 변했다.

    루카스가 돌아왔다는 것을 전하라니? 그것도 모두에게 말인가?

    “그래.”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전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테네가 그렇게 당했고 제 손으로 테네를 죽였다.

    그런데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면 돌아올 비난의 화살을 모두 하셀과 아만이 맞게 된다.

    ‘내가 한 일이니…….’

    책임을 져야 했다. 이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그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리고 아만. 너도 다른 드래곤들을 찾아가 이 모든 사실을 알려라.”

    “예. 로드.”

    “그리고 장로 회의를 소집해라. 그들을 만나 내 입으로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때가 오고야 말았다.

    턱 밑까지 치고 들어온 마족들을 여태 놔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 했거늘.’

    잊고 있었다. 방어책을 세우겠답시고 신들을 회유하고 정령왕들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시간을 소요했다.

    그래서는 안 됐다. 그들의 터전을 찾아내 부수고 한발 빨리 움직여 그들이 들어오는 통로를 모두 막아냈어야 했다.

    “전쟁은 시작됐다. 우린 언제나처럼 이길 것이다.”

    “예. 로드.”

    하셀이 먼저 텔레포트해 사라지고, 아만 역시 루카스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커다란 레어 안에 혼자 남은 루카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테네의 눈빛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흐린 눈동자였지만, 루카스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슬퍼하고 있었다는 것을.

    루카스 역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수많은 생명들을 제 손으로 거뒀지만, 드래곤을 죽인 것은 처음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자신을 위로하고 달랬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맴돌았다.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하셀의 말대로 테네를 봉인시키고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드래곤을 봉인하는 데에 필요한 것을 구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최소한 드래곤 셋은 있어야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드래곤은 둘뿐이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생각해도 그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지만, 후회가 거듭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루카스가 쇼파에 몸을 기대고 허공을 멍하니 바라봤다.

    “인생 쓰군.”

    그저 평범하게 살다 가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것 참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제 순탄한 인생을 방해하는 개 같은 것들의 모가지를 모두 따버리고 싶었다.

    “다 죽여주마.”

    전쟁이 시작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