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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80화 (180/225)

180화. 누구세요? (3)

바딤은 한참이나 제 세상에 대해 떠들었다.

“크하하! 와이번 튀김은 인간 세상의 별미 중 별미였지. 뜨거운 기름에 그걸 넣으면 아주 고소한 냄새가 나지.”

바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와이번을…… 먹어?’

드래곤일 때 먹어본 와이번은 굽든 튀기든 쓴맛이 강하게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새고기는 먹을 만했는데 유독 와이번만 그렇질 못했다.

“아, 여기에도 와이번 요리쯤은 있겠지?”

“이곳 와이번은 쓴맛이 나서 먹질 못합니다.”

“뭐라?! 쓴맛?! 그럴 리가.”

하셀과 루카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이곳은 대부분 돼지나 소를 즐겨 먹습니다. 닭이나 오리 등도 인간이 즐기는 것들 중 하나지요.”

“돼지? 돼지를 먹는다니! 그 더러운 것을 어찌 먹는다는 말인가. 이곳은 야만인들이 사는 곳이었나!”

돼지를 먹는다는 말에 바딤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이곳과 그쪽 세상은 확실히 다른 듯 보입니다. 같은 게 있는 듯해도 성질이 아주 다른 걸 보니 말입니다.”

“이것 참…….”

바딤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리웠다.

‘그보다 다른 세상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 거지?’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제 생각엔 천계로 먼저 이동하는 게 맞는 듯싶습니다만.”

루카스가 툭 던졌다.

“어허! 천계는 아니 된다니까. 그 사악한 놈들의 손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잿더미, 아니 천국에 떨어지게 될 걸세!”

저쪽에선 천국이 저런 의미로 쓰이는 듯했다.

“여긴 천국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윤회나 영원한 소멸이 있을 뿐이지요. 물론 인간들이 신을 모시며 만든 새로운 사후 세계가 있긴 하지만, 직접 겪은 자는 없으니 없다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루카스의 대답에 바딤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그럼…… 지옥은 있는가? 우리 세계는 그곳에 가려 모두 안달인데 말이야.”

“……그건 욕으로나 쓰이죠. 지옥에나 떨어져라는 말은 아주 모욕적이니까 말입니다.”

하셀의 대답에 다시 놀라는 바딤.

‘이렇게 놀라기만 하다간 다시 죽기라도 하겠군.’

그런 바딤을 보며 루카스가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다시 살아봐야겠네. 아주 즐거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예?”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미 죽어서 영혼도 없고 껍데기만 있는 주제에 뭘 다시 살아?

“혹시 깨어나지 않은 해츨링 알이 있는가? 무정란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거 말일세.”

그러자 하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있으면 된다는 말인가?’

드래곤의 알은 귀했지만, 가끔가다 부화에 실패하는 것들이 있었다.

바딤의 말대로 무정란인 것은 아니고, 태어나자마자 마력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데 그 시기가 조금 늦었다거나, 상성이 맞지 않았을 때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때문에 부화하지 못한 알들은 곧장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한곳에 모아 보관하고 있었다.

“그건 있습니다만…….”

“오. 그건 이쪽도 같은가 보군. 그렇다면 내 그 알을 하나 빌려도 되겠는가? 이 땅은 마력도 충만하니 영혼 상태에서도 그쯤은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말일세.”

하셀이 루카스를 바라봤다.

‘이거 하라고 해야 되나.’

영혼 상태인 지금도 바딤의 실력은 엄청났다. 그런 그가 육체까지 얻는다면 힘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드래곤 서넛이 달려들어도 승산이 없을 수도 있다.’

게다가 토파즈라는 속성도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 더 겁이 났다.

“아, 미처 묻지 못한 게 있는데. 자네는 얼마나 살다 인간이 되었는가?”

“오천 년입니다.”

“쯧쯔…… 단명했구먼. 누가 자네를 음해하기라도 한 겐가? 그렇다면 내 힘을 되찾거든 그 복수를 해주지.”

루카스와 하셀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제가……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역사서에 남을 만큼 말입니다.”

“무어라?! 오천 년이?! 도대체 자네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수명이 그리도 짧은 겐가!”

“…….”

그럼 저 드래곤은 도대체 몇 년을 살았다는 거지?

“그럼 바딤님은…….”

“나도 그리 오래 살진 못했네만, 그래도 일만 하고도 삼천 년은 살다 봉인을 당했지.”

“만… 삼천 년?”

바딤이 고개를 끄덕였다.

“쯧쯔. 도대체 신께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몰라도 죄를 빌어 다시 수명을 좀 되찾게나. 오천 년이면 한창땐데…….”

바딤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럼 자네는 도대체 몇 살이라는 말인가? 오천 살도 안 되었다는 말이야?”

바딤의 시선이 하셀을 향했다.

“저는…… 삼천 년이 아직 안 됩니다.”

하셀의 나이를 들은 바딤이 다시 혀를 찼다.

“쯧쯔…… 핏덩이가 일족을 이끌고 있구먼.”

루카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바딤님 세계에서 드래곤은 얼마나 사는지요.”

“우리? 우리는 보통 삼만 년은 거뜬히 살아내지. 가장 오래 산 드래곤은 육만 년을 살았으니.”

그제야 모든 게 납득이 되었다. 종족 하나가 아니, 인간이 만든 제국도 역사가 깊어질수록 발전을 거듭하는데, 하물며 그보다 더 고등생물인 드래곤이 몇만 년을 거뜬히 살아낸다면?

엄청난 실력을 가졌을 것이다. 엄청난 실력뿐 아니라 마법을 쓰는 방식이나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도 다르겠지.

그러니 바딤은 영혼밖에 없는 지금도 당황하지 않고 해츨링 알을 찾는 것이었다.

‘믿을 수 있을까.’

하늘 위의 하늘이라 했나. 루카스는 지금 또 다른 하늘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바딤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바딤의 눈빛엔 아직도 측은함이 담겨 있었다.

“그쪽 세계에서도 드래곤의 약속은 절대적인 것입니까.”

“하! 절대적이고 말고. 드래곤의 약속은 곧 드래곤 하트를 걸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약속을 깨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럼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혹시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흥! 물론 나를 이런 꼴로 만든 골드 일족들을 찾아가 묵사발을 내고 싶으나!”

“……싶으나?”

“돌아갈 방법을 모른다! 내가 어쩌다 이런 외딴곳에 떨어졌는지도 의문이고 말이다. 게다가 너희 말을 들으니 이곳의 신과 내가 살던 곳의 신도 다른 듯한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느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없다면야.’

루카스는 그가 돌아가는 것은 괜찮았지만, 혹여 마족의 편에 서서 드래곤을 해칠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마주칠 수도 있으니.’

게다가 전에 살던 곳은 마족이 엘프 급으로 선하디선한 존재라는 인식이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약속을 하나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루카스가 진지한 눈빛으로 바딤을 바라봤다.

“흠. 들어보고 결정하지. 사실 지금에라도 내 힘으로 해츨링 알 하나쯤 찾는 건 일도 아니네. 하지만 자네들이 드래곤이고 내 일족이라 생각되니 예의를 갖추는 걸세.”

하셀과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는 지금 전쟁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호오! 전쟁이라.”

바딤이 눈을 반짝였다.

“우리 토파즈 일족은 전쟁을 두려워 않지. 언제나 사랑의 신 아모레의 가호를 받고 전장에 나가 싸웠다.”

“……전쟁이 신이 아닌 사랑의 신 말입니까?”

“크하하! 전쟁의 신은 겁쟁이야. 그러니 전쟁과 평화의 신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겠는가!”

신의 이름도 모두 같았지만 정말 모든 게 반대였다.

“하지만 아모레는 다르지. 가장 척박한 땅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 아니겠는가. 피로 얼룩지고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피어나는 사랑만큼 간절한 사랑이 어디 있겠냐는 말일세.”

한 가지 같은 점은 저쪽 세상의 아모레도 살짝 돌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더 쉽겠군요. 저희도 아모레의 가호를 받아 싸울 예정입니다.”

이건 아모레가 약속한 일이었다.

“크하하! 그렇다면 난 아모레가 선 곳에 무조건 서겠네.”

“하지만 상대는 마신입니다. 마신 타라스죠.”

“그, 그래?”

바딤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그렇기에 저희는 바딤님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또한 바딤님의 가르침을 모두 받고 싶습니다.”

“크흠.”

바딤이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지. 전쟁엔 마신보다는 사랑의 신이 조금 더 낫거든.”

“그렇다면 피의 서약을 해주시겠습니까?”

모든 말을 듣던 하셀이 툭 튀어나와 말했다.

“피가 없는데?”

바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 언제 적 구닥다리 마법을 꺼내는 겐가? 인간들도 요즘은 잘 쓰지도 않는 마법인데 말이야.”

“아.”

하셀이 그제야 희끄무레한 바딤의 몸을 보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이.’

순식간에 드래곤이 저능한 종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것 참.’

민망하기까지 했다.

“영혼은 있으니 영혼의 서약을 하지. 어기는 자는 영혼이 파괴될 거네.”

실로 어마어마한 계약이었다. 그만큼 효과는 확실하겠지.

“그리고 아무리 환생했다 한들 자네는 인간이니 수지타산이 안 맞지. 그러니 하셀 자네와 계약하겠네.”

하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계약 내용은 어떻게 하겠는가.”

바딤이 허공에 마법진을 천천히 그려 넣었다.

‘다행히도 쓰는 문자는 비슷하군.’

그려지는 마법진에 쓰인 문자는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긴 해도 읽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기에, 계약 사기를 당할 위험은 조금 줄었다.

“저희 편에 써서 싸워주십시오. 드래곤 아니, 더 나아가 저와 로드의 편에 서주십시오.”

“호오. 그러도록 하지. 세부 사항은?”

“마족과 마신은 적입니다.”

“흐음. 그러도록 하지.”

루카스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런 계약일수록 조금 더 자세히 계약 내용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딴소리가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적에게 저희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 모두 발설하는 것도 안 됩니다.”

“그러도록 하지.”

바딤이 들은 모든 내용을 그대로 마법진에 새겨넣었다.

“바딤님의 요구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해츨링 알에서 깨어나도록 돕게. 물론 삼 일도 걸리지 않을 걸세.”

“……?”

해츨링의 알은 부화하는 데 적어도 몇 년이 걸렸다.

그런데 삼 일?

“후. 여긴 정말 구닥다리군. 문명이 없는 곳에 던져진 기분이야.”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바딤이 손을 휘휘 저어 계약 사항을 적어넣었다.

“또한 내가 이곳에서 다시 살아가는 것을 돕게. 뭐 전부 구닥다리겠지만, 그래도 내 세상과는 다른 점이 많으니 나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쉬운 일이기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거면 되었네. 내가 자네들에게 뭘 요구하는 일은 별로 없을 듯하군. 레어를 만들 만한 땅쯤은 알아서 찾아줄 거라 믿네.”

“물론입니다.”

마법진이 모두 완성되었다.

바딤의 눈이 하셀에게 향했다. 무언가 대답을 요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 하셀 테리디어입니다.”

그러자 하셀이 제 진명을 말해줬다.

“그래. 하셀 테리디어. 자네는 나 바딤 아르티스와 이 모든 계약 내용을 토대로 영혼의 계약을 맺겠는가.”

“네.”

마법진이 밝은 빛을 뿜기 시작했다.

“이 계약은 영혼에 종속되는 계약이며, 이를 어길 시 계약자의 영혼은 영원히 파괴된다. 동의하는가.”

“동의합니다.”

그러자 마법진이 작게 진동하더니 빛이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하셀의 심장으로 다른 하나는 바딤의 심장으로 향해 쏘아졌다.

“계약은 모두 완료되었네.”

“잘 부탁드립니다.”

하셀이 인사하자, 바딤 역시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하셀과 루카스의 눈이 동시에 바딤을 향했다.

‘굴러들어온 복이나 다름없다. 무슨 부탁이든 들어줘야…….’

라며 루카스가 생각하던 때.

“여기 성미가 괜찮은 암컷 드래곤이 있다면…….”

바딤이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게 정상이 없군.’

루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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