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77화 (177/225)
  • 177화. 낙원 (3)

    빛에 삼켜져 어딘가로 이동한 루카스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여기가 어디야?”

    아티팩트에 의해 어딘가로 옮겨진 일은 많았지만, 이렇게 몽롱한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은 자신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켜 자꾸만 땅에 발이 붙어있는지 확인하게 했다.

    [뭐하냐?]

    그런데 갑자기 제 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화들짝 놀란 루카스의 몸이 크게 튀어 올랐다.

    “으앗!”

    [흐하하!]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고개를 돌렸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늦지 않게 잘 왔네. 역시 엘라임에게 맡기길 잘했다니까.]

    “누구냐.”

    [크라토다. 너희들이 주신이라고 부르는 신이라고나 할까.]

    주신의 거울 속에 주신이라. 괜찮은 듯하면서도 이질감이 들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 왜 돌아오지 않는 겁니까?”

    사라진 주신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던 터다.

    [흐하핫! 나도 돌아가고 싶지. 잠깐 다른 차원 넘어간 사이에 타라스가 저지른 일이야. 언제부터였는지 아주 철저하게 준비했더라고.]

    주신이 스스로 사라져 돌아오지 않은 게 아니라니?

    “젠장.”

    [그래. 나도 참 젠장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멍한 기분에서 드디어 벗어난 루카스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럴 게 아니지.’

    물을 게 한둘이 아니었다.

    “환생의 길에 들어설 때 나의 기억이 왜 그대로였는지, 그리고 타라스는 왜 나를 제 편에 세우려 하는지. 아무리 드래곤이었다 한들 한낱 인간인 내가 뭐길래 그러는…….”

    [하나씩 물어. 하나씩.]

    궁금했던 질문을 와르르 쏟아내자, 크라토가 피식 웃으며 루카스를 진정시켰다.

    “그럼 환생의 길에 들어설 때부터 대답해주시죠.”

    [그건 내가 한 게 맞아. 그 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걸리겠네.]

    -사아아. 달칵. 덜거덕.

    새하얀 공간 위에 티테이블 세트가 나타나더니, 이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까지 차려졌다.

    [앉지.]

    루카스가 의자를 하나 빼내어 앉자, 앞에 놓인 의자도 스윽 움직였다.

    -달그락. 달칵.

    찻주전자가 허공에 둥실 떠올라 차를 따라냈다.

    [마시면서 듣게. 내가 다른 세계에서 가져온 차인데, 이게 뭐라더라…….]

    “알겠으니 대답이나 마저 해주시죠.”

    [아, 맞다. 대답.]

    허공에 뜬 찻잔이 입가가 있을 만한 부근까지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테이블 위에 내려졌다.

    [흐음…… 이건 자네의 세 번째 삶이지.]

    “뭐, 뭐요? 세 번째?”

    [그래. 세 번째. 처음 생은 드래곤이었어. 그러고 나서 신이 되어라, 내가 명하니 자네는 한 번 더 지상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특별히 환생의 길을 열어 주었지.]

    “허.”

    몸에 힘이 빠져버린 루카스가 의자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 자네는 또다시 드래곤으로 살기를 원했어. 그게 바로 전생의 라노스였다네.]

    “……허.”

    [그리고 이번에 자네가 또 신이 되기를 거부하더군. 영원히 사느니 영원히 죽겠다며 아주 으름장을 놓았다지.]

    찻잔이 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차를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향이 좋다니까.]

    “……”

    [그런데 이번엔 기억을 지울 수가 없었어. 내가 자네에게 숨겨둔 게 있었거든. 타라스가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내가 숨겨둔 거였어.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거든. 음… 예상이라기보다 보았다고 해야 맞겠지.]

    숨겨둔 것이라니?

    “미리 봤다면 왜 막지 않은 겁니까.”

    [이걸 막으면 더 큰 일이 일어났을 테니까.]

    “제게 숨겨뒀다는 게 도대체 뭡니까?”

    [사실 지금 타라스의 자리는 네 자리였다. 타라스는 원래 악의 신이었지. 그런데 악과 지옥을 함께 관리하기에 벅차다고 하더군.]

    지금은 없는 신이었다.

    [그래서 뭐. 인사이동을 해줬다고나 할까. 타라스의 자리를 그대로 자네가 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하지만.]

    “……?”

    [신계를 비롯해 다른 세상까지 멸망했을 거야.]

    그래서 도대체 제게 숨겨둔 게 뭐라는 말인가! 답답함이 슬 치민 루카스가 찻잔을 들어 찻물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아, 네게 숨겨둔 거. 그건 뭐 내 힘의 일부 정도라고 해둘까. 타라스를 막을 열쇠 정도라고 보면 되겠군.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내가 타라스의 편에 서면 어떻게 됩니까.”

    [타라스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걔는 내가 네게 숨겨둔 게 뭔지 알거든. 그리고 그건 네 자의로만 발동하게 되어있으니 널 설득하려 나선 게지.]

    어지러이 널려있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타라스가 저를 설득하려던 이유부터 환생의 길에 접어들던 때의 찝찝함까지 모두.

    [그리고 내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열쇠가 네게 있기도 하지.]

    “그럼 지금 알려주십시오. 당장이라도 가서 문을 열든 차원을 열든 해볼 테니 말입니다.”

    [때가 되면 열게 될 거다. 내가 그곳으로 널 이끌 테니 말이야.]

    다시 찻잔이 둥실 떠올랐다.

    “그렇다면 저는 결국 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그래야겠지. 네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할 거다.]

    “젠장.”

    [하지만 특별 대우는 있을 거다. 중간에 유희를 나가도…….]

    “됐습니다. 특별 대우는 무슨.”

    그냥 영영 죽게 해주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괴로우면 처음 사는 것처럼 기억을 지워줄 수도…….]

    그건 더 싫었다. 이 모든 걸 다 잊은 채 신으로 사느니, 어차피 할 일이라면 잊지 않는 게 나았다.

    “됐습니다.”

    [그러든지.]

    “답답하군요.”

    [나가게 해주겠네.]

    마음이 답답하단 소리였는데, 옆에 문 하나가 떡하니 생겨났다.

    “후.”

    작게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더 물을 것도 없었고, 더 묻는다고 해도 돌아올 대답은 정해진 듯싶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라는 말이나 하겠지.

    [잘 가게.]

    “이곳에 오면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겁니까.”

    [흐음…… 확답은 못 하겠네만, 올 수 있도록 노력은 하겠네.]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더 아는 건 없습니까?”

    [꼴이 이래서 말이야.]

    허공에 뜬 찻잔이 한번 으쓱였다. 차를 든 채로 어깨를 으쓱인 듯.

    “알겠습니다.”

    루카스가 미련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공기 중에 아무것도 없는 듯한 깨끗한 공기를 마시다가 밖으로 나오니 동굴의 습한 기운과 함께 여러 가지 냄새가 훅 끼쳐왔다.

    “나왔군.”

    “우욱……”

    그 냄새들 모두가 처음 맡기라도 한 듯 익숙지가 않아 헛구역질이 나왔다.

    “쯧.”

    엘라임이 손을 뻗자, 울렁거리던 속이 한 번에 가라앉았다.

    “고맙군.”

    “두들겨 맞기라도 한 건가.”

    이상한 오해를 잠시 사긴 했지만 일단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걸 주신께서 맡기신 게 언제인가.”

    그러자 엘라임이 눈을 위로 살짝 뜨고 셈을 하기 시작했다.

    “흐음…… 오천 년이 넘은 듯싶군.”

    “하.”

    모든 걸 예상했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닌 듯싶었다.

    “그렇다고 오천 년 동안 널 찾아다닌 건 아니었다.”

    “그렇겠지.”

    “이걸 맡기던 날 주신이 내게 했던 말을 생각하면 찾아다니기도 쉽지 않았지.”

    도대체 뭐라고 했기에?

    “두 번째 생을 사는 눈과 머리칼이 검은 인간 사내. 눈과 머리칼이 검은 사내는 가끔 보긴 했지만, 두 번째 생을 사는 인간을 만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야.”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네 집에 사는 인간 여자아이. 네 동생이라고 해야 하나.”

    넬라 이야기에 루카스가 눈을 매섭게 떴다.

    “그래. 안 그래도 물으려던 차였다. 넬라와 계약을 했더군.”

    “그래. 아주 마음에 드는 인간이다. 기운이 맑고 청아해. 어릴 때부터 내가 점찍어 뒀었지.”

    정령왕이 마음에 들어 하는 인간이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 상처가 많은 아이다.”

    “정령들이 그 상처를 보듬어 줄 거다.”

    엘라임의 말이 맞았다. 넬라가 한참 마음의 병으로 고생했을 때도 나이아스가 그녀의 곁을 지켰으니까.

    “돌아가지.”

    “그래.”

    ***

    동굴을 나와 집에 돌아온 루카스는 먼저 아이들을 찾았다.

    ‘섬에서도 확인은 했지만…….’

    다시 한번 그들이 괜찮은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루카스.”

    스키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 다들 괜찮아?”

    넬라와 폴라도 그곳에 있었다.

    “우린 괜찮다. 정말이다.”

    “케이틀린은?”

    “언니도 괜찮아.”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에서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 내가 함께 갔어야 했는데.”

    다른 일을 본다고 아이들을 먼저 보낸 게 후회가 되었다. 넬라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꼼짝없이 그곳에서 몬스터들의 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도련님~?”

    그때 멀리서 앨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상단주님.”

    루카스가 뜨끔 하는 표정을 얼른 감추고 앨리를 보며 싱긋 웃었다.

    “제게 할 말이 있으시다고~?”

    앨리가 이를 앙다물고 말했다. 분명 제 사랑하는 섬이 쑥대밭이 된 걸 아는 거겠지.

    “하하. 예. 저, 저쪽으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죄책감이 밀려든 루카스가 어색히 웃으며 한적한 곳을 향해 손짓했다.

    “안녕히 가세요…….”

    다른 아이들 역시 쭈뼛거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몬스터가 그곳에 쏟아진 건 저들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왠지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루카스가 이끄는 곳으로 함께 온 앨리는 콧바람을 씩씩 불고 있었다.

    “앨라스. 미안하구나. 네 섬을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건 너무한 거 아니냐 그거에요. 온갖 곳이 전부 까맣게 그을렸어요!”

    앨리의 입장에선 그깟 몬스터들이 좀 나왔기로서니 섬이 그 지경이 된 게 이해가 안 되는 듯싶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서 그렇다. 아이들이 그 모든 것들을 막아 내려다보니 그리된 것이지.”

    루카스가 슬쩍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모래며 나무가 모두 그을려서 섬을 다시 쓸 수도 없게 생겼다구요!”

    폴라가 퍼부은 전격 마법과 불의 정령들이 저지른 짓이겠지.

    “게다가 제 사랑하는 직원들이 모두 깩! 죽었어요. 우리 섬이 자랑하는 최고의 바텐더와 요리사가 모두 죽어버렸다고요!”

    “크흠…… 그건 몬스터가 저지른 일 아니냐.”

    “아이고오!”

    앨리가 제 뒤통수를 붙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아니! 나도 사실 할 말이 많다.”

    “……?”

    루카스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앨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섬에서 그런 게 나오는 동안 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느냐? 분명 알람 마법 정도는 걸어 뒀을 텐데 말이다. 아이들이 관광을 갔다가 천계 관광까지 직통으로 떠날 뻔했다!”

    “그, 그게……”

    “네가 미리 왔더라면 섬도 그렇게 쑥대밭이 되진 않았을 거 아니냐! 널 믿고 아이들을 보낸 건데 너는 어째서 지금에서야 이곳으로 온 거지?”

    “아, 알람 마법이 잘못된 줄 알고…….”

    “이놈이?!”

    루카스가 버럭 소리를 치자 앨리가 몸을 흠칫 웅크렸다.

    ‘좋다. 이대로만 나가면 된다.’

    루카스가 허리춤에 팔을 턱 얹고는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음부터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아주 혼날 줄 알아라!”

    “섬은……”

    “돈도 많은 게 그 옆에 대충 아무거나 새로 사서 지으면 되지 뭘.”

    앨리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루카스를 바라봤다. 사실 억울하긴 할 것이다. 아이들을 노리고 온 몬스터들이라는 것쯤은 앨리도 알았으니 말이다.

    “크흠! 그럼 간다!”

    루카스가 몸을 홱 돌려 그곳을 벗어났다.

    ‘윽…… 죄책감…….’

    억울하다는 앨리의 눈빛이 생각나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틀린 말도 없으니. 뭐.’

    다시 어깨를 활짝 펴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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