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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76화 (176/225)
  • 176화. 낙원 (2)

    -키에에에!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은 세워진 방갈로를 부수고, 섬을 지키던 직원들을 처참히 찢어발겼다.

    케이틀린이 땅의 하급 정령인 놈을 불러 모래로 된 벽을 만들고, 불의 중급 정령인 샐러멘더를 함께 불러내 공격을 퍼부었다.

    -퍼엉! 펑!

    샐러멘더가 쏘아 낸 시뻘건 화염이 몬스터들을 불태우고, 그 옆에 선 폴라가 쏟아내는 전격 마법에 대지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하하. 인간들 주제에 제법 하는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족이 피식 웃더니,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늘에 시꺼먼 동공이 열리기 시작했다.

    “젠장! 하나 더 열리기 시작했어!”

    폴라가 소리쳤다.

    “다들 비켜.”

    “넬라!”

    아이들이 알기로는 넬라 역시 물의 중급 정령사였으나, 케이틀린만큼 믿음직스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넬라는 작은 덩치로 아이들을 옆으로 툭 쳐내곤 미간을 찌푸렸다.

    “엔다이론.”

    넬라가 물의 상급 정령인 엔다이론의 이름을 부르자 순식간에 모여든 물방울들이 투명한 여자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부르셨습니까. 왕의 계약자시여.

    “쓸어버려.”

    -명을 받듭니다.

    넬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엔다이론이 손에 든 창을 높게 치켜들었다.

    “에, 엔다이론?”

    갑자기 나타난 여자의 형상과 엔다이론이라는 이름에 일행들이 놀란 눈으로 넬라를 바라봤다.

    “뭐. 그렇게 됐어.”

    그러자 넬라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는 걸로 놀란 시선을 받아쳤다.

    “조심해!!!”

    폴라가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으악!”

    그들의 머리 위에 하나 더 열린 커다란 동공 위에서 몬스터들이 머리를 빼꼼 내민 채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피, 피해!!”

    당황한 스키르가 몬스터들이 날뛰는 곳으로 곧장 뛰어갈 듯 몸을 앞으로 세우자, 폴라가 스키르의 머리채를 턱 낚아챘다.

    “윽!”

    “미쳤어?! 거기 달려들면 어쩌자는 거야!”

    “이쪽은 내게 맡겨.”

    넬라가 점점 넓어지는 동공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운디네.”

    -왕의 계약자시여.

    “저것들이 밖으로 기어 나오지 못하게 막아줘.”

    -명을 받듭니다.

    늑대 형상의 운디네가 동공을 향해 달려갔다.

    “세, 세상에.”

    -투확! 쿠구구구구… 콰아앙!

    그 사이 얼음 창을 쥐고 하늘에 떠 있던 엔다이론이 손에 든 창을 바닥에 내리꽂자, 대지를 집어삼킬 듯한 굉음과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끼에엑!

    -키에에에!

    폭발이 점차 범위를 넓히며 섬에 포진한 몬스터들을 집어삼켰다.

    “저게 물의 상급 정령……?”

    머리 위에선 투명한 늑대 형상의 운디네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지 못하게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어 그들의 움직임을 묶고, 그 안에서 다시 작은 폭발을 일으켜 그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우욱……”

    물 안에 갇힌 채 터져 나가는 몬스터들을 본 스키르가 올라오는 토악질에 제 복부를 움켜쥐었다.

    “물의 상급 정령까지?”

    멀찌감치서 손을 까딱여 동공을 열어대던 마족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저들을 공격하라는 명을 받고 왔지만, 이 정도의 실력자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돌아가야 하나?’

    머리는 당장 도망가라 외치고 있었지만, 다른 이도 아닌 마왕의 명이었기에 섣불리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물의 상급 정령과 중급 정령, 게다가 불의 중급 정령과 땅의 하급 정령까지 나타나 설치는 상황이었다.

    “엔다이론.”

    -왕의 계약자시여.

    “저 자식이 화근이야.”

    넬라가 멍하니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족을 턱 가리키자 엔다이론이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쪽을 향해 돌진했다.

    ‘도,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엔다이론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크어억!”

    돌진한 엔다이론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꽂아 넣어진 창을 높게 들어 올리자, 투명한 창 위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쿠웅!

    엔다이론이 창에 꽂힌 마족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크억… 어억…….”

    바닥을 기는 마족의 입에서 피가 왈칵 터져 나왔다.

    -콰득. 콰드득.

    “꺼… 꺼억…….”

    다시 한번 무정하게 꽂힌 창에 마족의 몸이 이내 축 늘어졌다.

    “엄청나군.”

    “그러게. 상급 정령은 처음 봐.”

    멀리 있어 그 모습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순식간에 끝나버린 일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때 엔다이론의 앞에 물방울들이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커다란 사람의 형상이 되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자 주변에 포진한 모든 정령들이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

    일행들의 눈이 일제히 그를 한번 넬라를 한번 쳐다봤다.

    “아…….”

    엘라임이 나타났다.

    ‘도대체 저 사람, 아니 정령왕은 왜 온 거야?’

    주변을 슥 둘러본 엘라임이 손을 들어 허공에 슥 긋자, 남아있던 몇몇 몬스터의 몸에 얼음 창이 내리꽂혔다.

    “허, 허억…….”

    그 모습을 본 스키르가 입을 틀어막았다.

    [계약자.]

    엘라임의 눈이 곧장 넬라를 향했다.

    “왜요.”

    넬라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엘라임을 향해 묻자, 엘라임이 피식, 하고 웃더니 넬라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이럴 땐 나를 불러라.]

    엘라임은 넬라가 퍽 마음에 들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점찍어 뒀다는 게 맞았다.

    “알겠어요.”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아이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고, 지금 제게 하는 저런 행동들도 전혀 밉지 않고 예뻐만 보였다.

    “설마…….”

    물빛 머리칼과 청아한 기운. 일행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넬라와 친근히 말을 주고받는 엘라임을 보고 굳어있었다.

    “응. 맞아. 물의 정령왕님이야. 이것도 뭐… 그렇게 됐어.”

    어쩔 수 없다는 듯 넬라가 입을 열자, 일행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네 친구들의 입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가야겠군.]

    엘라임이 인자하게 웃었다.

    “안녕히 가세요.”

    넬라가 엘라임을 향해 괜히 툴툴거렸다. 넬라는 제게 친절한 엘라임이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다른 물의 정령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처럼 편안했는데, 엘라임은 아니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건 좋았지만 그냥 이상했다.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엘라임이 몸이 흩어지려는 때였다.

    “다들 괜찮아?!”

    어디선가 나타난 루카스가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 어. 루키.”

    “우린 괜찮다.”

    루카스를 향해 대답하는 폴라와 스키르의 눈이 한 곳을 자꾸만 흘끗거렸다. 얼른 눈치채라는 듯 말이다.

    하지만 루카스는 흩어지려다 말고 다시 제 존재를 지상에 붙잡은 엘라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넬라, 넬라 어디 다친 데 없어?”

    “응. 나는 괜찮아.”

    넬라의 몸을 이리저리 살핀 루카스가 차례로 폴라와 스키르의 몸도 살폈다.

    “폴라는 괜찮아?”

    “응. 나도 다친 데 없어.”

    “스키르. 너는? 괜찮아?”

    극성도 이런 극성이 없었다.

    “케이틀린. 괜찮은가?”

    “예.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케이틀린의 안위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루카스의 바쁜 손짓이 멈췄다.

    “저, 저기 루키…….”

    루카스의 소매를 살짝 잡아끈 폴라가 한쪽을 향해 슬쩍 다시 눈짓했다.

    “아.”

    그제야 엘라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루카스가 고개를 한번 까딱하자, 엘라임 역시 고개를 까딱했다.

    ‘뭐야. 아는 사이야?’

    도대체 루카스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마법 실력이 도대체 얼만큼인지도 짐작할 수 없으며, 물의 정령왕과도 구면인 듯한 저 태도라니.

    [다시 보는군.]

    “그렇군… 그렇습니다.”

    자연스레 반말을 하려던 루카스가 얼른 말을 덧붙여 정정했다.

    [안 그래도 널 찾아가려 했다.]

    “그렇습니까.”

    [그래. 여기서 불편하게 굴지 말고 함께 가지.]

    루카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려 엘라임에게 눈치를 줬다.

    [……흠.]

    입이 다시 벌어진 일행들을 본 루카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가자. 여긴 내가 상단주에게 말해둘게. 그러니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마.”

    루카스의 뜻을 알아차린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들이 이곳까지 온 것을 시비에 백작은 모르고 있었다. 그냥 광장쯤 나가서 구경이나 하고 오는 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말도 없이 섬에 가서 봉변을 당할 뻔했다는 것을 알면 분명 외출 금지 같은 벌이 내려질 것이 분명했다.

    “가자.”

    엘라임에게 슬쩍 눈짓한 루카스가 일행에게 손을 내밀어 곧장 텔레포트했다.

    ***

    일행들을 데려다준 루카스가 다시 섬으로 돌아가자, 엘라임이 아직 기다리고 있었다.

    ‘하긴 오 분도 안 되었으니.’

    어디서 만나자는 이야기도 정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가지.]

    엘라임이 말했다.

    “차라리 폴리모프를 하지 그래.”

    공기 중에 웅웅 맴도는 정령 상태인 엘라임의 목소리가 불편했던 루카스가 말했다.

    [네가 계약해 줄 건가. 내가 지금 드래곤 계약자가 없어 마나가 조금 모자라거든.]

    “하셀이랑 하지 그래.”

    [싫다더군.]

    “어이가 없네.”

    루카스가 허락의 의미로 팔 한쪽을 내밀려다 다시 거둬들였다.

    “마나 마음대로 가져다 쓰지 말고. 폴리모프만 하길 바란다.”

    [네 마나가 하셀보다 많은 것 같은데.]

    “…….”

    루카스가 다시 팔을 내밀었다.

    ‘이러다가 온갖 곳에 문장이 범벅 되겠군.’

    이미 한쪽 팔에 아만과의 계약의 인이 새겨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물의 정령왕과 계약을 하게 되면 양팔에 문장을 하나씩 새긴 상태가 될 것이다.

    [나와 계약하겠는가.]

    “그래.”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엘라임의 기운이 곧장 팔로 스몄다. 팔뚝에 느껴지는 시원한 기운에 루카스가 몸을 흠칫 떨었다.

    [엄살은.]

    계약을 마치자마자 엘라임이 곧장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했다. 머리카락 색은 여전히 물빛이었으나 풍기는 기운이 한결 인간과 흡사해졌다.

    “한결 낫군.”

    “그래.”

    웅웅거리던 목소리가 사라지자, 대화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그런데 나를 찾으려던 이유가 뭔가?”

    루카스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 보여줄 게 있어서 말이야. 내게 맡겨진 건데 주인이 너인듯싶군.”

    “……?”

    “가지.”

    엘라임이 팔을 내밀자 장면이 바뀌었다.

    “저거다.”

    엘라임이 데려온 곳은 아무것도 없는 커다란 동굴이었다. 동굴 가운데엔 바닥에서 솟는 듯 보이는 맑은 물이 찰랑거리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엘라임이 가리킨 곳엔 화려한 테두리로 이루어진 큰 거울이 놓여있었다.

    “거울?”

    “그래. 주신이 내게 맡기신 거다.”

    “주신이?”

    사라져버린 주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루카스가 성큼성큼 걸어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네가 주인이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든 벌어지겠지.”

    엘라임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주신의 거울이라…….”

    거울 앞에 선 루카스가 물건이 뿜는 기운을 읽어보려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거울은 미동조차 없었다.

    “흠…… 너도 주인이 아닌 건가.”

    거울 위에 손을 얹은 루카스가 탐색 마법을 펼쳐 거울의 기운을 찬찬히 읽어냈다.

    ‘주신의 거울이라고 하기엔 기운이 너무 미약한데.’

    분명 신력이 느껴지긴 하지만 주신의 물건이라 하기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흠.”

    작게 숨을 내쉰 루카스가 거울에서 손을 떼고 팔짱을 꼈다.

    ‘아, 뭐가 묻었었군.’

    거울 앞에 서니 머리칼에 붙은 작은 잎사귀가 눈에 들어왔다.

    -우우웅!

    잎사귀를 떼어 바닥에 툭 던지던 그때 거울이 크게 진동했다.

    “……?!”

    “네가 주인이 맞군.”

    -우우우웅!

    다시 한번 크게 진동하더니.

    -파아앗!

    커다란 빛이 터져나와 루카스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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