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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75화 (175/225)
  • 175화. 낙원 (1)

    파멜라와 모든 이야기를 마친 마왕 야스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침실에 들어섰다.

    ‘좋군. 일이 술술 풀려가고 있어.’

    임시로 만들었지만 지금 머무는 거처도 꽤 마음에 들었다. 주변을 둘러싼 튼튼한 결계와 층층이 쌓은 마법 덕에 드래곤들이 저들을 찾을 염려도 없었다.

    그때, 야스탄의 앞에 커다란 빛과 함께 동공이 생겨나고 있었다.

    ‘마신이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야스탄은 얼른 바닥에 엎드려 타라스를 맞을 준비를 했다.

    [야스탄.]

    “지고하신 분을 뵙습니다.”

    야스탄이 이마를 바닥에 붙여 자세를 더욱 낮췄다.

    [네놈이 건든 인간이 누구인지 아느냐?]

    하지만 마신의 목소리는 분노한 듯 이글거렸다.

    “…….”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그저 땅에 더욱 이마만 바짝 붙인 타라스가 잠시 생각했다.

    ‘설마 파멜라 저 계집을 두고……?’

    하지만 말이 안 되었다. 파멜라는 오래전부터 부활교에 몸을 담고 살지 않았는가. 게다가 파멜라는 건든 게 아닌 구해온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그 인간 사내를…….’

    타라스의 미간이 구겨졌다.

    [내 질문이 어려웠나.]

    “죄송합니다. 실력이 대단하긴 했지만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그자를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마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 인간 남자가 아닌가.

    게다가 분명 저에게 악의가 가득했는데 건드리지 말라니?

    [……야스탄.]

    “커, 억!”

    타라스가 억눌렀던 신력이 자제력을 잃고 잠시 터져 나오자, 야스탄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크윽…… 알겠습니다.”

    인간 남자. 그가 도대체 누구인지는 몰라도 분명 중요한 인물일 것이다.

    ‘분하다. 너무, 너무 분하다.’

    하지만 분해도 너무 분했다. 제 힘과 남자의 힘이 맞부딪혔을 때, 야스탄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신성력이 더해진 아티팩트에 엄청난 마력. 그것은 흡사 드래곤이 신성 마법을 쓰는 것과 같은 위력이었다.

    그런데도 그 인간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니?

    [경고했다.]

    “위대하신 마신이시여.”

    야스탄이 용기를 내 타라스를 불러 세웠다.

    [뭔가.]

    “우매한 제가 혹여 또 실수를 범할까 무섭습니다. 혹시 그 남자 인간을 제외한 또 다른 조심해야 할 자가 있는지요.”

    그러자 타라스가 몸을 홱 돌리며 대답했다.

    [없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분이 조금은 삭아들었다. 남자 인간을 찾아내 그 주변을 모두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인간은 본디 심성이 나약한 존재이지 않은가?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충격을 견디지 못하면 그 마로는 뻔하디뻔했다.

    몸을 돌린 타라스의 앞으로 다시 커다란 동공이 열리자, 이내 방 안엔 야스탄만이 남게 되었다.

    제 입안에 고인 핏물을 모아 바닥에 퉤, 뱉어낸 마왕의 입가가 피로 번들거렸다.

    ‘홀로 남겨주마. 그리고 내 손을 잡게 만들어 주지.’

    ***

    방에 홀로 앉은 넬라는 구석에 세워진 목검 한 자루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저씨…….’

    아저씨를 죽인 게 누구일까. 정령들에게 물어도 그저 고개를 저을 뿐 확실한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소매를 걷어 낸 넬라가 제 팔뚝에 새겨진 푸른 인장을 슥 쓸었다.

    커시스가 싸늘하게 죽었던 그 날 홧김에 불러냈던 물의 정령왕 엘라임. 그가 진짜로 저와 계약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직 상급 정령도 부릴 줄 몰랐었는데…….’

    상위 정령을 소환하게 되면 하위 정령들은 자연히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별도의 계약 따위도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왕과 계약할 줄이야.

    제 몸에서 빠져나간 방대한 양의 마나로 인해 까무룩 기절을 했었다. 그런데 깨어보니 눈앞에 물빛 머리칼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엘라임이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많이 컸구나. 벌써 나를 부를 줄이야.]

    넬라를 내려다보며 웃는 엘라임의 목소리와 얼굴은 정말이지 신비로웠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물’바로 그 자체였다.

    [나와 계약을 하겠는가.]

    혹시 꿈인가 싶어 머리를 세차게 흔들자, 엘라임의 눈이 커졌던 게 생각난다.

    [계약을 하려 부른 게 아니라는 건가.]

    ‘아뇨, 아니에요! 꿈인 줄 알았어요.’

    그러자 물의 정령왕이 다시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제 팔목에 정령왕의 인장이 새겨졌다. 그와 동시에 자연계 정령들이 저를 왕처럼 떠받들기 시작했다.

    ‘계약자시여.’

    웃긴 건 그 방정맞던 나이아스들조차 저를 깍듯이 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웃겨 정말.”

    넬라의 시선이 제 팔에서 목검으로, 그리고 다시 팔로 돌아왔다.

    “하…….”

    아저씨를 죽인 자를 찾아내 벌하겠다고는 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누구를 벌해본 적도 없으면서.’

    지나가던 꿀벌 한 마리조차 죽여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호기로 정령왕까지 불러냈는지 아직까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아저씨가 죽던 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제 부모를 죽인 자가 아란트 황제라는 것도, 흑마법 집단의 나쁜 소행이라는 것도 모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벌해줄 황제도 이미 죽고 없었으며, 황실은 메테오를 맞아 쑥대밭이 되었단다.

    그러다 보니 넬라는 마치 갈 곳을 잃은 화살처럼 허공에서 방황했다.

    “하아…….”

    기분 전환이 절실했다. 이럴 땐 역시 친구랑 노는 게 최고였다.

    넬라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

    오랜만의 외출이었지만, 함께 나온 스키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였다.

    게다가 황실이 쑥대밭이 되었다 하니 저를 찾는 사람들이 늘기도 했다.

    ‘황실을 받치는 기둥이 되어주세요.’

    스키르에게 연일 날아드는 편지엔 이런 내용들이 수두룩했다.

    “오늘 우리 뭐 할까?”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딱히 할만한 게 생각나진 않았다. 그러자 같이 걷던 케이틀린이 슬쩍 입을 열었다.

    “저번에 갔던 곳은 어떨까요? 마차랑 배를 타도 두 시간이면 충분해요.”

    골드 나인이 만든 휴양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 그럴까?”

    안 그래도 날도 한참 더워져 답답하던 차에 괜찮은 생각 같았다.

    “거기 이제 열었어요?”

    “아직 안 열었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언제든 찾아 오라고 하셨으니 방문해도 괜찮을 거예요.”

    케이틀린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아이들이 서로 눈을 번갈아 마주쳤다.

    “그래. 그러자.”

    스키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폴라의 표정이 활짝 피어났다.

    “그래!”

    괜히 저 때문에 아이들의 기분마저 망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던 차였다. 하지만 행복한 기억이 있는 곳을 다시 방문하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겠지.

    “가자.”

    게다가 폴라가 저리도 좋아하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폴라를 바라보는 스키르의 눈에서 꿀물이 뚝뚝 떨어졌다.

    “야. 표정 풀어. 다 괜찮을 거니까.”

    하지만 폴라는 그런 거 따윈 모르는 듯 보였다.

    “그래. 알겠어.”

    스키르가 베시시 웃자, 폴라가 어깨를 한번 다정히 두드리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어느새 마차를 타고 선착장에 도착한 일행들이 들뜬 마음으로 배에 올라 탔다.

    “우와. 나 이런 배는 처음 타봐.”

    “나도. 진짜 멋지다. 그치?”

    새하얀 갑판 위에 선 아이들이 고급스러운 배의 내부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크-! 멋지다. 로드리고 가문의 문장이네.”

    폴라가 선체에 새겨진 금빛 문장을 보며 말했다.

    “그래. 멋지군.”

    그러자 스키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폴라의 말에 동조했다.

    “오~ 네가 웬일이래? 우리 가문에도 어쩌고저쩌고 안 하고?”

    스키르의 말을 들은 폴라가 괜히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가볍게 말했다.

    “하하. 멋진 걸 멋지다고 하지 그럼 뭐라 하겠나.”

    “귀엽긴.”

    그러자 스키르의 볼이 훅 달아올라 귀까지 새빨갛게 변했다.

    “크, 크흠.”

    고개를 홱 돌린 스키르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바다 끝에 던졌다.

    ‘귀엽다니. 나는 귀여운 게 아니라 멋진 건데…….’

    하지만 귀엽다고 말하며 싱긋 웃는 폴라의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언젠가 꼭 폴라에게 정식으로 청혼할 거다.’

    코를 훑는 짭쪼름한 바다 내음이 썩 괜찮았다.

    ***

    섬에 도착한 일행들은 들뜬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바닷가를 걸었다.

    “아, 루키는 온대?”

    “응. 이따가 오겠다고 했어.”

    백작저에 없는 루카스와 수정구로 연락을 주고받은 넬라가 대답했다.

    “근데 넬라. 너 아까 팔목에 그 이상한 문장은 뭐야?”

    “아, 그냥. 뭐…….”

    “으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피부에 안 좋다니까?”

    폴라가 넬라의 등을 찰싹 내리쳤다.

    “너 옛날에도 무슨 마도구 상점에 파는 이상한 문양 자꾸 붙이고 하더니만, 아직도 그러면 어떡해!”

    “하하…….”

    폴라는 넬라의 팔뚝에 있는 정령왕의 인장이 아이들이 장난삼아 붙이는 마도구인 줄 착각한 듯 보였다.

    “아, 저번에 여기서 먹었던 거 그거 뭐였지?”

    “토토족의 이슬?”

    “맞다! 그거. 진짜 맛있었어.”

    “그런데 메뉴 이름이 너무 괴상하지 않나. 토토족의 이슬이라니…… 마치 토토족을 짜낸 것 같은 느낌이다.”

    폴라와 넬라가 입을 떡 벌리고 스키르를 쳐다봤다.

    “아니, 도대체 머리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 거야? 토토족의 이슬이라는 이름을 보고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가 있다니!”

    “맞아. 가끔 보면 스키르 오빠는 조금 이상하더라.”

    경악하는 폴라의 표정을 본 스키르가 얼른 손을 내저으며 항변하려 했지만, 둘은 이미 빠른 걸음으로 멀찌감치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게 아닌데!!!”

    그 뒤를 쫓는 스키르의 뒷모습이 애처로웠다.

    일행들은 물놀이 뒤에 따뜻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라솔 아래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행복해도 되는 걸까.’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그들의 머릿속에 모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으아악!!!”

    그때 뒤편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에 일행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바비큐 불에 데이기라도 한 건가 싶어, 폴라가 먼저 식당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게 뭐야?”

    하지만 그곳엔 불에 데인 사람이 아닌 갈가리 찢겨 죽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시커먼 구멍이 생겨나 몬스터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몬스터가 왜 여기서 나와?”

    폴라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몬스터가 왜 여기서 나오긴.”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낯선 목소리에 놀란 일행들이 화들짝 놀라 뒤로 멀어졌다.

    “내가 불렀어. 인간 따위가 누리기엔 여긴 너무 지상 낙원 같잖아.”

    잿빛 피부에 곧게 솟은 뿔. 책에서나 보던 마족이 분명했다.

    -우웅!

    스키르가 곧장 방어 마법을 발동해 아이들을 보호하고.

    -쿠구구구…….

    어느새 나타난 케이틀린이 땅의 정령들을 소환해 사내 앞을 막아 섰다.

    -쿠르르릉!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번쩍이는 번개가 쏟아지는 마물들을 향해 내리치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키르! 버프!!!”

    “알겠다!”

    동시에 펼쳐지는 마법들이 낙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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