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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74화 (174/225)
  • 174화. 모르는 척하세요.

    마왕 야스탄과 응접실에 단둘이 남은 파멜라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제발, 제발 부탁드려요.”

    “하하. 뭘 말인가요.”

    그 모습을 본 마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파멜라를 내려다봤다.

    “리월에게는 제발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려요.”

    “그러니까 어떤 걸요? 파멜라 양의 힘을 준 게 나라는 사실? 그게 아니면 파멜라 양이 교주의 애첩이었다는 사실?”

    파멜라가 머리를 땅에 붙이고 바짝 엎드렸다.

    “뭐든, 뭐든 할게요. 그러니 제발 리월에게만은…… 저는 이제 저 사람 없으면 죽어요. 제게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제발, 제발…….”

    애절한 목소리로 비는 파멜라의 손끝이 파들파들 떨렸다.

    “하하하! 정말 우습군요. 인간이란 정말 우스워요.”

    그 모습을 본 마왕이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인간들도 모두 알지 않나요? 사랑이라는 멍청한 감정엔 기한이 있어요. 언젠가 사랑은 사그라들죠.”

    소파에 털썩 앉은 마왕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죽고 못 살던 인간 부부들도 시간이 지나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입에 담지도 못할 상스러운 말을 서로에게 뱉으며 싸우는 것은 흔하지 않나요?”

    바닥에 납작 엎드린 파멜라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 감정이 그런 감정이라도 괜찮아요. 리월이 제게 손가락질을 해도, 욕을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제발…….”

    “정말 모순이에요. 파멜라. 손가락질하고 욕을 해도 괜찮은데 사실을 알면 왜 안 된다는 거죠? 나도 참 난감한 상황이군요. 당신을 우리가 구해 온 것은 리월이라는 친구도 알 텐데 말이에요.”

    파멜라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마왕을 올려다봤다.

    “저를 떠나지만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리월이 제 곁에만 있어준다면, 저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보지만 않는다면 모두 괜찮아요.”

    파멜라가 활짝 웃자, 마왕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사랑에 미친 광기에 팔뚝에 소름이 돋을 뻔했다.

    “크, 크하하하! 하하하!”

    마왕이 고개를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하, 하하…… 좋아요. 그렇게 하죠. 하지만 파멜라.”

    파멜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다시 꾸벅 숙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내 부탁을 이제부터 잘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분명 뭐든 한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물론입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마왕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났다.

    ‘리월에게 면죄부가 아니라 작위라도 하나 내려야겠군.’

    ***

    쑥대밭이 되어버린 황성을 멍하니 바라보는 한 여인. 그녀는 궁중 예언가인 헬로즈 어넷이었다.

    일이 있기 전 제 점괘가 별로 좋지 않아 수도를 빠져나가 있었던 그녀는 운이 좋게 화를 면했다.

    ‘이 일이 벌써…….’

    이십여 년 전 꿈에서 봤던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 아직 죽어서는 안 되었던 황제가 죽었으며, 아직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엉망이 된 황궁과 그곳에서 회의를 열었던 귀족들 모두가 죽었다. 게다가 황실을 지탱하던 공작까지 없으니, 아란트는 지금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라면 아란트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제국의 태양이 지고 그 자리가 비었다. 떠받들던 기둥들도 모두 바스라졌으니 아란트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탐하지 말아야 할 것을 탐했구나.’

    황제에게 했던 경고 중 지켜지지 않은 것이 있었기에 모든 일이 앞당겨졌다.

    시타타. 그곳을 건들지 말라 분명 경고하였거늘 제가 자릴 비운 사이 귀족들이 그곳을 들쑤셨다. 그리고 곧장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시타타에 뜬 커다란 별은 태양을 가릴 만큼이라는 것을 헬로즈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곳을 탐하지 말라 하였거늘…….’

    헬로즈가 주먹을 꽉 쥐었다.

    ***

    지금 온 제국은 로드리고 백작가의 장남이 벌인 엄청난 일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 중엔 폴리모프라는 마법이 있었기에, 그 소문은 그다지 힘을 얻지 못하는 중이었다.

    “하. 그래. 본 사람이 많은 건 나도 안다고! 그런데 자네는 그 메테오라는 마법이 보통 마법인 줄 알고 하는 얘긴가? 마탑주도 그건 못 할걸세!”

    “아니! 그럼 누가 그런 짓을 벌였다는 말이야!”

    “드래곤! 드래곤 아니겠냐고. 어? 시타타가 드래곤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소문은 옛날부터 떠돌았어. 그러니까 드래곤이 시타타를 건들지 말라는 경고를 하려고 한 게 아니겠냐 그거야!”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그럼 한번 물어보세. 아카데미 상급반에 다니는 학생이 메테오를 떨어트려? 파이어볼도 아니고? 그게 자네는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무어라 반박하려 입을 달싹이던 사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봐. 말이 안 되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그치?”

    “크흠…… 그럼 자네 말대로 진짜 드래곤이라고 생각해 보세. 그럼 왜 시타타에 있는 로드리고 백작가는 황제가 되려 하지 않는 건가?”

    “맞아. 저만한 권력에 저만한 힘이면 충분히 가능한 거 아닌가? 게다가 떠도는 다른 소문에 의하면 백작가가 공작가를 처리했다는 말도 있던데 말이야.”

    그러자 큰 소리를 내던 사내가 제 입에 얼른 검지를 갖다 붙이며 쉿, 소리를 내었다.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다른 귀족들이 왜 죽었는지 방금까지 얘기하지 않았나? 바로 그 소리를 했다가 모두 죽은 거라고!”

    “크흠…….”

    “자, 잘 듣게. 자네 말도 일리가 있어. 돈도 많고 드래곤의 가호도 받고 게다가 시타타를 그렇게나 잘 다스리는 사람이 왜 황제가 되려 하지 않느냐.”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죽였다.

    “그 속을 누가 알겠는가.”

    “에잇! 이 사람이?”

    김이 팍 새는 소리에 다른 사내 하나가 역정을 냈다.

    “스읍!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네.”

    그러자 다시 사람들이 귀를 귀울였다.

    “어차피 지금 시타타는 빈집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벌써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쪽 경비대는 아주 전쟁 직전 분위기라고 하더구먼.”

    “설마?”

    “그래. 주변국에서 쳐들어오면 그때 백작가가 딱! 나서서?”

    그러자 사람들이 오오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않겠느냐는 거야. 어차피 지금 로드리고 백작가가 황성으로 올라와서 황권을 장악한다고 해도 누가 환영을 해주겠냐는 거야. 응? 오닐 공작가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

    “그런데 주변국들의 위협으로부터 제국을 딱! 지켜내고 황권을 쥐면? 명분도 있고 위신도 살고 사람들도 무슨 말을 못 하지 않겠냐 그거지.”

    꽤 괜찮은 논리고 그럴싸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이라도 시타타에 발을 한 쪽씩 슥 걸쳐놔야 하지 않겠어?”

    “무슨 수로?”

    “그거야 뭐. 차차 생각해 보자고.”

    ***

    루카스도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지금 사람들이 뭐라고 떠는 줄이나 아느냐? 네가 황성에 메테오를 떨어트려 귀족들을 모두 몰살했다고 하더구나!”

    제 아버지인 시비에 백작의 말에 루카스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하하. 제가 그런 상상을 하긴 했는데, 제 상상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루카스! 이건 심각한 문제다. 혹시…… 진짜 네가 그런 것은…….”

    “하하하!”

    루카스가 과장되게 웃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군요.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메테오는 그렇게 쉬운 마법이 아닙니다. 제가 무슨 수로 황성에 메테오를 떨어트렸겠습니까.”

    그러자 시비에도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 그렇지?”

    “예. 그렇지요. 아니, 그런데 이상하군요. 누가 제 모습을 하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하…… 나도 지금 그게 의문이다. 도대체 누가 네 모습을 하고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소문을 들어보니 어차피 네 짓이 아니라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문제는 문제다.”

    시비에가 제 관자놀이 부근을 꾹 눌렀다.

    “그래서 지금 중앙 귀족들이 모두 죽어버렸다 그 말씀이십니까?”

    시비에가 끄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속은 시원하군요.”

    “아니, 루카스! 사람이 죽었다는데 속이 시원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루카스의 말에 시비에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하하.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은 건 안타깝지만, 아버지께 무례하게 굴었던 자들 아닙니까. 과거는 잊어야 한다지만, 인간이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너무도 태연히 대답하는 루카스의 모습에 시비에는 허 하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니, 쟤가 어느새 이렇게…….’

    제 품 안의 작은 아들이었는데, 너무도 훌쩍 커버린 루카스의 모습이 익숙치 않았다.

    “그보다 다음이 문제겠습니다. 분명 다른 소문도 돌 텐데요.”

    “허.”

    게다가 익숙하게 저와 다른 논의를 하려 들기까지.

    “게다가 분명 주변국에서도 아란트를 노리고 있을 겁니다. 아란트는 중앙 대륙 한가운데에 자리한 가장 큰 제국이니까요.”

    “허…….”

    다른 논의를 하려 드는 게 아니라 정확히 핵심만을 짚어내고 있었다.

    “에스나와 모라인은 오랜 내전으로 이미 침체되어 있으니 큰 걱정이 아닙니다. 가장 큰 걱정은 사실 라스칸이지요.”

    이쯤 되니 이제 제 아들인 루카스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달리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눈앞에 앉아 계신 제 아드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그, 그렇지…… 그럼 네 생각은 어떠냐. 우리가 어떤 대비를 해야 맞겠느냐.”

    “흠…….”

    시비에의 질문에 루카스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라스칸은 쉽사리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아란트가 빈집이 되었다 한들 저들이 탐하기엔 아직 강성하지요.”

    시비에가 침을 꿀꺽 삼켰다.

    “라스칸이 도움을 청할 만한 곳은 에스나와 모라인인데, 저 둘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게다가 가운데 아란트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협공도 어려울 겁니다.”

    루카스는 마치 전술을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처럼 말을 술술 뱉어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제국의 중요한 자리를 맡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곳은 그나마 바마라스인데, 그들은 절대 돕지 않을 겁니다. 그리 크지 않은 섬인 데다 무역이 더 중요한 곳이니 말입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말이냐?”

    루카스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무슨 행동을 해도 다른 이들의 눈엣가시일 겁니다. 사고파는 물건 하나마저도 책을 잡힐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와 다른 행동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겠습니다.”

    “흠…… 그래 네 말이 맞다.”

    “아버지께서도 누가 이번 일에 관해 묻거든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를 고수하십시오.”

    시비에는 오늘 여러 번 놀라고 있었다.

    ‘아직 스물도 채 안 된 아이가 이리도 똑똑하다니!’

    제 자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

    “예. 잘하고 계십니다.”

    루카스가 싱긋 웃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에 시비에도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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