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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72화 (172/225)

172화. 전부 죽여야겠다. (3)

폭발에 휩쓸린 주변은 마치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휑하게 비어버렸고, 부활교가 세운 새로운 성녀회의 건물도 사라지고 말았다.

흙먼지를 헤치고 루카스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젠장.”

주변은 쑥대밭이 되었는데 마왕과 파멜라의 흔적은 찾을 수조차 없었다. 그들이 폭발에 휩쓸려 소멸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마지막까지 그 자식이 기운이 느껴졌어.’

그리고 커다란 폭발이 일기 전 마왕의 마력이 요동치더니 이내 사라졌다.

‘파멜라까지 데리고 텔레포트하다니.’

예상치 못한 변수인 마왕이 툭 튀어나와 제 계획을 다시 틀어놓자, 루카스의 표정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이 개 같은 자식을 당장 이 땅에서 지워버려야 속이 시원하겠군.’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미 놓쳐버린 걸 어쩌겠는가.

“후.”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

“아닐 거예요.”

“그래요. 아직 다른 곳에 사제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리에베르크에 본거지를 둔 성녀회가 의문의 폭발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니, 부활교도 그렇고 성녀회까지 이렇게 사라져 버리면…….”

“그러기에 내가 뭐라고 했어요? 드래곤의 미움을 받은 거라니까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라면 드래곤이 너무한 거 아니에요? 힘없고 가여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낫게 해주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거예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그래. 사실 성녀회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지 않나? 부활교도 그렇고.”

그들이 한 짓들을 모두 알 리 없는 사람들은 한순간에 없어진 제 종교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이라고 뭐 대단한가? 우리랑 사실 아무 상관 없는 거 아니야! 그럼 드래곤들이 와서 우리 병을 고쳐주고 가여운 사람을 도와주기라도 한다는 건가?”

“맞아! 드래곤이 언제 우릴 도와준 적이나 있어? 가끔가다 몬스터들이나 도와주는 것 같더구먼. 게다가 귀한 아티팩트나 유물들은 자기네들이 싹 쓸어가잖아?”

분노한 사람들이 하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성녀회를 진짜 드래곤이 없애버린 거라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않겠냐는 거야!”

“그래. 옛날에 인간들이 사제들과 함께 드래곤에 맞섰던 이야기 알지?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사람들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있었다.

***

하셀을 찾아간 루카스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했다.

“하셀.”

“로드.”

“그래. 고생이 많았다.”

루카스는 하셀과 아만이 제 마법을 막아내기 위해 보호 마법을 쓴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하셀이 고개를 저으며 싱긋 웃었다.

“엘프들이 완전히 돌아섰다지.”

루카스가 천천히 찻잔을 집어 들며 말했다.

“네. 아직 확실히 그러겠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곧 완전히 돌아설 것 같은 분위기는 맞습니다.”

“흐음…….”

차의 향을 깊게 음미한 루카스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아주 상극인 둘이 손을 맞잡을 정도니…… 내가 저절로 반성이 되는구나.”

엘프와 마족은 서로 상성이 맞지 않은 탓에 서로 거리가 먼 종족이었다.

하지만 이종 간의 사랑은 누구도 막을 수 없기에 마족과 엘프의 혼혈 역시 있었다.

서로 다를수록 끌린다고 하던가. 너무나도 다른 두 종족의 혼혈은 꽤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었고, 아직 다크 엘프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살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모자란 탓이지요.”

“아니다. 내가 죽은 지 천 년쯤 지난 것도 아니고 고작 이십 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아니냐. 그러니 내 탓이 맞다.”

루카스의 단호한 말투에 하셀이 끙, 하는 소릴 작게 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 내가 모든 일을 수습하는 게 맞겠지.”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제 몸을 엄습하는 불안감에 하셀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쩌긴 뭘 어쩌겠느냐.”

차를 한 모금 홀짝인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다 죽여야지.”

“로드!”

그 말을 들은 하셀이 버럭 소리쳤다.

“다 죽인다니요. 이 땅 위의 모든 종족은 다 필요한 이들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로드께서 직접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다 죽이겠다니요.”

“하셀. 이제 나는 모르겠구나. 정녕 그들이 이 땅에 모두 필요한 이들인지 말이다. 사실 땅은 비좁은데 원하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으냐.”

“그래도 안 됩니다. 지금 로드께서는 너무 지나친 생각을 하고 계세요.”

제 잘못으로 인해 스키르가 불행을 겪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루카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들이 제 부모까지 위협하고 들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화풀이는 황성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리에베르크를 날려버린 것으로 충분하고 넘쳤다.

“아니. 여태 내가 잘못 생각했다. 나의 같잖은 고집과 아집에 너희들이 너무 힘든 길을 걷고 있다. 모두 내 탓이고 잘못이다.”

“아니요.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그런 생각은 마세요. 인간의 몸으로 저를 처음 찾아오셨을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인간의 생을 잘 마치고 싶다고 하셨잖습니까.”

하셀이 답답한 마음에 말을 와르르 쏟아냈다.

“그런데 지금 로드께서 하시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그와 거리가 멉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저희에게 뒷일을 조금은 맡겨도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루카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내 업이니 내가 해결하겠다. 얼마나 좋으냐. 내가 드래곤이 아니니 너희에게 화살이 돌아갈 일도 없지 않으냐.”

루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드.”

하셀이 나직한 목소리로 루카스를 불러 세웠다.

“정녕 그 일을 행하신다면 저 역시 로드를 말릴 수밖에 없습니다.”

찻잔을 내려다보던 하셀의 눈이 루카스를 향했다.

“그 과정에서 로드께서 다치실 수도 있겠지요.”

하셀의 눈을 마주한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그러든지.”

등을 돌린 루카스가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

모든 걸 결심한 루카스의 행동은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반기를 든 엘프를 먼저 처단하면 다른 종족들은 알아서 몸을 사리게 될 거라는 판단도 함께였지만, 그럼에도 과격한 행동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이다.’

제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시는 스키르가, 넬라가, 그리고 폴라와 제 부모가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고 싶었다.

‘평범하게 인생 살긴 글렀군.’

평화롭게 살다 가고 싶었던 루카스의 바람은 이미 저 멀리 사라져 버렸으니 굳이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엘프들의 숲 앞에 선 루카스가 작게 심호흡을 했다.

‘망설일 필요 없다.’

이제 이 숲을 날려버린다면 다음은 한결 쉽고 편해질 것이다.

‘망설일 필요 없어.’

루카스가 손에 마력을 끌어모으자, 감각이 예민한 엘프들이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입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마력을 끌어모으는 루카스를 향해 엘프 하나가 소리쳤다.

“누구시기에 이런 짓을 하십니까!!!”

그는 제 마을이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음에도 평화를 중시하는 엘프답게 멀찍이 서서 루카스를 향해 소리만 쳐댔다.

-피웅! 피웅!

루카스를 향해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살은 루카스를 맞히기는커녕 그의 발치와 앞쪽에 내리꽂혔다.

“건방지군.”

엘프는 궁술에 능했다. 날 때부터 화살촉을 손질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활을 좋아하는 종족이었다. 그런데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루카스를 맞히지도 않는다는 것은 일부러 그를 피해 쏘는 것이었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마세요!”

엘프들은 루카스를 마주했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상대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저희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도대체 저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또 이러시냐는 말입니다!”

루카스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완연한 인간의 것이었기에 더욱 서럽게 외쳤다. 왜 제게 또 이러는지, 인간은 왜 이리도 저들을 미워하는지 분이 울컥 솟구쳤다.

사실 화살이 날아와 바닥에 꽂히는 순간부터 루카스의 손에는 더 이상 마력이 모여들지 않고 멈춰 섰다.

흔들리지 않겠다고, 망설이지 않겠다고 수십 번 다짐했건만 저를 공격하지도 못하는 화살을 보니 그 다짐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힘없는 약자를 괴롭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아이를 향해 주먹질을 하는 듯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손에 모였던 마력이 흩어지자, 엘프 하나가 고개를 연신 숙여댔다.

하지만 그의 뒤에 선 부족원들은 눈을 모로 뜬 채 전투태세를 풀지 않았다. 그들의 곁에는 소환된 정령들이 언제라도 달려들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며, 높은 나무 위에 앉은 엘프들은 활시위를 아직 팽팽히 당기고 있었다.

“족장인가.”

그러자 제게 소리를 쳤던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루카스가 구해줬던 엘프의 부족과는 다른 부족이었기에 서로 초면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으려 일부러 초면인 마을을 찾아오기도 했고 말이다.

“맞습니다.”

“부족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았네.”

그는 혹여 루카스와 전투가 벌어지면 잃게 될 부족원들을 위해 저자세를 유지했다.

“제발… 저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공격만은 삼가주십시오.”

루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해야겠군.”

루카스의 말에 족장이 주춤거리며 다가가자, 뒤에 선 부족원들의 경계심이 더욱 강해졌다.

그에 족장은 뒤를 돌아보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마족들의 편에 서면 그들이 무엇을 준다고 하던가.”

“…….”

족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저 고위 마법사인 인간이 찾아와 저들을 해치려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엇을 준다고 했기에 당연스레 그들의 편에 선다고 했는가.”

조금 전까지 제 마을을 날려버리려고 했던 남자의 평온한 목소리에, 족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켜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예로 살 걱정이 없게 해주겠다 했습니다. 더 이상 인간의 손에 이리저리 팔려 다니지도, 아름다운 외모를 내세워 노예상의 먹잇감이 되지도 않게 해주겠다 약속했습니다.”

족장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뿐인가.”

“또 저희에게 왕이라 칭송받던 무심한 드래곤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겠다 약속했지요.”

“그래. 그랬군.”

모든 말을 마친 족장의 눈이 루카스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드래곤의 계약자이시군요.”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역시 인간이니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인간인 루카스에게 인간을 흉보는 게 좋은 처사는 아니었기에 족장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드래곤들이 어떻게 하면 자네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입에서 흘러나온 엄청난 말에 족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감히 드래곤을 용서하다니? 강한 자에겐 용서 따윈 필요가 없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강자의 위용은 떨어진다 생각하는 이들이 바로 드래곤이었으니까.

족장의 입에서 피식, 하며 작은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드래곤의 계약자이시면서 아직 잘 모르는 게 있으시군요. 저희가, 아니, 땅 위의 모든 종족에게 드래곤을 용서할 권한 따위는 없습니다.”

“…….”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저 역시도 드래곤으로 살며 다른 종족의 용서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러니 저희가 어떤 걸 원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저희는 마족의 편에 서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후손들 중에 마족의 혼혈도 더러 있으니 말입니다.”

“…….”

“그리고 마족은 드래곤을 제외한 어떤 종족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습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확인 사살을 받은 듯한 느낌에 후회가 밀려왔다.

‘망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무르게 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셀을 만나 호언장담했던 제 모든 말이 사라졌다.

‘그래서 하셀이 오지 않았던 건가.’

마력을 끌어올려 마을을 날려버리려는 때에도 하셀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피식. 이번엔 루카스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 네 말이 모두 맞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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