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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69화 (169/225)

169화. 의심.

깨어난 스키르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편지만 조작하지 않았더라면…….’

스턴이 공작의 필체를 똑같이 따라 해서 편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용이야…….’

하지만 이미 그때는 늦었을 때였다.

“어머니…….”

끝까지 놓지 않았던 제 배로 품어 낳은 자식. 장남이라며 언제나 좋은 것만 해주려 했던 그들은 그렇게 제 자식의 손에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

저 역시 루카스가 아니었더라면 죽었겠지.

가슴이 꿰뚫렸을 때의 고통은 말도 못 하게 끔찍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한 고통이 밀려왔다.

‘루카스만 아니었으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야.’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그랬더라면 이 모든 일이 알려지는 데엔 시간이 더 걸렸겠지. 게다가 형님… 아니 스턴 그 새끼도 죽이지 못했을 거야.’

무슨 정신이었는지는 몰라도 루카스에게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던 것이 생각났다.

눈물은 한없이 흐르는데 어쩐 일인지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온갖 감정이 섞여들어 가슴은 너무 뜨거운데 머리는 오히려 차가웠다.

‘스키르. 자부심을 가지거라. 너는 오닐 공작가의 차남이니 말이다.’

아버지께서 제 어깨를 두드리며 항상 하던 말이었다.

‘어쩜 이렇게 잘생겼을까? 요즘 엄마는 네 덕에 산단다.’

이젠 저보다 훌쩍 커버린 스키르의 머리를 쓸어 넘기는 어머니의 얼굴이.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스턴이 반쯤 미쳤을 때 제가 했던 말이.

‘네 형이 없으면 이제 네가 우리 가문을 이을 사람임을 명심해라.’

스턴이 집을 나갔을 때 아버지가 저를 불러 했던 말이. 그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마른 손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아낸 스키르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장례를 치러야 한다.’

거울 앞에 섰다.

‘나는 오닐가의 차남 스키르 오닐이다.’

엉망이 된 머리를 뻣뻣한 손으로 꾹꾹 눌렀다.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는 아들이 될 수 없다.’

스키르의 볼을 타고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

“공작가요? 아니, 그 오닐 공작가?”

“이 사람이? 그럼 여기 오닐 공작가 빼고 다른 공작가가 어디 있어?”

“세상에나…….”

퍼질 대로 퍼져버린 소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말았다.

“그럼 그 안에 있던 사용인들도 모두……?”

“그래.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공작가에서 일하던 사용인들 모두가 연락이 닿지 않자 방문한 사람 하나가 현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범인은요? 범인은 누구래요?”

“크흠…….”

“어휴! 아시면서. 빨리 말해봐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그 집 장남 알지? 미쳤다고 소문난…….”

그러자 사람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 세상에나!”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그 집 장남이… 마법사잖아.”

“어휴! 끔찍해라.”

장남이 저지른 끔찍한 존속살해. 게다가 제 부모뿐 아니라 일하던 사용인들까지 모두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이게 바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꼴 아니겠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재수가 없는 거지. 뭘 또 그런 소리까지 해?”

“맞잖아요! 미치려면 곱게 미칠 것이지!”

여인 하나가 분개하여 소리쳤다.

“아니, 그럼 그 장남은 어떻게 됐대요?”

“그게 좀 이상해. 그 장남도 그 자리에 죽어있었다고 하더라고.”

“흥. 뭐가 이상해요? 저도 인간이긴 했나 보네. 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겠죠.”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니까? 아니, 어느 마법사가 제 머리를 댕강 잘라서 죽어버리냐고. 게다가 팔 하나도 잘려있었다고 하더라고?”

사람들이 술렁였다.

“마탑이 알아서 조사하겠죠.”

“안 그래도 마탑에서 조사를 나갔는데, 그냥 전부 그 장남 짓이 맞다고 했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건너서 들은 게 있는데…….”

작아지는 말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모았다.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누군가 스턴만 죽이고 간 건지… 아님 스턴의 짓으로 꾸미고 모두 죽인 건지는…… 사실 모른대.”

사람들이 입을 떡 벌렸다.

“하긴… 그 집 장남이 아무리 미쳤다고 한들 제 부모를 죽였겠어요?”

“그것도 맞지. 맞아.”

“게다가 거기 차남도 있잖아요. 아, 차남도 마법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의 눈이 재빠르게 굴러다녔다.

“에이. 그건 아니래. 그 집 차남은 아카데미 방학 때가 되면 항상 시타타에 가 있는다고 하더구먼. 게다가 실력도 절대 그만큼이 안 된다고 하고.”

“그래요? 그럼 누가 그런 걸까요.”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스턴이 벌인 짓이라는 생각은 멀찍이 멀어진 듯 보였다.

“그건 누구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황제 폐하 자리도 비어있는 마당에 중앙 귀족들이 난리가 났겠어.”

“내가 일하는 곳도 난리예요. 마님께서 얼른 수도를 뜨자며 어찌나 남작님을 볶아대는지. 덩달아 우리가 고역이라니까요?”

“조만간 공작가에서 장례식이 치러질 테니 그때 보면 뭔가 나오겠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쯧. 그 집 차남만 가엾게 되었어. 하루아침에 세상에 홀로 남았으니…….”

“에휴. 부모 형제 잃은 게 대수겠어요? 제 생각엔 앞으로가 더 큰일이지 싶어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

루카스는 요즘 미칠 것만 같았다.

스키르의 일도 만만찮은데, 거기에 넬라마저 합세했다.

“나는 여기 있을래.”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변해버린 눈빛하며 차가운 태도까지. 얼마 전 보였던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도 넬라. 스키르의 일이잖아.”

“아니. 싫어.”

공작가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는 넬라.

“그래. 그럼 이유만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싫어.”

돌아버릴 노릇이었다.

“넬라.”

루카스가 멍하니 앉아 고개만 젓는 넬라의 옆에 앉았다.

“난 항상 네 편이야.”

“…….”

“네가 무슨 일을 해도, 무슨 생각을 해도. 넌 내 동생이고 가족이야.”

넬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루카스를 바라봤다.

“그러니 네 마음속에만 두지 말고 언제든 내게 말해줘.”

넬라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그래. 그럼 나도 잠깐 들렀다가 금방 올 테니 집에 있어.”

루카스가 싱긋 웃고 일어나던 때, 넬라가 그의 소맷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같이 가.”

루카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공작저에서 치러지게 된 장례식은 공작가의 명성과는 달리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정말…… 너무 좋으신 분들이었어요.”

스키르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이야기를 건넸다.

“걸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스키르는 그 사람들과 예를 지켜 대화했으며, 그 모습을 본 귀족 몇몇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냐며 스키르를 험담했다.

“스키르.”

사실 진짜 장례식은 전날 미리 치러졌다. 시비에 백작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 몇몇은 며칠 전부터 미리 와서 장례 준비를 도왔다.

“백작님.”

“괜찮으냐? 피곤하진 않고?”

시비에가 스키르의 안색을 살피며 다정히 물었다.

“괜찮습니다.”

“자, 이것 좀 마셔라.”

시비에가 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 건넸다.

“피로 회복에 이만한 게 없다. 골드 나인 상단주가 직접 제조해 준 거야.”

병을 건네받은 스키르가 작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는 잊지 않고 언젠가…….”

“떽!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넌 내 가족이나 다름없지 않으냐.”

사실 제 친구인 시러스 공작의 장례가 아니었다면 시비에 역시 수도에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제 집안을 몰아낸 이들이 바글바글한 수도까지 직접 온 것도, 전날 미리 장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도 모두 스키르 때문이었다.

전날 미리 치러진 장례는 정말이지 아수라장이었다.

마음을 잘 추스렀다 생각했던 스키르의 슬픔이 결국 폭발했고, 스키르의 마나 역시 폭주했다.

그 자리에 루카스와 아만이 없었더라면 공작저는 날아갔을지도 몰랐다.

“백작님은 괜찮으십니까?”

스키르가 주변을 슬쩍 보며 물었다.

“크흠. 내가 안 괜찮을 게 뭐 있겠느냐.”

“부인께서는…….”

“아침에 미리 돌려보냈다.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전해달라 하더구나. 너도 알다시피…….”

그러자 스키르가 얼른 손을 앞으로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미안해하실 것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와주신 것만으로도…….”

“떽! 시러스는 네 아비이기 전에 내 친구다. 그러니 그런 소리 한 번만 더 하거든 아주 혼날 줄 알아라.”

시비에의 호통에 스키르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시비에 백작과 스키르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다른 이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거봐요. 내가 말했죠?”

한데 모여있는 부인들이 어두운색의 부채로 제 입가를 가리고 대화했다.

“그러게요. 부인 말씀이 맞네요.”

“옛날에 로드리고 백작가가 어떻게 떠나게 됐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잿빛 부채를 든 부인이 눈을 얇게 뜨며 말하자, 다른 부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뻔뻔히 낯을 비추는 건…….”

“그런데 백작가와 공작가의 영식들이 친구라고 하더군요.”

“흥. 아무리 둘이 친구라고 한들. 백작에게 공작은 옛날에 저를 쫓아낸 장본인이나 다름없지 않겠어요?”

다른 부인들 역시 수긍했다. 시러스 공작과 시비에 백작이 다시 어울리기 시작한 것을 안 중앙 귀족들은 저러다 황권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 수군댔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작가의 재력과 백작가의 재력을 더하면 한 나라를 세우고도 남았을 테니 영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었다.

때문에 그들의 생각을 아는 공작과 백작은 어떻게 해서든 그런 뜬 소리에 휘말리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백작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었으면 중앙 귀족가와 말도 섞지 않으려 했으며, 반대로 공작은 중앙 귀족들을 회유하며 어떻게든 제가 황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꾸준히 호소했다.

“그런데 있잖아요…… 이런 말 해도 되려나 몰라.”

부인 하나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괜찮으니 말 해봐요. 우리가 뭐 하루 이틀 본 사이예요?”

“맞아요.”

다른 부인들이 부추겼다.

“이번에 제가 들은 소문인데… 아시다시피 저희 집이 마탑과 연관이 깊잖아요?”

“어머, 그렇죠.”

부인들이 눈을 빛냈다.

“공작과 부인 그리고 사용인들을 죽인 게 사실 장남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해요.”

“어머나!”

“그럼 제국에서 낸 조사서가 맞다는 이야기예요?”

사실 제국과 마탑은 마지막까지 공작가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스턴의 소행이 아닌 반 귀족파의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 조사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귀족가의 체면을 위해 다른 말을 하는 건 비일비재하기도 했고 말이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죠. 그러니 반 귀족파의 범행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했겠지요.”

“그럼요?”

“사람들을 죽인 마법이 흑마법도 아닌 불순한 마법이었다고 해요. 예전에 시타타 쪽에서 사람들 많이 죽었던 사건 알죠?”

부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쓰였던 마법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그러자 부인들이 숨을 헙 하고 들이켰다.

“세상에나…….”

“하필이면 시타타라니…….”

크게 뜨인 그들의 눈이 시비에 백작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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