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효자 (2)
“이런 씨X 자식이!!!”
-투화악!
거친 욕지거리와 동시에 날아간 스턴의 팔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스키르!!!”
그와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스키르를 향해 달려가는 루카스.
-파아아앗!
밝은 빛이 피가 뿜어져 나오는 스키르의 가슴팍을 감쌌다.
“이런 X만한 새끼.”
분노한 루카스의 낮은 목소리가 스턴을 향했다.
“크, 크학… 크하학!!!”
날아가 버린 제 팔을 보며 미친 듯 웃는 스턴의 모습에 루카스 역시 치를 떨었다.
“정신 나간 새끼. 그냥 뒈져라.”
루카스가 한 팔을 들어 스턴의 목을 날려버리려는 때였다.
“루, 루카스…….”
스키르가 루카스의 바짓가랑이를 힘겹게 붙잡았다.
“놔. 이 머저리 같은 자식아.”
미간을 찌푸린 루카스가 스키르를 내려보며 말했다.
“크윽…… 그, 그래도… 내 형님…….”
화가 치밀었다. 제 손으로 부모를 죽인 것도 모자라 동생까지 죽이려 들었던 새끼를 두고, 제 형이라 감싸는 스키르가 머저리 같았다.
“크학! 하하하학!”
잠시 잦아들었던 스턴의 웃음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형님이래! 형님! 크학! 학!!!”
“널 살려둔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다.”
“학! 크학학!!!”
루카스가 손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순식간에 웃음을 거둔 스턴이 정색하며 말했다.
“지랄하네.”
“내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네깟 게 어찌 알겠느냐. 그저 재수가 없었다 생각하거라.”
스턴이 남은 팔을 들어 검은 기운을 끌어모으자, 잘린 팔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가 멎었다.
-촤촤촤촤촷!
스턴의 등 뒤로 생겨난 수십 개의 검은 마나 줄기가 루카스를 향해 쏘아졌다.
-파스스슷.
모든 마나를 흩어버린 루카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X만한 새끼. 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크, 크학! 학학!!!”
다시 스턴이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그냥 뒈져.”
“크학! 하악…….”
루카스가 스턴을 향해 한 팔을 가차 없이 그었다.
-서겅.
웃음소리에 맞춰 꿀렁이던 복부가 잦아들기도 전.
-투욱.
스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한 바퀴 도륵 굴러 땅에 쓰러진 스키르의 눈과 마주하기도 전에 루카스가 한 발을 들었다.
-퍼억.
“씨X 새끼.”
-털썩.
스턴의 몸뚱이가 앞으로 쓰러짐과 동시에 스키르의 팔을 붙잡은 루카스가 텔레포트했다.
***
“하셀!!! 하셀!!!”
숨이 넘어갈 듯 꺽꺽 거리는 스키르를 품에 안은 루카스가 소리쳤다.
“로드?”
“빨리!!!”
소리치는 루카스의 얼굴이 간절했다. 제발 살려달라는 듯.
-파아아앗!
하셀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니, 아니!!! 엘라임. 엘라임을 불러.”
제 마법으로도 한 번에 치유가 되지 않던 상태였으니 하셀의 치유 마법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루카스는 하셀이 아닌 물의 정령왕 엘라임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덩달아 다급해진 하셀이 얼른 소환 식을 써 엘라임을 불러냈다.
[뭔가.]
“얘 좀 살려주게. 제발.”
루카스가 품에 안은 스키르를 보며 간절히 말했다.
[흠.]
“제발. 제발 살려주게. 엘라임. 나일세. 라노스일세.”
엘라임이 하셀을 흘끗 바라보자, 하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아아아.
엘라임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빛이 스키르를 감싸자, 창백해졌던 스키르의 안색이 빠르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루카스가 거친 숨을 내쉬며 제 치유 마법으로도 아물지 않았던 스키르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엘라임이 푸른 물빛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아, 그게 죽긴 죽었는데 다시 살아 돌아왔다고… 해야 하나?”
하셀이 아직 정신이 없는 루카스를 대신해 대답했다.
[흠…… 느껴지는 기운을 보니 라노스가 맞긴 한 것 같은데.]
“맞아.”
엘라임의 눈이 루카스를 찬찬히 훑었다.
“하아…….”
품에 안은 스키르의 숨이 천천히 돌아오자 긴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창백해진 얼굴로 엘라임을 올려봤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빚진 거야.]
“그래. 내가 자네에게 큰 빚을 졌어. 고마워.”
루카스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에 엘라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왜 저래? 라노스 맞아?]
한낱 인간을 품에 안고 살려달라 애걸하는 것도 그렇고 뭐가 이상해도 이상하다 느낀 탓이었다.
“맞대도.”
그에 다시 하셀이 대답했다.
[맞다고?]
“그래.”
[저 인간은 뭔데?]
“……로드 친구.”
그러자 엘라임이 피식하고 웃었다.
[나도 너무 오래 살았어. 그러니 별꼴을 다 보지.]
“고마워. 정말 고맙네. 엘라임.”
그러거나 말거나 루카스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됐어. 빚도 없는 셈 쳐. 친구라며.]
“아닐세. 빚은 빚이지. 내 언젠가 자네를 꼭 돕겠네.”
[웃기네. 네 꼴을 보니 네가 날 도울 일은 없게 생겼는데? 인간.]
그러자 이번엔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참. 잊지도 않는군.”
[그래. 네가 입에 달고 살던 말 아닌가? ‘감히 인간 따위가!’ 하고 항상 소리쳤잖아.]
하셀의 레어에서 엘라임까지 함께 있으니 정녕 전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하. 맞지. 그랬어.”
[그런데 인간이라니. 정말 우습군. 주신께서 내린 벌인가?]
“비슷하지.”
루카스의 입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어쨌건 빚은 없는 셈 쳐. 뭐 계약이라도 해줘? 그 몸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보이는데.]
“됐네. 그래도 마법 쯤은 쓸 수 있으니 말이야.”
정령왕과의 계약은 대단한 거였지만, 지금 루카스에게 필요한 건 아니었다.
‘정령왕 모두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정령왕들을 한데 모아 이야기를 했을 참이었다.
[그러든지. 뭐.]
“정말. 정말 고마워.”
다시 보아도 물의 정령왕의 치유 능력은 정말이지 엄청나고 대단했다.
[그래. 이제 그만해. 소름 돋아.]
진짜 돋았을 리는 없겠지만 엘라임이 제 팔을 쓱 쓸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간다.]
피식 웃은 엘라임이 사라졌다.
“괜찮을 겁니다.”
하셀은 엘라임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스키르의 몸을 더듬는 루카스를 보며 말했다.
“그래. 나도 안다.”
그럼에도 루카스는 자꾸만 스키르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어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어휴…….”
그 모습을 본 하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안다고 했다.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걸 어떡하느냐.”
치유 사제도 아닌 무려 정령왕이 직접 쓴 치유 마법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십년 전에 생겨났던 흉터도 치유가 됐을 거라는 소리다.
루카스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건만 걱정이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끄응…….”
스키르가 몸을 뒤척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가야겠구나.”
“예. 조만간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그래.”
짧은 대답과 함께 루카스는 스키르와 함께 텔레포트했다.
***
백작저에서 스키르가 머무는 방으로 곧장 텔레포트한 루카스는 옷장을 뒤져 스키르의 옷을 찾아 꺼냈다.
‘이 꼴을 하고 밖에 내보낼 수는 없지.’
분명 스키르가 깨어나면 제 정신이 아닐 것이다.
‘내 탓이다.’
피가 덕지덕지 묻고 찢겨 넝마가 되어버린 스키르의 옷을 벗기며 생각했다.
‘내가 그 자식을 집으로 돌려보낸 탓이야.’
만약 스턴을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지 않았더라면 공작 부부가 그런 일을 당했을 리도 없다.
‘스키르가 그 꼴을 볼 필요도, 당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런 것도 형이라며 제 바짓가랑이를 붙잡던 스키르의 떨리던 손이 생각났다.
“하아…….”
스키르의 옷을 모두 갈아입힌 루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제 죄였고 제 탓이며 제 잘못이다.
그러니 이제 해결할 일만 남았다.
***
슬립 마법을 써 스키르를 더욱 깊이 재운 루카스가 방을 빠져나왔다.
이제 일을 해결할 차례였으니 움직여야 했다.
황제의 자리가 비어버린 제국을 받치고 있던 공작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게다가 범인인 스턴도 제 손으로 죽여버렸으니, 죄를 물을 사람도 없다.
‘아만.’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제국을 지탱하는 다른 힘이었다. 명망 높은 마탑의 주인인 아만의 힘. 지금 필요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파앗!
아만의 집무실로 당장 텔레포트한 루카스가 주위를 살폈다.
‘없군.’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곧 아만이 나타날 것이다.
“로드?”
“아만.”
심각한 루카스의 표정을 본 아만이 조용히 말을 기다렸다.
“스턴이 공작 부부를 죽였다.”
“하.”
“내 탓이다.”
“그게 왜 로드 탓입니까? 미친 망아지 같은 자식. 도망갔다고 했을 때부터 잡아다 족쳤어야 했는데, 결국 사고를 치는군요.”
아만이 분개했다.
“아니, 그러게 제가 옛날에 죽이자고 했잖습니까?”
“…….”
바로 조금 전에 제 탓이 아니라고 했던 아만이 제 탓을 하자, 할 말을 잃은 루카스가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그래. 그러니 내 탓이라는 게다.”
“아,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러자 아만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스키르가 죽을 뻔했다.”
“아이고!!!”
아만 역시 루카스 주변에 있는 모두를 아꼈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펄쩍 뛰었다.
“스턴은 죽었고.”
“스키르는 멀쩡합니까? 걔가 좀 덜떨어져서 그렇지 애는 참 착한데…….”
“엘라임에게 부탁해 겨우 살려냈다.”
아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입니다.”
“그보다 앞으로가 걱정이구나. 네 힘이 조금 필요하겠어.”
“아. 그렇네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아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황이 안 좋군요. 황제의 자리도 공석인데 공작가마저 그 꼴이 되었으니…….”
자칫하면 공작가를 해친 범인이 다른 이들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흠. 스턴이 공작 부부를 죽이고 로드께서 스턴을 죽였다…….”
아만이 상황을 읊조렸다.
“어차피 공작가의 상황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건을 조사하러 저희 마탑이 움직일 거고요.”
이미 아는 절차였기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로드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그게 큰일이지요.”
“그러니 네 힘이 필요한 게 아니겠느냐.”
이미 남아있는 마나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그로 인해 죽은 시체가 있다면 더욱 어려웠고.
“한번 힘써봐야지요.”
아만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다음이 문제다. 스키르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 공작가의 일을 모두 넘겨받을 수는 없다. 게다가 스키르는 작위를 받을 준비조차 되지 않았어.”
공작이 죽었고, 장남인 스턴마저 죽었으니 작위는 자연스레 스키르에게 오게 될 것이다.
“그건 저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엄연히 마탑 소속이고 작위 문제는 마탑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니 말입니다.”
“흠…….”
루카스가 침음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중앙 귀족들의 행보입니다. 가장 힘이 강했던 공작가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죠.”
“여차하면 스키르에게 작위를 내려놓으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되게 두지 않을 겁니다.”
한 나라의 공작이라는 작위를 내려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스키르가 작위를 받게 된다면 부리기 좋은 허수아비였으니 더욱 걱정이었다.
“우선 제가 현장을 먼저 봐야겠군요.”
“그래.”
“로드께서는 오지 마십시오. 혹시 모르니 말입니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개를 꾸벅 숙인 아만이 텔레포트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