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차게 식은 것들.
차게 식은 고기볶음을 바라보는 커시스의 눈동자에 드리운 건 후회였다.
‘어리석은 황제를 모셨다.’
제가 만든 고기볶음을 입에 한가득 욱여넣고 헤헤 웃는 넬라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황제를 모신 나 역시 어리석다.’
어쩌다 찾아온 귀한 인연이었다.
다친 제 다리를 말끔히 고쳐주고 요구한 게, 고작 검술을 가르쳐 달라 한 것도 참 귀여웠다.
‘겁도 없지.’
아이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숲에 혼자 사는데도 겁 없이 다가와 저를 거리낌 없이 대했다.
‘하긴 제 실력이 나보다 출중하니…….’
손으로 빵을 뜯어 입에 넣는 모습이, 제 허리께까지 오는 기다란 목검을 들고 서툴게 휘두르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커시스의 눈이 한편에 세워져 있는 목검에 향했다. 저를 구해주고 친구가 되어준 넬라에게 줄 작은 선물이었다.
좋고 단단한 나무를 골라 손수 깎고 다듬었다. 혹여 넬라의 연한 손바닥이 다칠까 가시 하나 튀어나오지 않게 꼼꼼히 다듬었다.
‘찾으러 와주면 좋으련만…….’
용서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저와 맺게 된 인연이 모두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멍하니 목검을 바라보던 커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목검을 든 그가 옆에 놓인 사포를 집어 들었다.
-삭, 삭, 삭.
사포가 나뭇결을 곱게 깎아 내는 소리가 숲에 고요히 울렸다.
-삭, 삭, 삭.
사포질 한 번에 제 죄를 씻어내듯 꼼꼼히 손을 놀렸다.
-삭, 삭…….
하지만 이깟 사포질에 죄가 씻길 리가 없었다.
그는 넬라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넬라의 아빠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들은 침묵 마법에 걸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고, 억울하다 말 한마디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으며, 그런 제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처형당했다.
“…….”
커시스가 사포질을 하던 제 손을 내려봤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는가.’
멍하니 손을 내려다보던 커시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스무 살에 황실 기사단에 입단해 누구보다 많은 공을 세우고, 스물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1황자의 직속 기사 단장이 되었다. 그는 제국의 촉망받는 젊은 기사였으며, 1황자를 지킬 든든한 칼이었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걸을 줄만 알았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제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건사할 능력도 생겼으니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여동생이 죽었다. 그것도 끔찍이 살해당했다.
‘오빠. 나 여기 앞에 잠깐 다녀올게!’
저와 똑 닮은 윤기 나는 적색 머리를 넘기며 수줍게 웃던 그날. 어딜 가기에 그리 예쁘게 옷을 입었냐 묻던 제 말에 그저 볼을 붉히고는 휙 나가버렸던 그날, 제 동생은 죽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누가 제 동생을 죽였다는 말인가.
동생을 죽인 놈을 찾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뛰어다녔다.
‘가렛 남작가 영식이 자네 여동생에게 구애했다고 하더군.’
누군가 와서 귀띔해 준 말에 커시스는 당장 가렛 남작가를 찾아갔었다.
황자들의 싸움이 있기 전 중앙 귀족들이 한참 편을 가를 때, 가렛 남작가는 일찍이 1황자의 편에 섰던 가문이었다.
남작가 대문을 넘어 들어섰을 때 커시스는 보고야 말았다. 정원 한구석에 놓인 제 여동생의 피 묻은 머리 리본을 말이다.
그날 남작가엔 피바람이 불었다.
‘헤이즈…….’
하지만 그는 일개 기사였다. 죄는 법이 물어야 하거늘, 제 손으로 남작가를 쓸어버린 일은 법을 어긴 것이나 다름없기에 그대로 잡혀가고 말았다.
그때 제게 손을 내민 것이 얼마 전 죽은 황제 그래드였다.
“크흑…….”
지난날을 회상하던 커시스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크흐윽…….”
후회스러웠다. 제 동생을 잃은 것도, 2황자인 그래드의 편에 서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제 손에 피를 묻힌 것도.
고개를 파묻고 눈물을 훔치던 그때, 느껴진 인기척에 커시스가 고개를 들었다.
‘넬라?’
혹시 넬라가 돌아온 것인가 싶어 잠시 반가운 마음이 들던 그때, 눈물에 가려 희뿌옇던 시야가 천천히 밝아졌다.
“무엇이 그리 슬퍼 울고 있나. 나의 충직한 기사여.”
넬라가 아니었다.
“…….”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커시스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제가 모시던 황제라는 것을.
“울지 말게. 내가 떠나 슬퍼 그런가?”
잿빛 피부에 곧게 솟은 뿔. 넋이 나갔던 그래드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듯 변했던 때에도 커시스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래드의 몸에 다른 이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답이 없군.”
짐작만 했던 그 주인공이 지금 제 눈앞에 나타났다.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표정을 숨긴 그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런가. 내 오랜만에 자네를 좀 보고 싶어 찾아왔는데.”
잿빛 피부를 가진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당신은 더 이상 제 주군이 아닙니다. 저는 모든 것을 잊고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나타났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때문에 커시스는 제가 아는 모든 사실을 발설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런가…… 그것참 아쉽게 되었군. 자넨 내 친구나 다름없었는데 말이야.”
사내가 제 손바닥을 마주 비비고는 입맛을 다셨다. 마치 맛있는 고기를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주 좋은 숲이군. 기운이 맑고 깨끗해.”
“저의 새로운 터전이지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하하하! 내 마음에 들어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자네가 살 곳이니 자네 마음에 들어야 좋은 것이지.”
“…….”
“자, 어떤가. 자넨 이곳이 마음에 드는가?”
“예.”
사내의 눈이 숲을 한 바퀴 주욱 훑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아주 다행이야.”
“손님이 올 예정입니다.”
커시스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 그만 가달라는 이야기였다.
“오, 그래. 그래야지. 자네를 봤으니 되었어.”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자하게 웃었다.
“아, 그런데.”
몸을 돌려 떠나려던 사내가 멈춰 섰다.
“내가 잊은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커시스 쪽으로 다가왔다.
-서겅.
검붉은 빛줄기가 커시스의 목을 베어냈다.
-투욱.
목과 떨어진 머리가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걸 잊었어.”
-털썩.
커시스의 몸이 털썩 쓰러졌다.
“이곳이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나도 무덤 자리로는 딱이라고 생각했어.”
그가 바닥에 뒹구는 커시스의 머리를 발로 툭 차서 굴리니, 커시스의 부릅뜬 눈이 그를 향했다.
“손님이 온다니 이만 가야겠지.”
바닥에 뒹구는 머리에 대고 정중히 인사한 그가 몸을 돌렸다.
“잘 있게.”
***
숲을 뛰쳐나와 백작가로 돌아온 넬라는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누가 헤집어 놓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누가 말하지 않았어도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확실한 정보가 되어 돌아오니 미칠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후원 구석에 있는 작은 연못가. 나이아스들을 처음 만났던 그곳에 주저앉은 넬라가 숨을 몰아쉬었다.
속이 답답했다.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에 당장이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큰일이야.
-큰일이 났어.
얼마나 지났을까. 제 곁에 머물던 나이아스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쩜 좋아.
-어떻게 하지?
-말해야 하나?
제 곁을 빙빙 돌며 시끄럽게 구는 탓에 넬라가 숨을 찬찬히 내쉬고는 그들을 바라봤다.
“무슨 일인데?”
-큰일이야.
-어쩜 좋아.
하지만 그들은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얼른 말 해줘.”
-하지만…….
-하지만 네 친구잖아.
-아냐. 친구랑 싸웠어.
-그래도 친구일걸.
답답증이 치밀어 올랐다.
“얼른 말해.”
-하지만…….
-말해주자.
-그래. 말해줘야 해.
게다가 나이아스들이 이렇게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얼른 말해줘.”
-네 친구. 그 인간이…….
-치료할 수 없어.
-맞아. 이제 치료 못 해.
그 말을 들은 넬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 치료 못 해.
-네 인간 친구가 당했어. 회색 인간에게.
나이아스들이 말하는 인간 친구는 커시스가 분명했다.
‘설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넬라가 뛰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아냐. 아닐 거야.’
지금 넬라에게 커시스는 제 부모를 죽인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넬라는 커시스가 좋았다.
제게 검을 가르쳐 주던 그 상냥함이. 몬스터나 도적떼에 대해 말해주던 그 친절함이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넬라. 도적들이라고 모두 나쁜 이들이 아니다. 그들도 착하게 살고 싶었을 게다.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아주 가여운 데가 많아.’
그는 남들 것을 빼앗는 도적에게도 가여운 사연이 있다며 누구도 함부로 미워하지 않을 것을 가르쳤고.
‘그래도 나쁜 길을 걷는 것은 안 될 일이지. 때문에 도적들을 벌하는 게다. 그렇지 않으면 힘든 상황에 놓였어도 바른길을 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여워지지 않겠니.’
바르게 사는 이들을 높게 사는 법을 가르쳤다.
‘검은 마음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검이 흐트러져.’
올곧게 검을 쓰는 법을 알려줬고.
‘넬라 너는 마음이 올곧으니 서툴긴 해도 올곧은 검술을 하는 게다. 내 눈엔 네 검이 가장 곧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부리던 저를 타박하지 않고 격려했다.
“제발…….”
숲속에 들어서자 커시스의 작은 집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제발…….”
다리에 힘이 곧 풀릴 것처럼 비틀거리며 걷는 넬라가 쉼 없이 빌었다.
제발 커시스가 나쁜 일을 당한 게 아니길.
‘아저씨 저는 사실 나쁜 아이예요. 언젠가 힘을 키워서 저희 마을 사람들을 내쫓은 나쁜 사람들을 모두 혼내줄 생각을 몰래 하고 있었거든요.’
제 모난 마음을 고백했을 때에도 커시스는 싱긋 웃으며 말했었다.
‘물론 그래야지. 힘은 그런 곳에 쓰는 게다. 진짜 나쁜 게 무엇인지 아느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힘을 키워 나쁜 놈들과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이 나쁜 게다. 그리고 넬라. 그만큼의 모난 마음은 누구나 가졌으니 절대 그런 생각 말아라. 넌 내가 보기에 누구보다 착하고 어여쁜 아이이니 말이다.’
“제발…….”
커시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가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작은 담벼락 앞에 선 넬라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흐윽… 으윽…….”
진하게 풍기는 피비린내와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집.
“흐으… 흐윽…….”
보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제 발을 붙잡아 향하는 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아저씨… 흐어어… 아저씨!!!”
하지만 멈추지 않는 걸음에 제 두 눈으로 참혹한 현장을 마주한 넬라가 울부짖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짚고 기었다. 바닥에 흥건한 피가 모래와 섞여 제 손에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나뒹구는 머리를 들어 끌어안은 넬라의 울음은 마치 짐승의 울음과도 같았다.
“으아아악!!!”
제 엄마를 잃던 그날 잃어버렸던 두 눈의 빛이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라졌다.
“왜…….”
커시스의 머릴 안은 넬라가 덥수룩한 수염에 눌어붙은 핏자국을 덤덤히 씻어냈다.
“누가…….”
빛을 잃은 소녀가 머릴 잃은 몸뚱이에 다가갔다.
“누가 그랬어요…….”
차게 식은 목 위에 머릴 조심히 내려놓았다.
“아저씨. 힘을 길러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건 착한 일이라고 했잖아. 그치?”
넬라의 손에 모인 물방울들이 핏자국들을 깨끗이 씻어냈다.
“물을 지배하는 위대한 왕이시여.”
멍한 표정으로 허공에 손을 뻗는 소녀의 표정은 모든 것을 잃은 이의 것과 같았다.
넬라의 손에 모인 물방울들이 두둥실 떠올라 작은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위대한 힘을 빌려 계약하고 싶습니다.”
허공에 천천히 그려진 마법진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태초부터 계셨던 위대한 물의 정령왕 엘라임이시여. 제 부름에 답해주세요.”
작은 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제 부름에 답해주세요.”
제 몸을 빠져나가는 방대한 양의 마나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마법진을 유지하는 넬라의 손은 꼿꼿했다.
“제발, 제발… 답해주세요……!”
이제는 깨끗해진 커시스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은 어린 소녀의 간절한 외침이 숲을 가득 메웠다.
-파아아앗!
소녀의 간절함이 닿은 걸까. 웅웅 소리를 내며 울리던 마법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그곳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아이야. 가여운 아이야.]
“엘…… 라임?”
힘이 빠져버린 넬라의 팔이 툭 떨어지고.
[가여워라…….]
작은 몸이 커시스의 시신 위로 풀썩 쓰러졌다.
[많이 컸구나.]
소녀를 내려보는 엘라임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많이 컸어.]
엘라임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넬라를 포근히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