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65화 (165/225)
  • 165화. 네 탓이 아니야.

    “성녀님! 성녀님!”

    “네.”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제 하나가 들뜬 표정으로 뛰어왔다.

    “오늘 가입자 수가 얼만지 아세요?”

    “…….”

    “오늘 리에베르크에서만 무려 천 명이 넘었어요! 천 명!”

    “그렇군요.”

    놀라운 숫자였다. 작은 섬나라에서 이 정도 금액이라면 다른 곳에서 모여드는 금액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정말 대단하죠? 가입하면 나누어 줬던 성수도 모두 동이 나버렸어요.”

    기쁘진 않았다.

    “헤헤. 성녀님! 우리 이제 성녀님의 뜻대로 조만간 리에베르크에도 보육원과 양로원을 지을 수 있겠어요.”

    그 말에 파멜라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정말 잘됐네요.”

    “네. 리월님께서도 정말 기뻐하셨어요. 아! 그럼 저는 성수 만드는 걸 도우러 가볼게요.”

    그렇게 사제가 떠나고 파멜라는 다시 방에 혼자 남았다.

    지난밤 리월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파멜라는 착한 사람이잖아요.’

    그가 다정히 제 머리를 쓸어 넘기던 손길이.

    ‘저는 착한 파멜라양이 좋아요. 언제나 그랬잖아요.’

    제 눈을 바라보며 나직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당신의 그런 모습이 좋아요. 평생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

    제 목덜미를 움켜쥐며 불어 넣던 뜨거운 숨을 모두 생생히 기억했다.

    “그래…… 모두 괜찮아.”

    요즘 들어 리월의 행동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깟 게 대수인가.

    ‘그는 나를 사랑해.’

    평생 미움만 받고 살았던 제 탓이겠지.

    ‘재수 없는 년.’이라며 윽박질렀던 제 새아버지의 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이라며 저를 때렸던 교주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그러니 모두 제 탓일 것이다. 리월이 변해버린 것도, 화를 내는 것도 모두……

    ‘모두 내 잘못이야.’

    ***

    “아저씨!”

    “어이구! 뛰지 마라. 넘어진대도!”

    숲속에 있는 작은 집에 사는 커시스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저씨. 저 주신다던 목검은요?”

    넬라가 활짝 웃으며 묻자 커시스가 한편에 세워져 있던 목검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봤다.

    “허허. 이제 손잡이만 조금 다듬으면 된다.”

    “그럼 오늘은 뭐 배워요?”

    “뭘 배우긴! 아직 검 잡는 법도 제대로 못 익히지 않았느냐. 오늘도 찌르기다.”

    “피이…….”

    넬라가 입술을 삐죽였다.

    “오늘 찌르기 백 번 하면 수직 베기를 알려주마.”

    “정말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

    커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넬라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얍! 얍!”

    그는 이어 어설픈 동작으로 허공에 찌르기를 하는 넬라의 모습을 마냥 귀엽다는 듯 바라봤다.

    “헥… 헥… 백 번 다 했어요.”

    처음 넬라가 제게 검술을 가르쳐 달라 했을 때, 커시스는 제 딸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임했었다.

    검을 잡는 법부터 검의 역사나 제국의 기사에 대해 알려주고 떠들며 먼저 검술에 흥미를 가지게 도왔다.

    그다음엔 검을 잡는 법을 가르치고 검을 쥐고 걷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넬라가 뛰어난 검사가 되길 바라는 게 절대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취미를 가지는 것처럼 그녀가 검을 배우는 데에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래? 오늘도 해냈구나. 아주 고생했다.”

    커시스의 칭찬에 넬라가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헤헤.”

    “배고프지?”

    넬라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녀석 참.”

    넬라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처음 저를 만났을 때 아이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도 많이 옅어졌다.

    “자, 이쪽으로 와서 앉거라.”

    커시스가 서툰 솜씨로 만든 고기볶음과 빵을 내오자, 넬라가 눈을 빛내며 얼른 다가와 앉았다.

    “우와! 이게 뭐예요?”

    “크흠. 지난번에 정육점 아주머니께 배운 레시피를 한번 써먹어 봤다.”

    넬라는 한창 클 때여서 그런지 자주 배고파했고, 커시스는 그때마다 보잘것없는 딱딱한 빵이나 쿠키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것을 마음 아파했다.

    때문에 야채 가게나 정육점을 들를 때마다 그곳 주인에게 맛있게 하는 법을 물었다.

    “우와! 진짜 맛있어요!”

    고기볶음을 한 점 집어 입에 넣은 넬라가 감탄사를 뱉어냈다.

    “그, 그래?”

    이미 만들면서 몇 번이나 맛을 봤기에 꽤 괜찮은 맛이 난다는 것을 알았지만, 넬라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받으니 기뻤다.

    “네! 진짜, 진짜 맛있어요.”

    양 볼에 고기를 한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넬라는 볼에 먹이를 한가득 넣은 다람쥐처럼 귀여웠다.

    ‘딸이 있었더라면…….’

    “오~ 아저씨. 대단한데요? 이거 이러다 음식점이라도 차리는 거 아닌가 몰라~”

    “녀석 참. 너무 띄워주지 마라. 아저씨 날아갈라.”

    이곳에서 와서 했던 요리라고는, 고기를 그저 굽거나 채소를 물에 씻어 투박하게 찢은 다음 샐러드나 해 먹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렇게 넬라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다음 요리는 뭘 해야 좋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지경이었다.

    “아, 아저씨 우리 집에서 기사를 구한다고 하던데. 원래 계시던 단장님도 이제 퇴직하셨대요.”

    넬라가 빵을 뜯으며 말했다.

    “나도 퇴직하고 온 거다. 기사는 이제 그만하고 싶어.”

    커시스가 부드럽게 넬라의 말을 거절했다.

    “치이… 알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말해봤어요. 나 방학 끝나면 아저씨 여기 혼자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진짜, 진짜 심심하지 않을까?”

    “허허. 녀석 참. 그래, 네가 없으면 진짜, 진짜 심심하겠지. 그래도 기사는 싫다.”

    “어! 그럼 우리 집에 진짜, 진짜 예쁜 언니들도 많은데. 물론 아저씨랑 비슷한 나이도 있어요. 요리도 진짜 잘하는데!”

    “허허허! 이제 아저씨 혼삿길도 마련해 주게?”

    커시스가 허허 웃자 넬라가 고기 한 점을 푹 찍어 입에 욱여넣으며 째려봤다.

    “아저씨 그럼 평생 여기서 혼자 살게요?”

    아무래도 혼자 숲속에 있는 커시스가 걱정이 되는 듯했다.

    “왜. 그럼 안 되느냐? 나는 숲속에서 아침을 맞는 게 너무 좋은데 말이다.”

    “그래도 혼자 있으면 슬플 때도 있을걸요?”

    “흠… 슬플 때라…….”

    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는 숲속에 혼자 있을 때 진짜 슬펐거든요.”

    “음…….”

    넬라가 가진 사정은 커시스도 대충 알고 있었다.

    백작가에 없던 딸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나, 그 집안 사람들과는 다른 머리칼 색과 눈동자만 보아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저씨는 모르죠? 나 어디에서 왔는지.”

    “음…….”

    넬라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갑자기 꺼낸 이야기에, 커시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빵만 뜯을 뿐이었다.

    “우리 엄마랑 아빠는 아란트 사람이 아니었어요.”

    “…….”

    도대체 어떤 반응을 해야 좋을까.

    “에스나 왕국에서 아란트로 온 사람들이었대요. 우리도 이런 숲에서 살긴 했는데, 뭐 그땐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별로 안 슬펐죠.”

    덤덤하게 빵을 우물거리며 말하는 넬라.

    “그런데 뭐… 나 때문에 아빠도 엄마도 죽고 마을 사람들도 많이 죽었어요. 옛날에 내 친구 리오랑 헬렌네 아빠도 죽었어요.”

    그러더니 넬라가 피식하고 조소했다.

    “진짜 웃겨요. 그깟 인형이 뭐라고 우리 마을 사람들을 그렇게 다 죽였는지. 사실 나는 아란트 제국이 싫어요.”

    그러자 커시스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설마 이 아이가…….’

    에스나 왕국 사건 때 커시스는 제국 기사 단장이었다. 그리고 제 손으로 그 모든 일들을 처리하기도 했다.

    ‘설마…….’

    이 아이가 그 아이라면, 이 아이가 그때 가여운 피해자의 자식이라면…….

    “아, 그래도 아저씨는 좋아요. 근데 가끔 나는 생각이 나요. 엄마가 나한테 도망치라고 했거든요. 꼭 살라고. 그래서 내가 어디로 걷는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숲을 걸었던 그날이 가끔 생각나요.”

    커시스를 보며 넬라가 슬프게 웃었다.

    “내가 가끔 놀러 오긴 해도… 아저씨가 혼자라고 생각하면 가끔 그 생각이 떠오르거든요. 아저씨는 혼자 괜찮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중엔 여기 혼자 안 있으면 좋겠어요.”

    “넬라.”

    “응? 아. 나는 이제 괜찮아요. 무슨 복인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백작가 영애가 됐잖아요. 정령들도 있고 마법도 쓸 줄 알고. 사람들이 그랬는데 이 정도면 어디 가도 먹고살 걱정은 없대요.”

    사실 넬라의 실력은 먹고살 걱정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먹고 살 걱정이 가득한 사람들을 돕기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넬라. 혹시…….”

    “응?”

    커시스는 잠시 생각했다.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말이다.

    자칫하면 모든 것을 잊고 살던 아이에게 복수의 씨앗을 심게 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혹시 네 마을 사람들이 잘못된 게 모두 네 탓이라고 생각하느냐?”

    “아, 아저씨는 알 수도 있겠구나. 제국 기사라고 했으니까.”

    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내 탓이죠. 내가 그 토끼 인형을 주워오지만 않았어도, 우리 아빠도 엄마도 모두 살아있을 테니까.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리오네 아빠도 헬렌네 아빠도 모두 말이에요.”

    넬라가 모든 이야기를 어찌나 덤덤히 하는지, 듣던 커시스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넬라는 여태 저 생각을 몇 번이나 했을까.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했기에, 누군가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덤덤히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넬라. 네게 할 이야기가 있다.”

    결국 커시스는 결심했다.

    “그 모든 일은 네 탓이 아니다. 나는 그때 제국의 기사단장으로 있었어. 황제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는 일을 했지.”

    그러자 넬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저씨가요? 하지만 아저씨는…….”

    “그래. 네게는 그냥 일개 기사라고 했지만… 아니다. 나는 제국의 기사단장이었고 얼마 전까지도 그랬어.”

    죄책감이 들었다. 이 아이가 겪었던 나쁜 일에 제 책임이 있었다.

    “그때 네 부모와 마을 사람들은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들일 뿐이다. 그 모든 일은 제국이 꾸민 일이야.”

    그러자 넬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하지만 네 아버지가 죽인 건 아니잖느냐.”

    넬라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넬라는 혼란스러웠다. 제가 조금 전까지 걱정하고 따르던 사람이 순식간에 제 원수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사실 그 모든 일은… 제국이 꾸민 일이야.”

    커시스는 제가 아는 모든 사실을 넬라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황제가 흑마법에 미쳐서 벌인 일이다. 아이들을 제물로 삼고 영혼을 모아 바쳤어. 그것도 축제 날에 말이다. 나는 그 모든 일을 알면서도 함구했다.”

    “아니에요!!!”

    커시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잖아요!!! 아저씨도 모르고 그런 거잖아요!!!”

    넬라의 갈라진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그래. 황제가 그런 일까지 벌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하지만 나는… 황제의 짓이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네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덮어씌운 사람이나 다름없어.”

    결국 넬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야!”

    “그러니 넬라. 네 잘못은 없다. 네 탓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갑자기 쏟아진 진실에 넬라가 현실을 부정했다.

    “네 탓이 아니야……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고개를 푹 숙인 커시스는 작은 아이 앞에 죄인이 되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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