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61화 (161/225)
  • 161화. 성녀의 정체 (1)

    “도대체 어디 있는 건지!”

    하셀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그러게나 말이오.”

    그에 골드 드래곤인 아프레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온 대륙을 다 뒤져도 없다니. 이게 말이 된답니까?”

    분명 마족들은 게이트를 열고 속속들이 지상에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을 포착하기는커녕 그들이 향한 곳조차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상으로 올라왔으면 지금쯤 마족들 머리털 하나라도 찾아냈어야 하는데, 시간이 가도 머리털은커녕 눈썹 한 올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거 이러다가 우리 다 죽는 거 아녜요? 아니, 마신이 아무리 감싸고 돈다지만, 이렇게 흔적이 없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레드 드래곤 테네가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성을 냈다.

    “테네.”

    “어휴! 속이 답답해서 그래요!”

    하셀이 그녀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자, 테네는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분명 이종족들과는 접촉을 꾸준히 하는 것 같은데…….”

    “엘프들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나마 우리 편에 서겠다 확실히 말한 것은 드워프와 세이렌뿐이에요.”

    “토토족도 있지 않은가.”

    아프레의 말에 하셀과 테네가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토토족은 작은 몸집만큼 빠른 속도를 가졌지만, 별다른 재주가 없는 종족이었다.

    “차라리 픽시가 낫지.”

    “픽시도 뭐 마족의 편에 확실히 서겠다 한 것은 아니잖은가?”

    “어휴! 영감도 답답하네. 아니, 솔직히 우리가 이종족들 도움받자고 이래요? 그냥 짜증이 나잖아요. 짜증이! 왕이라고 떠받들 때는 언제고!”

    테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테네.”

    하셀이 다시 한번 테네를 불렀다.

    “아이고! 나는 여기 못 있겠네요. 속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아요.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쐐야지.”

    그렇게 벌떡 일어난 테네가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어쩌면 좋다는 말인가.’

    테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마족들쯤이야 이종족의 도움 없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저들의 행방조차 찾질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불안했다. 도대체 저들이 숨긴 힘이 얼만큼인지 가늠이 되질 않으니 말이다.

    “하셀. 나도 자네 마음 다 아네. 다만 지금은 이게 최선인 것 같구먼. 다섯이 넘는 드래곤이 하루 종일 전 세계를 이 잡듯 뒤졌지만 나온 게 없잖은가.”

    아프레가 슬쩍 백기를 꺼내 들자, 하셀은 조금 전 테네와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

    잠시 숨을 골라 분노를 잠재운 하셀이 아프레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프레님. 엘라스는 아직 천 년도 살지 않았습니다. 이제 막 해츨링 티를 벗기 시작한 드래곤입니다. 제 아들인 아만도 마찬가지고요.”

    “…….”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셀…….”

    “그러니 아프레님께서는 여기서 그만두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저희 아이들을 위해 힘써봐야겠습니다.”

    하셀의 잔잔한 눈이 아프레를 지그시 바라봤다.

    “아닐세. 내 생각이 짧았네. 자네 말대로 우리 엘라스가 마지막이 될 수는 없지.”

    “그러니 아프레님께서 다른 분들 설득에 힘써주십시오. 무시해 마지않은 토토족 조차도 힘을 합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러세. 내 조금 더 힘써보겠네.”

    하셀과 아프레가 손을 맞잡았다.

    ***

    “스턴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잿빛 피부를 가진 마족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예.”

    문이 열리고 그곳에 조심스레 발을 딛는 스턴의 표정이 들떠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받고 공작저에 갇혀있던 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늘 드디어 그렇게도 꿈꾸고 염원하던 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스턴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들어가시지요.”

    방에 들어서자, 꿈에 그리던 그가 있었다.

    “왔군.”

    높게 솟은 뿔과 매끈한 잿빛 피부. 그에 근엄한 목소리가 더해지자 스턴은 확신했다.

    “왕을 뵙습니다.”

    그가 자신의 왕이라고 말이다.

    “일어나게.”

    무릎을 털썩 꿇어 고개를 조아리는 스턴을 본 마왕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자네의 공이 크다고 들었네.”

    “아닙니다. 하찮은 재주일 뿐입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스턴은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뱉어내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믿음직스럽군.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일족이 억울한 일을 당했잖은가.”

    마왕이 깃펜을 들어 공중에 붕 띄웠다 떨어트리길 반복하며 무표정으로 말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자네와 같은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네.”

    마왕이 스턴에게 다가왔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우린 이 땅에서 드래곤을 몰아낼 생각이야.”

    지상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을 몰아낸다니! 스턴은 다시 한번 그가 제 주군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우리 일족에게 돌을 던진 인간들 역시… 대부분 죽겠지.”

    그러자 스턴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인간을 죽인다니? 나도 인간인데!’

    그 모습을 본 마왕이 피식 웃더니 스턴의 어깨에 한 손을 턱 올렸다.

    “걱정 말게. 모두 죽이겠다는 것은 아니니.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잖은가. 그 일을 인간이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네만.”

    마왕이 스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 말씀은…….”

    “자네는 인간 중에 그나마 가장 영특한 자인 듯하니… 자네가 그들의 왕이 되는 건 어떤가. 우리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세상에서 말이야.”

    마왕의 입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나오자, 스턴은 온몸에 전율이 이는 듯했다.

    ‘내가 저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니……!’

    마왕이 스턴의 어깻죽지에 붙은 작은 실오라기를 정성스런 손짓으로 떼어냈다.

    “제가… 말입니까?”

    그가 손에 든 실오라기를 가볍게 태워 없애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추, 충성을!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스턴이 고개를 확 처박고 큰 소리로 외쳤다. 마치 제 목소리의 크기가 충성의 크기를 나타내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하하하! 그래. 자네 같은 인재가 필요했네. 자네를 추천해 그 지옥 같은 집에서 빼낸 이에게 상을 줘야겠어.”

    “크흑!”

    지옥 같은 집. 제 마음을 정확히 읽어낸 듯한 단어 선택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네에게도 상을 내려야겠지.”

    마왕의 손에서 검붉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의 새로운 왕에게 걸맞은 상을 말이야.”

    그 빛을 바라보는 스턴의 눈이 몽롱했다.

    ‘드디어… 드디어 내 믿음이 빛을 발하는구나…….’

    지옥 같은 집에 갇힌 수년의 세월 동안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고 흑마법을 수련했던 그는 생각했다. 저 빛은 그동안 고생한 제게 내려오는 확실한 보상이며, 새로운 힘이라고 말이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전까지 잘 부탁하네.”

    검붉은 빛이 스턴의 몸을 한번 휘감더니 이내 심장 부근에 모여들었다.

    “자네는 곧 인간의 새로운 왕이 될 걸세.”

    마왕이 인자하게 웃었다.

    ***

    휴양을 갔을 때 스키르의 표정이 중간중간 좋지 않았던 것을 본 루카스는 다시 스턴 찾기에 돌입했다.

    ‘그래. 이 X놈의 자식아. 내가 곧 찾아주마.’

    아무리 반쯤 미쳤다지만, 스턴 역시 꽤나 실력 있는 마법사였다.

    ‘이 자식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루카스는 먼저 스턴이 갈만한 곳들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흑마법을 연구하는 집단이 있는 곳부터 작은 산맥과 골짜기까지. 그가 갈만한 곳은 모두 뒤졌지만, 스턴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고야.”

    종일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더니 배가 고파왔다.

    “먹고 할까.”

    결국 리에베르크까지 와서야 루카스는 허기짐을 참지 못하고 식당을 찾았다.

    작은 종소리와 함께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했다.

    “다 고르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냥 주방장 추천 메뉴로 부탁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되는 것부터 먼저 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메뉴를 살피지도 않고 말하자, 루카스의 배고픔을 어느 정도 인지한 직원이 재빨리 메뉴판을 들고 총총 사라졌다.

    “이제 좀 살겠네.”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갈증이 조금 해소되자 그제야 식당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 여기 리에베르크지.’

    곳곳에 있는 생경한 나무 장식을 본 루카스가 생각했다.

    온갖 곳을 다 뒤지다 보니 잘 와본 적 없던 리에베르크까지 흘러들어 오고 말았다.

    ‘요즘 이곳에 맛있는 메뉴가 뭐였더라.’

    주방장 추천 메뉴가 기대되는 때에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녀님께서?”

    “그래. 지금 마을을 순방하고 계신대.”

    “어휴. 그분은 정말 천사셔. 어쩜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국민들을 위해 힘쓰시는지!”

    그들의 말을 듣던 루카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성녀? 이곳에 있는 신전이 뭐였더라.’

    종종 신과 가까운 곳에 머무는 고위 사제 중 신탁을 받거나 이마나 목 등에 문장을 받은 치료 계열 여사제들을 두고 성녀라 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게나 말이야. 변변한 신전 하나 없는 우리 리에베르크에 저런 분이 오실 거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맞아. 게다가 요즘 상점가가 어찌나 활발한지! 아, 지난번에 디바노스에서 꽃차 들어온 거 봤어?”

    “봤기만 했게? 얼른 가서 하나 사 왔지. 육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디바노스 꽃차를 칭찬했는지 알겠더라니까!”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엔 변변한 신전 하나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성녀라니?

    루카스가 그들에게 가서 무슨 이야기냐 자세히 물을까 생각하던 때였다.

    “아, 그보다. 이번에 숲에서 시체 나온 거 알지?”

    “그럼. 그 끔찍하게 죽었다던? 그런데 그거 이번에 국왕께서 그냥 숲에 살던 이가 병에 걸려 죽은 거라고 하셨다면서.”

    하지만 흥미로운 대화가 들려오자 떼려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이고 귀를 기울였다.

    “맞아. 어휴! 괜히 소문만 믿고 지레 겁먹었지 뭐야?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성녀님께서 그렇게나 우셨대. 제 죄라고 말이야.”

    “세상에나…! 그래서 요즘 저렇게 마을 순방을 도시는 거였어? 어휴! 우리 파멜라 성녀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들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은 루카스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파멜라? 설마…….’

    하지만 파멜라는 흔한 이름이었기에 이내 생각을 털어내고 다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리월님께서 그렇게 파멜라님을 사랑하신다고 하시던데. 그러니 차라리 다행이지 뭐야? 다른 신전 사제님들 같은 경우엔 결혼도 못 하시잖아.”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괜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내 생각엔 파멜라님은 날개를 잃은 천사가 아닐까 싶어. 아! 이거, 이거 봐봐.”

    여자가 제 가방을 뒤적여 책 한 권을 꺼내 건넸다.

    “어머! 세상에나. 이걸 누가 쓴 거래?”

    “몰라~ 근데 아주 글이 기가 막혀! 성녀와 나무꾼의 사랑 이야기. 나 그거 보다가 밤을 꼬박 새웠어.”

    여자가 흥미로운 눈으로 받아든 책을 펼쳤다.

    “어머, 어머! 이 대사 뭐야~! 파멜라 펠레브. 당신에게 내가 가장 강한 검이자 가장 튼튼한 방패가 되어줄게요~? 꺄아~!”

    -쾅!

    결국 루카스가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벌떡 일어나자, 놀란 여자들이 눈치를 살피며 책을 슬쩍 덮었다.

    ‘젠장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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