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60화 (160/225)
  • 160화. 파멜라가 웃었다.

    앨리와 함께 한적한 숲으로 온 루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앨라스.”

    “어머나!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대?”

    루카스가 제 진명을 부르자, 앨리가 놀라는 ‘척’하며 제 입을 가렸다.

    “이걸 콱!”

    루카스가 주먹을 쥐고 꿀밤을 쥐어박는 시늉을 하자, 앨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깔깔 웃었다.

    “꺄하하! 아유! 나를 때리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앨라스. 지난번에 네가 한 일은 잘 봤다. 아주 깽판을 쳐놨더군.”

    “어머?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아마록이 이야기해 줬나?”

    앨리는 루카스의 정체가 아직 정확히 뭔지 모르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루카스의 태도가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미친 망아지처럼 브레스를 쏘는 골드 드래곤이 그럼 또 누가 있지? 네 아버지인 아프레가 그랬을 리는 없잖은가.”

    그러자 앨리의 눈이 다시금 가늘게 변했다.

    “너 누구야?”

    “누구일 것 같나. 이 미친 망아지야.”

    “야. X만 한 인간. 뒈지고 싶어? 아마록의 계약자라고 참아주는 건 여기까지야.”

    앨리의 눈빛에 살기가 형형했다.

    “하. 어이가 없군.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내 아티팩트 절반을 가지고 튄 게 엊그제 같거늘…… 이래서 두 발로 걷는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했는데…….”

    루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랄하고 있네. 감히 네깟 게 로드 행세를 해?”

    앨리의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에휴…… 그러기에 내가 그냥 콱 죽었어야 했는데.”

    “지랄하지 말라고 했지!!!”

    -쾅!

    앨리의 마력이 폭발했다.

    “에휴…….”

    하지만 루카스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같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앨라스. 나다. 라노스.”

    “거짓말하지 마! 넌 인간이잖아!”

    사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긴 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하더라도 환생의 길로 들어선 전대 로드를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풍기는 기운은 인간의 것이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래. 나도 거짓말이면 좋겠구나.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온 건지. 참…….”

    “…….”

    루카스가 처연한 표정으로 숲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앨라스 기억하느냐. 네가 인간 남자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날 찾아왔을 때 말이다.”

    그러자 앨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 그걸…….”

    “그래. 네 아비도 아닌 날 찾아와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나 역시 그 아픔을 겪어 봤기에 네가 어찌나 애잔하고 가엾던지…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건 루카스와 앨리만 아는 비밀이었다.

    “진짜, 진짜 로드예요?”

    그러자 앨리의 눈이 울망울망하게 변했다.

    “그래. 나다. 이놈아.”

    사실 앨리는 루카스가 전생에 어여삐 여기던 드래곤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앨리와 아만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고 동족 중 가장 어린 드래곤들이었다.

    게다가 몇백 년 만에 처음으로 태어난 동족이다 보니, 루카스뿐 아니라 대부분의 드래곤들이 그들을 어여삐 여겼다.

    “진짜요?”

    “그렇대도. 이제 인간은 눈에도 안 차더냐?”

    그러자 앨리가 루카스에게 달려와 와락 안겼다.

    “으앙! 로드!”

    “그래. 요즘도 돈에 미쳐 잘 산다고 들었다.”

    “흐에엥! 그건 들은 게 아니고 옆에서 보고 계셨던 거잖아요! 어떻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앨리가 서러운 듯 안겨 루카스의 등을 팡팡 쳐댔다.

    “아이고. 나 죽겠다.”

    “저를 처음 보신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래요!”

    “하하. 미안하게 됐구나.”

    그렇게 앨리는 한참을 안겨 루카스의 어깻죽지에 콧물과 눈물 자국을 가득 남겼다.

    “그런데 로드? 나 지금 조금 어이없고 화나는 게 뭐게?”

    “……?”

    “보니까 아마록의 인장이 있는데 그럼 아마록도 이 사실을 모두 알았다는 거?”

    “…….”

    “맞네? 그럼 지금 로드인 하셀님은?”

    “…….”

    “허?”

    절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모두 설명해 주마.”

    앨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자, 루카스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된 거다. 이제 좀 이해해 줄 수 있겠느냐?”

    “치…… 알겠어요.”

    그렇게 한참이나 설명하고 나서야 앨리는 조금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아만이 또 쥐어 터질 뻔했군.’

    나이로 보나 머리로 보나 사실 앨리가 아만보다 한 수 위였다. 때문에 해츨링 시절에도 앨리가 아만을 그렇게 쥐어팼더랬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동안 앨리와 못 나눴던 얘기를 한참이나 나누고 나서야 그들은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아! 이거 받으세요. 내 새로운 발명품.”

    앨리가 아공간에서 작은 보석 하나를 꺼내 건넸다.

    “로드는 용언 못 하시잖아요? 이거 아까 안다던 그 드워프한테 팔찌나 뭐 펜던트로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그럼 아무 때나 번호만 알면 우리랑 연락할 수 있어요.”

    “호오.”

    “뭐, 마법 수식 몇 개 바꿔서 넣은 것뿐이죠. 작아진 수정구라고나 할까?”

    “그래. 고맙구나.”

    “아! 그리고 이것도.”

    앨리는 그 뒤로도 유용해 보이는 물건 몇 개를 꺼내 건넸다.

    “아, 앨라스.”

    “네?”

    “식료품을 좀 워프시키고 싶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기에스티오와 투르캄에게 보낼 식량을 앨리 쪽에서 조달하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엥? 뭐 전쟁이라도 준비하시게?”

    “아까 말했던 그 드워프에게 보내줄 생각이다.”

    “아~ 하긴. 걔네 엄청 먹죠. 그럼 뭐 걔네 입맛에 좀 맞춰서 준비해 드려?”

    역시 세계 최고의 상단주답게 이해가 빨랐다.

    “그래. 좋구나.”

    “예. 뭐. 몇 명이나 있어요?”

    “일곱이다만 그곳에 다른 이들도 있으니 넉넉히 준비해 주겠느냐. 삼 일에 한 번씩은 보내야 할 듯하구나.”

    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해산물은 빼줘라.”

    “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뭐. 알겠어요.”

    이렇게 앨리까지 제 존재를 알게 되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앨라스와 아마록은 저를 잘 따르는 아이들이니 지금은 잘된 일이었다.

    “그럼 나중에 또 봐요!”

    앨리가 천진하게 손을 흔들자, 루카스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귀여운 것.’

    언제 봐도 제 눈에 아마록과 앨리는 귀여웠다.

    “자, 이제 또 일을 해볼까.”

    기지개를 한번 켠 루카스가 어디론가 텔레포트했다.

    ***

    리에베르크에 성녀가 나타난 뒤 사람들은 활기를 되찾았다.

    소문을 들은 타국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그들이 방문할 때마다 생겨나는 수익 역시 쏠쏠했다.

    타지인을 배척했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가져다주는 부수입은 싫지 않았던지 이제는 꽤 반기기까지 하는 모양새였다.

    “아, 맞다.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그…… 숲에서 나온 시체 이야기 말이야.”

    말하기도 끔찍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여자.

    “시체? 무슨 시체?”

    “어머, 자기 못 들었구나?”

    귀를 가까이하라며 손짓하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저쪽 숲 알지? 거기서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는 시체가 한 구 나왔는데…….”

    뒷말이 이어질수록 듣던 여자의 표정이 파리하게 변해갔다.

    “세, 세상에나! 그게 진짜야?”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

    “하긴…… 자기 남편이 경비대원인데.”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직 범인은 못 잡은 거래?”

    “그래. 아직 단서조차 없다잖아. 게다가 슬쩍 말해주기론 흑마법사 짓이라고 하던데. 나는 안 믿어. 지난번처럼 살인광이 죽인 거겠지.”

    “어머…… 어쩜 좋아.”

    “그러니까 자기도 조심해. 숲에 웬만하면 가지 말고. 응?”

    그러자 여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소문은 삽시간에 리에베르크를 뒤덮었고, 파멜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사용인들이 하는 말을 들은 파멜라가 물었다.

    “에그머니! 파멜라님.”

    “괜찮으니 말씀해 보셔요.”

    “하, 하지만…….”

    사용인이 말을 망설이자 파멜라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리에베르크의 일이 곧 저의 일인걸요.”

    “저…… 사실은 숲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해요.”

    “……?”

    “시체가 나왔대요. 그것도 엄청 끔찍하게 죽은 시체가요.”

    결국 사용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맞아요. 들리는 소문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가 끔찍하게 죽어있었다고 했어요. 흑마법인 것 같다고도 하고요.”

    “……끔찍하게 죽은 시체요?”

    “네. 눈은 멀었고 다리는 못 걷는 사람처럼 빠짝 말라 근육이 하나도 없더래요. 게다가 온몸엔 썩은 것처럼 종기가 나 있고…… 아, 게다가 손가락도 온전치가 않더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파멜라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무언가.

    ‘서, 설마…….’

    “어휴. 역시 말씀드리지 않았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파멜라님.”

    파멜라의 충격받은 표정을 본 사용인이 얼른 고개 숙여 사과했다.

    “아, 아니에요. 저 머리가 조금 아파서…….”

    “아니시긴! 이렇게나 심성이 고우셔서야. 얼른 방으로 가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죄송한데 물 한 잔만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어휴! 물론이죠.”

    목이 탔다. 끔찍하게 죽었다던 그 사람이 어째서 죽었는지 왠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닐 거야. 아니야.’

    파멜라는 방으로 향하는 길에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기라도 할까 싶어, 힘을 꽉 주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리에베르크에 와서 고친 환자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아이에게 새로운 눈을 주었고, 허리가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사내를 고쳤었다.

    어릴 때 마차에 손이 깔려 손가락이 기이하게 비틀렸던 여인을 고쳤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에 오랜 시간 시달렸던 노인을 치료했다.

    “아…….”

    방에 들어온 파멜라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결국… 결국 내가…….’

    깨닫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결국…….’

    알고 싶지 않던 진실이었다.

    ‘결국 나는 손이 닿던 것만으로도 끔찍하던 그 버러지와 같은 인간이 되었구나.’

    파멜라가 멍하니 제 손을 내려봤다.

    악마가 제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악마마저 제가 가여워 새 삶을 내릴 만큼 불행하게 살았다고, 그래서 제게 이런 힘을 준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살며시 머리를 내미는 다른 진실이 있었다.

    ‘이렇게 된다는 것을 내가 과연 몰랐을까.’

    애써 무시해 보아도 진실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클클클…… 너는 처음부터 지켜봐 왔잖느냐. 파멜라. 이기적인 계집 같으니!’

    그렇게나 경멸했던 교주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았다.

    “파멜라!”

    그때 제 뒤에서 저를 붙잡는 손길과 걱정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아파요? 어디 봐요. 그러게 내가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리월의 따스한 손길이 피가 마른 듯 차게 식은 제 이마에 닿자, 파멜라는 고개를 내민 모든 진실을 외면했다.

    ‘그래서? 알았으면 뭐가 달라졌을 거 같아?’

    머릿속에서 제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몇이나 새 삶을 얻었는지 알잖아?’

    타협했고.

    ‘이게 바로 대의를 위한 거야. 작은 희생으로 큰 걸 얻었어.’

    모든 일을 합리화했다.

    “괜찮아요? 얼른, 얼른 누워요.”

    리월이 제 팔을 잡고 일으켰다.

    “괜찮아요. 리월.”

    괜찮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자 머릿속을 울리던 모든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정말이에요? 그래도 조금 누워요. 응?”

    “정말, 정말 괜찮아요.”

    파멜라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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