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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53화 (153/225)
  • 153화. 리에베르크의 성녀.

    작은 섬나라인 리에베르크는 요즘 떠들썩했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 왔어.”

    “내가 거기에 있었다니까? 진짜 죽어가던 사람을 손짓 한 번에 살려냈어.”

    “그려. 나도 거기 있었어. 배에 이따~ 만 한 구멍이 났는데, 그게 순식간에 사라졌어.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말이여.”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다 죽어가던 사람을 살려낸 파멜라의 이야기를 떠들었다.

    “아, 외지인이라지?”

    “그렇대. 말투만 봐도 딱 그렇더구먼.”

    “참 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리에베르크에 그런 사람이 올 줄이야.”

    “그런데 있잖아.”

    사내 하나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 사람이 그 육지에서 유명한 부활교의 사제였다는 소리가 있던데.”

    “에? 부활교? 그거 사이비 아냐?”

    “떽!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 부활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더구먼. 그런데 이상한 게…… 저 여자가 보인 능력이 교주의 능력인 것 같단 말이야.”

    부활교라는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그들 역시 가끔 육지를 오가는 사람들을 통해 그곳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했다.

    “근데 부활교는 사라진 거 아니었어? 그 드래곤이 와서…….”

    사내가 드래곤이라는 대목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그랬지. 그때 그 교주라는 사람이 죽었다고들 하더라고. 근데 내가 알기론 부활교 사제 중엔 저런 치유 능력을 가진 자가 없다고 하던데?”

    “그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내가 지난번에 아란트에 갔을 때 분명 들었어. 아, 그리고 엊그제 그 현장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부활교 신자였다고 하더라고.”

    “에?”

    “그렇다니까. 근데 그 사람이 분명 그 여자더러 부활교의 사제라고 했어. 그것도 교주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고위 사제라고 하더구먼.”

    정보가 더해지자 사람들은 이제 거의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럼 모든 게 다 말이 되네. 드래곤의 분노를 산 부활교는 뿔뿔이 흩어지고, 그 여자는 도망쳐 나온 건가 보네.”

    모여든 정보가 딱딱 맞아떨어지자, 사람들은 마치 저들이 탐정이라도 된 양 추리를 이어갔다.

    “그렇지! 그리고 교주의 능력을 저 여자가 이어받았고!”

    “그럼 이제 우리도 큰일 난 거 아녀?”

    그때 한 사내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왜?”

    “왜긴! 드래곤들이 이제 저 여자를 노리고 오는 게 아니냐고.”

    그러자 사람들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

    “어? 그런가?”

    “얼씨구? 놀고 있네. 그런가는 무슨 그런가? 아니, 드래곤들이 그렇게 할 짓들이 없어? 어차피 부활교는 끝났고, 저 여자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 도망친 거 아니겠어?”

    그러자 다시 여론이 한쪽으로 쏠렸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그러니까 우리는 그저 저 여자한테 잘해줘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만 만들면 되는 거지.”

    “그래. 그게 맞지. 뭐 하러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발로 차냐는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저 정도의 치유 능력이라면 변변한 사제 하나 없는 리에베르크에 큰 이득이자 축복이었다.

    “다들 그렇게들 알고 잘들 해주라고.”

    ***

    “정말 괜찮겠어요? 지금이라도 우리 얼른 떠나요.”

    리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요. 사실 제가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리월의 걱정은 당연했다. 하지만 파멜라는 더 이상 그가 저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거 맞죠?”

    “그럼요.”

    거처를 옮기기 전까진 리월의 집에서 머물러야 했다.

    “자, 그럼 청소를 한번 해볼까요?”

    하지만 리월의 집은 여느 혼자 사는 남자의 집처럼 깔끔치가 못했다.

    “제가 할 테니 앉아 계세요.”

    “괜찮아요. 그냥 제가 도와달라고 할 때 도와줘요. 저 청소하는 거 좋아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생각이 많을 때 청소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깨끗해진 집을 보면 기분이 나아지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그때였다.

    -쾅쾅쾅!

    누군가 문을 부술 듯 두드리기 시작하자, 리월은 제 뒤로 파멜라를 얼른 숨겼다.

    -쾅쾅쾅!

    다시 한번 문이 거세게 흔들렸다.

    “여기 계세요.”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문 뒤에 파멜라를 숨긴 리월이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섰다.

    “누구세요.”

    문가에 선 리월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왕궁 기사단입니다.”

    리월과 파멜라가 눈빛을 교환했다.

    “괜찮으니 열어줘요.”

    파멜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를 찾으러 온 거겠지.’

    리에베르크는 작은 섬나라이니 분명 소문도 빠르게 퍼져나갔을 것이다.

    문고리를 잡은 리월이 망설였다.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문 건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상냥했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리월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평민인 리월에게 먼저 깍듯이 인사한 기사의 눈이 파멜라를 향했다.

    “저희 왕께서 국민을 구해주신 영웅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파멜라는 기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끝났구나.’

    이곳에서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다는 뜻이었다.

    “네.”

    “정중히 모시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그때 파멜라의 머릿속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처음 리월을 만났을 때 그가 줬던 스크롤 한 장. 그게 아직 제 품에 있었다.

    ‘아냐.’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리월을 두고 갈 수는 없어.’

    이대로 제가 떠나버린다면 리월과도 헤어져야 한다.

    “네. 갈게요.”

    이내 체념한 파멜라가 고개를 끄덕인 뒤 리월을 바라봤다.

    “저 다녀올게요.”

    “파멜라…….”

    리월 역시 파멜라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작은 왕국이라고 한들 왕은 왕이었다.

    “청소는 다녀와서 해야겠네요.”

    담담하게 말하는 파멜라를 바라보는 리월의 표정이 참담했다.

    “금방 와야 해요.”

    리월이 그들을 따라 문을 나서려는 파멜라를 와락 끌어안았다.

    “혹시 저들이 나쁜 짓을 하면…… 제 생각은 말고 도망쳐요. 제가 당신을 찾으러 갈게요.”

    그리고 파멜라의 귀에 속삭였다.

    “그게 어디든.”

    “네.”

    그 말을 들은 파멜라의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는 내 생각만 하는구나.’

    이제 그들을 따라나서면서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가 날 찾으러 올 테니까.’

    ***

    리에베르크의 왕궁은 아란트 제국의 공작저만 못한 크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제국 못지않게 파멜라를 환대했다.

    큰 테이블에 차려진 만찬은 리에베르크에서는 보기 힘든 음식들로 가득했으며, 뒤에 차려진 디저트들 역시 하나하나 모두 예쁘고 맛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나 환영을 해주다니.’

    그런 성대한 만찬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왕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파멜라를 극진히 대접하니, 그녀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런 대접은 처음이었어.’

    리에베르크의 국왕은 파멜라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게다가 그녀가 살 새로운 집과 남작이라는 작위까지 수여했다.

    사실 이런 상황까지 오니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리에베르크는 다른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게다가 이젠 마음이 꽤 가버린 리월이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터전이기도 했다.

    ‘작위가 있으면 품위 유지비도 나온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되면 리월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단란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픈 사람들을 가끔 돕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파멜라가 제 손을 내려봤다.

    왕께서 하사한 마차 안은 아늑했다. 배가 부르니 마차의 흔들림이 마치 요람같이 느껴졌다.

    ‘편안하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평온한 기분을 느낀 것은.

    눈이 저절로 감겨왔다.

    ‘그래. 여차하면 도망치자. 리월은 내가 어디 있든 찾으러 오겠다 했잖아.’

    몸이 편해 그런지 마음 역시 편하게 가라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춰 서고 문이 열렸다.

    “파멜라!”

    언제부터 기다린 걸까. 리월은 파멜라를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리월.”

    리월이 와락 끌어안자 파멜라는 확신했다.

    잘한 선택이었다고. 이게 맞는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

    파멜라의 이야기를 들은 리월은 누구보다 기쁜 표정이었다.

    “그럼 정말 이곳에서 사는 건가요?”

    “아마도요.”

    그는 새로운 집이나 파멜라의 작위에 기뻐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파멜라가 이곳에서 계속 머무른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듯 보였다.

    “정말, 정말 너무 좋아요.”

    리월이 활짝 웃자, 파멜라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났다.

    ‘그래 여기서 자리가 잡히면 폴라를 데려올 수 있어.’

    새로운 삶. 파멜라는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리월이 이리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야 제 어둡던 인생에 실낱같은 빛이 보이는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제집이라 부를만한 번듯한 집이 생겨났고, 끼니를 걱정할 일도 사라졌다.

    파멜라는 이제 원치 않았던 이 능력에 감사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며, 제게 새로운 삶까지 주었으니.

    “파멜라. 저길 좀 봐요.”

    리월의 말에 창밖을 바라보니,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해가 슬슬 올라오고 있긴 했지만 아직은 새벽이었음에도,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마도 당신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저를요?”

    “네. 왕께서 인정하신 능력이니 이제 사람들도 더 이상 겁을 내지 않는 거겠죠.”

    파멜라가 창문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인걸요. 제가 내려가서 말하고 올게요.”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이 시간에 찾아온 거라면 분명 급한 일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야.’

    리월의 말대로 리에베르크의 왕이 인정한 제 능력이었다. 게다가 작위까지 받았으니 리에베르크의 국민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파멜라. 이건 너무 무례한 처사예요. 이러면 사람들이 언제든 도와달라 올 거라고요.”

    리월이 문을 나서려던 파멜라의 손을 살짝 잡았다.

    “괜찮아요. 지금은 제가 자고 있던 것도 아닌걸요. 게다가 국왕 폐하께서 앞으로 저를 도울 사용인들도 함께 보내주겠다 하셨으니, 이제 이런 일은 없을 거예요.”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지자, 그다음은 너무나도 쉬웠고 당연했다. 그리고 파멜라는 그 모든 것들을 놓치기 싫었다.

    처음으로 제게 온 기회였다. 저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도울 기회.

    “……알겠어요. 하지만 저와 함께 가요.”

    “물론이죠.”

    싱긋 웃은 파멜라가 리월과 함께 문을 나섰다.

    “무슨 일이시죠?”

    기다리던 파멜라가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누구 하나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괜찮으니 말씀해 보세요.”

    파멜라가 그들을 향해 상냥하게 말하자, 여인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저희 애가 많이 아픕니다. 며칠 전부터 열이 펄펄 끓는데 도통 무슨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요. 제발 저희 애를 좀 살려주세요.”

    그러더니 여인이 바닥에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제 아내도 많이 아픕니다. 몇 년 전에 계단에서 넘어져 허릴 다쳤는데,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기는커녕 더욱 나빠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제발 저희 아내도 좀 고쳐주십시오.”

    그에 이어 사내 하나가 바닥에 엎드려 빌었고.

    “저희 어머니께서…….”

    이어 다른 사내가.

    “제 딸아이가…….”

    이어 다른 여인이 파멜라의 앞에 납작 엎드려 빌고 있었다.

    어스름한 새벽녘 길 위로 엎드린 사람들 앞에 우뚝 선 파멜라의 가슴에 묘한 도취감이 서렸다.

    “다들 일어나세요. 제 능력은 여러분들을 위한 것인걸요.”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파멜라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가여워라. 내가 도와줘야지.’

    그렇게 리에베르크에 성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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