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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52화 (152/225)
  • 152화. 넬라의 비밀 친구.

    오랜만에 홀로 하는 외출에 들뜬 넬라는 걸음이 바빴다.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을까?’

    백작가에 입양된 이후 생긴 작고 소소한 취미.

    -딸랑.

    경쾌한 종소리가 울리고 넬라가 들어서자, 백발이 성성한 주인장이 그녀를 반겼다.

    “오! 넬라구나.”

    “안녕하세요.”

    이젠 엄연히 백작가의 영애였지만 노인은 격식 없이 그녀를 대했고, 넬라 역시 그 태도에 익숙해 보였다.

    “방학했니?”

    “네.”

    노인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잔뜩 들여놨단다.”

    “정말요?”

    “그럼.”

    마치 손녀딸을 보듯 사랑스러워 마지않는 노인의 눈길이 따스했다.

    진열대로 다가간 노인이 손수 물건들을 꺼내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 이건 디바노스에서 온 물건이다. 디바노스에서 나는 들꽃을 잘 눌러 만든 것이지.”

    그녀의 새로운 취미는 엽서 모으기였다.

    사실 처음엔 아무것도 좋아하는 게 없는 넬라를 보는 백작 부부의 걱정 어린 눈길에 억지로 만든 취미였다.

    다른 취미들보다는 돈이 많이 들지 않아 선택한 것이었지만, 친할아버지 같은 주인장 덕인지 방학이 되면 가장 먼저 찾아올 만큼 꽤나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

    “정말 예쁘네요.”

    “그렇지? 그리고 이것도 보렴.”

    주인이 꺼내 든 것은 왁스를 녹여 봉투를 붙일 때 쓰는 작은 도장이었다.

    “네가 좋아할 것 같아 들여왔단다.”

    도장 바닥을 들여다보니 작은 새가 새겨져 있었다.

    “이 왁스를 녹여 쓰면 예쁠 것 같구나.”

    그리곤 작은 상자에서 금색과 초록색 왁스를 몇 알 꺼내어 내려뒀다.

    “너무 예뻐요.”

    그것들을 찬찬히 살피던 넬라가 활짝 웃었다.

    “허허.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넬라의 웃음을 본 노인이 따라 웃었다.

    “아,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노인이 다시 발걸음을 옮겨 카운터 쪽으로 돌아갔다.

    “자. 받으렴.”

    노인의 손에 작은 봉투가 들려있었다.

    “이게 뭐예요?”

    그것을 받아 든 넬라가 기대하는 눈을 하곤 봉투 입구를 열었다.

    “우와!”

    봉투엔 작은 쿠키들이 들어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거 맞지? 무화과 잼이 올라간 쿠키 말이다.”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넬라가 얼른 쿠키 하나를 집어 입에 가져갔다.

    “저 오는 거 알고 계셨어요?”

    “물론이지.”

    사실 주인은 며칠 전부터 계속 같은 쿠키를 구워 가게에 가져왔었다.

    이맘때쯤 아카데미의 방학이 시작되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랐기에, 노인은 매일 신선한 쿠키를 준비해 넬라를 기다렸다.

    “할아버지 최고!”

    입에 쿠키 부스러기를 가득 묻힌 넬라가 엄지를 척 하고 치켜들었다.

    “저런. 목 막힐라.”

    노인이 아래 놓여있던 우유 한 병을 꺼내 내밀자, 넬라는 그것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허허. 그리도 좋으냐?”

    “네! 너무 좋아요. 너무 맛있어요.”

    넬라는 이곳이 너무나도 좋았다. 작은 가게에서 풍기는 종이 냄새도 좋았고, 할아버지가 웃는 목소리도 좋았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은 이곳에서만큼은 로드리고가의 영애가 아닌 것이었다.

    “자, 그럼 이제 네 얘기를 좀 들어보자꾸나.”

    오랜만에 만나 잠시 서먹했던 기류가 순식간에 풀어지자, 노인은 작은 테이블에 차를 내어왔다.

    “좋아요.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노인의 앞에서 조잘거리는 넬라는 바깥에서와는 완전 딴판인 모습이었다.

    말을 아끼지도 숨기지도 않았으며, 표정을 감추거나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지도 않았다.

    “진짜 웃겼어요! 그때 하필 그럴 게 뭐예요?”

    “허허! 그러게나 말이다.”

    넬라는 쉴새 없이 떠들었고, 노인은 그런 넬라를 보며 쉼 없이 웃었다.

    -딸랑.

    그때 가게의 문이 열리자, 넬라는 얼른 웃음을 지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노인은 익숙한 일인 듯 내색하지 않고 손님을 맞았다.

    “왁스랑 편지지를 좀 사고 싶은데요.”

    “예. 이쪽으로 오세요.”

    가게에 들어선 사내는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이었다. 머리는 드문드문 희게 변했지만, 검을 쓰던 사람인 듯 손엔 굳은살이 가득했다.

    “처음 뵙는 것 같군요. 지나는 길이십니까?”

    노인이 살갑게 묻자, 사내 역시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니요. 이곳에 이사를 왔습니다. 사실 오늘이 첫날입니다.”

    “오. 그러시군요. 시타타는 좋은 곳이지요.”

    “예.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신 첫날부터 편지를 쓰시다니. 참으로 부지런하신 분인 듯싶군요.”

    노인과 사내는 그 뒤로도 시답잖은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았다.

    “자, 여기 있습니다.”

    사내가 값을 치르고 노인이 물건을 잘 담아 건넸다.

    “다음에 또 오세요.”

    가게를 나서던 사내의 눈이 잠시 넬라에게 머물렀다.

    “감사합니다. 또 오겠습니다.”

    그러고는 넬라에게 짧게 눈인사를 했다.

    “아.”

    얼결에 같이 인사한 넬라가 노인을 한번 쳐다봤다.

    “저를 아는 걸까요?”

    “네가 로드리고가의 영애인 것을 모르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느냐.”

    그 말을 들은 넬라가 수긍하듯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나쁜 사람은 아닌 듯 보이더구나. 오랫동안 수련을 한 사람의 손이었다. 그리고 아까 들어보니 숲길 쪽에 집을 얻었다고 하던데.”

    “숲길요?”

    사실 넬라는 둘의 대화가 시작된 이후 다른 생각을 하느라 대화를 모두 듣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무리 수련을 많이 한들, 검사가 어찌 마법사인 너를 당하겠느냐. 허허!”

    “할아버지도 참. 검사도 얼마나 멋지고 강한데요. 소드 마스터는 정말 대단하다고 하던걸요?”

    “허허허! 그래도 우리 넬라가 최고겠지.”

    노인의 말에 넬라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

    그렇게 노인과 한참을 떠든 넬라는 날이 어둑해질 때쯤이 되어서야 가게를 나섰다.

    ‘아까 그 아저씨는 왜 시타타에 온 걸까?’

    가게에서 봤던 그 손님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던 사내의 모습.

    ‘어디였더라.’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그가 사 갔던 편지지와 봉투였다.

    ‘꽃무늬가 뭐람.’

    크고 굵은 손으로 섬세하게 고르던 편지지엔 꽃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그가 고른 왁스는 금색과 분홍색이었다.

    ‘안 어울리는 취향이야.’

    왠지 이상한 아저씨였지만, 넬라는 그에게서 풍기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닌 듯 보였다.

    “뭐라구?”

    그때 제 곁을 맴돌던 나이아스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로 가자.

    나이아스가 숲길 쪽을 가리키며 넬라의 곁을 빙빙 돌았다.

    “저긴 왜?”

    -아파. 아까 그 인간 남자.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인간 남자. 아파. 피가 많이 나.

    인간 남자라니? 넬라가 미간을 구겼다.

    “알겠어.”

    어쨌건 피를 흘린다니 가보는 게 맞았다.

    게다가 나이아스가 이끄는 곳이라면 지금 위험하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넬라가 뛰다시피 숲길로 들어섰다.

    -저기야.

    -얼른.

    나이아스들의 날갯짓이 빨라졌다.

    “허억… 허억…….”

    오랜만의 뜀박질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저기! 저기야!

    얼마나 뛰었을까. 눈앞에 작은 집이 나타났다.

    “피…….”

    그리고 그곳까지 길게 이어진 혈흔을 본 넬라의 손바닥엔 땀이 흥건했다.

    작은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선 넬라가 나무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누구냐.”

    그와 동시에 목에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

    “다, 다친 사람이 있다고…….”

    목전에 닥친 쇠붙이에 놀란 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넬라는 그와 동시에 물의 중급 정령인 운디네를 불러냈다.

    -크릉!

    소환된 운디네는 형상이 채 다 갖춰지기도 전에 넬라의 앞을 막아섰다.

    “……!”

    재빠르게 물러서는 커시스.

    “괜찮아. 운디네. 다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온 거예요. 아저씨를 해칠 생각은 없었어요.”

    목숨을 위험하던 쇠붙이가 사라지자, 한결 차분해진 넬라가 운디네를 진정시킨 뒤 또박또박 말했다.

    “그건 어떻게 알았지?”

    운디네가 물러서자 커시스 역시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나이아스가 말해줬어요.”

    “나이아스가 말을? 정령과 말을 한다는 소리냐?”

    그러자 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능력이구나.”

    커시스가 감탄했다.

    “그런데…….”

    넬라가 커시스의 몸을 눈으로 훑었다. 분명 핏자국이 흥건했고, 나이아스 역시 급박한 일인 듯 저를 이끌었다.

    그런데 커시스는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진 않았다.

    “이것 참…… 부끄럽군.”

    넬라의 뜻을 알아차린 커시스가 머쓱한 듯 제 머리를 긁적였다.

    “다친 것은 맞다만 그리 심각한 건 아니다. 꼬마야.”

    “꼬마는 아니에요. 저도 이제 데뷔탕트에 나갈 나이가 되었거든요.”

    꼬마라는 말에 발끈한 넬라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러십니까. 영애.”

    그러자 커시스는 기사의 예를 갖추며 능글맞게 인사했고, 넬라가 발을 쾅 굴렀다.

    넬라의 반응에 작게 웃은 커시스가 절뚝이며 의자로 걸어가더니 털썩 앉았다.

    “아. 다리를 다치셨나 보네요.”

    그에 넬라의 눈이 커시스의 다리에서 멈췄다.

    집이 어두워 몰랐는데 그의 한쪽 다리를 감싼 것은 바지가 아닌 붕대였고, 피로 모두 물들어 자줏빛 바지와 같아 보였다.

    “그래.”

    “어쩌다 그러셨어요?”

    다시 봐도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커시스의 얼굴 탓인지, 넬라가 쉽게 경계를 풀어냈다.

    ‘운디네도 있으니까.’

    그러고는 운디네를 슬쩍 돌아봤다.

    “어쩌다 그러긴. 장작 좀 패려다가 다쳤다.”

    커시스의 대답에 넬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저씬 검사 아니었어요? 할아버지가 아저씨는 오랫동안 수련한 검사라고 하던데요.”

    “하하. 이거 왠지 다 들켜버린 기분인데.”

    “아니, 그런데 장작을 패다가 어떻게 하면 그만큼이나 다쳐요?”

    커시스의 다리에 감긴 붕대에선 아직도 피가 배어 나왔다.

    “내가 힘 조절을 못 했다고 하자. 그게 아니면 오늘 내게 도끼를 판 사람이 사기꾼이 될 테니 말이다.”

    “…….”

    “나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말이다. 장작을 내리쳤더니 손잡이가 부서져 내게 도끼날이 날아오더구나.”

    자꾸 배어 나오는 핏물 탓에 바닥까지 흥건해지고 있었다.

    “에휴.”

    그를 보던 넬라가 운디네에게 다가갔다.

    “저 아저씨를 좀 치료해 줘.”

    -알겠다.

    커다란 늑대 형상을 한 운디네가 성큼성큼 다가서자, 커시스가 움찔했다.

    “괜찮아요. 운디네가 치료해 줄 거예요.”

    운디네가 몸을 숙여 커시스의 다리를 한번 핥자, 작은 빛이 일었다.

    운디네가 물러서자 커시스가 제 다리에 감겨있던 붕대를 풀어냈다.

    “이게 바로 물의 정령의 치유 능력인가…….”

    그리고 언제 다쳤냐는 듯 말끔히 나은 제 다리를 보며 감탄했다.

    “장작 패는 건 어려워요. 검은 쓰면서 도끼는 못 쓰나 봐요?”

    조금 전 당했던 놀림에 복수라도 하려는 듯 넬라가 이죽였다.

    “하하. 그래. 검은 쓰면서 도끼도 못 쓰나 보다. 왜 이제 바보라고 놀리기라도 하려고 그러느냐?”

    하지만 커시스는 넬라의 놀림에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쳇.”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이사 온 첫날 밤 과다출혈로 죽었을 수도 있겠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커시스가 제자리에서 몇 번 뛰더니 활짝 웃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하나도 안 아프다.”

    커시스의 칭찬에 조금은 우쭐해진 넬라가 어깨를 활짝 펴 보였다.

    “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렴. 내가 이렇게 보여도 네게 보답할 만큼은 되니 말이다.”

    그 말에 괜찮다며 고개를 저으려던 넬라가 일순 눈을 반짝였다.

    “진짜 아무거나 말해도 돼요?”

    “그럼.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말이다.”

    넬라가 비장한 표정으로 커시스를 쳐다봤다.

    “저 그럼 검 쓰는 법을 알려주세요.”

    “에? 검을 말이냐? 백작가의 영애가 검 쓰는 법은 알아서 뭣 하게? 게다가 넌 정령술에 마법까지 쓰잖냐.”

    커시스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요. 멋있잖아요.”

    언젠가부터 꼭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하! 그러자꾸나. 뭐 마나가 동나기라도 하면 검이라도 휘두를 줄 알아야지. 암! 그렇고 말고.”

    호탕하게 웃은 커시스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요?!”

    사실 그가 거절할 줄 알았다.

    자신이 백작가의 영애인 것을 아는 그에게 검을 가르쳐달라는 부탁부터 이미 무리수였다.

    그런데 가르쳐주겠다니!

    “그럼. 난 거짓말은 안 한다.”

    신이 난 넬라가 제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제국 기사만큼은 아니더라도 네 한 몸은 지킬 수 있을 만큼 가르쳐 주마!”

    “신난다!”

    그렇게 넬라에게 새로운 비밀 친구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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