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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50화 (150/225)

150화. 리월이 웃었다.

“스키르는?”

하루 늦게 집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먼저 스키르를 찾았다.

“뭐 며칠 있다 오겠다고 하던데? 집에 일이 생겼나 봐.”

폴라가 대답했다.

“그래?”

여태 방학이 시작될 때마다 스키르는 공작저에 잠시 들르고 곧장 시타타로 함께 왔었다. 그에 공작 부부가 서운함을 토로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들이 시타타로 오는 쪽을 택했다.

때문에 아카데미의 방학 때마다 백작저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아무래도 바쁘겠지.’

황제의 서거 이후로 중앙 귀족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로드리고 백작가는 그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이미 제국 내에서 로드리고 백작가는 작위만 있는 상인 집안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오, 아들!”

멀리서 루카스를 발견한 시비에가 큰 소리로 제 아들을 불렀다.

“어머, 여보. 채신머리없이.”

그에 블레인이 작게 타박했지만, 시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웃었다.

“아버지.”

시비에가 제게 종종걸음으로 뛰어오자, 루카스 역시 발을 빨리해 제 아버지의 체통을 조금이나마 지켜줬다.

“그래. 언제 온 게냐. 아이들 말로는 네가 며칠이나 걸릴지 모른다고 하던데!”

“아닙니다.”

“어휴.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나, 우리 아들.”

블레인이 루카스의 얼굴을 덥석 붙잡고는 이리저리 돌리며 살폈다.

“마탑의 일이 그렇게나 바쁜 거니?”

“아.”

자신의 부재를 아만이 대충 둘러대고 있는 것은 알았는데, 그 변명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변명이 마탑이었나 보다.

“아무리 마탑의 일이 바빠도 그렇지! 어쩜 수정구 한번을 받질 않느냐? 나랑 네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죄송합니다.”

받지 않은 게 아니었다. 못 받은 거지.

‘폴리모프한 모습으로 어떻게 받아?’

지금과 다른 모습인 것도 그랬지만, 사실 바닷속이나 용광로 앞에서 어떻게 받는다는 말인가.

“루카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안은 이제 옛날의 로드리고 백작가가 아니다. 네가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

“아버지 말이 맞아. 루카스.”

시비에와 블레인의 다정한 눈이 루카스를 향했다.

‘묘하게 죄책감이 드는군.’

그들의 다정한 눈을 마주하자,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밀려왔다.

“예. 압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죄책감을 겨우 눌러 낸 루카스가 싱긋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네 몸이 상할까 걱정이야. 우리 아들 이렇게 말라서는! 안 되겠다. 어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꾸나.”

사실 루카스는 말랐다기보단 건장한 편에 속했지만, 부모의 눈엔 가녀리고 곧 부서질 것처럼 보이는 듯했다.

“예?”

“어서! 폴라, 넌 뭐 하고 있니. 어제 아줌마가 얘기했지?”

블레인의 날카로운 외침에 루카스가 움찔하며 폴라를 돌아봤다.

‘설마…….’

혹시 제 엄마가 폴라를 구박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헤헤! 아니~ 저는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거라구요~!”

하지만 방긋 웃는 폴라를 보자 그 생각은 너무나도 지나친 기우였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인데.’

블레인의 다정한 타박에 폴라는 방긋방긋 웃으며 블레인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너어? 아줌마가 말했지?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다른 영애들에게 몰매 맞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헤헤. 누가 저 때리면 아저씨께서 혼내주실 거죠?”

“물론이다! 누가 감히 우리 가문의 후원을 받는 폴라를 건든다는 말이냐! 그땐 내가 가서 콱!”

“야호! 아저씨 최고!”

시비에가 제 팔을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며 소리치자, 폴라가 박수를 짝짝 치며 웃었다.

“넬라는요?”

“이제 곧 내려올게다. 안 그래도 넬라 때문에 요즘 머리가 아프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루카스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설마 폴라와 비교가 되는 건가.’

폴라는 애교가 많고 사람들과 쉽게 어울렸다. 게다가 예쁘고 상냥하며 실력까지 갖춘 마법사였으니 백작 부부의 칭찬이 날로 더했다.

그에 반해 넬라는 숫기가 없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질 않는 성격이다 보니, 백작 부부가 비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 딸내미가 오죽 예쁘잖냐…… 벌써 여기저기서 혼담이 나오고 있으니 내가 그것 때문에 아주 죽겠다. 어디 감히 우리 금쪽같은 넬라를 데려가려고!”

시비에가 콧방귀를 씩씩 뀌며 성을 냈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인데.’

그러자 역시 지나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나. 여보. 그럼 넬라를 평생 옆에 끼고 사실 생각이세요? 좋은 혼처가 있으면 넬라와 맺어주어야죠.”

“떽!! 이 사람이. 우리 넬라는 아직 갓난애나 다름없는데 혼처는 무슨 혼처!”

시비에와 블레인이 투닥거리는 때, 계단을 내려오는 넬라가 보였다.

“우리 딸~”

조금 전까지 콧김을 씩씩 불던 시비에가 콧소리를 내며 넬라에게 총총 뛰어갔다.

“여보! 채신머리없이.”

그러자 블레인이 주위 사용인들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타박했다.

“네. 아버지.”

넬라가 싱긋 웃자, 시비에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으윽……! 이런 딸을 누구에게 준다는 말이야! 못 줘!!!”

“여보!”

“넬라야. 차라리 지금부터 많이 먹고 이 아버지보다 더 건장해지는 게 어떠냐. 응? 그러면 널 노리는 사내들이 줄어들지도 모르잖냐! 물론 이 아비의 눈에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가장 예쁘겠지만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어디 안 가고 평생 아버지 곁에서 살게요.”

그러자 시비에의 입이 귀에 걸릴 듯 올라갔다.

“정말이냐? 응? 그게 정말이야?”

“그럼요.”

그러자 이제 시비에는 엉덩이까지 살랑살랑 흔들며 기뻐하고 있었다.

“여보. 들었어요? 넬라가 여기서 평생 산다고 합니다!”

“세상에나. 저런 팔불출 같으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루카스의 입에도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

리월과 함께 리에베르크로 온 파멜라는 처음 보는 세상에 눈이 동그래졌다.

“저기 보세요. 저게 바로 리에베르크의 자랑이자 특산품인 호두파이 가게입니다. 저걸 먹겠다고 육지에서 사람들이 자주 왔었죠.”

리월이 가리킨 곳엔 커다란 호두 모양 간판이 세워진 파이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이젠 뭐, 육지 사람들 보긴 힘들죠.”

“왜요?”

“뭐…… 리에베르크 사람들이 그래요. 이곳이 가운데에 낀 지역이라 옛날부터 사방에서 쳐들어와서 그런지, 다른 지역 사람들을 경계하고 싫어하죠.”

“아.”

파멜라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지자, 리월이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을 덧붙였다.

“아니, 아니에요. 파멜라 양은 절대 제게 타지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리에베르크 사람들도 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육지 사람들을 좋아하진 않아도 크게 배척하진 않으니까요.”

그러자 파멜라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는 리월씨와 함께 깊은 곳에서 살 테니까요. 제 말 맞죠?”

“그럼요.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파멜라 양에게 해를 끼치면 제가! 이 리월이 지켜드릴게요.”

리월은 참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떠보듯 하는 파멜라의 물음이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싫은 기색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 여기서 며칠은 있어야 해요. 알죠?”

“그럼요.”

리월은 시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깊은 숲으로 들어갈 거라고 했다. 왜인지 이유는 말하지 않았으나, 파멜라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잘된 일이니까.’

“자, 그럼 가실까요? 우리 하루 종일 먹어야 할 게 산더미에요.”

리월이 신사처럼 손을 내밀자 파멜라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

리에베르크에서 리월과 함께 보낸 첫날은 정말 꿈만 같았다.

무인도에서 리월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진짜 맛있었죠?”

“네. 과장이 아니었네요. 정말 천상의 맛이었어요.”

이제 배가 불러 숨까지 몰아쉬는 파멜라를 보며 웃는 리월.

“아직 대망의 하이라이트가 남았어요. 저번에 제가 말했죠? 이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하나면 모든 게 쑥 내려가는 기분이라고요.”

“네. 그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요?”

그러자 리월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못 믿으시는 거 아니죠?”

“풉!”

“어어? 진짜라니까요? 제가 그날 이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먹고 진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니까요?”

리월에 말에 의하면 리에베르크의 자랑은 벌써 마흔두 개쯤 되었다.

리월은 그중 하나인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두고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의 아이스크림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소화에 탁월하다는 이야기였다.

“알겠어요. 믿어요.”

“하! 안 되겠네. 얼른 가요.”

리월이 손을 잡아끌자 파멜라는 못 이기는 척 그를 따라나섰다.

‘다행이다.’

리월을 따라 이곳으로 온 것이 잠시나마 후회가 되기도 했었다.

그를 믿은 게 정말 잘한 일일까. 그냥 혼자 남아있다가 언젠가 폴라를 찾아 나서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오늘을 겪으니 그 걱정들은 모두 사라진 지 오래였고, 이렇게 즐거워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새로운 걱정이 피어났다.

“짠!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대령이요.”

리월의 장난스러운 몸짓에 파멜라가 풉 하고 웃었다.

“어서 드셔보세요. 그리고 우리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발은 멈추지 마시고요. 첫 번째가 뭐였더라. 호두파이였죠?”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리월의 말에 파멜라가 방긋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어머나.”

“맞죠? 맞죠?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죠?”

“세상에.”

이번에도 리월의 말이 모두 맞았다.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쑥 내려가죠? 조금 전까지 배가 불렀던 게 맞나 싶죠?”

눈을 크게 뜬 파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봐요. 제가 그랬잖아요!”

“맞네요. 진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하하! 이제 큰일 났네요.”

진짜 다시 시작이라도 하려는 걸까. 리월의 발이 빨라졌다.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

“어머나, 세상에. 누가 다쳤나 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에그…… 쯧쯔. 지붕에서 떨어졌나 보구먼.”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곳엔 팔이 기이하게 비틀리고 말뚝에 배가 꿰뚫린 남자가 누워있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저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정신을 잃은 아비의 곁에서 소리치는 작은 아이.

“제발 도와주세요!!!”

아이의 갈라진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저 정도 상처면 가망이 없겠어.”

“에휴. 가여워라. 몇 년 전에 제 어미도 잃었는데 이젠 아비까지 잃게 생겼구먼.”

“그러게나 말이야. 점쟁이 말이 맞나보네. 저것이 제 부모를 잡아먹는다고 하더니만.”

사람들의 말을 멍하니 듣던 파멜라가 아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가요.”

리월이 파멜라의 손을 낚아챘다.

“안 되는 거 알잖아요. 가요.”

“…….”

리월은 알고 있었다. 파멜라의 능력이라면 저 사내 역시 살릴 수 있을 거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리월은 안 된다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가자구요. 내가 약속했잖아요. 지켜주겠다고.”

“…….”

리월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리월의 말이 맞아. 하지만…….’

파멜라의 눈이 죽어가는 사내에게로 향했다. 아직 미약하지만 숨은 붙어있었다.

“가자구요!”

리월이 소리쳤다.

“미안해요.”

사실 리월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정말 지나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파멜라. 안 돼요. 제발 가요 우리.”

하지만 리월이 안 된다며 제 손을 낚아챘을 때 생각했다.

‘나는 이 사람을 끝까지 시험하고 싶었던 거구나.’

모든 것이 확실해진 지금. 파멜라의 마음은 잔잔했고, 냉정했다.

“미안해요. 리월.”

슬프게 웃은 파멜라가 리월의 손을 뿌리치고 사내에게로 달려갔다.

“파멜라!!!”

리월의 목소리를 뒤로한 파멜라의 손이 사내에게 닿자, 새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파멜라…….”

리월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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