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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49화 (149/225)
  • 149화. 믿음이란.

    그 뒤로도 투르캄은 몇 번이나 눈물을 삼키고 또 훔쳐냈다.

    “친구. 내 결정이 맞는 거겠지?”

    “…….”

    투르캄의 질문에 루카스는 잠시 침묵했다.

    “혹시 잘못되었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게 만들어야겠지.”

    고르고 또 골라낸 말이었다. 혹여 그의 결정이 잘못되었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드래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에 화답하는 방법이었다.

    “크하하! 누가 보면 자네가 드래곤이라도 되는 줄 알겠구먼. 그래도 고마워.”

    “아닐세.”

    “아. 줄 게 있어.”

    자리에서 일어난 투르캄은 얼마 뒤 작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나 투르캄의 역작이여. 자네를 위해 몇 날 며칠을 두드리고 또 두드려 만든 거고만!”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루카스는 벌써 기대가 되었다.

    “자. 열어봐!”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탁 소리 나게 상자를 내려뒀다.

    “얼른!”

    상자를 향하는 루카스의 손이 느긋하게 움직이자, 그것조차 참지 못하겠는지 그를 재촉했다.

    “하하. 알겠네.”

    투르캄의 성화에 루카스가 웃으며 상자를 열었다.

    “어뗘? 대단하지?”

    상자에 든 것은 작은 반지였다.

    “별거 없어 보여도 엄청난 거여. 가운데 보석 보이지? 그게 바로 아스탈의 눈물이라는 건디 어렵게 구한 거여.”

    “전쟁의 신 아스탈?”

    “그럼 뭐 옆집 바둑이 아스탈이것어?”

    투르캄은 루카스의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크흠.”

    그에 루카스가 작게 헛기침했다.

    ‘아스탈의 눈물이라.’

    전쟁의 신 아스탈. 그에 관한 유물은 수가 꽤 많은 편에 속했다.

    ‘전쟁이 날 때마다 뿌려댔으니.’

    그렇다 해서 효과가 미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보석은 루카스 역시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려. 그게 바로 아스탈의 눈물이여. 효과가 엄청나.”

    “흠…….”

    반지를 집어 든 루카스가 잠시 반지의 기운을 읽었다.

    “항마인가?”

    “허? 어떻게 알았디야? 그것도 흑마법과 악마종에 특화된 거라고 보믄 돼. 앞으로 싸워야할 상대가 뻔히 정해져 있잖여? 마족들에게 맞서기 좋은 거다 그거여.”

    “오호라.”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족들은 악마종과의 계약으로 공격 시너지를 높였다. 그렇다 보니 마법의 속성이 자연히 악마나 흑마법 쪽으로 기울었는데 그에 특화된 아티팩트라니!

    “이름하여 악마의 포식자! 게다가 성 속성이라 악마 종이나 마족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거여!”

    “허?”

    게다가 성속성까지. 엄청났다.

    “정말 이걸 내게 줘도 괜찮겠는가?”

    “아잇! 당연하지. 내가 자네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느라 하루 밤을 꼬박 샜다고! 드래곤의 계약자이니 당연히 마법엔 통달했을 거고 그러다 보니 줄 것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거여.”

    투르캄이 열변을 토했다.

    “그러던 와중에 아스탈의 눈물이 딱 생각 난 거지. 어차피 세상에 악마종을 부릴 마족이 없으니 아스탈의 눈물은 있으나 마나 한 거였거든. 그런데 이젠 아니잖여?”

    “고맙네.”

    “크하하! 고맙긴. 그럴 일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진짜 전쟁이 일어난다면 자네가 가장 큰일 아니것어? 드래곤과 마족들 틈바구니에서 맞서 싸워야 하니께.”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가 반지를 조심히 들어 손에 끼웠다.

    “상성을 높이는 보석을 같이 썼구먼. 그리고 드워프 장인의 숨결을 한가득 넣었다고. 내 역작이여! 역작!”

    그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정말이지 이건 역작이었다.

    “어지간한 성유물은 발끝에도 못 따라오겠군.”

    “크하하! 당연한 소릴 하고 있네. 나여 나! 투르캄 우르두르.”

    반지를 살피는 루카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대단한 걸 얻었군.’

    이것이 바로 모든 종족이 드워프를 탐내는 이유였다.

    엄청난 제작 능력. 그들은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언제나 두 배, 세 배의 효율을 내는 아티팩트를 만들어 냈다.

    “아.”

    그때 루카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세이렌을 만나본 적 있는가?”

    기에스티오의 창고에 있던 엄청난 숫자의 아티팩트와 재료들. 그것들이 만약 투르캄을 만나 새롭게 탄생한다면?

    “에? 세이렌? 그 바다에 사는 것들?”

    “그래.”

    “우리가 갸들을 언제 만났것어? 뭐 그쯤에 사는 종족이다~ 하고 아는 거지. 근데 왜?”

    투르캄의 말에 루카스가 씨익 웃었다.

    “바다에 가라앉은 수많은 보물들이 다 거기에 있더군.”

    “……!?”

    투르캄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것들을 자네 손으로 재탄생 시킨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

    제작 장인의 순수한 열망이 타올랐다.

    ***

    루카스와 드래곤들은 곧 있을 전쟁에 대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아카데미의 방학도 찾아왔다.

    “끄아! 방학이다!”

    폴라가 기지개를 켜며 팔짝 뛰자, 그걸 본 넬라가 풋 하고 웃었다.

    “그렇게 좋아?”

    “응! 나는 수업 진짜 싫어. 매주 보는 테스트들도 너무 싫고.”

    “그래도 좋은 성적을 내지 않는가. 대단하다. 폴라.”

    스키르가 칭찬했다.

    “이번에도 같이 시타타로 갈 거지?”

    “아. 나는 며칠 뒤에 따로 가야 할 것 같다.”

    모두 함께 시타타에서 방학을 보내는 것은 굳어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스키르는 어쩐 일인지 며칠 뒤에 따로 오겠다고 한다.

    “왜? 무슨 일 있어?”

    “음…….”

    스키르가 머뭇거리자 폴라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냐. 말하기 힘들면 말하지 마. 그래서 언제 올 건데?”

    “그건…….”

    다시 머뭇거리는 스키르.

    “알겠어. 올 때 수정구로 먼저 이야기해 줘.”

    “그럼 먼저 가 있을게!”

    “조심해서 와.”

    넬라와 폴라가 마차에 올라서며 인사했다.

    “알겠다.”

    “아님 루키한테 같이 가자고 해! 어차피 수정구 있잖아.”

    “아.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요즘 루카스는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 갈게!”

    “갈게.”

    넬라와 폴라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

    오닐 공작가는 요즘 비상이었다.

    아니, 갑작스러운 황제의 서거에 모든 중앙 귀족가가 비상이었지만, 공작가엔 다른 문제가 또 겹쳤다.

    “오. 스키르. 왔느냐?”

    “예. 아버지.”

    응접실에 들어서자 시러스 공작이 초조한 듯 서성였다.

    “형님은…….”

    “아직이다.”

    황제의 서거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큰아들마저 실종되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때문에 스키르는 시타타로 가지 못하고 공작저로 돌아왔다.

    몇 년 전 스키르의 형인 스턴은 흑마법에 손을 댄 뒤로 정신이 반쯤 나가고 말았다.

    아니, 이제야 반쯤 돌아온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제 정신이 아니었다.

    때문에 오닐가는 그런 장남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스턴은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단계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된 지 겨우 몇 달이었다. 그런 스턴이 실종되었다.

    “너는 너무 심려치 말거라. 지금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형님인데요.”

    스키르의 말에 시러스 공작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리 못났어도 네 형님이다. 알지?”

    “예. 아버지.”

    시러스의 말대로 아무리 못났어도 제 형이었으니 답답하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형님께서 돌아오셔야 할 텐데…….’

    사실 스턴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스키르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루카스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루카스라면 스턴을 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집안의 치부다.’

    아무리 루카스게 제 친한 친구라고 한들 집안의 치부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지만 이것이 제가 여태 배워왔고 살아왔던 귀족의 삶이었다.

    “스턴… 어디 있는 게냐.”

    시러스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

    “정말이요?”

    “네.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요. 저 정말 무서웠습니다.”

    작은 모닥불 앞에 앉은 파멜라와 리월은 대화에 한창이었다.

    “아,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렸던 그 파르페 기억하시죠?”

    “네. 어찌나 표현을 잘하시던지. 그날 밤 꿈에 나오기까지 했다니까요.”

    리월은 처음 했던 말처럼 파멜라의 안전을 위해 꾸준히 힘썼고, 그 덕에 파멜라는 무인도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언젠가 꼭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그 집에 새로운 메뉴가 나왔는데 그것도 진짜 맛있어요.”

    며칠에 한 번 찾아오는 리월이 아니었다면, 파멜라는 이 생활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요?”

    “네!”

    리월은 말재주가 참 대단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생생했으며, 그가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면 마치 직접 겪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리월 씨는 정말 대단하세요. 어쩜 그렇게 말재주가 좋으세요?”

    언제나 한결같은 리월의 행동에 파멜라 역시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었고, 둘은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어휴. 말재주가 좋긴요. 사실 저 엄청 낯도 가리고 쑥맥이에요.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몇 번이나 고민한다니까요.”

    “정말요?”

    리월은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괜찮은 사람이었다.

    “네. 진짜요. 저도 자주 오고 싶은데 아시다시피 일을 하고 있어서…….”

    “아…… 괜찮아요.”

    사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뿐 파멜라는 외로웠다.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의 삶은 정말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언젠가 리월이 온다는 사실 때문에 버티고 또 버텨냈다. 파멜라는 사실 처음부터 리월이 없었더라면 이 외로움이 덜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저…….”

    리월이 머뭇거렸다.

    “네?”

    “혹시 저와 함께 나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망설이던 리월이 입을 열었다.

    “아…… 아시잖아요. 저는…….”

    파멜라가 애처롭게 웃자, 리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잘 압니다. 사실 그쪽 이름도 아직 모르는 걸요. 아, 알려달라는 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그랬다. 파멜라는 아직 리월에게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고, 고맙게도 리월 역시 묻지 않았다. 파멜라는 리월의 그런 점이 좋았고 또 고마웠다.

    “제가 앞으로 못 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어서요.”

    그의 말에 파멜라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못 올지도 모른다니?’

    파멜라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이제 항구 쪽이 아닌 안쪽으로 거취를 옮기게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항구까지 나오는데 하루가 꼬박 걸려서 이렇게 자주 오기엔…….”

    “……그럼 가끔은, 가끔은 오실 수 있으신가요?”

    영영 혼자 남겨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미 염치 따위는 멀리 던져버린 파멜라가 다급히 물었다.

    “……사실 약속은 못 드리겠어요.”

    “…….”

    리월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부담스럽고 싫으실 거 압니다.”

    리월이 고개를 들어 파멜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하지만 앞으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늘 용기를 내서 말하는 거예요.”

    리월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이름도 나이도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저 당신이 좋습니다.”

    “그게… 무슨…….”

    “저와 함께 가시면 제가 평생 당신을 지키고 숨길게요. 당신이 위험하지 않게 제가 평생… 평생…….”

    리월은 이제 손까지 떨고 있었다.

    “……정말이신가요?”

    리월의 진심에 결국 파멜라의 마음이 흔들렸다. 아니, 사실 영영 이 작은 섬에 혼자 남아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예?”

    의외의 대답이었던 건지 리월의 눈이 커다래졌다.

    “정말 저를 지켜주실 건가요?”

    꾸밈없는 리월의 반응에 파멜라의 마음이 확실히 기울었다.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겠지. 저 사람이라면 나를 지켜줄지도 몰라.’

    그러자 리월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물론이에요!”

    언뜻 바보 같아 보이는 리월의 행동에 파멜라는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럼 당신과 함께 갈래요.”

    그에 리월이 파멜라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정말이시죠?”

    “네. 저는 파멜라예요. 파멜라 펠레브.”

    믿음의 표시로 파멜라가 제 이름을 알려주자, 리월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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