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나들이(1)
파멜라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폴라는 제 언니가 저녁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곧장 아만을 찾았다.
“아만 학장님. 파멜라 언니가 사라졌어요.”
불안한 눈을 한 폴라가 울먹였다.
“폴라.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찾아보마.”
그에 아만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결계도 저주도 발동되지 않았는데 뭐. 길이 자꾸 엇갈렸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만이 파멜라를 찾으려 추적 마법을 펼쳤다.
“……?”
파멜라에게 걸어뒀던 표식이 사라졌다. 그것도 너무 말끔하게 말이다.
‘내가 눈치도 못 챘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주며 표식이 모두 사라졌는데 눈치도 못 챘다니?
“왜 그러세요?”
아만이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자, 폴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니다. 폴라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겠니? 언니를 만나거든 가장 먼저 알려줄게.”
“……정말이시죠?”
“그럼. 물론이지.”
그에 폴라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돌아섰다.
“꼭 찾아주셔야 해요.”
방을 나서기 전 폴라가 아만을 향해 말했다.
“그럼. 물론이지.”
그에 아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
“그게 또 무슨 말인가.”
아만을 만난 루카스는 짜증이 울컥 솟았다.
파멜라가 사라졌단다. 그에 루카스는 ‘그러기에 내가 단속을 단단히 하라 이르지 않았느냐’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아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제 생각엔 마왕이 직접 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네 마법을 누가 흔적도 없이 지운다는 말이냐.”
하지만 이미 사라진 사람을 두고 아만에게 짜증을 부려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어디로 갔느냐.”
“모릅니다.”
간결한 대답이었다.
“그 아이가 스크롤을 써서 어딘가로 갔을 수도, 마왕이 직접 데려갔을 수도 있습니다. 표식까지 모두 사라졌으니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실 그깟 인간 여자쯤이야 사라지든 죽든 제 알 바는 아니었다.
‘마음에 안 들기도 했고.’
하지만 폴라가 문제였다. 제 언니를 찾았다고 신이 나서 방방 뛴 게 며칠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제 언니를 다시 잃었다고 생각하면 폴라의 마음에 상처가 클 것이다.
‘아직 아이다.’
폴라는 엄연한 성인이었지만, 루카스의 눈에는 아직도 열댓 살 난 꼬마 같았다. 게다가 제 언니를 만나서는 더욱 어린아이처럼 굴었는데…….
“그래서 폴라에겐 뭐라고 전할 건가.”
“로드께 여쭐 생각이었습니다만.”
아만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루카스의 눈을 피했다.
“하아…….”
루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과연 이 사실을 폴라에게 당장 숨겨야 좋을지 말해야 좋을지 루카스 역시 감이 오질 않았다.
“너는 그냥 있거라. 소식은 내가 전할 테니.”
“예.”
루카스 역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
루카스는 긴 생각 끝에, 이 모든 사실을 폴라에게 전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믿지 않았던 폴라는 제 언니가 머물렀던 사서에 방에 들어서자마자 깊은숨을 내쉬고는 남은 말 모두를 담담하게 들었다.
“…….”
모든 소식을 들은 폴라는 잠시 멍한 표정이 되어 루카스를 바라봤다.
“그래. 언니가 떠났네.”
“미안하다.”
폴라는 루카스의 사과에 정신이 돌아왔는지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왜 미안해? 바보냐?”
“네 언니를 사라지게 둬서.”
“됐어. 나 언니 필요 없어. 아니, 나를 두 번이나 두고 떠나는 언니는 이제 필요 없다는 게 맞겠다.”
그런 폴라의 말에 루카스는 더욱 속이 상했다.
차라리 안 괜찮다며 눈물 바람이라도 했더라면 나았을 텐데.
“진짜 괜찮아. 궁금했던 건 모두 다 해결됐으니까. 나는 사실 여태 언니가 살아있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었어.”
“…….”
“그런데 살아있는 건 확인했잖아. 언니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몰라.”
울지 않으려는 듯 폴라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괜찮아. 언니는 잘살겠지. 나도 그럴 거야. 보란 듯이 잘살아 보일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폴라가 씩씩하게 돌아섰다.
“고마워. 그러니까 너도 내 걱정은 하지 마.”
“……폴라.”
안쓰러웠다. 큰 상처를 입은 폴라가 담담하려 애쓰는 저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간다!”
돌아선 폴라가 그대로 뛰어갔다.
***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이 지나는 때에도 마족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이번엔 규모가 어느 정도지?”
“한 번에 30명 정도까지는 무리 없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잿빛 피부를 가진 마족들은 앞에 펼쳐진 시커먼 게이트를 보며 만족스레 웃었다.
“30명이라……!”
“예. 지금 동시에 열 수 있는 게이트 수가 총 백 개 정도이니, 하루에 삼천 명까지 이동 가능합니다.”
“크하하하! 왕께서 기뻐하시겠구먼! 자네들이 고생이 많았네! 정말 고생이 많았어!”
“아닙니다.”
간부로 보이는 사내가 연구원들로 보이는 이들의 어깨를 번갈아 가며 두드렸다.
“머지않았구나. 다시 지상으로 갈 날이…….”
사내가 아련한 눈으로 검은 하늘을 바라봤다.
지상에서 쫓겨나 마계로 온 것이 벌써 천 년 전이었다.
마왕의 간청으로 새로운 세계를 부여받았지만, 이곳은 원래 살던 곳과는 전혀 달랐다.
태양 대신에 두 개의 달이 떠있었으며, 햇살이 없는 곳엔 빛이 없었다.
희미한 달빛에 의존해 살아가기를 몇 년.
피폐해진 마족들은 살육을 일삼고 범죄를 저질렀다.
마계는 혼돈에 빠졌으며, 그를 보던 마왕은 마법으로 태양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내 새로운 빛을 내렸다.
처음엔 모두 기뻐하며 왕을 숭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짜는 진짜를 더욱 갈망하게 만들었다.
“이제 진짜 빛이 있는 곳으로 나갈 때가 되었어.”
“이젠 우리가 아닌 그들이 어둠을 겪을 때입니다.”
“그들의 태양을 떨어트려야지.”
“맞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진짜 태양을 가지려 하고 있었다.
“지상의 태양인 드래곤들을 떨어트리면, 우리에게 다시 광명이 찾아들 것이다. 우리의 빛을 되찾을 것이야.”
그들의 땅을 빼앗은 자들을 떨어트려 태양을 되찾고, 땅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
“폴라는 괜찮은가?”
스키르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괜찮은 척하는 거겠지.”
폴라는 전과 같이 행동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으니…….’
항상 반짝이던 폴라의 눈엔 빛이 사그라졌다. 언니가 사라지기 전보다 더 밝은 표정을 하고 웃고 떠들었지만,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녀는 제 어두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밝은 모습으로 꽁꽁 싸매 자신을 감췄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 버려진 아픔과 언니를 잃고 결국 혼자 남겨진 아픔 따위를 남들에게 내비쳐봤자, 제게 돌아오는 것은 타인의 꾸며진 동정심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안타까운 눈을 하고 저를 보며 혀를 차던 사람들.
애써 웃으며 모두 잘될 거라는 말을 건네던 사람들.
폴라는 그런 그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제 아픔을 눈곱만치도 모르는 그들이 너무나도 잘 안다는 듯 행동하는 것이 싫었다.
때문에 감췄다. 밝은 모습을 보여 그런 아픔 따위는 제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답지 않게 건방을 떠는 고아를 보는 눈을 했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가여운 것…….’
루카스는 그런 폴라를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더욱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게 무슨 뜻인지도 말이다.
“루카스. 폴라의 기분이 나아질 만한 것이 없겠는가?”
스키르가 물어왔다.
“흠…….”
기분이 나아질 만한 것이라. 루카스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맞아. 사실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긴 하는데…… 나는 조금 걱정이 돼.”
폴라는 이제 완연한 성인이었지만 인간은 모두 똑같았다. 아니, 비단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같았다.
나쁜 일이 있을 때엔 기분을 전환할 만한 무언가가 확실히 필요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할까?”
“입맛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이던데…….”
“그러니까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가?”
스키르와 넬라는 서로 여러 가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때 루카스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혹시 바다 구경 가지 않을래?”
“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닷속.”
루카스가 씨익 웃자, 넬라와 스키르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래. 내일 주말이니까 구경 가자.”
***
아이들은 약속한 시각에 맞춰 나와있었다.
“루키! 넬라가 바닷속을 보러 가자는데? 이게 진짜야?”
루카스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자, 폴라가 신나게 손을 흔들며 물어왔다.
“그래.”
지난밤 루카스는 아이들을 데려가기 전에 먼저 기에스티오를 찾아가 허락을 구했다. 인간 몇이 이곳에 놀러와도 괜찮겠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기에스티오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팔짝 뛰었다.
‘안 된다고 팔짝 뛰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을 왜 묻냐며 팔짝 뛰었다. 당연히 된다며 루카스가 먼저 말하기도 전에 아이들 수를 묻더니, 목걸이까지 수에 맞춰 챙겨 넣어주었다.
그러고는 어찌나 기뻐하던지 루카스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자, 이거 받아.”
루카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하나씩 꺼내 아이들에게 건넸다.
“헉! 그거 혹시 아공간 주머니인가?”
“아공간이라고?”
“오빠한테 그런 게 있었어?”
아이들은 작은 주머니에서 튀어나오는 엄청난 크기의 목걸이를 보며 소리쳤다.
“응. 어쩌다가 얻었어.”
“이런 물건을 어디서 얻었다는 말인가! 이것은 정말 비싼 물건이 아닌가?”
“와…… 키르 네가 놀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비싼 물건이라는 말이야?”
아공간 주머니는 물약 몇 병만 들어가는 크기가 되어도 높은 값을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물건의 무게도 크기도 모두 줄이는 아티팩트니 당연했다.
그런데 저런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목걸이가 네 개씩이나 나오는 주머니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자자. 주머니는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다들 이거 목에 하나씩 걸어.”
“윽! 이거 엄청 무겁지 않은가. 이러다가 목 떨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엄살떨지 마. 무겁긴 해도 목이 똑 떨어질 만큼은 절대 아니거든?”
폴라가 스키르를 타박했다.
“넬라도 목에 걸어.”
“이거 정말 크다…….”
“어쩔 수 없어. 바닷속은 위험한 곳이거든. 해저 몬스터들도 위험하지만 우린 아주 깊은 곳으로 가는 거야.”
그러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거 괜찮은 거 맞는가?”
“야! 당연히 괜찮겠지. 루키가 가자고 하는 거잖아.”
놀란 기색을 얼른 감춘 폴라가 다시 한번 스키르를 나무랐다.
“다들 목에 걸었지? 그거 없으면 큰일 나니까 목에 끝까지 잘 걸고 있어야 해.”
그러자 아이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꼭 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팔 잡아.”
아이들의 손이 모두 루카스의 팔 위에 얹어졌다.
-파앗!
그러자 아이들의 눈앞에 엄청난 세상이 펼쳐졌다.
“우와-!”
폴라는 당장에 입을 벌려 감탄사를 뱉어냈고.
“읍읍! 읍!”
스키르는 제 코와 입을 틀어막으며 버둥거렸으며.
“…….”
넬라는 제 옆에 있는 나이아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가지각색이군.’
루카스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