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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43화 (143/225)

143화. 미안해.

마왕이 떠난 뒤 남겨진 파멜라는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난 모든 날들을 후회했다.

“흐윽…… 내가, 내가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죽었더라면!”

제 가슴을 치며 통곡해도 이미 지나버린 일이었다.

‘당신에게 힘을 주겠습니다.’

제가 나직이 속삭이던 마왕의 끔찍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당신에게 걸려있던 모든 저주는 풀렸으니, 언제든 뜻을 펼치기만 하면 됩니다.’

나직이 웃던 그의 웃음소리가.

‘이제 당신은 세상을 구할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을 쓸지 쓰지 않을지는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끝으로 더 이상 저와 제 동생을 쫓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떠났다. 제게 건넸던 그 구슬이 담긴 상자마저 가지고 말이다.

“도대체 왜……!”

파멜라는 세상 모든 신들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왜 제게 이런 시련을 내리느냐고 언제쯤 자신은 행복해질 수 있겠느냐고 욕하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혹여 이런 제가 가여워 구원의 손길이라도 내려줄까 가만히 앉아 허공을 바라보아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폴라는 지켜야 해.”

박복한 제 삶에 폴라마저 휘말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폴라는 안전할 것이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내가 떠나야 폴라가 살 수 있어.”

자신이 폴라의 곁에 있는다면 언제든 이런 문제는 다시 생겨날 수 있었다. 그러니 떠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파멜라가 방 안에 있던 제 소지품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져온 것이 없으니, 챙길 것도 없었기에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끝이었다.

“…….”

파멜라의 눈이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오르골에 닿았다.

“폴라…….”

폴라가 준 선물이었다.

‘언니! 방에 혼자 있을 때 혹시 무서우면 이거 틀어봐.’

오르골을 건네던 폴라의 표정과 말투가 생생했다.

한참을 서서 오르골을 바라보던 파멜라가 결국 그것을 들어 제 품에 소중히 넣었다.

“미안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거친 손길로 닦아낸 파멜라가 방을 나섰다.

***

아란트 황제 궁.

“그 아이에게 힘을 주신 것입니까.”

제 부하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었지.”

그는 아란트의 황제 그래드 루클라이어의 몸을 차지한 마왕 야스탄 울파였다.

“그렇습니까.”

“결국 그 힘을 쓰게 될 것이다.”

그가 책상 위에 놓인 깃펜을 들어 빙그르르 돌렸다.

“그리고 힘에 잡아 먹히겠지.”

그가 싱긋 웃었다.

“마무리는 언제쯤 하실 예정이십니까.”

“아. 하긴 이 몸도 이제 슬슬 지겹구나. 게다가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야.”

“예. 왕의 위용을 만천하에 떨치셔야지요.”

그의 말에 야스탄이 싱긋 웃었다.

“그래야지. 타라스님의 가호가 함께인데 무엇이 두렵겠느냐.”

“맞습니다.”

“그보다 이민족들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그 부분은 마티사크가 맡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보고받은 바로는 대부분의 이종족들이 힘을 보탤 것 같다고 합니다.”

야스탄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들 역시 움직이고 있겠구나.”

“예. 그렇다고 합니다.”

“크하하하!”

야스탄이 고개를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우습구나. 아주 우스워.”

야스탄은 지금 드래곤들의 행보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드래곤 외에 모든 종족을 하찮은 생물 취급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그토록 멸시하던 마족의 선동질에 휘말려 전전긍긍하는 꼴이라니!

이보다 통쾌하고 웃긴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보아라. 그 콧대 높은 드래곤이 우리의 얕은수에 놀아나는 꼴을 말이다.”

이종족들을 설득하는 일. 그것은 마족들이 생각해 낸 아주 얕고 같잖은 수였다.

지상의 왕으로 살며 언제나 군림하던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제 편이어야만 했던 이종족들의 차가운 태도는 그들의 멘탈에 흠집을 내기에 충분했다.

“대단한 수였습니다.”

야스탄은 그런 그들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내가 말했지 않았느냐. 저들은 너무 고고하고 잘나신 존재라 미움받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예.”

우스웠다. 그 고고한 자들이 제 손 위에서 놀아나는 것이 말이다.

“일을 미룰 필요가 없겠구나. 조만간 이 몸을 버리고 내가 직접 와야겠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야스탄이 만족스레 웃었다.

***

아카데미를 빠져나온 파멜라는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도 그 사내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제게 걸려있던 저주는 모두 풀려있었다.

‘괜찮아.’

수없이 되뇌었다. 괜찮다며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했다.

‘시간이 흐르면 폴라도 이해해 줄 거야. 그때 다시 폴라를 찾으면 돼.’

제 동생을 지키기 위한 길은 이것뿐이라 생각했다. 저로 인해 폴라가 혹여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에스카르 산맥 초입에 들어선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시야 끄트머리에 걸린 아카데미 건물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 참아낸 파멜라가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산길을 따라 걷던 때였다.

“끄으으…….”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음에 파멜라가 주위를 살폈다.

‘잘못 들었나.’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때.

“끄윽… 으윽…….”

다시 들려오는 신음.

그에 폴라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누가 다친 건가?’

하지만 이곳은 산맥 초입이었다. 몬스터가 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출몰할 확률이 현저히 낮은 그런 곳인데…….

‘혹시 몬스터에게 당한 건가?’

그녀는 의심을 거두지 않으면서도 걸음을 재촉했다.

“끄으… 으으…….”

그러자 커다란 나무 뒤에 기대어 앉아 피를 흘리는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나! 괜찮으신가요?”

사내는 복부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으윽…… 도, 도와주세요.”

파멜라의 목소리에 사내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도움을 요청했다.

“어, 어쩜 좋아요. 어쩌다가, 어쩌다가…….”

당황한 파멜라가 지혈할만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크헉! 쿨럭!”

사내의 입에서 피 한 움큼이 토해지자, 파멜라는 결국 제 로브 자락을 찢어 사내의 환부를 누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힘을 내세요. 조금만, 조금만…….”

그녀는 사내의 상처를 있는 힘껏 누르면서도 갖은 생각에 시달렸다.

‘코앞이 황성인데…….’

하지만 떠나온 파멜라가 사내와 함께 돌아갈 수는 없었다.

“끄윽…….”

“제발 조금만 힘을 내보세요!”

사내의 눈에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파멜라는 더욱 간절히 외쳤다. 제발 힘을 내라고.

-파스스스…….

그러자 파멜라의 손끝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안 돼!!!”

그 빛이 무엇인지 아는 파멜라가 얼른 제 손을 떼며 사내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사내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으며, 더 이상 피는 흐르지 않았다.

초점이 사라지던 사내의 눈동자가 차츰 돌아오기 시작하자, 파멜라는 떨리는 제 손과 사내를 번갈아 바라봤다.

‘결국… 결국……!’

이 더러운 힘을 썼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당장이라도 제 손을 뎅겅 잘라내고 싶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이젠 완전히 정신이 돌아온 듯한 사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 복부를 더듬거렸다.

“어! 저, 저기요!”

그에 파멜라는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

얼마나 달렸을까. 길이 아닌 거친 숲을 헤치며 달린 탓에 파멜라의 꼴은 엉망이었다.

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옷이 차마 막아주지 못한 곳에는 자잘한 생채기가 가득했다.

“헉… 헉…….”

거친 숨을 토해낸 파멜라가 제 가슴께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손에 말라버린 핏자국을 본 파멜라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숲에 구슬픈 파멜라의 울음소리가 퍼졌다.

‘숨어야 해.’

제게 주어진 이 더러운 힘을 쓰지 않으려면 숨고 또 숨어야 했다.

‘폴라를 두고 죽을 수는 없어.’

당장 제 목숨과 함께 악의 굴레도 끊어내고 싶었지만, 폴라를 두고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니 풀뿌리를 캐 먹으며 연명하더라도 꼭 살아야 해.’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파멜라가 풀려버린 다리를 힘겹게 일으켰다.

그리고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숲에 밤이 찾아와 더는 풀벌레 소리가 아닌 께름칙한 몬스터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래도 그녀는 걸었다.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어 제 한 몸 숨길 곳을 찾았다.

“…….”

드디어 신이 제게 손을 내민 것일까.

파멜라의 눈앞에 잡초가 무성히 자란 작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근처에 난 길도 없었으며, 우거진 수풀과 나무 사이에 숨겨진 작은 오두막은 오랜 시간 방치된 것인지 낡고 허름했다.

하지만 파멜라는 이곳이면 제 몸을 숨길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사람이 찾아오면 다시 숨으면 돼.’

이미 날은 밝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조심히 주변을 살핀 파멜라가 수풀을 헤치고 오두막 문을 열었다.

-끼익.

바닥에 있는 먼지와 함께 문이 열리자 낡고 쿰쿰한 먼지 냄새가 끼쳐왔다.

“감사합니다…….”

이름 모를 신께 감사를 드렸다.

“정말 감사해요…….”

파멜라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

점심시간이 되자 폴라는 가장 먼저 제 언니가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꾸준한 노력으로 넬라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 것에도 성공했으니 더욱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때문에 폴라의 발걸음이 여느 때보다 가벼웠다.

“언니이!”

도서관의 문을 활짝 연 폴라가 제 손에 들린 샌드위치 봉투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언니이~!”

폴라는 폴짝폴짝 뛰며 제 언니가 있을 곳을 향해 열심히 소리쳤다.

“응? 화장실 갔나?”

대답이 없자 폴라는 도서관 구석구석을 다니며 파멜라를 찾기 시작했다.

“에이! 어디 간 거야. 샌드위치 다 식게.”

폴라는 일부러 샌드위치를 따뜻하게 구워 왔다. 지난번에 파멜라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였다.

‘나는 구운 샌드위치 안에 녹은 치즈가 좋아.’

그 말에 폴라는 언니에게 이 대단한 샌드위치를 꼭 맛보이겠다고 생각했다.

폴라가 제 품에 샌드위치 봉투를 넣어 끌어안았다.

“파멜라 언니이~”

혹시 못 들었을까 싶어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언니를 불렀다.

“아잇! 이건 식으면 맛없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제 품에 든 샌드위치가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지자, 폴라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아만 교수님 심부름이라도 갔나?”

그때 폴라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다.

“아니지. 그럼 언니가 여기에 항상 쪽지를 둔다고 했는데.”

파멜라는 혹시 제가 자리를 비울 때를 대비해 미리 폴라와 상의까지 했었다.

자리를 비우게 되면 가장 커다란 테이블 옆에 쪽지를 붙여두겠다고 말이다.

“헷갈렸나?”

혹시 언니가 테이블을 헷갈렸을까 싶어 폴라는 도서관 내에 있는 모든 테이블 옆을 샅샅이 살폈다.

“까먹었나.”

하지만 어디에도 쪽지가 없자, 다시 풀죽은 표정이 되어 문가를 바라봤다.

“에휴! 저녁에 다시 사다 줘야겠네.”

이미 샌드위치는 차게 식었고 점심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제 품에서 봉투를 꺼낸 폴라가 식은 샌드위치를 꺼내 한입 크게 베어 물며 도서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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