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40화 (140/225)

140화. 성녀.

아만과 마주 앉은 루카스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고작 그거란 말이냐?”

“예.”

하셀과 장로들의 열띤 회의 결과를 막 들은 참이었다.

“어이가 없군. 전부 다 머저리들인가?”

“그런데 뭐 좋은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루카스의 신랄한 비난에 아만이 어깨를 으쓱였다.

“좋은 수가 없어서 그깟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냐? 어이가 없군.”

“그럼 로드께서는 좋은 생각이 따로 있으십니까?”

아만이 기대에 찬 눈으로 루카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루카스의 눈이 옆으로 도르륵 굴러갔다.

‘좋은 수……?’

하셀과 장로들이 이민족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을 시도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설득에 실패할 것이라는 것도 알았지.’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은 신뢰를 잃은 왕이나 다름 없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그들은 드래곤의 그늘 아래 살기만 했을 뿐, 어느것 하나 도움받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골드 드래곤이며 앨라스의 아버지인 아프레가 새로운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견 자체가 너무나도 터무니가 없고 어이가 없었다.

“로드도 없으시죠?”

“기다려 봐라. 아무리 그래도 아프레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 자체가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으니 말이다. 아니, 도대체…….”

“저도 그렇긴 합니다. 설득 하고자 하는 종족으로 유희를 한다니…….”

그랬다. 그들은 각자 종족을 나누어 그 종족이 되어 유희를 떠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같은 종족이면 자신들의 말을 더 잘 들어주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 의견을 들은 레드 드래곤인 테네 헬베르트가 차라리 전부 몰살시키면 전력 자체가 없는 것이니 그 방법이 더 낫겠다고 항변은 했다고 한다.

루카스 역시 그 방법이 조금 더 나아 보일 만큼 아프레의 의견은 멍청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아프레님만 먼저 보낸다고 하셨으니 뭐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겠지. 아무래도 아프레는 나이가 꽤 있는 용이니 말이야. 그의 의견을 전부 묵살하기엔 지금 시기가 좋지도 않고 말이다.”

아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신전에 가서 모두 다함께 기도를 올리는 편이 낫겠다.”

“……어?”

장난처럼 던진 말에 아만의 눈이 동그래졌다.

“미친.”

“그거 정말 괜찮은 방법 아닙니까?”

“하…… 생각을 좀 해라 아마록. 그 신이 누구의 편에 선 줄 알고 가서 쪼르륵 모든 것을 다 말한다는 말이냐?”

“아.”

그에 아만이 작게 탄식했다.

“쯧.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셀 역시 그 방법을 찾는 중일 거고 말이다.”

“흠…….”

둘은 다시 침묵을 이어갔다. 좋은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멍청하지 않고… 제대로 된 방법이 뭐가 있을까.’

루카스가 인간으로 살며 친분을 쌓았던 종족들을 하나씩 생각하던 중이었다.

“차라리 내가 가야겠다.”

루카스가 무릎을 탁, 쳤다.

“예?”

“그래. 내가 가야겠어.”

루카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아카데미의 도서관.

그곳에서 파멜라는 누구보다 사서의 일을 열심히 하고있었다.

‘절대 누가 되지 말아야지.’

그녀는 매일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 책장 높은 곳까지 꼼꼼히 먼지를 쓸고 또 닦아냈다.

“콜록!”

가끔 책장 깊은 곳에 손을 잘못 넣으면 희뿌연 책먼지가 올라와 기침을 하는 일이 잦았지만, 그쯤은 괜찮았다.

“으음~”

콧노래까지 부르며 딛고 올라섰던 사다리를 정리하고 반납된 책과 아직 반납이 오지 않은 책들을 적어 정리했다.

“아, 이건… 저쪽인가?”

파멜라가 반납된 책을 들고 책장을 돌았다.

“사서님?”

그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파멜라는 얼른 몸을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네~ 잠시만요.”

혹여 학생이 기다릴까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아, 누가 이걸 좀 전해주라고 하던데요.”

그러고는 손에 든 상자 하나를 파멜라에게 내밀었다.

“저에게요?”

상자는 나무로 투박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네. 뭐 저는 전달 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얼결에 상자를 받아 든 파멜라가 꾸벅 인사를 하자, 학생은 문을 나서 떠나갔다.

“이게 뭐야.”

파멜라는 받아 든 상자를 열기 전에 한참을 살펴봤다.

“열어도 되는 건가…….”

의심스러운 물건이었지만, 파멜라는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의 잠금을 풀어냈다.

“이, 이건!”

상자 안에 든 물건을 본 파멜라는 하마터면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하아… 하아…….”

숨이 가빠왔다. 지난날의 가혹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파멜라가 떨리는 손으로 그 안에 같이 든 쪽지를 꺼내 펼치기 시작했다.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쪽지를 찬찬히 읽어 내려간 파멜라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흐윽…….”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상자를 적시고, 잇새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상자에 든 물건은 다름 아닌 부활교의 것이었다.

수백, 수만 개의 영혼을 모으고 또 모아 구슬에 응집시킨 구슬. 그들은 이것을 영혼의 구슬이라 불렀다.

그들은 이것이 세상을 구원할 물건이며,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며 그들이 행하는 모든 살육을 정당화했다.

“흐으윽…….”

쪽지에 쓰인 내용을 보는 파멜라는 이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얀테는 이제 없습니다. 부활교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탁을 무시하셔도 좋습니다만, 제가 많이 서운하겠지요. 제 서운한 마음이 당신의 소중한 동생분께 향하지 않길 바랍니다.]

너무나도 정중한 협박이었다.

부활교의 모든 면을 낱낱이 아는 파멜라는 쪽지를 보낸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았으며, 이를 거부하면 제 동생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추신. 아, 그리고 구슬은 상자에 잘 넣어두세요. 폭주를 막고 싶다면 말입니다. 그럼 자정에 찾아뵙죠.]

그가 올 것이다.

***

시곗바늘이 한 칸씩 움직일 때마다 파멜라의 불행 역시 한 칸씩 앞당겨오고 있었다.

‘내가 사라지면 괜찮을까.’

수없이 되뇌었다.

‘이곳을 허락 없이 빠져나간다면, 나는 죽는다고 했는데.’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열 한시가 되자 불안감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폴라에게 사실대로 말할까.’

하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제가 여태 행했던 모든 불온한 짓들을 제 동생이 알게 된다면?

‘폴라의 실망한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하지만…….’

결국 파멜라가 방에 들어가 펜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제 소중한 동생에게 남길 마지막 모든 말들을 빠짐없이 적기 시작했다.

“흐으윽…….”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몇 장이나 적어낸 글들은 솔직했고, 또 서러웠다.

-댕… 댕…….

자정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파멜라는 적은 편지들을 얼른 서랍에 욱여넣었다.

-똑똑똑.

자정을 울리는 종소리가 끝나자 마자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파멜라는 몸을 흠칫 떨었다.

“하아… 하아…….”

다시 가빠져 오는 숨에 가슴이 들썩였다.

“반갑습니다.”

문을 열자 칠흑 같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트린 사내가 자신을 마주했다.

“하아…….”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파멜라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으신가요?”

사내의 손이 어깨에 닿자 화들짝 놀란 파멜라가 몸을 떨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소, 손대지 마세요…….”

“놀랐다면 미안합니다. 그보다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사내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파멜라를 내려봤다.

“당신이 얀테에게 당한 모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로 알게 되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미리 막아주지 못한 제 불찰이에요.”

“거, 거짓말!!!”

파멜라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작은 방을 울렸다.

“저런… 당한 상처가 깊군요.”

파멜라는 저자의 뱀 같은 혀를 믿지 않았다. 사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 동생을 두고 협박하는 일도 없었어야지.

“조금 과격한 방법으로 당신을 붙잡아 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 진심은 그게 아니었답니다.”

사내가 싱긋 웃었다.

“……악마. 당신은 악마야.”

“하하. 저급한 악마종과 저를 나란히 하시네요.”

사내의 붉은 안광이 일순 번뜩였다.

“하지만.”

분노에 찬 파멜라의 눈동자가 사내를 올려봤다.

“괜찮습니다. 저는 당신께 제안을 하러 온 거니까요.”

문을 닫은 사내가 파멜라를 지나쳐 의자에 앉았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죠. 당신이 그것에 앞장서주면 좋겠습니다.”

“제발 저를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저는 그저 여기서 책장이나 닦으며 제 동생과 언젠가 같이 살날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제발요…….”

사내를 향해 몸을 돌린 파멜라가 바닥에 엎드려 간곡히 빌기 시작했다.

“이거 참… 속상하군요.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이에요. 파멜라.”

사내가 의자에 몸을 살짝 기댔다.

“죽은 얀테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부활교를 이끌었어요. 아, 물론 부활교도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지요.”

“……제발요.”

하지만 사내는 파멜라의 말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런 살육을 원한 것이 아니에요. 세상을 구할 힘을 얀테에게 주었지요. 아픈 자를 고치고 살릴 수 있는 그런 힘이요. 세상을 다시 일으킬 힘을 말입니다.”

사내의 손 끝에 검붉은색의 작은 구체 하나가 생겨났다.

“이것은 사람을 살릴 수도 고칠 수도 있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 힘을 그에게 나누어줬어요.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죽이고 해치는 데에 이 힘을 썼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구하고 싶었어요. 정말입니다.”

바닥에 엎드려 울고있는 파멜라의 귓전에 사내의 간곡한 목소리가 닿았다.

“파멜라. 저희는 이 힘을 당신께 주고 싶어요. 세상을 구할 힘을 말입니다.”

검붉은색의 빛이 엎드린 파멜라의 손등 위로 내려 앉았다.

-사아아아.

“으아아……!”

이질적인 느낌에 놀란 파멜라가 내려앉은 빛을 털어내려는 듯 손을 털었다.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을 치유하기 위함이에요.”

“……!”

빛이 내려앉은 모든 곳에 있던 흉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 새아버지에게 짓밟혀 난 손목 위의 흉터도.

-사아아…….

새어머니에게 매질을 당할 때마다 생겨났던 흉터도.

-사아아…….

교주에게 채찍질을 당해 생겨났던 흉터도.

모두 사라졌다.

“그러니 파멜라. 우리의 뜻에 함께해주세요. 세상을 구하려는 우리의 뜻에. 배고픈 사람을 배불리 먹이고,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따뜻한 옷을 주고, 길을 헤메는 아이에게 새로운 집을 주세요.”

모두 부활교가 했던 일들이었다. 그 뒤에 추악한 짓거리만 없었더라면 부활교는 전혀 나쁜 집단이 아니었다.

“살육은 없을 겁니다. 이 구슬은 몬스터들의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인간을 해치려던 몬스터들 말이에요.”

사내가 상자의 구슬을 꺼내들었다.

“우리 역시 불온한 힘은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제발 가여운 인간들을 도와주세요.”

파멜라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성녀가 되어보세요. 파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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