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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38화 (138/225)
  • 138화. 밑 작업.

    루카스는 아이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공법은 턱도 없다. 이럴 땐 편법이지.’

    먼저 기본적인 틀이 갖춰지고 나면, 그때 제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 생각이었다.

    세이렌에게서 얻어 온 좋은 것들. 제 아공간 주머니에서 잘 쉬고 있는 그것들을 때가 되면 아이들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고.’

    각인 재시험을 앞둔 아이들은 오랜만에 다 함께 외출하기로 했다.

    “진짜라니까?”

    외출에 들뜬 폴라의 목소리가 마차를 쩌렁쩌렁 울렸다.

    “알겠어. 그보다 폴라 목소리가 너무 커.”

    그 옆에 앉은 파멜라는 벌써 몇 번째 폴라를 타박하고 있었다.

    “아니이~ 나는 언니가 내 말을 자꾸 안 믿는 것 같아서 그렇지!”

    폴라 역시 파멜라의 타박에 귀여운 애교를 부리며 넘어가길 몇 번째였다.

    파멜라는 도서관 사서 자리에 정식으로 임명된 이후 제한적이지만 자유를 얻었다.

    그에 루카스는 너무 이른 감이 없잖아 있다며 불안감을 표했지만, 아만은 자기만 믿으라며 큰소리를 땅땅쳤다.

    파멜라와 폴라를 바라보는 넬라의 눈동자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그럴 수밖에.’

    벌써 몇 번이나 그런 넬라의 표정을 본 루카스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폴라는 넬라를 처음 봤던 그때부터 그녀를 끔찍이도 아꼈다. 제 친동생처럼 언제나 챙겼으며, 어딜 가든 넬라를 꼭 데리고 다녔다.

    넬라가 처음 아카데미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방을 쓰며 넬라가 이곳에 적응하게 도왔고, 부모를 잃은 슬픔을 알기에 그녀의 아픔을 세심하게 어루만지고 살폈다.

    때문에 넬라 역시 그런 폴라를 제 친언니처럼 따랐다.

    하지만 그런 폴라에게 진짜 혈육이 나타났으니 제 자리가 사라진 것만 같을 것이다.

    “아, 언니!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던 그 카페 있지? 우리 오늘 거기 가자.”

    “그래. 그러자.”

    지금 폴라는 언니와 헤어졌던 때로 돌아가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파멜라는 그런 폴라를 보며 귀엽고 또 귀여운 어린 동생을 대하듯 했다.

    “넬라. 너는 오늘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루카스가 넬라를 다정히 불러 물었다.

    “아니, 나는 괜찮아.”

    하지만 넬라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이었다.

    안타깝긴 하지만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폴라와 파멜라는 서로를 잃어버렸던 그 시간을 단번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서로에게 열심이었고, 넬라는 그에 비해 너무나도 완벽한 타인이었으니.

    “나는 오늘 파멜라 언니랑 따로 다녀올게. 어차피 너희는 다 가봐서 재미도 없을 거야. 이따 만나자!”

    마차가 멈춰 서기도 전이었다.

    “폴라. 그럼 못써. 그리고 언니는 살 것들이 있으니 친구들과 먼저 가있어.”

    “왜? 나도 따라갈래. 얘네는 진짜 다 가봐서 재미도 없을 거야. 나 언니랑 어디 갈지 이미 다 정해놨어.”

    “알아. 하지만 이건 언니 혼자 다녀올게.”

    루카스가 의심의 눈길을 보내자, 파멜라는 품에서 아만의 인장이 찍힌 심부름 종이를 꺼내 보였다.

    “학장님께서 따로 부탁하신 것들이야. 너와 함께 가서 사도 좋을지 모르겠으니 먼저 가있어.”

    그러자 폴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루카스는 달랐다.

    ‘아만이 쟤한테 뭔가 따로 부탁했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아만이 뭐가 아쉬워 이제 막 사서 자리에 앉은 파멜라에게 부탁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파멜라가 꺼내 든 종이에 찍힌 아만의 인장은 진짜였으니, 우선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우린 그럼 광장 앞 카페에 가있자.”

    루카스가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

    ***

    파멜라 역시 아만에게 따로 심부름 거리가 적힌 쪽지를 받았을 때 의아했다.

    ‘굳이 나에게 부탁하신 이유가 뭘까.’

    자신은 이제 막 이곳에 와 지리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아만이 그녀가 이해할 만한 말로 몇 가지를 덧붙이긴 했지만, 그런데도 이상한 건 매한가지였다.

    비서가 출장을 떠나 부탁한다는 것도 이상했으며, 지리를 익히기에 좋을 것이라는 말도 이상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베푼 은인이고 제 상관이나 다름없으니 당연 따라야지.

    ‘게다가 쉬운 심부름이기도 하고.’

    종이에 적힌 것은, 잡화점에 들르면 살 수 있는 양피지 몇 가지와 깃펜, 펜촉 따위 등이었다.

    ‘이상하긴 해도…….’

    이런 사소한 물건들이 아카데미에 미리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파멜라는 묵묵히 종이에 적힌 약도를 따라 잡화점으로 향했다.

    “아, 여긴가?”

    간판에 적힌 글씨와 메모에 적힌 글씨를 번갈아 확인한 파멜라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상점에 들어간 파멜라는 종이에 적힌 내용들을 주욱 읊어 쉽게 물건들을 샀다.

    상점에서 빠져나온 파멜라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던 때였다.

    “저…….”

    누군가 제 뒤에서 저를 부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 파멜라가 헙 하며 작게 숨을 들이켰다.

    “혹시 파멜라 피에렌테님 아니십니까?”

    부활교에서의 제 직책이었던 피에렌테라는 말이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파멜라는 직감했다.

    이건 위험하다고.

    “네?”

    그에 파멜라는 수년간 축적되어 온 경험과 감각으로 대처했다.

    “아, 제가 사람을 착각했나 봅니다.”

    파멜라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따위의 부정보다는 이것이 낫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사내는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고는 빠르게 몸을 돌려 사라졌다.

    ‘……예상은 했었지만 이건 너무 빠르잖아.’

    이곳은 아란트 제국 수도였으니, 당연히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부활교에 있을 때 제 모습은 지금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언제나 사제복을 입었으며, 그에 고위 사제를 뜻하는 보라색 띠까지 둘렀다.

    때문에 파멜라는 사람들이 지금의 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수도 있다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내가 멍청했어.’

    하지만 사람들은 제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은 듯 보였다. 보라색 띠를 두르지 않았음에도 단박에 자신을 알아보았으니 말이다.

    주변을 한번 살핀 파멜라가 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

    사실 파멜라가 마주친 사람은 폴리모프한 아만이었다.

    아만은 제 나름의 방식대로 파멜라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때문에 말 같지도 않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시켜 아이들에게서 떨어트렸고 그 뒤를 밟았다.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는데.’

    파멜라가 자유를 얻은 직후에 움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마음이 급하면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파멜라는 너무나도 능숙하게 상황을 모면했다.

    ‘못 들은 건 아니야.’

    아만은 파멜라가 짧게 숨을 들이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척을 하기도 전이었지.’

    낯설지만 흔한 얼굴. 그것을 마주한 파멜라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순간 얼어붙었다.

    ‘아쉽지만 뭐.’

    걸음을 재촉하는 파멜라를 지켜보던 아만이 돌아섰다.

    ***

    파멜라가 돌아온 뒤 아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기숙사로 돌아와야 했다.

    “언니가 미안. 갑자기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말이야.”

    “아냐! 괜찮아.”

    “그리고 다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오랜만에 한 외출을 망쳐버린 것 같아서…….”

    파멜라가 아이들에게도 사과를 전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넬라와 스키르가 괜찮다며 싱긋 웃자, 파멜라는 더욱 미안한 표정이 되어 어쩔 줄 몰라했다.

    ‘무슨 일이 있긴 했나 본데.’

    그녀의 사과를 받지 않은 것은 오직 루카스뿐이었지만, 다들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지 아무 말도 없었다.

    종종거리며 카페로 들어선 파멜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좋지 않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를 보다 못한 폴라가 결국 돌아가자고 하자, 파멜라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때문에 루카스는 파멜라에게 향한 의심의 눈길을 더욱더 거두지 않았다.

    파멜라가 먼저 들어가자, 아이들은 정문 앞에 서서 서로를 번갈아 바라봤다.

    “넬라! 들어가자.”

    폴라의 말에 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니.”

    그에 스키르도 루카스에게 들어가자며 손짓했다.

    “나는 들를 곳이 좀 있어서. 먼저 들어가.”

    그러자 스키르는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먼저 기숙사로 들어갔다.

    요즘 스키르는 예전과 달리 매사에 조금 시큰둥해진 느낌이 들었다.

    ‘사춘기가 늦게 왔나.’

    그에 루카스도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

    아만의 집무실에 도착한 루카스가 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그곳엔 어이없는 표정을 한 아만이 서있었다.

    “아니, 왜 갑자기 노크를 하고 그러십니까?”

    “그냥.”

    “허!”

    아만의 집무실에 들어선 루카스가 아만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 설마 비웃으시는 겁니까?”

    “아니?”

    루카스는 사실 인간으로 사는 동안 이처럼 마음이 여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물론 상황이 좋진 않았지만, 전생의 제 힘을 모두 되찾은 듯한 지금은 뭐랄까. 마음만은 너무나도 풍요로웠다.

    때문에 아만에게 장난을 걸만한 여유도 생겼다.

    “무슨 일이십니까?”

    “너 요즘 내가 반갑지 않은가 보다?”

    묘하게 비아냥거리며 자신을 놀리는 듯한 말투에 아만이 다시 한번 허! 하며 숨을 뱉어냈다.

    “왜 자꾸 놀리십니까? 요즘 로드 좀…….”

    “뭐.”

    “신나신 것 같은데.”

    평소의 루카스가 저런 말을 들었다면 아만에게 욕지거리를 날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지만 루카스는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허어?!”

    그러자 아만은 입을 떡 벌리고는 더는 놀라하기 힘든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만하면 됐다.”

    그러자 아만이 루카스 건너편에 털썩 앉았다.

    “파멜라에게 이상한 심부름을 시켰더군.”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뭐 네가 찾아가서 아는 척이라도 했겠거니 싶었다. 맞느냐?”

    자신만 믿으라며 큰소리를 친 것과 파멜라에게 어처구니없는 심부름을 시킨 것을 조합해 보니 결론이 쉽게 났다.

    “허어?”

    아만은 점쟁이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심부름 몇 가지를 시킨 것만 보고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맞나 보군. 그렇다면 뭐.”

    “가끔 보면 로드께서 고룡이 맞구나 싶어요. 역시 연륜은…….”

    루카스가 작게 습 소리를 내며 아만을 흘겨봤다.

    “예.”

    “그리고 각인 시험. 그것도 혹시 네가 지시한 게냐?”

    “허어어?”

    어쩐지 지난번에 왔을 때 묻지 않는다 싶었는데!

    “마족들에 대비해서 그랬겠지. 그것들이 아카데미 학생들을 상대로 쓸만한 술수 중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이니. 맞느냐?”

    “…….”

    “그래. 그런 것 같았다.”

    지난번 각인 시험에서 나왔다는 저주 각인.

    루카스 역시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아카데미에서 굳이 각인 시험 주제로 저주를 선택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처음엔 각인 교수가 조금 괴짜인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각인 교수직을 맡고 있는 스니더 케일럽은 최연소로 각인 분야의 권위자에 오른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세고 남 말을 잘 듣지 않는 성격 탓에 다른 교수들과 마찰은 조금 있었지만, 실력만큼은 대단했다.

    그런 사람이 한낱 시험에서 학생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주제를 낸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스니더의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일 가능성이 높았고, 그것이 아만일 가능성은 거의 백 퍼센트에 가까웠다.

    “그래. 좋은 생각이었다.”

    마족들이 지상에 올라온다면 아만이 학장으로 있는 아카데미를 공격할 확률이 높았다.

    ‘아만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알 테니.’

    그렇다면 그들은 먼저 아카데미에 잠입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손을 쓸 확률이 높았다.

    그 방법 중에 가장 쉬운 것이 바로 저주였으니, 아만은 그에 조금이라도 대비하고자 했던 듯 보였다.

    “그냥 확인하러 오신 거군요? 저에게 무언가를 묻겠다고 오신 게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지. 아, 그리고 세이렌의 영역에 한 번쯤은 가봐라.”

    “갈 줄 모르는데 어떻게 갑니까? 좌표를 알아야 가지요. 그리고 그 소용돌이는 절대 타기 싫습니다.”

    “나는 아는데.”

    자리를 털고 일어난 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그럼 알려주…….”

    “간다.”

    그러고는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허허……!”

    루카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는 아만이 허망하게 웃었다.

    “로드께서 이상해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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