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재회.
폴라와 파멜라가 눈물의 재회를 할 때에도 루카스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그들을 바라봤다.
“크흡… 루카스… 너무 잘됐지 않은가? 폴라가 언니를 찾다니 말이야.”
스키르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슥 훔쳐냈다.
“그러게 진짜 잘 됐지?”
그에 넬라 역시 먹먹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래.”
그럼에도 루카스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오빠 진짜 냉혈한 같아.”
“그래. 루카스. 너 이런 사람 아니잖나!”
그들의 타박에도 루카스는 정면을 주시할 뿐이었다.
사실 루카스도 그들의 재회가 눈물겨웠고, 또 기뻤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아는 루카스가 그들의 재회를 그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고 기뻐하기란 힘들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모든 것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파멜라는 루카스에게 적이었으며,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언제든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아이들을 넘어 이 세상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루카스가 눈을 시뻘겋게 뜬 가운데서도 파멜라와 폴라는 서로를 끌어안고 놓기를 반복하며, 서로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내고 있었다.
‘나 또한 의심하고 싶지 않다.’
루카스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파멜라는 진짜 폴라가 잃어버렸던 언니가 맞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조차 없겠지.’
그들의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으며, 어릴 때 함께했던 기억의 조각을 맞춰보는 것까지도 모두 완벽했다.
하지만 루카스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해두는 것.
파멜라의 정체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폴라와 아이들을 보호할 만한 대책.
‘아만과 상의를 더 해봐야겠어.’
파멜라에 대한 정보는 대충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걸어둔 제약이나 저주가 무엇인지까지는 아직 정확히 몰랐다.
때문에 루카스는 그 내용들을 전부 확인한 다음, 더욱 견고한 방어책을 갖출 생각이었다.
“폴라.”
루카스가 폴라를 불렀다.
“너랑 이야기하기 싫어!”
폴라가 루카스를 째려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이만 가지.”
“싫어! 나는 언니랑 있을 거야. 언니가 아카데미에 못 다닌다면 언니랑 여기서 살래. 나 기숙사 안 가도 되니까 너희 먼저 가.”
폴라가 파멜라의 손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
“언니.”
그러자 넬라가 폴라를 불렀다.
“아, 넬라! 언니는 이제 여기서 살 거야. 넬라도 방 혼자 쓰면 더 좋을걸?”
폴라의 말에 넬라는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폴라는 그런 넬라를 외면하고 다시 파멜라에게 눈을 고정했다.
잃어버린 언니를 찾은 폴라는 지금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듯 보였다.
‘인생의 목표나 다름 없었으니…….’
지금 폴라는 원했던 것 중에 가장 큰 것을 이뤘다. 하지만 겨우 찾아낸 언니는 폴라에겐 너무 불안한 상태로 보였다.
입양을 갔던 언니는 집도 부모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몸엔 가리고 싶어도 가릴 수 없는 크고 작은 생채기와 흉터가 가득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아직 다 모르지만, 폴라에겐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폴라는 겨우 찾은 언니를 또 잃을까 두려웠다. 때문에 파멜라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폴라. 언니는 당분간 이곳에서 머무를 거야. 하지만 이곳의 학장님께서 조만간 언니가 살 곳을 마련해 주신다고 했어. 학장님께서는 정말 좋으신 분이더라.”
“맞아. 아만 학장님은 진짜 좋은 분이야. 살 곳을 마련해 주신다고? 우와! 그럼 나도 그때까지 언니랑 여기 있으면 되겠다!”
폴라가 해맑게 웃으며 파멜라의 손을 더욱 꽉 붙잡았다.
“하하. 폴라. 이러다가 언니 손 부서지겠어.”
“앗! 미안해. 괜찮아?”
파멜라의 말에 폴라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놓고서 혹여 다쳤을세라 허둥지둥 그녀의 손을 살폈다.
“괜찮아. 아까 말했지만, 언니는 이곳에 온 지 벌써 꽤 지났어. 그러니 걱정 말고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
파멜라가 부드럽게 폴라를 달랬다.
“싫어!!!”
갑자기 폴라가 경기하듯 버럭 소리치자, 파멜라 역시 놀랐는지 흠칫 몸을 떨었다.
“미, 미안해. 놀랐어? 나는 그게 아니라…….”
그에 폴라는 정신이 돌아왔는지 허겁지겁 사과를 했다.
“알아. 폴라. 언니랑 헤어질까 봐 그러는 거지? 걱정하지 마. 언니 이제 아무데도 안 갈 거야.”
“그래도 싫어. 응? 나 여기 있고 싶어. 제발 언니랑 있게 해줘.”
이제 폴라는 파멜라에게 거의 애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제발… 응?”
“폴라.”
폴라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흐윽… 제발…….”
“언니 말 안 들을 거야?”
하지만 파멜라는 단호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잃어버린 동생과의 재회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향한 의심을 벗는 것이라는 것을.
‘잘 처신하고 있군.’
그를 본 루카스가 생각했다.
“언니 여기 있을 거라고 했잖아. 언니 아무 데도 안 간다고 했지?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
“흐윽…… 싫어…….”
폴라가 울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폴라. 언니 봐.”
파멜라가 폴라를 불러 눈을 맞췄다.
“언니가 아만 학장님께 오늘 다시 여쭤볼게. 언제쯤 너와 함께할 수 있겠냐고 말이야. 나도 여기서 널 찾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니 오늘 돌아가서 언니랑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볼래?”
파멜라는 폴라를 마치 다섯 살짜리 아이를 대하듯 하고 있었다. 다정히 달랬으며, 등을 찬찬히 쓸어내렸다.
그럼에도 폴라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래. 폴라. 내가 약속하지. 네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결국 루카스가 나섰다.
“싫어! 안 믿어! 너 우리 언니랑 나 못 만나게 하려고 했잖아!”
폴라는 단단히 화가난 듯 보였다.
“폴라. 나는 널 보호하려고 한 거야.”
“그래. 저분은 널 보호하려고 그러신 거야. 언니가 다친 것도 아니잖아.”
“싫다고!!!”
여태까지 보였던 그 어른스럽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간 건지, 폴라는 다섯 살 난 아이처럼 떼를 썼다.
“그만.”
결국 루카스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폴라를 내려봤다.
“당장 돌아가지 않겠다면.”
“……?”
“재워서 보내버리겠다. 그리고.”
루카스 역시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왔다.
“……뭐?”
“네 언니를 다시 숨겨주지. 숨바꼭질하고 싶은가 폴라?”
루카스의 발언에 놀란 아이들의 입이 모두 떡 벌어졌다.
“……오빠?”
“루, 루카스.”
냉정해도 너무 냉정했다. 처음 마주하는 루카스의 차가운 모습.
“당장 일어나서 기숙사로 돌아가.”
***
겨우 아이들을 돌려보낸 루카스가 아만을 찾았다.
“아만.”
“와…… 로드 그거 뭡니까?”
아만은 루카스를 보자마자 변화를 즉각 알아차렸다.
“발리마의 심장.”
“찾으셨군요. 그런데 그건 진짜…….”
가득 차다 못해 넘치는 마나.
“내가 찾을걸…….”
어찌나 놀랐는지 아만은 말을 끝까지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그에 루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찾고 나니 꽤…… 아니, 엄청 대단하더군.”
“그 정도면 로드 다시 하셔도 되겠습니다.”
진심이었다. 발리마의 심장을 얻은 지금의 루카스는 전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시답잖은 소리 집어치워라.”
“시답잖은 소리라뇨! 진짭니다.”
루카스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제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내심 기분이 좋아진 루카스가 피식 웃고서 자리에 앉았다.
“와…… 이거 아버지께서 아시면 되게 부러워하시겠는데요?”
“나도 이런 건 줄 알았다면 전생에 진작 찾았을 거다. 하지만 이번 생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뭐.”
“이제 제 마나를 가져다가 쓰실 일은 없겠네요. 오히려 제가 얻어 써야겠어요.”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라.”
사실 기분이 더욱 좋아 보이는 쪽은 아만이었다. 그는 언제나 루카스를 걱정했었다.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루카스가 너무도 연약한 존재였으며, 혼자 돌아다니도록 두기엔 무척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발리마의 심장을 얻은 지금이라면 루카스를 어디에 내놓아도 불안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왔다.”
“네.”
“사서의 방에 있다는 그 여자. 파멜라 말이다.”
“아, 만나셨습니까?”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 여자가 폴라의 언니라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었나?”
“예?! 폴라의 언니요?”
아만 역시 몰랐던 사실인지, 몸을 크게 튕기며 되물었다.
“너도 몰랐던 사실인가 보군. 폴라와 파멜라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 이거 우연이라고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게 되었다. 그건 둘째 치고, 걱정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말이다.”
루카스의 말에 아만은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일단은 로드께서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수를 썼든지 파멜라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것쯤은 확인을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파멜라를 미끼로 아이들을 노린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
“사실 아이들이 뭐라고 그들이 이런 복잡한 수를 써서 노리기까지 하겠습니까? 그들의 적은 우리 드래곤인데요. 인간은 사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아만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최측근에 있다고 생각되는 아이들 아닌가? 루카스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하하…… 로드. 진짜 많이 변하셨습니다.”
루카스가 미간을 좁히고 골똘히 생각하던 때였다.
“어떤 게 말인가?”
“언제부터 우리 드래곤이 인간들을 지키겠다고 나섰습니까?”
아만의 말에 루카스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만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드래곤이었다.
드래곤들은 제 종족도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내치는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인간을 미끼로 잡는다 해서 약한 모습을 보일 리가 없건만, 루카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많이 변하셨군요.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아버지 역시 그렇다는 것을요.”
아만의 눈동자에 얼핏 슬픔이 비쳤다.
“그렇구나. 네 말이 맞다. 그들이 나를 인질로 잡아 하셀을 협박한다 해도…… 하셀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
“예.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나 역시 그러했을 것이고.”
대의. 드래곤들은 대의를 위해 움직였다.
사실 그들이 움직이는 뜻이 곧 대의였으니, 자신의 뜻이 곧 대의인 자들이었다.
아무리 소중한 인간이라 한들, 그들에겐 그저 찰나를 살아가는 수많은 종족 중 하나였다.
그런 인간을 위해 더 큰 희생을 감수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족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 내가 많이 변하고 말았어.”
“아닙니다. 로드 역시 지금은 인간의 몸이니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부끄럽구나. 그렇다면 파멜라에 대한 의심은 잠시 지워도 괜찮겠구나.”
아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가 파멜라에게 온갖 저주란 저주는 다 걸어뒀습니다. 게다가 파멜라는 제게 약속했던 대로 부활교에 대한 정보를 착실히 넘겨주고 있으니, 그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저희에게도 나쁜 거래는 아니지요.”
“그래.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믿고 있다.”
루카스가 아만을 보며 웃자, 아만은 예전과 같은 해맑고 맑은 표정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로드……! 이 아마록, 로드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에요!”
아만이 한껏 내민 제 가슴을 팡팡 두드리자, 루카스가 더욱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 그래. 기특하구나.”
둘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루카스가 유물을 찾아내는 과정을 설명할 때 아만은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들었고, 루카스 역시 오랜만에 괜찮은 무용담을 늘어놓으니 들떠서 떠들었다.
“그럼 이제 가야겠구나. 아,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훈련을 좀 하려고 한다.”
“에? 무슨 훈련 말씀이십니까?”
“애들이 너무 이론만 공부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실전 훈련을 좀 해야겠어. 그러니 알고 있어라.”
아이들 훈련에 당연히 아만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지만, 아이들이 기숙사를 비웠을 때 아만이 알아서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 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만 역시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대답해 보였다.
‘일단 걱정 하나는 덜었군. 이제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되겠어.’
루카스가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아만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