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35화 (135/225)
  • 135화. 귀환.

    “드디어.”

    빛이 사라진 곳에 신비롭게 떠있는 것은 발리마의 심장이 분명했다.

    물론 이름이 쓰여있는 것도 아니고 본적도 없었지만, 그것을 본 루카스는 확신했다. 저것이 바로 제가 찾던 발리마의 심장이라고.

    허공에 떠있는 것은 무어라 특정할 수 없는 형태였다. 그것은 작은 빛처럼 보였으나 무언가였고, 무언가처럼 보였으나 또 빛이었다.

    루카스가 그것에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파아아앗!

    그러자 그것은 쏜살같이 쏘아져 루카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억!”

    갑작스러운 기습에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

    하지만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자, 루카스는 제 가슴께를 더듬었다.

    “아.”

    얼마 지나지 않아 느껴지는 무언가에 루카스가 작게 탄식하더니.

    “하, 하하하!”

    이내 고개를 젖혀가며 웃기 시작했다.

    충만했다. 언제나 한구석이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 어느 곳도 빈틈이 없었다.

    7서클 언저리였던 마나 서클은 지금 무한대를 그리고있었으며, 심장 부근을 빠르게 도는 마나는 당장에라도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만 같았다.

    “……엄청나군.”

    발리마의 심장.

    그것은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했다. 대부분의 전설은 시간이 지나며 부풀려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것은 부풀려지기는커녕 누군가 실체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소문을 축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했다.

    “후우…….”

    루카스가 크게 심호흡했다.

    ‘어쩌면 전생보다 더…….’

    진심이었다. 지금 느껴지는 마나의 양은 전생에도 느껴본 적 없는 방대한 양이었다.

    아니, 양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표현인지도 의문스러웠다.

    ‘이만하면 누구에게도 짐이 되진 않겠군.’

    인간으로 살며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나가 모자라 미쳐버린 스턴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할 뻔했던 일.

    ‘이 정도라면 드래곤도 문제없겠어.’

    아만과의 계약이 끊어져 아이들을 사막에서 데리고 나오지 못했던 일.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아모레의 유물까지 있으니, 이건 뭐 전생보다 더욱 든든해진 느낌이었다.

    ‘돌아가 볼까.’

    루카스가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동굴을 떠났다.

    ***

    아카데미로 돌아온 루카스는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뺐다.

    “너! 각인 시험 안 보려고 도망갔던 거지?!”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치사하게. 그래서 어디 갔다 왔어? 빨리 말해.”

    폴라는 루카스를 잡아 죽일 듯 노려보며 바락바락 따졌다.

    “아만 교수님께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 아, 그보다 시험은 다들 잘 봤어?”

    “치사해.”

    루카스가 얼른 아만을 내세워 핑계를 만들고는 화제를 돌렸다.

    “잘 보긴! 통과한 학생이 아무도 없어.”

    “한 명도?”

    “응.”

    상급반은 총 열두 명으로 많은 학생 수는 아니었지만, 상급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생들의 실력은 출중한 편이었다.

    “흠…….”

    아무리 각인이라는 과목이 어렵다고는 해도, 통과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무슨 계열이었는데?”

    대부분 각인 시험에서 나오는 것들은 비슷했다. 방어 계열의 마법이나, 공격력이 증가되는 마법이 주를 이뤘다.

    “저주 계열.”

    루카스의 질문에 넬라가 대답했다.

    “……저주라고?”

    그에 루카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응. 혼란의 저주.”

    “그래?”

    각인은 말 그대로 특정 사물에 마법을 각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마법의 종류라면 거의 모든 것을 각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저주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아카데미 학생에게 저주를 각인하게 한다니?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아만이 승인한 내용이겠지.’

    아이들의 말에 의문이 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금 학장으로 있는 이가 아만이었기 때문에 루카스는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응. 혼란의 저주라고 알아?”

    넬라가 물어왔다.

    “알지.”

    그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혼란의 저주는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저주 중 하나야. 여기서 보편적이라는 말은 전쟁이나 전투 시에 널리 쓴다는 말이지 결코 평소에 쓴다는 말은 아냐.”

    루카스의 설명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혼란의 저주. 컨퓨즈 마법이야. 당하는 사람은 큰 정신적 혼란을 겪어. 헛것을 보기도 하고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해. 이런 마법을 물건에 각인한다면?”

    “물건을 만지는 사람이 걸리겠지.”

    “그래.”

    아이들은 상급반까지 올라왔지만, 아직 전투 경험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폴라와 스키르는 와이번과 싸웠던 경험이 있었지만, 그 또한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안 되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루카스가 아이들을 차례로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아카데미 공부 외에 실전 경험이 조금 더 필요하겠어.”

    발리마의 심장을 얻은 지금은 뭐든 가능했다.

    지난번처럼 아만과의 계약이 옅어지거나 끊어지더라도 아이들을 지키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전 경험?”

    “몬스터랑 싸우겠다는 건가……?”

    스키르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지금은 이론을 더 쌓아야지. 도서관으로 가자.”

    “도서관?”

    루카스의 말에 폴라가 되묻자, 넬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가야 해. 이번 주에 각인 재시험이잖아.”

    “아.”

    루카스가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

    도서관에 도착한 아이들은 지난번에 빌렸던 책을 반납대 위에 올려두고서 루카스를 바라봤다.

    “그런데 어떤 책을 보려고 온 거야?”

    “마법 응용 책들 중에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모두 가져와.”

    루카스는 먼저 아이들에게 쓸 수 있는 마법의 종류를 모두 주입하기로 했다.

    ‘철저하게 실전 위주로 간다.’

    마법이란 이론이 전부가 아니었다. 마탑에 모인 수많은 인재들 중에도 이론에만 빠삭할 뿐, 막상 실전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구석에 숨어 질질 짜는 이들이 넘쳐났다.

    ‘조금 더 일찍 했어야 됐는데.’

    아이들이 책을 찾는 동안 루카스는 잠시 도서관을 둘러봤다.

    ‘브랑디.’

    사서였던 브랑디가 죽고 난 뒤로 일부러 잘 찾지 않았던 곳이었다.

    루카스가 잠시 추억에 잠긴 듯 도서관 곳곳을 눈으로 훑어냈다.

    ‘체스판도 아직 그대로군.’

    브랑디와 앉아 체스를 뒀던 그 자리.

    항상 한 수만 물러 달라며 떼를 썼던 노인의 얼굴이 생생히 그려졌다.

    ‘브랑디가 즐겨 읽던 책.’

    그 옆엔 브랑디가 생전에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던 ‘마법사 되는 방법’이라는 허무맹랑한 책이 표지가 모두 닳은 채로 놓여있었다.

    루카스가 걸음을 옮겼다.

    도서관 가장 안쪽에 위치한 사서의 방.

    지금 이곳엔 알베르토가 부활해 교주 노릇을 하고 있는 부활교의 사제가 도망쳐 나와 머물고 있다고 했다.

    방문 앞에 선 루카스가 한참이나 문을 바라봤다.

    ‘당장에라도 문을 열어 찢어 죽이고 싶군.’

    부활교. 그것들이 저지른 짓만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그 계집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앨리와 다를 바가 없겠지.’

    충동을 꾹 참아낸 루카스가 돌아섰다.

    “루키?”

    돌아서자마자 마주한 폴라의 얼굴에 루카스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폴라! 놀랐잖아.”

    어쩜 이렇게 기척도 없이 왔는지.

    “헤헤. 놀랐어? 아니, 그런데 여기서 뭐 해? 사서님 방이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루카스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자, 폴라가 쫄래쫄래 따라붙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도 옛날에 원장 어머니 방문 앞에 그렇게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헤헤. 그런데 그날 누가 또 원장 어머니 방에서 도둑질을 한 거야! 그때 범인으로 몰려서 얼마나 호되게 혼났는지 몰라.”

    “그러길래 왜 그 방문 앞에 서 있었나.”

    루카스의 타박에 폴라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냥…… 그날 언니가 입양을 갔거든. 혹시 언니가 간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 하고 가봤던 거였지.”

    -달칵.

    그때. 닫혀있던 사서의 방문이 열렸다.

    “응?”

    “젠장!”

    폴라가 고개를 돌려 방문을 바라보고, 그와 동시에 루카스는 방어 마법을 펼치며 공격 준비까지 마쳤다.

    “루키?”

    폴라를 제 뒤로 재빨리 숨기며 앞으로 나선 루카스가 방문을 열고 나온 여자를 죽일 듯 노려봤다.

    “허튼수작 부릴 생각 마라.”

    루카스가 낮게 경고했지만, 여자는 멍하니 루카스 뒤에 선 폴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폴라……?”

    여자가 폴라의 이름을 부르자, 어리둥절하게 뒤에 숨어있던 폴라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허튼수작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루카스의 등 뒤로 생겨난 얼음 창이 여자를 조준했다.

    “……파멜라 언니?”

    떨리는 폴라의 목소리.

    “폴라!!!”

    그와 동시에 폴라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쿠궁!

    “안 된다. 폴라.”

    폴라의 앞을 가로막는 벽.

    “루키! 우리 언니야. 우리 언니라고!”

    여자의 정체를 아는 루카스는 이 상황이 무엇인지 판단할 필요도 없었다. 저 여자가 무엇이든 간에 폴라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니. 네 언니라도 안 된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루카스 역시 당장 저 여자를 해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았기에 폴라 앞에 벽을 세워 막은 것이었다.

    “당장! 열어! 당장!!!”

    폴라가 벽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안 돼. 폴라.”

    하지만 루카스는 단호하게 그것을 거절했다.

    “당장 열어!!!”

    폴라의 갈라진 목소리가 도서관을 울리고 맞은편에 선 파멜라 역시 벽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폴라!!!”

    “당장 열어 루카스.”

    폴라의 몸에 전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안 돼. 저 여자가 네 언니인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다. 나는 널 지키는 게 더 중요해.”

    “……당장 열어.”

    폴라가 양팔을 벌리자, 도서관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쿠릉… 콰지직… 콰직…….

    폴라의 몸을 타고 흘러나오는 전기는 당장에라도 루카스를 태워버릴 기세였다.

    “폴라 언니! 오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뒤에서 들려오는 넬라와 스키르의 목소리.

    “그만.”

    그런 폴라와 아이들의 모습에 루카스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저 여자가 폴라의 언니가 아니라면? 이것 또한 모두 알베르토의 계략이라면?’

    하지만 알베르토가 굳이 폴라를 노릴 이유는 없었다.

    ‘아니,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섞이게 하기에 이만한 것도 없다.’

    경계를 풀었을 때 아이들을 해친다면? 아이들 곁에 제가 없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루카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폴라. 우선 진정해.”

    “당장… 열어…….”

    항상 밝았던 폴라가 이토록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루카스 역시 알고 있었다. 폴라가 왜 마법사가 되려고 하는지. 마법사가 되어 누구를 찾고 싶었던 것인지 말이다.

    때문에 루카스는 지금 폴라의 분노를 모두 이해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벽 뒤에서 폴라의 이름을 부르짖는 파멜라.

    제게 당장에라도 공격을 퍼부을 듯 공격 태세를 갖춘 폴라.

    그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넬라와 스키르까지.

    “그래.”

    결국 루카스가 벽을 허물었다.

    ‘지금은 내가 있으니.’

    저 여자가 폴라에게 허튼 짓을 하려는 낌새만 보여도 죽일 것이다. 폴라에게 한평생 원한을 사는 일이 있더라도.

    “폴라!”

    “……파멜라 언니? 진짜 언니야?”

    벽이 허물어지자마자 달려온 파멜라가 폴라를 덥썩 끌어안았다.

    ‘수상한 낌새만 보인다면.’

    루카스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파멜라에게 안긴 폴라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였다.

    “어, 언니라고?”

    제 언니라며 당장 벽을 허물라고 소리칠 때는 언제고, 폴라는 파멜라의 품에 안겨서도 아직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물었다.

    “흐윽…… 폴라. 언니가, 언니가 미안해. 널 그렇게 두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언니가 미안해…….”

    제 품에서 폴라를 떼어낸 파멜라가 폴라의 얼굴 구석구석을 어루만졌다.

    “흐윽…… 우리 폴라 너무 예쁘다. 너무, 너무 예쁘네…….”

    “흐아아아앙! 언니!!!”

    그제야 파멜라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한 폴라가 다섯 살 난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우리, 우리 못난이네. 울면 언니가 못난이라고 했잖아.”

    동생의 울음에 제 울음을 삼켜낸 파멜라가 활짝 웃으며 폴라의 눈물을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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