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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28화 (128/225)
  • 128화. 이 정도면 죽었겠지? (1)

    기숙사로 돌아온 루카스는 먼저 마신의 편에 섰을 만한 신들과 종족들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통통! 통통통!

    그때 창밖에서 무언가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침대에서 일어난 루카스가 창가로 조심히 다가갔다.

    -통통통! 통통!

    조금 열린 커튼 사이로 작은 손을 열심히 놀리는 무언가.

    “픽시?”

    “은인님! 은인님!”

    -달칵.

    루카스가 창문을 열어주자 알린은 재빠른 날갯짓으로 쏙 들어왔다.

    “아니, 도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루카스가 알린과 그의 일족들을 구했을 땐 분명 폴리모프한 모습이었다. 때문에 정체를 정확히 알아차릴 수 없었을 텐데 알린은 기숙사 방 창문을 곧장 두드렸다.

    “헤헤. 은인님은 모르시겠지만, 저희 픽시들은 은혜를 잊는 종족이 아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인가?”

    “은인님께 축복 주술을 잔뜩 걸어뒀습니다!”

    “허?”

    알린이 제 가슴을 내밀며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스토킹이었다.

    게다가 벌써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몰랐다는 것이 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축복 주술이라니 또 마음껏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여기까진 어쩐 일인가?”

    “아, 사실 조금 심각한 일입니다. 족장님께서 은인님께 가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이곳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나온 거예요. 휴!”

    알린이 제 용감함을 뽐내기라도 하듯 씨익 웃어 보였지만, 루카스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래. 갈 때는 내가 데려다주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군. 그래서 심각한 일이라는 게 뭔가?”

    “그게…… 마을에 마족이 찾아왔습니다.”

    루카스의 표정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마족? 마족의 혼혈도 아닌 순혈 마족 말인가?”

    “네.”

    이건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마왕이 반쯤 와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루카스가 생각했던 것은, 그 역시 온전한 육체를 지상으로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혼혈도 아닌 순혈 마족이 지상에 올라왔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럴 리가 있습니다. 사실 저희 마을에 온 것은 3일 전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루카스는 결국 참을 수 없다는 듯 알린에게 손바닥을 척 내밀었다.

    “아?”

    “가지.”

    생각 같아서는 알린을 당장이라도 낚아채 텔레포트하고 싶었으나 최대한 참아낸 것이었다.

    “아, 옙.”

    루카스의 손바닥 위로 알린이 올라왔다.

    -파앗!

    그와 동시에 사라진 둘.

    “어으! 어지러워.”

    “족장에게 내가 왔다 전해라.”

    “우욱…… 잠시만요.”

    텔레포트의 후유증인지 알린이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 또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족장님 계십니까.”

    족장의 집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간 루카스가 그를 불러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열고 나온 족장은 루카스의 모습을 보고 쓰게 웃어 보였다.

    “오셨습니까.”

    “오랜만입니다. 급하니 안부는 나중에 묻겠습니다. 마족이 찾아왔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이 땅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마족이 돌아왔습니다.”

    족장에게 거듭 확인하고 나니 루카스의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마족이 돌아왔다는 것과 돌아온 그들이 픽시들의 마을을 찾았다는 것. 그것이 말해주는 바는 명확했다.

    벌써 준비 단계는 지났다는 것.

    “고위 마족인 듯싶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찾아와 부탁을 하더군요.”

    “이 땅을 차지할 수 있게 도와달라 했군요.”

    “예. 속뜻을 헤아리자면 그런 것이지요.”

    루카스의 심각한 표정을 본 족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은인님께서는 블루 드래곤의 계약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전에 저희 부족원을 구해주셨던 분이었지요.”

    루카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희가 감히 드래곤님을 찾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은인님께 실례되는 줄 알면서도 불쑥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족장이 고개를 꾸벅 숙여 사죄했다.

    “괜찮으니 계속 말씀하세요.”

    루카스는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당신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저는 마족들의 편에 서고 싶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될 것 같습니다.”

    족장의 눈빛이 결연하게 굳어지고, 루카스 역시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이리도 쉽게 그들의 편에 서겠다고 하다니.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 역시 마족들을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어 이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지요.”

    “그런데도 그들의 편에 서겠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루카스가 쓴 숨을 한번 삼켜냈다. 픽시들은 중요한 전력이 아님에도 너무나도 속이 상했다.

    루카스가, 그리고 아만이 불과 얼마 전 자신들의 손으로 구해낸 일족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아만이 블루 드래곤인 것도, 루카스가 그의 계약자인 것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에게 죄를 지은 마족의 편에 서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

    족장 역시 쓴 숨을 크게 삼켜내고는 말을 이었다.

    “드래곤들은 우리의 왕이며 지상을 평화롭게 지키는 수호자입니다. 마족들은 그런 드래곤에게 반기를 들었고, 죄를 지었지요.”

    족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허나 그 죄를 우리에게 지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은 우리에게 굳은 약속을 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우리들을, 우리들의 땅과 일족을 잃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

    족장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의 왕은 무얼 했습니까! 우리 일족이 인간들의 손에 잡혀간 그 수많은 세월 동안, 그 수 많은 일족들이 죽어가는 동안 무얼 했냐는 말입니까!”

    울분을 토하는 족장의 목소리가 갈라져 숲에 울렸다.

    “내 딸이!!! 내 하나뿐인 딸 세링이 수십 년 만에 집에 돌아왔음에도 넋이 나가 아직 정신도 차리지 못 하는데 우리의 왕은 무얼 했습니까!”

    작은 손으로 제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족장의 모습에 루카스 역시 가슴이 미어졌다.

    “미안합니다.”

    루카스가 고개를 숙였다. 진심이었고 또 진심이었다.

    족장의 말이 모두 맞았다. 그들이 핍박받는 동안에도 드래곤들은 방관했었다.

    그들의 생태계였기에. 질서를 크게 해치지 않는다면 내버려 두는 것이 맞았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들 마음 깊숙이 박힐 아픔이나 고통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드래곤들에겐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작은 생태계 중 하나였으며, 지나가다 겪게 되면 안타깝다며 한번 혀를 쯧 차 보이는 정도의 현실이었다.

    가끔 유희를 하던 중에 그것을 마주하게 되어 선심 쓰듯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그들에겐 행운이고 천운이 되어야 하는 일이었으며, 음유시인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두고두고 회자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크흑…… 하지만 그들은! 그들은 우리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지켜주겠다고 말입니다. 인간들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겠다고 말입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족장이 통곡했다.

    “하지만 족장님…….”

    루카스가 차마 다음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들에게 우리를 다시 믿어달라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마족의 편에 서지 말아달라 할 수 있는가?’

    루카스의 머릿속에 온갖 질문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족장은 내가 아만의 계약자인 것을 알면서도 알리러 왔다.’

    루카스의 생각대로라면 그들 역시 드래곤을 다시 한번 믿어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한번 믿어달라 할 수 있나? 나는 지금 드래곤이 아닌데.’

    바닥에 주저앉아 작은 몸을 떨며 통곡하는 족장.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픽시들의 울음소리 역시 루카스의 귓전을 맴돌았다.

    “계약자를 데려오겠습니다. 이건 드래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 입을 맴돌던 말을 모두 집어넣은 루카스가 몸을 돌렸다.

    -투캉!

    그때 쏘아진 얇은 마력이 루카스의 팔을 꿰뚫었다.

    “윽…….”

    온몸에 전해지는 생생한 고통에 루카스가 꿰뚫린 제 팔을 붙잡고 신음했다.

    그와 동시에 펼쳐지는 장막.

    “기습입니다. 저는 괜찮으니 어서 안으로 피하세요.”

    먼저 자신과 족장 주위로 방어 마법을 펼친 루카스가 탐색 마법을 펼쳤다.

    ‘젠장. 더럽게 아프군.’

    그와 동시에 제 팔에 치유 마법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고통이 가신 루카스가 탐색 마법에 걸린 이질적인 기운을 쫓아 텔레포트했다.

    -파앗!

    루카스가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지는 잿빛 신형.

    ‘죽여버리겠다.’

    -파앗!

    다시 시전된 텔레포트. 그리고 또다시 사라진 적의 모습에 루카스는 직감했다.

    ‘나를 죽이겠다는 거군.’

    그저 한 번의 공격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들은 루카스의 마나를 모두 소진하게 해서라도 죽이겠다는 각오를 한 듯 보였다.

    ‘셋인가. 시전 속도를 보니 무시할 만한 상대가 아니다.’

    몇 서클인지도 모르는 고위 마법사가 셋.

    ‘마나가 문제가 아니다.’

    7서클이 채 되지 않는 지금, 상대의 수준을 알지도 못한 채 마나 드레인을 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픽시들의 마을이었으니 대단위 마법을 퍼부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소를 옮길 수도 없었다.

    ‘내가 떠나면 픽시들을 노릴 수도 있다.’

    루카스의 짐작대로라면 그들은 지상에 올라온 고위 마족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루카스와의 만남을 보고 픽시들을 모두 죽이려고 한다면?

    ‘아니, 그들은 픽시가 문제가 아니다. 드래곤에게 알려지는 것이 더욱 문제겠지.’

    짧은 시간동안 모든 생각을 정리한 루카스가 결단을 내렸다.

    -파앗!

    루카스가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역시.’

    그와 동시에 따라붙는 셋을 보며 루카스는 확신했다.

    ‘노리는 것은 바로 나였군. 이곳으로 오길 잘했어.’

    하지만 루카스가 곧장 아만에게 왔더라면 그들은 당장에라도 픽시들에게 돌아가 그들을 모두 몰살시켰을 것이다.

    때문에 루카스는 아만이 있는 곳이 아닌 마레 호수 앞으로 곧장 텔레포트했다.

    “안 나올 건가?”

    루카스의 말에도 그들은 모습을 숨긴 채 나타나지 않았다.

    ‘배리어와 탐색 마법을 같이 유지하고 있으니…….’

    그들은 루카스의 마나가 고갈되는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것이다.

    투명화 마법을 유지하는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일은 간단했으나, 루카스는 그와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한 번에 잡는다.’

    루카스가 배리어의 강도를 조금씩 낮추기 시작했다.

    “겁을 먹은 모양이군.”

    그러고는 허공에 대고 허세를 떨기 시작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드래곤의 계약자다! 마나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고위 마법사들이라면 이미 루카스의 배리어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계약자가 온다면 너희는 모두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같잖은 수를 쓰지 않고 나오는 편이 좋을 것이다.”

    루카스는 그와 함께 목소리를 살짝 떠는 연기력까지 선보였다.

    한층 더 약해지는 배리어. 그와 함께 그들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거의 다 됐어.’

    루카스가 자신의 몸을 감싼 배리어의 강도를 조금 더 낮췄다.

    ‘조금만 더.’

    조금 더.

    ‘지금!’

    -콰르르릉! 쿠쾅! 콰콰쾅! 콰직! 콰지직!

    순식간에 대지가 흔들리더니 하늘에서 번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꽂히는 수십 개의 얼음 창까지.

    -투캉! 투캉!

    누구라도 그런 기습에선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확인 사살까지 했다.

    루카스가 선 자리가 희뿌연 연기로 뒤덮이자, 그제야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단한 인간이군.”

    “나도 놀랐네.”

    “이 정도면 죽었겠지?”

    그들은 루카스가 죽어있을 자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잿더미가 되었겠지. 뭘 또 확인하려고 그래. 가자고.”

    “하긴.”

    그때 그들을 감싸는 이질적인 기운.

    “응?”

    그에 이상함을 느낀 사내 하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얘들아 안녕?]

    아모레가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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