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마족의 후손 (2)
루카스가 도착한 곳은 잊혀진 마족들의 땅이라 불리는 델러다칸이었다.
“공기부터가 기분이 나쁘군.”
주변을 둘러보는 루카스의 표정이 언짢았다.
동쪽 아래에 자리한 작은 대륙에 있는 델러다칸.
그 양옆으론 드워프의 땅인 이그노스와 옛날엔 엘프가 살았다고 알려진 제라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그노스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곳은 거의 버림받은 땅이나 다름없었다.
‘후손들이 있으려나.’
마족들이 마계로 떠난 뒤, 순혈 마족이 아닌 혼혈 마족들은 델러다칸을 비롯한 전 세계에 남겨졌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종적을 감췄다.
가끔 델러다칸을 찾는 마족 혼혈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대를 거듭해도 옅어지지 않는 잿빛 피부와 작게 돋아난 뿔 등의 외형은 그들을 더욱 숨어들게 만들었고,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드래곤의 미움을 받은 종족, 마족.
작은 오해에서 시작된 불화는 그들을 더 이상 이 땅에 머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기척이군.’
음습한 숲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루카스는 걸음을 옮겼다.
야광수를 비롯한 고목들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
깊은 숲속에 꽁꽁 숨겨진 작은 오두막들은, 혹여 누군가 찾아올까 겁이라도 내는 듯 까만 칠이 되어있었다.
‘마족의 후손들이군.’
남아있는 숫자가 몇 되진 않겠지만, 그들은 아직 살아가고 있었다.
-짤랑! 짤랑! 짤랑!
오두막에 다가서자, 침입자를 알리는 듯한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쾅!
가장 앞에 있는 오두막의 문이 거칠게 열리고, 그곳에서 잿빛 피부를 가진 사내 하나가 뛰쳐나왔다.
“누구냐!!!”
사내의 날카로운 음성이 숲에 울려퍼지자, 루카스는 당황스러웠다.
‘누구라고 해야 되나.’
지금 루카스는 누군가의 잘못을 물으러 온 것도 아니었고, 그저 저들에게 작은 정보를 물으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저런 날카로운 반응이라니.
“뭘 좀 물으러 왔는데.”
당혹감이 가시자,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뭐 잡아 먹는다고 하던가?’
루카스가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묻자, 사내 역시 손에 창을 든 채 공격 태세를 갖췄다.
“뭘 물으러 와!? 인간 놈들이 여기 와서 물을 게 뭐가 있다고! 당장 꺼지지 못해?!”
사내가 당장이라도 창을 제게 내던질 듯 위협하자, 루카스 역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는 마법사다. 그 창을 내려두지 않는다면 나 역시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루카스의 손에 얼음 창이 생겨나자, 사내는 주춤거리며 한 발짝 물러섰다.
“우리 역시 마법사는 있다.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사내의 외침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럿이군.’
마족은 본래 마법에 능한 종족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혼혈 마족이라 한들, 마법사 몇쯤 있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해준다면 출혈은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친 루카스의 등 뒤로 수십 개의 얼음창이 동시에 생겨나자, 사내는 작게 숨을 삼켰다.
“크윽…….”
“자, 묻는 말에 대답할 준비는 됐나?”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없소.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종족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주시오!”
사내는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이었다.
‘멍청하진 않군.’
사실 루카스 역시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으나, 문을 열고 튀어나온 사내의 잿빛 피부와 작은 뿔을 보니 저도 모르게 짜증이 치솟았다.
사실 일을 쉽게 해결하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마족으로 폴리모프 할 걸 그랬나. 아니, 그래도 그건 기분이 나쁘지.’
그의 생각대로 마족으로 폴리모프했다면, 그들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루카스를 집 안으로 들였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종족이 고향으로 찾아왔다 생각하겠지.’
하지만 루카스는 그 방법만은 택하고 싶지 않았다.
“너희를 해칠 생각은 없다. 그저 몇 가지 묻고 싶을 뿐이다.”
“알겠소.”
루카스가 얼음 창을 모두 거두자, 사내 역시 손에 든 창을 조심스레 내렸다.
“마왕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가?”
루카스의 물음에 사내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마왕…께서 말이오?”
“그래. 마왕 말이다.”
사내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 역시 아는 것이 없는 듯 보였다.
‘하긴. 반쪽짜리도 아닌 제 후손에게까지 말을 전할 필요는 없었으려나.’
“들은 것이 없소. 그런데 마왕님이 돌아오셨다면 마계는 어떻게 된 거요?”
도리어 사내는 루카스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됐다. 묻고 싶은 것에 대한 답은 충분히 들은 것 같군.”
루카스가 돌아서자, 사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시만! 마왕님께서 돌아오셨다면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요? 우리 역시 마계로 갈 수 있는 거요?”
“모르겠군. 하지만 마왕은 이미 너희를 버렸다. 반쪽짜리 동족은 필요 없다고 선포까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도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건가?”
사내의 질문에 루카스가 비아냥거렸다.
루카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마신이 마계를 부여받아 마족들을 모두 이주시켰을 때, 그들은 제 후손인 혼혈 마족들을 버렸다.
‘더러운 혼종은 필요없다.’고 말이다.
때문에 그들은 마계로 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은 것이었다.
“그래도 이곳보다는 낫겠지.”
“하, 이곳보다는 낫겠다고? 너흰 어차피 마계로 함께 떠났어도 같은 꼴이었을 것이다. 동족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기분을 모르진 않을 텐데?”
“당신이 뭘 알겠어? 모두가 떠난 곳에 버려진 자들의 기분을 말이야. 우린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하고 더러운 취급을 당하는 그 기분을 당신이 알아?!”
사내의 격앙된 목소리가 루카스를 향해 쏘아졌다.
“그러니 네놈들이 드래곤에게 미움을 받은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루카스가 차갑게 받아치자, 사내는 손에 들린 창을 다시 높게 치켜들었다.
“어디 백 년도 못 사는 애송이 주제에! 감히 우리의 역사를 논해?!”
“내 말이 틀린가? 네놈들이 당시의 드래곤 로드에게 실수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천 년도 못 사는 애송이들 주제에 감히 드래곤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그 꼴이 난 거다.”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한 사내가 루카스에게 달려들자, 곳곳에서 들끓던 마력이 루카스에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쿠아아앙! 콰쾅! 쾅!
루카스가 여유롭게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창과 함께 날아든 마법들이 모두 장벽에 막혀 스러지기 시작했다.
“젠장 할!”
바닥에 떨어진 창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주변에 널브러진 나뭇가지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네놈들이 안 되는 것이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니 말이야.”
희뿌연 연기를 헤치고 나온 루카스가 여유롭게 웃었다.
“천 년 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아주 멍청하고 무식한 족속들이로다.”
“그, 그게 무슨……!”
루카스의 말에 놀란 사내가 뒤로 물러섰다.
“네놈들의 조상이 왜 마계로 쫓겨났는지는 아느냐?”
“…….”
“감히 드래곤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해였든 아니든 속였다는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매한 네 종족들이 모두 학살당할 뻔하고, 결국 보다 못한 마신이 ‘피신’시켜 준 것이다. 알고 있느냐?”
“다 거짓말이다!”
“그렇게 믿고 싶겠지. 그저 네놈들은 핍박받았던 그 순간들을 수없이 되뇌며 원망의 화살을 돌릴 곳만 찾았을 것이니.”
“너 같은 야비한 인간 놈이 하는 말을 우리가 믿을 거라 생각하느냐?”
사내의 말에 루카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믿으라고 안 했다. 그저 사실을 말해준 것뿐이지. 종족에게 배신당한 네놈들이 불쌍하고 가여워서 그냥 가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오도록 해라.”
-파앗!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선 루카스가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
혼혈 마족의 또 다른 주둔지로 알려진 곳인 칸트 섬에 도착한 루카스는 쓴 숨을 삼켰다.
사실 그들을 몰아낸 장본인은 루카스였다.
천 년 전, 지금의 마왕인 야스탄은 루카스의 전생인 라노스에게 작은 실수를 했다.
그 사건이 있기 전 드래곤들은 마족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마법 생물인 그들은 마법에 능통한 마족들을 어여삐 여겼으며, 마물들과 소통이 가능한 그들의 능력 역시 높게 샀다.
때문에 몬스터와 마물들의 왕인 드래곤은 마족들에게 그들을 관리할 권한을 나누어 줬으며, 인간들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의 화합 역시 그들에게 위임했었다.
때문에 마족들은 드래곤의 가호를 등에 업고, 다른 종족들을 통솔하고 화합하며 그렇게 살아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간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들이 차지하는 땅이 많아지면서 문제는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영악했으며, 마족들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을 조종하고 이용하는 데에 능통했다.
‘야스탄…….’
마왕이었던 야스탄 역시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루카스 역시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으나, 이미 때는 너무 늦고 말았다.
‘인간들에게 속았다 한들 일을 바로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야스탄은 그러지 않았지.’
그때를 회상하는 듯 루카스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렇게 한참 회상을 이어가며 칸트 섬을 돌던 때였다.
-두웅…….
섬 깊은 곳에서 공명음이 들려왔다.
-파앗!
루카스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단숨에 텔레포트했다.
‘동굴?’
작은 섬 한가운데 자리한 산 중턱에 있는 동굴.
소리는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우웅…….
점점 더 크게 울리는 소리에 루카스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우우우웅…….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
동굴 안으로 들어선 루카스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한 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동굴에선, 소리가 들려오는 대략적인 위치만 가늠할 수 있을 뿐, 소리를 내는 것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건 마치…….’
-두우우우웅…….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커다란 놋쇠 항아리를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도대체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거야?’
작은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가 섬 전체에 퍼져나갔다.
동굴 가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루카스.
그가 동굴 벽면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두우우우웅…….
‘계속 듣다 보니 도통 어디서 울리는지도 이젠 모르겠군.’
동굴 한가운데 서 있으니 이젠 소리가 왼쪽 벽에서 울리는지 오른쪽 벽에서 울리는지도 구분이 잘 안 가기 시작했다.
-두우우우웅…….
‘옘병,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마족의 후예를 찾으러 왔는데, 그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이상한 소리나 쫓아야 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두우웅! 두우우웅!
그때 공명음의 박자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
그와 함께 엄습하는 불안감.
-두우웅! 두웅!
“젠장.”꼼꼼히
점점 빨라지는 박자.
-둥! 둥! 둥!
루카스는 당장이라도 동굴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공명음이 멈추고.
“하……. 불안한데.”
어두웠던 동굴에 빛이 쏟아졌다.
[안녕? 오랜만이지?]
‘이럴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