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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19화 (119/225)
  • 119화. 은혜 갚으러 왔습니다

    아카데미로 돌아온 아이들은 빠르게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하, 또 시험이라니!”

    각인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모두 입이 댓발이나 튀어나와 있었다.

    마법 아카데미는 매일이 테스트의 연속이었다.

    그 주에 시험이 없는 과목은 거의 없었으며, 하다못해 쪽지 시험이라도 항상 치러야 했다.

    “야, 이만큼 했으면 너도 익숙해질 때도 안 됐냐? 각인 교수 성격 알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렇긴 해. 저번 주에도 정식 테스트였는데 이번 주에도 정식 테스트라니? 쪽지 시험도 아니고 말이야.”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하…….”

    스키르 역시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아니, 넌 왜 또 한숨인데?”

    “나는 각인이 너무 어렵다.”

    “야, 너한테 안 어려운 게 있긴 하냐?”

    폴라의 타박에 스키르는 입을 삐죽였다.

    “그보다 이번 각인 시험은 진짜 어렵긴 하겠다.”

    “지난번 철검 각인도 진짜 어려웠는데. 하, 오리칼쿰 각인이라니.”

    아이들의 말에 루카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겠어.’

    각인의 경우, 같은 수준의 마법이라고 해도 각인이 새겨지는 대상의 재질에 따라 그 난이도가 달라졌다.

    때문에 양피지보다는 가죽이, 가죽보다는 철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광물 중 단단하기로 이름난 오리칼쿰이라니. 극악의 난이도가 예상되었다.

    “휴… 진짜 큰일이네.”

    “그러게…….”

    아이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가득 드리웠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잘할 수 있어. 일단 점심 먹으러 가자.”

    루카스가 아이들을 다정히 달랬다.

    “알겠어.”

    식당에 도착한 아이들은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로드리고가 장남이라지?”

    “어머, 저 흑발 좀 봐.”

    “오닐가 차남도 좀 보라고. 저 집 장남은 뭐 때문인지 미쳐버렸다고 하던데…….”

    “그런 소문들 좀 믿지 마. 지난번에 사교계에 멀쩡히 얼굴을 내밀었던데 뭐.”

    뒤에서 들려오는 수군대는 소리에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야, 스키르. 신경쓰지 마. 저런 소리 하루이틀이야?”

    “흥. 신경 안 쓴다. 그저 멍청이들이 떠드는 소리일 뿐.”

    “오~ 많이 컸다?”

    폴라가 스키르의 머리칼을 장난스레 흩뜨렸다.

    “언니, 이따 우리 도서관 가볼까?”

    “도서관? 왜?”

    넬라의 물음에 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각인 시험 준비해야지. 도서관에서 자료도 좀 찾아보고.”

    “흐음… 맞네. 그래. 같이 가자.”

    “나도 같이 가지.”

    “그래, 루키 너도 갈래?”

    스키르까지 합류하자, 폴라가 루카스에게 물어왔다.

    “아니.”

    “단호하네. 그래, 뭐.”

    루카스가 곧바로 고개를 젓자, 폴라는 어깨를 한번 으쓱인 뒤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사실 루카스는 브랑디의 죽음 이후로 도서관 근처에 가는 것조차 꺼려졌다.

    ‘너무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루카스는 브랑디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꼈다.

    자신이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조금 더 그를 들여다보고 돌봤더라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 이따 수업 끝나고 도서관 가보자.”

    “그래.”

    ***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은 도서관을 찾았다.

    “야, 키르. 너 아까 그 책 어디서 찾았다고 했지?”

    “저쪽이다.”

    폴라의 물음에 스키르가 손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안내해.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고.”

    “하, 나도 지금 책을 보고 있…….”

    폴라가 당당하게 턱짓을 척 해 보이자, 스키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짜증을 부렸다.

    “말로 할 때 빨리 안내하라고!”

    하지만 그 짜증은 폴라가 주먹을 치켜들자 끝나고 말았다.

    “포, 폴라! 숙녀가 그런 행동은 나쁘다고 하지 않았는가!”

    “시끄러워! 진짜 나쁜 행동이 뭔지 보여줘?! 엉?!”

    뒷골목 불량배처럼 폴라가 한쪽 다리를 떨자, 스키르 역시 몸을 떨었다.

    “정말 그런 나쁜 행동은 어디서 배운 것인지… 으악! 폭력은 안 된다. 폴라!”

    “언니, 오빠. 도서관에선 조용히 해야지.”

    넬라의 일침에 폴라와 스키르가 입을 ‘헙’ 하며 틀어막아 보였다.

    아이들이 투닥거리며 언성을 높일 때, 파멜라는 도서관 안쪽에 있는 사서의 방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폴라… 라고?’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이름이 나오자, 파멜라는 저도 모르게 문을 열고 나갈 뻔한 것을 겨우 참아냈다.

    ‘아냐, 폴라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니까.’

    그렇게 파멜라는 문고리를 몇 번이나 잡았다 놓았다 하기를 반복했다.

    ‘그래, 아닐 거야. 그리고 폴라가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여긴 마법 아카데미인걸.’

    작게 고개를 끄덕인 파멜라가 다시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

    로드리고 백작가.

    “시비에 백작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집사장의 말에 시비에는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놨다.

    “케이틀린 맥레인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도련님의 손님입니다만, 도련님께서 지금 부재중이시니…….”

    “루카스의 손님? 알겠네. 응접실로 모시게.”

    “네.”

    저도 아닌 자신의 아들을 찾아온 손님이라니?

    시비에는 걱정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호기심이 일었다.

    ‘흐음…… 이름을 들어보니 여자인 것 같은데.’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시비에의 머릿속에는 벌써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잘생기긴 했지. 암. 그렇고말고.’

    시비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혹시……,’

    그러다 어딘가에 생각이 미치자, 시비에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니, 아닐 거다. 우리 루카스가 그런 애는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비에의 얼굴에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아니, 아니지. 우리 아들은 아닌데 저 여자가 나쁜 사람일 수도 있으니……!’

    다시 어두워지는 얼굴.

    ‘아니다. 우리 아들이 사람보는 눈이 그리 없지는 않을 것이니…….’

    응접실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시비에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했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짙은 초록빛 머리에 초록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오… 미인이로군. 역시 내 아들답게… 아니, 이게 아니지.’

    여자의 외모는 짧게나마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다.

    “안녕하세요. 케이틀린 맥레인입니다.”

    자신을 소개해 보이는 여자의 행색은 그리 말끔하지 않았다.

    가죽으로 된 로퍼는 여기저기 헤져있어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지 의심스러웠고, 그녀가 입은 옷 역시 여기저기 기워져 있었다.

    “시비에 로드리고 백작입니다. 우리 아들을 찾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흐음…… 우리 아들을 어떻게 아시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여자를 보는 시비에의 눈초리가 예리했다.

    “아드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드님께서 제가 험한 일을 당할 뻔한 것을 구해주셨지요.”

    “호오…… 우리 루카스가요?”

    여자의 말을 들은 시비에의 얼굴에서 더 이상 의심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 아들이 밖에서 사람을 도왔다니!’

    제 아들이 밖에서 누군가를 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시비에의 어깨는 한껏 솟아있었다.

    “네. 사실 성함은 듣지 못했으나 로드리고 백작가로 찾아오라는 말씀과 흑발과 흑안을 가진 사람은 이곳의 장남뿐이라는 말을 듣고 알 수 있었습니다.”

    “허허허! 맞습니다. 자, 앉으시지요. 먼 길을 오셨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시비에가 얼른 손을 뻗어 제 앞자리를 권하자, 여자는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요. 제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그쪽을 도왔는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시비에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아, 네. 실은 몇 년 전 일입니다. 제가 빚을 꼭 갚겠다고 하니 이곳으로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송구스럽게도 이제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허허허! 몇 년 전에 있던 일을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왔으니, 우리 아들이 사람 보는 눈이 확실히 있나 봅니다. 집사장! 여기 차랑 다과를 좀 내오세요!”

    한껏 기분이 좋아진 시비에가 집사장을 불러 손님맞이에 돌입했다.

    “자, 그래서 어디서 어떻게 아들이 그대를 도왔는지 들어봅시다!”

    신이 난 시비에의 채근에 여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자의 말을 듣던 시비에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제 아들이 150골드라는 거금을, 그것도 몇 년 전에 내어준 것도 놀라운데, 그녀를 만난 곳이 다름 아닌 라스칸 왕국 국경 지대인 리타 마을이라니?

    제 아들이 언제 거기까지 갔다는 말인가!

    “리타 마을이요? 제가 아는 리타 마을은 라스칸 왕국에 있는 곳인데…….”

    “네. 맞습니다. 이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럼에도 몇 년이나 지나 찾아오다니…… 다시 한번 너무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크흠. 흠. 아닙니다. 이야기를 계속하시지요.”

    시비에가 얼른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고 여자를 재촉했다.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입니다만…….”

    “아, 그렇습니까.”

    “예. 그리고 이거…….”

    여자가 제 품에서 작은 꾸러미 하나를 꺼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꽤나 묵직해 보이는 그것을 시비에 앞에 내려둔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때 아드님께서 절 도와주셨던 150골드에, 적지만 이자를 조금 더 보태 넣었습니다.”

    “허허…….”

    꾸러미를 열자, 큰 액수의 금화가 아닌 작은 액수의 금화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 모습만 보아도 여자가 얼마나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애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고맙지만 이 돈은 제가 받을 수가 없겠군요.”

    시비에가 그 꾸러미를 다시 여자의 앞에 밀어놓았다.

    “……예?”

    “제 아들이 그대를 도운 것엔 분명 뜻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백작가로 오라고 한 이유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제 아들에게 직접 물어봐야겠군요.”

    “하지만…….”

    시비에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다가갔다.

    “수정구입니다. 어디 보자…… 딱 좋군요. 지금쯤이면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왔을 시간입니다.”

    싱긋 웃은 백작이 수정구를 들고 응접실 테이블로 돌아왔다.

    “자, 저희 아들과 직접 이야기해 보세요.”

    수정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루카스와 연결되었다.

    [예. 아버지.]

    “오! 루카스. 오늘 수업은 어땠느냐?”

    [평소와 같았습니다.]

    사뭇 딱딱한 아들의 대답에도 시비에는 방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백작가에 너를 찾아온 손님이 계시다. 성함이…….”

    “케이틀린 맥레인입니다.”

    “오오, 그래. 케이틀린 맥레인 양이라고 하는구나.”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이름이 들려오자, 수정구 속에 있는 루카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몇 년 전에 네가 구해줬다고 하더구나. 우리 아들은 어쩜 이렇게 옳고 바른지! 하하하!”

    [그, 급한 일이 있어서…….]

    “자, 케이틀린 양!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루카스의 말을 무시한 백작이 케이틀린에게 손짓했다.

    “안녕하세…… 어?”

    수정구로 다가선 케이틀린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이 사람이 아닌데?!’

    수정구 속에 비친 루카스의 모습이 몇 년 전 자신이 봤던 그 모습과 달랐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아버지와의 문제는 잘 해결했나?]

    하지만 태연하게 말을 잇는 루카스의 모습에 무언가 눈치챈 케이틀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고 말을 이었다.

    “예. 덕분입니다. 빚을 갚는 데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케이틀린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루카스가 은은하게 미소지었다.

    [실력이 늘었군. 곧 그쪽으로 갈 테니 만나서 이야기하지.]

    “그게 무슨 말이냐? 이쪽으로 온다니.”

    시비에가 물었지만, 이미 수정구에는 암흑만이 남아있었다.

    “나 원…. 케이틀린 양. 우리 아들……?!”

    수정구에서 눈을 뗀 시비에가 고개를 들자, 그곳엔 루카스가 서 있었다.

    “아, 아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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