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17화 (117/225)
  • 117화. 큰 거 온다. (1)

    “하아… 하아…….”

    교주의 목소리에 망설임 없이 스크롤을 찢은 파멜라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하아… 하아… 여기가 어디지?”

    어딘가의 지하로 보이는 텅 빈 공간.

    드문드문 박혀있는 야광석 덕에 시야 확보는 가능했지만, 파멜라는 도통 이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교당의 숨겨진 공간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 파멜라가 조심스레 걸음을 뗐다.

    그녀는 주변을 살피면서도 혹여나 교주가 쫓아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수많은 스크롤 중에 하필이면……’.

    언젠가 교주의 방에서 훔친 스크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녀가 여태 버틸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여태 스크롤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설령 도망친다 해도 교주가 자신을 찾아낼 것을 알았기 때문.

    하지만 오늘 오두막을 찾아온 교주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고, 힘이 빠져 보였다.

    게다가 드래곤이 나타났다니? 그렇다면 상황이 다를지도 몰랐다.

    그리고 파멜라의 생각이 맞았는지, 아직까지 교주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언제 쫓아올지 몰라.’

    파멜라의 걸음과 눈이 빨라졌다.

    아무것도 없는 지하공간. 그곳에서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는 파멜라.

    -달칵.

    최대한 천천히 문고리를 돌리자, 다행히 잠겨있지 않았던지 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 틈새로 살짝 살피자, 아무것도 없는 다른 공간이 보였다.

    -끼이이익.

    망설이던 파멜라가 문을 천천히 열고 밖으로 나가자, 다른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였다.

    꿀꺽. 마른침을 삼켜낸 파멜라가 걸음을 옮겨 다음 층으로 향했다.

    ‘여기 있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아직 내가 도망친 걸 아는 사람은 없을테니, 이곳이 다른 교당이라면…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몰라.’

    생각을 마친 파멜라가 졸아있던 가슴을 살짝 편 뒤 계단을 올랐다.

    “후우우…….”

    깊은 숨과 함께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달칵.

    문을 열었다.

    ***

    앨리가 한바탕 난리를 친 다음, 아만은 곧장 루카스를 쪼르르 찾아왔다.

    “정말 큰일이군.”

    “큰일입니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루카스 역시 심각한 표정이었다.

    “앨리. 그 아이는 막 태어났을 때부터 성깔이 눈에 보였던 아이였다.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라고 해야 옳겠군. 알 껍질이 잘 깨지지 않는다고 소리부터 지르는 해츨링은 처음 봤으니.”

    “예? 소리를 질러요? 그 안에서 소리가 질러지는 거였습니까?”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걸 본 앨리의 부모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껍질 깨는 것을 도와주어도 되느냐고 묻더군.”

    그때를 회상하는 듯 루카스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 앨리는 떡잎부터 달랐네요.”

    정말이지 심각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자신이 로드로 있던 시절에도 역시 화를 참지 못하는 드래곤은 많았다.

    때문에 종족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화를 입은 인간들이 제사를 지낸답시고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었다.

    “그래서 하셀은 어떻게 한다고 하던가?”

    “아버지께서도 걱정이 많으십니다. 앨리가 사고를 친 것은 둘째 치더라도 장로분들과 함께 계획하던 일이 모두 틀어진 것 같았습니다.”

    아만의 말에 루카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내가 하셀을 로드 자리에 앉힌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하셀은 현명한 드래곤이니 모두 계획이 있었을 텐데, 앨리 녀석이 다 망쳐버렸겠군.”

    이번엔 아만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카데미는 어떻게 되는 건가? 황성 근처에 부활교 본청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아, 앨리가 또 조준을 잘 했더라구요. 교당만 파삭! 하고 부서졌습니다. 근처는 나름 멀쩡하구요. 뭐 저희도 회의는 하겠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을테니 학기는 그대로 진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 아카데미도 그렇지만 부활교 신자들도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신도 수도 많았을 텐데 말이야. 별다른 이유 없이 화를 입었다 생각한다면, 그 모든 화살이 드래곤에게 돌아올 것이다.”

    루카스의 말이 맞았다. 부활교는 이제 막 몸집을 불려나가기 시작한 신흥 종교였다.

    게다가 탄탄한 신도들의 믿음과 신앙심이 더해지니, 그들의 힘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제국뿐 아니라 다른 왕국에도 부활교의 교당이 하나씩 지어지고 있었고, 그들의 포교 활동은 실로 대단했다.

    “로드 말씀이 맞습니다. 그 문제도 저희 역시 논의 중입니다만, 당장 부활교를 뿌리 뽑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그렇겠지. 신도들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치 부모가 교제를 반대하면 인간들의 사랑이 더욱 불타는 것과 같은 이치로 그들 역시 더욱 단단하게 뭉쳐질 가능성이 높다.”

    “예. 때문에 교주를 먼저 처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앨리의 화가…….”

    루카스가 손을 들어 아만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교주가 안 죽었다는 말인가?”

    “어? 모르셨습니까? 교주 도망쳤습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교주의 시체가 나오질 않았으니 도망친 것이라 보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 드래곤의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흩어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어이가 없었건만…….”

    어이가 없는 것은 드래곤의 브레스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드래곤의 기운이란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맥을 추지 못하고 힘이 빠져 무릎을 꿇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산을 오르다 호랑이를 정면에서 마주하면 어지간한 인간들은 그 자리에서 몸이 굳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호랑이도 그러한데, 드래곤은 어떠하겠는가?

    그런데 교주라는 자는 화가 난 드래곤의 기운을 이겨내고 도망까지 쳤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군.”

    “예.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앨리의 말로는 그가 인간이 아니었다고 하니…….”

    “인간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마치 시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데드는 또 아닌 것이……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고 하더군요.”

    머리가 아픈 듯 루카스가 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일이 심각해지는군. 도대체 앨리 그 애는… 하, 아니다. 되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타박해서 뭐 하겠나.”

    “앨리도 많이 속상해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 애들은 어떻습니까?”

    아만이 폴라와 스키르의 상태를 물어왔다.

    그들은 용병 단원들의 죽음을 마주한 뒤로 계속 상태가 좋지 못했었다.

    “이제 많이 나아졌다. 밥도 먹기 시작했고.”

    “다행이군요.”

    아이들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고 있긴 했으나, 아직까지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아직 백작 부부는 아이들이 바깥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나, 어떠한 일이 있었던 것쯤은 눈치껏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 아버지인 백작이 아이들이 왜 저러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아카데미가 운영된다고 하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돌아가는 것이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아! 맞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아만이 소리쳤다.

    “……?”

    “알고 계셨습니까? 저희 계약의 인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렇군.”

    아만과 맺었던 계약은 루카스와 아이들이 잘못된 던전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옅어져 있었다.

    때문에 아만의 마나를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가 없어, 사막 한복판에서 아이들과 그 생고생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계약의 인이 다시 짙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그때 그 던전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큰일이 아닌가. 고작 인간들 따위가 드래곤과의 계약을 옅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 말이야.”

    “아니길 바라지만…… 맞는 것 같습니다.”

    “후우…. 하셀이 다른 말은 안 하던가?”

    “아, 아버지께서… 앨리에게 말씀하시길 이 모든 배후에 마왕이나 마신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만의 말에 루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왕이나 마신이라니?”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루카스는 이제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왔다.

    “많이 불편하시면 약을 좀 드시죠.”

    “됐다. 너도 바쁠텐데 얼른 가봐라. 네 말대로라면 어차피 계약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애들 정도는 내가 지킬 수 있다.”

    아만의 걱정스러운 말에 루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네.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그리고…….”

    “……?”

    “아버지께서 잘 처리하실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마세요.”

    아만이 미소짓자 루카스 역시 작게 웃어 보였다.

    “그렇겠지. 나 역시 너희 모두를 믿는다.”

    ***

    “하, 그게 또 무슨 말입니까? 침입자라니요?”

    아카데미로 돌아온 아만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짜증나는 소식에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아카데미 한복판에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점심시간에 말입니다. 우선 가둬놓긴 했으나 이걸 어찌해야 좋을지…….”

    “안내하세요.”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따라나서자, 결계가 쳐진 빈방에 갇힌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의 온몸은 멍투성이었으며, 얼굴이며 팔에 피딱지가 가득했다.

    게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는 퉁퉁 부어 소시지 같았다.

    “나가보세요.”

    관리인을 내보낸 아만이 방으로 들어서자, 여자는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섞지 마라.”

    “저, 저는…….”

    “묻는 말에만 대답해.”

    아만의 차가운 음성에 여자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이름은 무엇인지, 아카데미에 온 목적이 모두 말해라. 그리고 널 누가 보냈는지까지.”

    아만의 질문에 여자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세를 고쳤다.

    “후우우…….”

    “?”

    그런 여자의 태도에 아만은 알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제 이름은 파멜라 세렌티입니다. 부모는 없습니다.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살려고 왔습니다. 도망쳤습니다. 스크롤을 썼고, 그 스크롤이 아카데미와 연결되는 것인 줄은 몰랐습니다. 누구도 저를 이곳으로 보내지 않았으며, 목적은 없습니다.”

    여자는 분명 겁먹은 표정이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보다 똑똑히 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네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손 하나만 까딱해도 알 수 있다.”

    그런 그녀의 똑부러진 태도에 아만의 목소리가 한껏 누그러졌다.

    “알고 있습니다. 이곳은 마법 아카데미고 제 앞에 계신 분은 이곳의 학장님이신 것도요. 혹시 제 말이 거짓이라면 제게 어떤 벌을 내리셔도 좋습니다.”

    “좋다.”

    아만이 품 속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 들어 여자에게 건넸다.

    “마셔라. 진실의 영약이다. 그걸 모두 마시고 방금 했던 말을 똑같이 해봐라.”

    약병을 받아 든 여자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망설임 없이 약병의 뚜껑을 뽑아 들었다.

    “자, 말해봐라.”

    약을 모두 들이켠 여자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속사포처럼 뱉어냈다.

    ‘진짜군.’

    “어디서 왔지?”

    “부활교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입에서 나온 ‘부활교’라는 단어에 아만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해갔다.

    “부활교? 그곳에서 널 보낸 건가?”

    “아닙니다. 저는 그곳에 잡혀있었고,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부활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교주의 최측근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평사제들보다는 많이 알고 있을 겁니다.”

    아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나타난 것도 모자라 교주의 최측근이라니?

    “네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저는 교주에게서 도망쳤습니다. 지금도 교주가 저를 찾으러 올까 무섭습니다.”

    여자를 천천히 내려다보는 아만의 표정이 심각했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교주의 최측근이라는 이 여자를 당장 없애야 할지, 그게 아니라면 진실의 영약을 믿고 여자를 우선 곁에 두고 감시해야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우선 네 말을 믿어주지.”

    아만이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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