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16화 (116/225)
  • 116화. 앨리의 소중한 개미집 (3)

    재앙.

    사람들은 이것을 재앙이라 불렀다.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현장엔 건물이었던 무언가의 잔해들과 함께 희뿌연 연기만이 피어나고 있었다.

    [같잖은 인간 주제에…….]

    여유로운 날갯짓에 찬란한 황금빛 몸체가 두둥실 떠올랐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앨리의 입에선 간간이 불길이 솟구쳤다.

    “드래곤…. 드래곤…….”

    처음 마주한 거대한 존재에 인간들은 넋이 나간 듯 하늘을 바라봤고, 개중엔 멀리서 느껴지는 기운에도 정신을 잃고 혼절한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부터 다들 잘 들어라.]

    우레와 같은 목소리가 대지를 울리자, 인간들은 모두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부활교니 뭐니 이런 같잖은 짓거리를 하는 행태가 또 보인다면, 모두 부활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그때였다.

    -쿠아아아앙!

    빛처럼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무언가.

    [앨라스!!!]

    거대한 푸른빛 몸체가 앨리를 막아섰다.

    “드, 드래곤이 둘… 둘……!”

    급기야 정신을 겨우 붙잡은 이들마저 까무룩 혼절을 하고 말았다.

    [당장 돌아가.]

    [싫어. 아마록.]

    안 그래도 혼란한 와중에 드래곤이 하나 더 나타나니, 세상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넓은 하늘에 꽉 찬 둘의 모습은 인간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로드의 명령이다. 당장 따라와.]

    [시, 싫어!]

    용언으로 나누는 대화였기에 그들의 대화를 인간들이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치 중인 분위기만큼은 생생히 전달되고 있었다.

    [남은 일생 동안 나를 평생 등지겠다는 뜻이야?]

    아만의 차가운 음성에 앨리의 날갯짓이 잠시 주춤했다.

    [그런 뜻이냐고 물었어.]

    […아니야.]

    [그럼 당장 따라와.]

    -파앗!

    먼저 아만이 사라졌다.

    […짜증나.]

    -파앗!

    그 뒤를 따라 앨리 마저 사라지자, 텅 빈 창공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워졌다.

    ***

    아만과 함께 하셀의 레어로 돌아온 앨리.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게나 없는 게냐!!!”

    화가 난 하셀이 버럭 소치리자, 앨리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라고 그것들이 하는 짓을 내버려 두고 싶어 내버려 둔 줄 아느냐? 나 역시 원로들과 함께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럼 왜 지켜보기만 하신 건데요! 걔네들이 같잖은 종교를 만들어 제가 소중히 키우던 영지민들을 죽였어요.”

    묵묵히 하셀의 말을 듣던 앨리가 몸을 앞으로 내세우며 바락바락 따졌다.

    “하… 앨리. 어째서 아직도 해츨링 티를 벗지 못한 것이냐. 언제까지 그렇게 철없이 살 것이냐는 말이야. 그저 눈앞에 거슬리는 것을 치워버리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그 생각 머리를 언제쯤 고칠 거냐는 말이야!”

    “…….”

    “그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 줄은 아느냐?”

    “…라크메르?”

    “그러니 안 되는 것이다. 라크메르라니? 그래 봤자 그들은 한낱 인간들이다. 그런 하찮은 흑마법사 집단이 일을 벌여봤자 우리에게 해가 될 것 같으냐?”

    하셀의 일침에 앨리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마왕이 있을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마신이 있을 수도 있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왕이요?”

    하셀의 말에 놀란 앨리와 아만이 토끼눈이 되어 되물었다.

    “그래. 너희는 모르겠지만 원로들과 나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앨리 네가 모습을 드러내고 난리를 쳤으니, 저들은 더욱 꽁꽁 숨어들겠지.”

    “…….”

    “실망했다. 앨리. 아만보다 훨씬 성숙한 줄 알았더니 고작 영지민들을 죽였다고 본체로 난리를 쳐?”

    “…제가 공들이던 곳이에요. 소중했다고요.”

    주먹을 꽉 쥐어 보인 앨리가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시끄럽다! 아만은 제 영역을 침범당했어도 참아냈어. 그런데 고작 유희 중인 인간 마을 따위가 침범당했다고 그 난리를 치다니! 게다가 그곳 역시 아만의 영역이다. 제발 앨리… 더 이상 나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하셀의 일갈에 이를 한번 꽉 물어 감정을 눌러낸 앨리가 몸을 돌려 돌아섰다. 아만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가자 앨리. 갈게요.”

    아만의 말에 하셀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파앗!

    그들이 떠나고 자리에 남은 하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쯤 철이 들려고 저럴까… 후우…….”

    하셀은 일찍부터 원로들과 함께 라크메르를 비롯한 조직들을 조사 중이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그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인간은 우매하고 어리석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니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텐데…….’

    일이 어렵게 되고 말았다. 앨리의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그들은 더욱 꼭꼭 숨어 나오지 않을 것이다.

    “큰일이군…….”

    ***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아만의 타박까지 더해지자 앨리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너까지 왜 그래?”

    “왜 그래가 아니잖아. 도대체 아란트 제국 한가운데서 그런 짓을 한 이유가 뭐냐고 묻잖아.”

    “부활교 교주. 그 자식이 내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흩어버렸어.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울먹이는 앨리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게다가 그 자식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어.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지만, 인간조차 아니었다고! 그리고 시타타 영지민 수십이 끔찍하게 죽었어.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래서 그랬다는 거야? 일을 그만큼 키우기 전에 나나 내 아버지를 찾아갈 생각은 안 해봤어?”

    아만 역시 답답했다. 앨리가 일을 벌이기 전에 자신이나 하셀을 찾아왔더라면 뭐가 됐건 조금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앨리는 무턱대고 본체로 돌아가 제국 수도 한가운데서 브레스를 쐈다.

    “너랑 말하기 싫어. 넌 내 마음 절대 몰라. 그 같잖은 인간 놈이 내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흩어버렸을 때 느낀 그 기분. 너는 절대 모른다고.”

    “하… 앨리.”

    “갈래.”

    “앨리!”

    아만은 다급히 앨리의 손을 붙잡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파앗!

    앨리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아만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

    한적한 어느 숲속 오두막.

    “허억…….”

    -쾅!

    사내가 낡은 나무문을 거칠게 열어 젖혔다.

    “얀테시여!”

    “…파멜라. 너를 이곳으로 먼저 보내길 잘했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힘이 드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는 교주를 부축하는 파멜라.

    “드래곤이 나타났다. 당분간은 너와 둘이서 몸을 숨겨야겠구나.”

    “드래곤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저희 교단 사제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무사한 건가요?”

    -짜악!!!

    순식간에 돌아가 버린 고개에 파멜라는 떨리는 손으로 제 뺨을 붙잡았다.

    “건방진 것.”

    교주의 차가운 목소리에 파멜라는 얼른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댔다.

    “…….”

    “감히 네년이 다른 남자의 안위를 물어? 건방지고 더러운 년. 그래, 더러운 길바닥 출신 아니랄까 봐 더러운 짓거리만 일삼는구나.”

    “…오해십니다. 저는 그저…….”

    -퍼억! 퍽!

    교주는 드래곤에게 당한 분풀이를 파멜라에게 쏟아내듯,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댔다.

    “건방지고! 더러운 년!!!”

    -퍼억!

    “크읍…….”

    파멜라는 교주의 거친 발길질에도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고통을 참아냈다.

    “길을 헤매는 년을 불쌍해서 데려왔더니만! 감히 은혜도 모르고 다른 남자에게 꼬리를 쳐?!”

    그저 다른 사제들의 안위를 물었을 뿐인데.

    파멜라는 연유도 모른 채 불합리한 폭력을, 이를 악문 채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니 네년의 부모가 너를 내다 버린 것이다!”

    “크윽…….”

    아무 잘못 없이 맞는 것도 서러운데 제 부모까지 욕보이자, 결국 파멜라가 고개를 들어 교주를 똑바로 노려봤다.

    “오냐, 그래. 오늘 네년이 죽고자 하는구나.”

    “제 부모님은 저희를 버린 것이 아니십니다.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하셨던 겁니다.”

    교주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니 익숙했다. 하지만 부모님을 욕보이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 그건 네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네년의 부모가 너와 네 동생을 버린 게 아니라고 말이다.”

    “아닙니다!”

    결국 파멜라가 버럭 소리를 치자, 교주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래. 오늘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마.”

    ***

    그로부터 한참이나 이어진 폭력에, 파멜라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파멜라는 아픈 제 몸을 살필 새도 없이, 교주의 명령에 따라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흐윽…….”

    힘겨운 손놀림으로 작은 냄비를 꺼내 씻는 파멜라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흐으윽…….”

    파멜라는 혹여나 교주가 있는 곳에 제 울음 소리가 들릴까 행주를 들어 입을 꼭 틀어 막았다.

    ‘도망치고 싶어…….’

    파멜라는 제 동생을 두고 홀로 입양을 떠나던 날을 후회했다.

    환경이 나아지면 동생도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하던 양부모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은 파멜라는 홀로 입양을 떠났다.

    ‘언니가 꼭 데리러 올게. 알겠지?’

    입양을 떠나던 그날. 파멜라는 제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응. 나는 괜찮아! 언니 조심히 가. 꼭 편지 써야 해?’

    그 말에 착한 제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번이나 같은 대답을 했었다.

    ‘괜찮다.’며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으라.’며 활짝 웃던 제 동생의 슬픈 눈동자가 잊히지 않았다.

    그렇게 제 동생을 저버리고 떠난 입양.

    파멜라는 새 삶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제 양부모는 노예제도가 금지된 제국에서 그저 손쉽게 부릴 식모가 필요해 자신을 입양했던 것이었다.

    식모살이쯤은 괜찮았다. 파멜라는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이곳에서 식모살이를 하다 저들이 약속대로 제 동생을 데려와 주기만 한다면, 잠과 밥이 해결된다.

    당장 급한 불을 끈 후, 성인이 되면 제 동생을 데리고 도망치면 된다.

    그러나 그 작은 소망마저 양아버지라는 작자의 추악한 행태에 모두 깨어지고 말았다.

    ‘파멜라. 아버지와 재밌는 놀이 할까?’

    자신을 헛간으로 불러낸 양아버지가 하자던 재밌는 놀이는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양어머니란 자의 학대는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걸레 같은 년!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감히 순진한 내 남편을……!’

    아무리 아니라고 소리치고 발버둥 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누구도 파멜라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았다.

    결국 파멜라는 도망쳤다.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반복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삶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 존재가 바로 제 동생이었다.

    도망쳐 나온 파멜라는 동생이 있는 보육원을 향해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숲길은 너무 험했으며,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파멜라가 건널 수 있는 길목은 너무나도 한정적이었다.

    오랫동안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한 파멜라는 결국 숲길 한가운데 쓰러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제 인생을 원망하며 결국 눈을 감았다.

    그때, 그녀는 다시 누군가에 의해 구해졌다.

    처음엔 너무나도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좋은 사람이 자신을 구해주었으니, 제 동생을 찾으러 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고, 노인 역시 동생을 찾는 것을 돕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파멜라는 다시 한번 사람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 그 믿음의 댓가를 치르는 중이었다.

    ‘도망쳐야 해.’

    파멜라는 무언가 결심한 듯 제 입을 틀어막았던 행주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러곤 걸음을 옮겨 작은 서랍을 조심스레 열었다.

    ‘도망쳐야 해.’

    -부스럭……. 부스럭…….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뒤지던 파멜라의 손에 스크롤 한 장이 들려 나왔다.

    ‘찾았다……!’

    “뭐하는 게냐? 응? 도망이라도 치려는 게야?”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교주의 목소리.

    ‘도망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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