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13화 (113/225)
  • 113화. 바라트의 안식.

    부활교단 사제들이 열었던 연설회에 다녀온 사람 모두는 상당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마치 신대륙을 발견하기 직전에 놓인 탐험가들처럼 들떠 있었다.

    “그래,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허,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당연히 가야지!”

    “흠… 간다고?”

    “그럼, 당연하지.”

    여관을 빠져나오는 사내 둘은 재빨리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 드디어 나도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 구원을 좀 얻어 보는 건가?”

    사내가 몸에 힘을 탁 풀어낸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떽! 이 사람도. 그래도 저들의 말을 전부 믿어서는 안 되네.”

    하지만 다른 사내는 생각이 조금 다른 듯 보였다.

    “아니, 사제님께서 하는 말씀 못 들었는가? 우리가 죽으면 갈 곳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아무리 그들이 기적을 행했다 한들 죽어서 갈 곳이 있다니? 그건 어느 신전에서도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저들이 보인 능력을 좀 보게! 아니, 치유술도 아닌데 어찌하여 앉은 자도 서게 하고 앞이 보이지 않던 자를 보게 하느냐는 말일세!”

    “크흠… 그건 그렇다마는…….”

    “게다가 이, 이 성수 좀 보게!”

    사내가 제 품에서 성수병을 꺼내 제 친구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아, 치우게! 나도 알고는 있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하냐는 말일세.”

    제 눈앞에 디밀어진 성수병에 사내가 손을 홱 저으며 짜증을 냈다.

    “그러니까 한번 믿어나 보자는 말일세. 아닌 말로 저들이 우리를 어디 잡아 가두고 죽이기라도 한다던가?”

    “에이! 모르겠다!”

    친구의 설득에 넘어간 듯한 사내가 고개를 홱 젖히며 말했다.

    “크하하! 잘 생각했네. 우리도 구원을 한번 받아보자 그 말일세!”

    “그러세!”

    힘차게 손을 맞잡은 사내들의 얼굴엔 부푼 기대가 떠올랐다.

    ***

    온갖 보석과 금빛이 찬란한 어느 방 안.

    “아마록!”

    백금과 루비로 장식된 큰 책상에 앉아 서류들을 넘기던 앨리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앨라스.”

    하지만 그런 앨리의 반응에도 아만은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앨리의 진명을 불렀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나 너무 기쁘고 막 그래.”

    아만의 팔에 찰싹 들러붙은 앨리가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자, 아만 역시도 싱긋 웃었다.

    “할말이 있어서.”

    “흐음… 무슨 할 말인데 여기까지 왔을까?”

    아만이 응접실 소파에 앉자, 앨리는 마법으로 차와 다과를 빠르게 차려냈다.

    “몇 년 전에 디바노스에서 가져온 꽃차야. 지금쯤이면 너무 맛있게 숙성됐을 거야.”

    찻잔에 손수 차를 따르는 앨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고마워. 앨라스.”

    “자, 이제 그럼 이야기해 봐. 무슨 일이기에 여기까지 직접 왔는지.”

    아만의 심각한 표정에 앨리 역시 표정을 굳히고 본론을 물어왔다.

    “마족들이 다시 나타났을 수도 있겠어.”

    -탁!

    신경질적으로 찻잔을 내려놓는 앨리.

    “마족?”

    “그래, 마족. 아버지 말로는 지상에 남겨져 있던 아티팩트로 만들었을 거라 하시지만… 내 생각엔 아닌 것 같아.”

    “뭘?”

    앞뒤 없이 결론만 튀어나오자 앨리의 목소리엔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자.”

    아만이 품에서 꺼낸 작은 손수건을 받아 든 앨리는 조심스레 그것을 펼쳤다.

    “하, 이런 거지 같은 게 다 있어?”

    예상대로라는 듯 아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조각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 물건이 어떤 것인지 한 번에 간파한 듯 보였다.

    “이걸 어디서 났는데?”

    “시타타에서 한 용병단이 의뢰를 받아 수도로 옮기는 중이었어. 물론…….”

    “다 죽었고?”

    그녀의 물음에 아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살았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넷이지.”

    “대단하네. 나타난 게 뭐 오크쯤 됐나?”

    꽤나 많은 생존자 수에 놀랍다는 듯 그녀의 어깨가 한번 으쓱였다.

    “와이번.”

    “씨X”

    “나쁜 말 쓰지 않기로 했잖아.”

    “아니, 이건 씨X 해도 너무하지 않나? 그렇잖아?”

    단호한 아만의 다그침에도 앨리는 다시 한번 욕지거릴 시원하게 내뱉었다.

    “와이번? 그럼 이 X만 한 게 와이번까지 조종했다 그 말 아니냐고. 오크도 고블린도 아니고!!!”

    몬스터에도 등급은 존재했다. 아주 작은 미물과도 같은 몬스터부터, 높은 지능과 약하지만 마력을 쓰는 몬스터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와이번이라니? 와이번은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도 아니었을뿐더러, 드래곤을 제외하면 창공의 지배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하아… 앨리.”

    “이씨…….”

    거친 욕설에 아만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앨리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이를 부득 갈았다.

    “알았어. 그래서? 범인은 잡았어?”

    “아직 못 잡았어.”

    “아직도? 이 일이 언제 있었는데 그래? 하, 내가 시타타를 비우는 게 아니었는데!”

    앨리는 시타타에서부터 벌어진 일임에도 미리 막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조금 됐어. 더 조사하고 싶었는데…….”

    “는데?”

    “아버지께서 철수하라고 하셔가지고…….”

    앨리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아만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이 모지리 빙딱 같은 게!!!”

    앨리는 답답한 마음에 아만의 뒤통수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는 헛똑똑이야? 아주 로드 말씀이라면……!”

    “너도 알잖아. 맞으면 아파… 그것도 많이…….”

    “진짜… 하…….”

    아만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에 앨리는 할 말을 잃은 채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나는 조금 더 조사해 보고 싶어. 감히 내 구역에 겁도 없이 들어온 자식들이 누구인지.”

    아만이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그 모습에 앨리의 마음에 애잔함이 피어올랐다.

    “…속상하겠네.”

    “아니, 짜증 나. 화나고. 그래서 이것들을 다 찾아서…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

    “그래, 해야지. 다 찢어 죽여야지.”

    서늘한 그녀의 음성에 아만의 어깨가 작게 움츠러들었다.

    ‘이럴 때 보면 너무 무서워…….’

    ***

    시비에 백작의 응접실.

    “돌아갈게요.”

    “안 된다!”

    루카스는 시비에 백작에게 아카데미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 루카스… 아버지께서 걱정이 되셔서…….”

    백작의 옆에 선 블레인 역시도 그를 만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믿고 보낸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이 모두 실족사당할 뻔했으니, 부모인 그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 폴라와 스키르라도 보내주세요.”

    너무나도 단호한 백작의 반응에 루카스는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것도 안 된다!”

    하지만 시비에 백작은 이것도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안 된대도!”

    결국 루카스의 고집에 백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대체 왜 간다는 거냐! 그깟 아카데미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되었는데!!!”

    시비에 백작은 마음에 박혀있던 돌덩이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내놓고 말았다.

    “…저도 압니다.”

    백작은 루카스가 아카데미로 떠났을 때 어려웠던 백작저의 재정이 여태껏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지만 루카스 역시도 이 부분에선 물러설 수 없었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이번에 겪은 일이 충격이 컸나 봅니다.”

    “…….”

    “아카데미로 돌아가서 바쁜 생활을 하다 보면 조금씩 잊힐 겁니다.”

    폴라와 스키르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카데미로 돌아간다면 그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몰랐다.

    “스키르도 가족들을 보게 되면 조금 더 나아질 수도 있고 말입니다.”

    루카스의 말에 단호하던 백작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 보였다.

    “그래요… 애들이 힘들어하는 건 사실이에요.”

    그의 곁에 앉은 블레인 역시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루카스의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소!”

    “여보… 저도 당신의 말이 틀렸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아이들이 힘들어하기도 하고… 또 여태 잘 지냈잖아요?”

    블레인의 말에 백작은 미간을 좁혀가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가게 해주세요. 다시 저번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언제 떠날 생각이냐.”

    “아직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최대한 빠르게 떠날 생각입니다.”

    이미 마음을 굳힌 듯한 루카스의 태도에 백작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더니 그 말이 정말인가 보구나.”

    쓰게 웃는 시비에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준 블레인이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였다.

    ***

    시타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단상에 선 사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입은 사제복에 둘린 보라색 띠는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처럼 나부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고 따라야 합니다.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얀테님의 축복 아래 우리는 안식을 찾을 것입니다.”

    사제의 말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손을 모으며 감탄하고 있었다.

    “오늘 와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뜻을 담아 저희 부활교의 교주이시자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실… 얀테님께서 직접 이 자리에 나와주셨습니다!”

    사제의 말에 공터에 모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교, 교주님? 그 교주님 말이야?”

    하지만 그 웅성거림은 얼마 가지 않아 잦아들었다.

    “저, 저기!”

    하늘에서 하얀빛이 내려오기 시작하더니, 빛은 온 세상을 밝히고도 남을 만큼 밝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신이 현현이라도 하는 듯한 웅장함에,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땅에 처박고 납작 엎드렸다.

    “가엾은 자들이여…….”

    빛을 등지고 선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인자했으며.

    “내 그대들에게 안식을 주려 친히 왔으니…….”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쏟아지는 푸른 빛은 너무나도 신비로웠다.

    “그대들은 오늘 내 품에 안겨 따뜻한 빛이 되리라.”

    말끝에 터져 나온 붉은 빛이 사람들을 적시기 시작하고.

    “믿는 자는 씨엘로에 갈 것이며!”

    다시 한번 터져 나온 푸른빛이 그들의 몸을 감싸자, 온 세상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믿지 않는 자는 바라트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의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믿습니다…….”

    제 입에서 무슨 말이 흘러나오는지도 모르는 채, 그들은 그렇게 노인의 앞에 모여 자신의 믿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클클클… 그래…….”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교주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가엾은 자들이여… 내 너희를 구원하러 왔노라.”

    교주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구원하러 왔노라…!!! 레니엔토!!!”

    그의 외침과 동시에 쓰러지는 사람들.

    “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라.”

    교주의 손에서 검붉은 빛줄기가 뻗어져 나가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닿았다.

    빛줄기는 점점 크기를 키워 사람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안식을… 맞이하라…….”

    교주가 숨을 크게 들이켜자 그와 연결된 빛줄기가 크게 꿀렁였다.

    “흐으으음…….”

    교주의 입에서 참아왔던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을 감쌌던 빛줄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어리석은… 나의 옌테여…….”

    교주는 더 이상 노인의 모습이 아닌,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씨엘로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제는 말라비틀어져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게 된 자들을 내려다보는 교주.

    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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