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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11화 (111/225)
  • 111화. 제왕.

    “제왕이시여.”

    교주가 빠르게 텔레포트한 곳은 다름 아닌 아란트 황궁이었다.

    “그래.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제 앞에 무릎 꿇은 교주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황제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마치 전혀 신경 쓸 것 없는 미천한 생물을 내려다보는 듯한 그런 표정.

    “구슬이 깨어졌습니다.”

    “……그래?”

    교주의 말에 황제는 드디어 어딘가 조금 흥미가 생긴 듯 편안히 기대어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예. 보십시오.”

    “흐음… 이렇게 가루가 되었다… 재미있군.”

    그가 펼쳐 보인 손수건을 찬찬히 내려다본 황제의 입꼬리가 흥미롭다는 듯 말려 올라갔다.

    “…….”

    “그래서?”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제는 이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건조하게 물어왔다.

    “드래곤의 짓인 듯싶습니다.”

    “…드래곤이라.”

    ‘드래곤’이라는 단어에, 황제의 표정이 금세 차게 식더니 이내 이가 부득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드래곤… 그 거지 같은 도마뱀 자식들이 또 내 앞을 가로막는구나.”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 불리는 드래곤을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황제의 앞에 무릎 꿇은 교주는 그의 말이 모두 이해라도 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맞습니다.”

    “그래… 그 거지 같은 파충류들을 내 어찌하면 좋겠느냐?”

    “…처단하셔야 옳습니다.”

    황제의 물음에 교주는 얼른 고개를 들어 황제의 비위를 맞추려 애를 썼다.

    “크하하하! 처단… 처단이라… 네놈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게냐?”

    하지만 교주의 대답에 황제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차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를 몰아세웠다.

    “그, 그것이…….”

    그런 그의 모습에, 교주는 아차 싶었는지 얼른 고개를 푹 숙여 땅에 바짝 붙였다.

    “네깟놈이 드래곤… 아니, 해츨링 앞에서 입이라도 벙긋할 수 있을 것 같으냐?”

    “…….”

    교주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도 드래곤이 어떤 생명체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드래곤이란 혼자서도 제국 하나쯤은 쉽게 날려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인간들이 아무리 힘을 합쳐 그들을 막아내려 애를 써도 막아낼 수 없는 그런 존재.

    인간들은 드래곤의 화를 재앙이라 불렀다.

    “어이가 없군. 그 구슬의 흔적을 아는 자는?”

    그런 교주의 모습에 혀를 한번 차 보인 황제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까지는 교단에 몸담은 사제 몇몇뿐인 듯싶습니다.”

    “이송을 맡겼던 용병단은… 어찌 되었지?”

    황제의 물음에 교주는 몸을 흠칫 떨었다.

    사제의 보고에 따르면 흔적이 모두 지워졌다 했으니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모두 죽었다 합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순간을 모면하려는 거짓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럼 그 구슬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외부인은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냐?”

    “예.”

    이미 이렇게 된 바에 어쩔 수 없었다. 감히 제 앞에 선 자가 누구인데 말을 무른다는 말인가.

    “확실한가?”

    “…….”

    하지만 황제 역시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미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이라도 한 듯 말이다.

    “확실하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는 교주의 모습에 황제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 그것이…….”

    그의 고함에 얼어붙은 교주는 그렇지 않아도 바짝 엎드린 몸을 더욱더 바닥에 붙여 엎드렸다.

    “네놈이 배가 불렀구나. 죽은 놈을 다시 살려내 인간들 위에 서게 만들어 줬더니…….”

    분노에 그르렁거리는 황제의 목소리가 방을 메우자, 교주의 몸은 이제 사시나무가 떨리듯 떨려오기 시작했다.

    “제, 제왕이시여…….”

    “감히 일을 그르치려 들어……?”

    겁에 질린 교주가 이마를 땅에 붙인 채 덜덜 떨고 있자, 황제의 목소리엔 분노가 가득 서리기 시작했다.

    “제, 제발… 자비를… 자비를…….”

    교주는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일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비라…….”

    -사아아아

    황제의 손에서 검붉은 빛줄기가 뻗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교주는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으으… 제왕이시여! 제발, 제발…….”

    하지만 그런 그의 간절한 몸짓에도, 검붉은 빛줄기는 서서히 그의 손끝을 향하기 시작했다.

    결국 검은 빛줄기가 그의 손끝에 닿자, 교주의 손은 순식간에 늙기 시작했다.

    “으으…! 제왕이시여. 제가 어떻게 해서든, 어떻게 해서든…….”

    교주의 외모는 처음과 달리 3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하지만 검붉은 빛이 그의 손을 먹어 치우자, 그의 손은 순식간에 늙기 시작했다.

    자글자글한 주름은 말라버린 나무껍질 같았으며, 곳곳에 검버섯이 피어났다.

    “네깟놈이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냐?”

    “크으윽… 제발…….”

    순식간에 늙어버린 제 손을 내려다보는 교주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네깟놈을 되살려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황제의 손끝에서 피어난 검은 빛줄기는 그의 손을 시작으로 점차 그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순식간에 30대 청년의 모습에서 70대 노인의 모습으로 바뀌어버린 교주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늙고 병약한 모습이었다.

    “크하하! 그래. 네놈과 딱 어울리는 모습이구나.”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교주의 곁에 다가서는 황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래… 아주 어울려.”

    “끄으으… 제왕이시여……!”

    교주는 이제 목소리마저 70대 노인이 되어 쇠를 긁는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은 네놈이 쓸모가 있으니…….”

    손을 들어 검은 빛줄기를 거두는 황제.

    그에 교주는 작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봐라. 다음번엔… 시체가 되어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차가운 황제의 음성에도 교주는 몇 번이고 꾸벅 절을 해 보였다.

    “네놈을 꺼내어 왔던 그때처럼 말이다.”

    ***

    “아니, 아버지? 찾을 수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만은 구슬 따위는 없어도 찾을 수 있다며 큰소리쳤던 하셀을 따라나섰지만, 벌써 몇 시간 째 진척이 없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찾을 수 있어.”

    하셀 역시도 짜증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나 당당하게 호언장담했는데 찾지 못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았다.

    “하… 제가 힌트 하나 드려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아만이 하셀의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됐거든? 필요 없거든?”

    제 옆구리를 찔러오는 아만의 손가락을 홱 뿌리친 하셀이 다시 묵묵히 추적마법을 펼쳤다.

    “아~ 그 구슬을 주웠던 데가 어디였더라~ 아, 맞다! 에스카르 산맥 초입이었지?”

    “…….”

    하셀의 무시에 아만은 허공에 대고 큰소리로 혼자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흐음… 이걸 누가 가지고 있었더라? 아! 맞다! 푸른 늑대 용병단이었어!”

    “미친놈.”

    결국 보다 못한 하셀이 아만의 뒤통수에 욕지거릴 내뱉었다.

    “왜 그러십니까? 혼잣말 좀 한다는데?”

    욕을 얻어먹고도 아만은 어깨를 으쓱할 뿐 별다른 타격이 없어 보였다.

    “아~ 그런데 그 용병단 중에 살아남은 놈이 있는데~”

    “……뭐?”

    하셀은 아만의 그런 미친 짓에도 애써 무시해 보려 했건만, 생존자가 있다는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려 그를 째려봤다.

    “그것도 다름 아닌 단장이라지?”

    “이런 미친놈이!? 너 왜 그걸 이제야 말해?”

    용병단의 단장이 살아있다니?

    이 물건을 누가 줬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살아있다니!

    그런데도 저 미친 드래곤은 여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을 몇 시간 동안 따라다니며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던 것 아닌가?

    “아까 아버지께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그깟 구슬 없어도 괜찮고! 누구의 도움 없이도 찾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셀이 버럭 소리치자 아만 역시도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밀며 냉큼 소리쳤다.

    “하!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런 아만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고 숨을 내뱉는 하셀.

    “어어? 이상하시네!? 왜 화를 내시지!?”

    하지만 아만은 그런 하셀의 뒤에서 이죽거리며 그의 화를 돋우고 있었다.

    “이놈 자식을 그냥!”

    하셀이 주먹을 높게 치켜들자, 아만은 뒤로 한걸음 껑충 물러섰다. 하지만 그렇게 겁을 먹고 물러날 아만이 아니었다.

    “예! 맞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이놈 자식 입니… 으아아아!!!”

    제 가슴팍을 팡팡 쳐대며 이죽거리는 아만은 결국 하셀에게 된통 얻어터지고 말았다.

    “으휴! 내가 저 자식을 도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다 내 잘못이지!!!”

    하셀은 아만의 몸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으아아… 아이고… 이거 가정폭력 아닙니까……?”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아만은 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쉴 새 없이 깝죽거리고 있었다.

    “시끄럽다! 당장 그 푸른 늑대 용병단인가 뭐한테 안내해.”

    이제는 상대하기도 지친다는 듯 손을 저어 보이는 하셀.

    “아이고오… 아이고오…….”

    하지만 아만은 하셀에게 찔끔찔끔 다가가며 제 아픈 부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더 맞을래?”

    “…아닙니다. 아픈 곳이 싹 나았습니다. 아버지.”

    하셀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아만은 얼른 허리를 세우며 차려 자세를 해 보였다.

    “하아…….”

    그런 아만의 모습에 하셀은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 가시죠.”

    하셀의 한숨이 만족스러운 듯 아만이 씨익 웃으며 제 한쪽 팔을 내밀었다.

    ***

    로드리고 백작가에 도착한 그들은 입구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드께서 아버지를 알아보시겠지……?’

    그가 기다리는 것은 다름 아닌 루카스였다.

    평소대로라면 루카스가 있을법한 곳으로 바로 텔레포트했겠지만, 지금은 하셀이 함께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아, 나왔군요. 루카스 군.”

    “안녕하세요. 학장님.”

    평소와는 다른 아만의 인사에도 루카스는 크게 놀란 기색 없이 그의 인사를 받았다.

    ‘이럴 줄 알았어.’

    루카스 역시 방에 찾아온 하인이 아만의 방문을 알렸을 때부터 무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항상 제 방으로 예고 없이 직접 찾아오던 아만이 정중하게 자신을 불러냈다? 이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제 눈앞에 하셀이 떡하니 와있었다.

    “아, 인사하시지요. 이분은…….”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저는 하린 테이노스 입니다.”

    아만이 소개하려 뻗은 손 앞에 나선 하셀이 먼저 자신을 소개해 보였다.

    ‘하린…? 개 같은 이름을 지어왔어 이건 또?’

    그의 이름을 들은 루카스는 하마터면 입 밖으로 제 속마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충동을 꾹 눌러 참은 루카스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하셀 역시도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아,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루카스 군.”

    “아닙니다.”

    아만 역시도 이 상황이 어색한지 눈꼬리를 휘며 더욱 과장해서 웃어 보였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실 만한 일이……?”

    “아, 별일은 아닙니다. 그 혹시… 저번에 만났다던 용병 단원들이 여기 있습니까?”

    루카스는 아만의 물음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없습니다.”

    “예? 없어요?”

    없다니? 아만은 그들을 여기에 분명 데려다주었고, 그들의 상태를 미뤄 봤을 때 아직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맞았다.

    “떠났습니다.”

    루카스의 말에 아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떠나요!?”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쳐버린 아만이 ‘헙’ 하며 작게 숨을 들이켰다.

    “예.”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카스.

    “어디로 말입니까?”

    “…동료들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큰일 났다. 마음먹고 사람을 찾는다면 금세 찾을 수 있겠지만, 수많은 인간들 사이에서 연고 없는 인간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모래를 찾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아. 언제 말입니까?’

    “어제 떠났습니다.”

    루카스 역시도 아만이 무엇 때문에 그들을 찾는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 역시도 온갖 머리 아픈 일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거기까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젠장. 일단 좀 잡아둘걸! 그게 아니라면 표식이라도 남겨둘걸……!’

    하지만 후회는 언제 해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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