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레니엔토.
“여깁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누군가 도와 동료들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루카스는 그들을 안내하기 전에 아만의 도움을 받아, 좋지 않은 시신의 상태를 생전의 모습과 같이 바꿔놓았다.
동료들의 마지막 가는 모습이나마 그대로 기억하길 바란 루카스의 작은 배려였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단원들의 시신이 있는 움막 앞에 선 루카스가 새먼트와 알렉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잠시 주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알렉과 새먼트가 서로를 번갈아 쳐다본 뒤, 움막의 입구를 천천히 걷어냈다.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새먼트와 알렉은 한참을 정신없이 울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루카스의 마음 역시도 아파왔다.
“이제 인사하세요.”
루카스가 그들의 슬픔을 잠시 중재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잘 가라…….”
“제발 잘 가라…….”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겨우겨우 그들을 데리고 움막을 빠져나오자, 움막이 화염에 휩싸였다.
이제는 정말로 보내주어야 할 때였다.
그 뒤로도 불길에 뛰어드는 알렉을 막아서야 했으며, 통곡을 하다 지쳐 실신하는 새먼트를 붙잡아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이별의 과정이기에 루카스는 그런 그들을 재우지도, 보내지도 않은 채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다 받아주었다.
“가라… 가서 훨훨 날아라… 훨훨…….”
***
“요즘 자주 본다?”
하셀은 자신의 레어에 불쑥 찾아온 아만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라고 자주 오고 싶어 오겠습니까?”
그런 하셀의 반응에 아만 역시도 입꼬리를 비틀며 이죽거렸다.
“매를 버는 건 여전하네. 밖에 비 오냐?”
그의 대답에 하셀은 자리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예.”
갑자기 그건 왜 묻느냐는 듯 인상을 찌푸려 보이는 아만.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한번 맞을래?”
“…….”
아만은 씨익 웃어 보이는 하셀의 사악한 입꼬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왔어?”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아만은 제 품에서 검은색을 구슬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이 개 같은 건 또 뭐지?”
구슬을 조심히 집어 든 하셀의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제 영역 근처에서 발견된 겁니다. 어느 용병단이 이 물건을 수도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 용병단은?”
“대부분 죽었습니다. 와이번 떼가 나타났거든요.”
하셀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는지 ‘쯧’ 하며 혀를 한번 찼다.
“하. 어이가 없네. 도대체 어떤 간 큰 자식이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아만이 꺼내놓은 물건에서 풍겨 나오는 마기에, 하셀은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저번 던전 안에서 발견된 시체와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아만 역시도 그의 속이 얼마나 시끄러울지 잘 알고 있었다.
“잠깐. 밖에 지금 뭐야?”
아만의 말을 듣던 하셀은,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요.”
“몬스터? 무슨… 이런!”
결국 터지고 말았다.
-파앗!
레어 밖으로 빠르게 텔레포트한 하셀은, 눈앞에 펼쳐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정신이 아득했다.
산맥을 빽빽하게 채우다시피 한 몬스터 떼는 종류를 불문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레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것들이 전부 미쳤나!!!”
결국 터져나온 하셀의 분노에 주변의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콰콰쾅!!!
-끼오오오! 끼엑! 끼아아아!
레어 밖에 포진해 있던 수많은 몬스터 무리는 하셀이 터트린 마법 한방에 힘없이 쓸려나가고 말았다.
그 모습에 하셀은 더욱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겨우 이깟 마법 한방에 모두 쓸려나갈 같잖은 몬스터 따위가 제 안방까지 밀고 들어왔으니 말이다.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봤나!”
하셀은 몬스터들의 가장 정점에 선 드래곤인 그의 레어 앞에 겁 없이 몰려든 몬스터 떼로 인해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것에 더욱 화가 났다.
“그거 가져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아만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든 구슬을 하셀에게 건넸다.
-파각!
하셀의 손에서 힘없이 깨어진 구슬은 거의 가루가 되고 말았다.
“에에? 그걸 깨부수시면 어쩝니까?”
“어쩌긴 뭘 어째? 이 안에 든 게 뭐가 됐든지 이 꼴을 계속 두고 보라는 말이냐?”
아만의 말에 하셀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이 구슬의 힘은 점점 더 증폭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두고 봐야 도대체 어떤 놈이…….”
“시끄러워! 어떤 놈?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 자식쯤은 이깟 구슬 없이도 어떻게든 잡을 수 있다.”
아만의 말을 빠르게 자른 하셀이, 손에 남은 구슬의 잔재를 탁탁 털어냈다.
“… 어떻게 말입니까?”
“…….”
대답이 없는 하셀.
“하아…….”
그런 그의 모습에 아만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증거를 들고 쫓아가도 모자랄 판에 그 증거를 이렇게 깔끔히 소각해 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한숨 그만 쉬고 따라오기나 해.”
“예… 그래야죠…….”
***
부활교 교당.
“얀테님의 뜻을 따라 믿고 서로를 사랑하세요.”
“레니엔토.”
교당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릎을 꿇어앉고 한목소리로 ‘레니엔토’를 외치고 있었다.
“얀테님의 무한한 사랑 아래 우리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신뢰와 사랑입니다.”
사제의 한마디 한마디에 감격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어딘가 기이하기까지 했다.
“레니엔토.”
“오늘 얀테님께서 우리 가엾은 신도들을 위하여 친히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사제의 말에 신도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교단을 바라봤다.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있으리니.”
교단에 선 교주를 본 신도들은 납작 엎드려 찬양을 시작했다.
“얀테시여! 나의 얀테이시여!”
어떤 이는 기쁨에 눈물을 흘렸으며, 어떤 이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실신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믿거라. 어둠에 선 자는 내가 손을 뻗어 빛으로 이끌 것이며.”
“레니엔토!!!”
교주가 손을 뻗어 빛을 흩뿌리기 시작하자, 교인들은 목청이 터져라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고 병든 자는 시름을 벗게 해 줄 것이며.”
“레니엔토!!!”
교주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푸른 빛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산자는 믿음 속에 행복이 피어날 것이고.”
“레니엔토!!!”
다른 한 손을 들어 올리자 붉은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죽은 자는 구원받아 다시 삶으로 돌아올 것이다.”
“레니엔토!!!”
양손을 다시 한번 높게 들어 올리자, 그 빛이 하나 되어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고통받는 자 누가 있는가.”
인자한 교주의 목소리가 교당에 울려 퍼지자, 한 사내가 양손을 번쩍 들어 소리치기 시작했다.
“얀테시여! 나의 얀테시여! 제발 제 딸아이를 봐주십시오!!!”
교주의 시선이 사내에게 머물자, 그는 얼른 제 옆에 앉은 딸을 들어 올렸다.
“그래. 나의 가엾은 옌테여. 이리 오너라.”
교주가 한 손을 뻗어 제 앞을 가리키자, 사내는 제 딸을 안아 들고 얼른 뛰어갔다.
“얀테시여…….”
딸을 잠시 내려둔 사내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교주의 발등에 다가갔다.
“그래…….”
사내에게 자연스레 발등을 내어주자, 그는 감격 어린 표정으로 조심스레 발등에 키스했다.
“오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내는 교주의 발등에 미천한 제 입을 댄 것이 어찌나 기쁜지 눈물까지 뚝뚝 흘리고 있었다.
“가엾은 네 여식을 내게 데려오라.”
“크흡!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내의 딸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였다.
“그래… 가엾은지고…….”
그런 아이의 모습에도 교주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내가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 교주의 앞에 데려다 놓자, 아이는 커다란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사아아아
교주의 손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와 아이를 감싸기 시작하자, 교당에 모인 모든 교인들이 두 손을 모아 높게 치켜들었다.
교인들은 손을 비벼대며 저마다 무어라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래. 이제 입을 떼봐라.”
사내는 제 딸을 교주 앞에 데려다 놓으면서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었던 듯 보였다.
하지만 교주가 대번에 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자, 사내의 눈에서 놀라움과 동시에 기쁨이 보이기 시작했다.
“…브에… 브에…….”
아이는 태어나 처음 내뱉어 본 자신의 목소리에 제 목을 한 번, 제 귀를 한 번 어루만졌다.
“크흐윽! 알린!!!”
사내는 아이가 내뱉는 알 수 없는 소리에 감격한 듯 제 딸을 와락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얀테시여!”
“그래. 나의 가엾은 옌테여.”
교주가 행한 기적에 신도들은 미친 듯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레니엔토! 기적을 행하셨다! 레니엔토!”
그런 환호성에 인자하게 웃어 보인 교주가 한 손을 들어 그들의 함성을 잠재웠다.
“허나…….”
이윽고 이어진 교주의 말에 교인들은 모두 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믿음이 부족했나 보구나.”
“……예?”
교주의 말에 사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아이는 네 믿음만큼 나아질 것이다.”
“…….”
그의 말을 들은 사내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처박고 자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얀테시여… 얀테시여… 제가, 제가 불경했습니다. 저를 벌해주십시오. 저를…….”
교단에 오르면서 하였던 작은 의심이 자신의 딸에게 영향을 끼쳤다 하니 죽고 싶을 뿐이었다.
“허허. 나의 가엾은 옌테여. 내 어찌하여 너를 벌하겠느냐. 이것이 다 내가 부족한 탓이 아니겠느냐.”
자비로운 듯 들리는 그의 음성에 서슬 퍼런 날이 서려있었다.
“나의 가엾은 옌테들은 들으라!”
“레니엔토!”
“믿음이 곧 구원이니라. 내게 온 가엾은 자여. 내가 행하는 기적을 믿어라!”
“레니엔토!”
납작 엎드린 교인들의 외침에 교당이 떠나갈 듯했다.
“나를 믿는 자 씨엘로에 갈 것이다!”
“레니엔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적 앞에 교인들의 믿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믿지 않는 자 바라트에 떨어질 것이다!”
“레니엔토!”
그 말을 끝으로 교당에 하얀빛이 가루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
“얀테시여.”
방에 돌아온 교주는, 자신을 맞는 사제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오늘은 더욱 아름답구나.”
교주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무릎을 꿇고 엎드려 교주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클클클… 그래요. 그래. 우리 파멜라. 오늘은 내 더욱 예뻐해 주어야겠구나.”
“…감사합니다. 얀테시여.”
소름 끼치는 교주의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떤 그녀는 이윽고 시선을 올려 싱긋 웃어 보였다.
“클클… 우리 파멜라의 눈에서 이제야 독기가 빠졌구나.”
“…….”
“자. 오늘은 어떻게 예뻐해 주면 좋을까. 어디 보자…….”
교주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똑똑똑.
하지만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녀에게 닿았던 손을 신경질적으로 거둬들였다.
“누구냐.”
“얀테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신경질적인 교주의 목소리에 밖에 선 사내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크흠. 들어와라.”
하지만 그 사내가 누구인지 아는 교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그녀에게 휘휘 손짓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방을 빠져나가자, 보라색 띠를 두른 고위 사제가 방으로 들어왔다.
“얀테시여.”
교주는 고개를 숙여 발등에 키스하려는 그에게 한 손을 내밀어 그의 행동을 멈춰 세웠다.
“할 말이나 빨리하고 가거라.”
“예.”
그러자 숙이던 몸을 일으켜 세운 사제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구슬이 깨어졌습니다.”
“…뭐라?”
사내의 말을 들은 교주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구슬을 쫓던 중 그 흔적이 끊겨서 가보니… 깨어진 것 같았습니다.”
“어디서 말이냐? 아니, 그건 그렇고 그 구슬이 깨어져?”
교주의 목소리에 분노가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예. 보십시오.”
사내가 품에서 꺼내 보인 작은 손수건 속에는 구슬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루가 들어있었다.
“…이런!”
그 잔재를 본 교주는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그 구슬의 잔재가 분명했다.
“도대체 어떤 자가……!”
구슬이 깨어지다니? 그 구슬은 어린 마족들의 마기와 제물들의 영혼을 한데 뭉쳐 만들어 낸 걸작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 강도는 현존하는 가장 단단한 광물인 디아마보다 다섯 배 아니, 열 배는 강한 구슬이었다.
어지간한 마법으로도 절대 깨어지지 않는 그런 구슬인데 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어디서 발견했느냐?”
“에스나 왕국에 있는 라블로탄 산맥에서 발견했습니다.
“라블로탄? 라블로탄이라…….”
라블로탄 산맥. 그곳은 에스카르 산맥과 맞닿아 있는 에스나 왕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 중 하나였다.
“이런!!!”
라블로탄 산맥을 읊조리며 골똘히 생각하던 교주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드래곤…….”
“그게 무슨…….”
교주의 말을 듣던 사제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나가봐라!!!”
교주가 버럭 소리치자, 사내는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안 된다.”
자리에서 일어난 교주는 초조한 듯 방을 맴돌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지… 절대 못 찾을 것이다.”
혼자 중얼거리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절대 찾아내지 못하게 해야지.”
-파앗!
무언가 결심한 듯한 교주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