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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109화 (109/225)

109화. 마지막 회상.

“살려줘… 제발… 살려줘…….”

끙끙거리며 연신 살려달라고 비는 스키르.

“미안해요… 미안해… 내가 미안해요…….”

그 옆에 누운 폴라는 입이 닳도록 누군가에게 미안하다 빌고 있었다.

이 상황이 벌써 몇 시간째 지속되었다.

“하아…….”

루카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끊임없이 한숨을 내뱉고 있었고, 넬라는 그 옆에 앉아 끅끅대며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네.’

방을 한번 주욱 둘러본 루카스는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물론 아만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의 기억을 깨끗하게 소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전투를 했던 모든 상황을 지워내게 되면, 기억의 공백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몰랐다.

게다가 그 기억의 공백에 혹시라도 지워지지 못한 다른 기억이 들어차게 된다면, 앞뒤가 잘린 가장 끔찍한 기억만을 평생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제발… 살려줘…….”

“으으… 미안해요. 내가…….”

루카스는 이제 속이 뒤틀릴 지경이었다.

눈앞에 있는 아이들도 문제였지만 그 뒤엔 용병 단원들이 있었고, 또 다른 곳엔 배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일의 원흉이 있었다.

‘죽을까.’

루카스의 머릿속엔 벌써 몇 번이나 이 같은 생각이 반복되고 있었다.

차라리 당장 죽어 신계로 올라가 저 같잖은 것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속이 편안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신들 역시 방관하고 있는 거라면?’

반복되는 또 다른 문제였다. 다른 신들 역시 이 문제를 그저 방관하고 있는 것이라면?

루카스가 죽던 날, 천사들은 분명 가장 맑고 깨끗한 영혼들을 고르고 골라 만들어 낸 것이 드래곤이라 하지 않았는가.

신이 되기 전 거치는 견습 과정이라고 말이다.

그런 그가 이리도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저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건 뭐 엿 먹으라는 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다 헤집자, 루카스는 몇 번이고 머리를 거세게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아모레와 타라스 역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타라스가 앞장서서 이 모든 것을 꾸몄다면?’

하지만 몇 번이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리를 내밀었다.

“오빠… 괜찮아?”

그런 그의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넬라는 벌써 몇 번째 루카스에게 괜찮냐며 물어오고 있었다.

“괜찮아.”

“배는 안 고파?”

“오빠는 괜찮아. 너는 내려가서 뭐라도 좀 먹고 와. 아버지랑 어머니께서 걱정하시겠다.”

“…나도 괜찮아.”

벌써 저녁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넬라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아냐. 너 안 되겠다. 가서 밥 먹자.”

“안 먹을래.”

“그럼 빵이라도 좀 가져올게. 우리 그거 같이 먹자.”

루카스의 말에 넬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넬라는 항상 그랬다.

아무리 잘 대해줘도 눈치를 봤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악몽을 꾸는 일이 잦았다.

“그럼 가져올게. 잠시 기다려.”

“응. 알겠어.”

그런 넬라에게 누군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는 없었다.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

방을 빠져 나온 루카스가 조심스레 방향을 바꿔 단원들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깼군요.”

“…….”

그들이 있는 방에 도착한 루카스가 방문을 열자, 그곳에는 넋이 나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알렉이 보였다.

“괜찮습니까?”

루카스는 알렉의 넋 나간 눈동자를 마주하자마자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붙잡고 짤짤 흔들어 버리고 싶었다.

“…아이들은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알렉의 첫마디를 듣자마자 화를 내고 싶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만약 루카스를 마주했을 때 첫마디로 죽어버린 동료들의 시신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라면 말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 당장이라도 그 동료들 곁으로 한 방에 보내줬을지도 몰랐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멍하니 앞을 바라보던 알렉의 입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정말 다행이라는 듯이.

“애들은 도대체 왜 데리고 가신 겁니까?”

하지만 루카스는 책임을 묻지 않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잘못되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했다.

“…우리가 데리고 간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의뢰를 했더군… 로브를 쓰고 있어 그것이 스키르와 폴라인지도 몰랐다.”

“하아…….”

그의 말을 듣자 루카스는 도대체 왜 아이들이 그랬는지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었다.

의뢰라니? 도대체 무엇이 모자라 용병 단원에게 의뢰까지 해가며 이동을 부탁한다는 말인가?

“황성으로 가는 의뢰였습니까?”

“…그래.”

누군가는 이런 루카스의 모습을 보고 잔인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루카스가 맨 처음 알렉에게 ‘괜찮으냐’라고 물었을 때, 이미 초월한 인내심을 보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군.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새먼트 이 자식도… 크흑……!”

알렉은 루카스 앞에서 보이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을 결국 보이고 말았다.

터져버린 알렉의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고 흐르기 시작했다.

“크으윽… 크흑…! 우리 애들은, 애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알렉은 북받치는 감정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부 수습해 왔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좋지는 못합니다.”

“크어어억… 어쩌면… 어쩌면 좋겠는가… 어쩌면…….”

바닥에 엎드려 제 가슴을 쥐어뜯는 알렉의 모습은, 마치 자식을 눈앞에서 잃은 아비의 모습과도 같았다.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끄아아아! 도대체 왜!!!”

바닥에 머리를 쿵 내리찍는 알렉.

“나를!!! 나를 차라리 데려가지!!!”

그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도대체 왜…….”

“…….”

제 가슴을 어찌나 세게 쳤는지 다 헤져버린 그의 앞섶에 핏물이 배어 나왔다.

“나를 데려가시오… 나를…….”

루카스 역시도 제 동료를 잃은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았기에, 어떠한 위로의 말도 함부로 건넬 수가 없었다.

“미안합니다. 무어라 해줄 말이 없습니다.”

“으흐윽… 흐윽…….”

“그리고 고인들 가시는 길은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흐윽… 끄흐윽…….”

이제는 고인이 되어버린 동료들의 지난 모습이 알렉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

“아니, 형님!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는 말입니다!”

“야! 이놈 새끼는 속고만 처살았나벼? 너는 어째 내 말을 믿질 않어!?”

알렉은 무슨 말을 하든지 제 말에 토를 다는 피르칸이 꼴 보기 싫어 죽을 지경이었다.

“허, 형님. 내가 그래도 용병 짬이 몇년… 으악!”

결국 한 대 쥐어박히고 만 피르칸이 제 머리를 조심스레 문질렀다.

“너는 하여튼 매를 벌더라. 크하하! 저 자식 저거 몇 가닥 없는 머리 빠질까 봐 소심하게 문지르는 것 좀 봐라. 크하하학!”

“야, 너 거기 옆에 활 좀 줘봐라. 내가 근거리는 안 되니… 으악! 으악! 으악!”

키모의 활을 손으로 가리켜 보인 피르칸은 결국 몇 대를 더 쥐어박히고 나서야 알렉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아, 좀! 형님들. 제발 싸우지 좀 마쇼. 식사 다 됐으니까 와서 드세요.”

발테리는 그런 형들의 모습이 질린다는 듯, 국자를 들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참나, 그래. 네가 제일 어른이다야.”

그런 그의 모습이 못마땅하다는 듯 피르칸이 입술을 삐죽였다.

“크… 역시 우리 막둥이밖에 없네. 너 내가 저번에 토마토스튜 이야기한 거 기억하고 해준 거 맞지?”

“크흠. 아니거든요? 제가 먹고 싶어서 했거든요?”

쑥스럽다는 듯 괜스레 국자로 스튜를 휘적이는 발테리.

“야, 우리 이대로 가다간 다 장가도 못 갈 것 같은데…….”

“또 이 자식이? 밥상머리 앞에서 재수 없는 소리 처하고 앉았네!”

피르칸의 말에 벌떡 일어나는 알렉.

“아, 맞잖수! 우리가 이대로 가다가 어디 장가라도 가겠수? 게다가 나는 머리도 없고…….”

버럭 소리친 피르칸이 제 머리 이야기를 하며 다시 한번 조심스레 텅 비어있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야! 그깟 털이 뭐라고. 저기 단장 다리털 좀 줘보쇼! 그거라도 심어주게. 나는 단장이 가끔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면 바지를 입었나 하고 착각을 한다니까?”

알렉의 다리를 숟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새먼트가 얄밉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 자식도 매를 버네?”

“항복! 항복!”

결국 참다못한 알렉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새먼트는 재빨리 양팔을 들어 항복을 외쳐 보였다.

“크하하하! 아니, 단장. 그러니까 우리가 계를 하나 듭시다.”

“무슨 놈의 계?”

다시 자리에 돌아와 털썩 앉은 알렉이 ‘계’라는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아 거 있잖수. 우리 동네 사람들이 그런 거 많이 하더구먼. 우리도 지금부터 돈을 조금씩 걷어가지고, 혹시라도 우리가 장가도 못 들고 있으면 같은 마을에 모여서 옹기종기 사는 거지.”

들고 있던 숟가락도 내려놓은 채 눈을 빛내며 말하는 새먼트.

“허, 참. 내가 그럼 나이 들어서도 너네랑 같이 옹기종기 살아야 된다 뭐 그런 소리여?”

하지만 알렉은 그런 그의 말이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아니, 형님도? 혹시 누군가 장가를 가면 그 곗돈에서 빼가지고 돈도 좀 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요?”

“내가 그걸 왜 주냐? 나도 장가를 못 갔는데 배 아파서 그걸 어떻게 주냐고!”

알렉은 실제로 그 일이 벌써 일어나기라도 한 듯,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탁’ 하고 내려쳤다.

“참 속 좁다 좁아. 안 그러냐? 짠돌이 아니랄까 봐…… 으악!”

결국 알렉의 숟가락이 테이블이 아닌 새먼트의 이마빡에 정확히 꽂혔다.

“아니, 형님!! 끄으으… 아파라…! 먹던 숟가락으로 더럽게시리!”

“네놈이 더 더러워! 너는 도대체 며칠에 한 번 씻는 거냐?”

“흠… 언제였더라…….”

알렉의 말에 새먼트는 진심으로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다.

“에이! 더러운 자식. 도대체가 여기가 무슨 사막 한복판도 아니고! 물도 있고 다 있는데 왜 안 씻는 거냐고!”

“형님. 어차피 더러워질 거 뭐 하러 그렇게 씻습니까?”

시큰둥한 새먼트의 말에 알렉을 포함한 다른 단원들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옘병할 자식. 어차피 배고파질 거 뭐 하러 처먹냐? 그냥 굶어 뒈지지.”

“이거랑 그거랑 같습니까!?”

“콱 그냥. 이 자식 이거 한마디를 안 져 어째?!”

“크흠. 싸움으로 안 되면 말이라도 이겨야… 끄아아악! 항복! 항복!”

결국 참다못한 알렉이 새먼트에게로 달려들어 그의 목덜미를 졸라댔다.

“아유, 진짜. 형님들도 그만들 좀 하고 식사나 하세요. 스튜 다 식겠네.”

“너 이 자식.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아주 모가지를 똑 꺾어주마.”

“켁… 켁… 잔인한 사람…….”

새먼트는 제 목을 부여잡으면서도 끝까지 한마디를 더 얹었다.

“시끄러워!”

“아, 그럼 우리 옹기종기 모여 살면 그때도 발테리가 우리 형님들 밥해주면 되겠네.”

“하… 저는 그거 하기 싫어서라도 장가 갈랍니다.”

피르칸의 말에 발테리는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너 진짜. 형님들이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냐.”

“그래. 우리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발테리의 옆에 찰싹 들러붙는 키모와 피르칸.

“어휴! 징그럽습니다. 좀 그만들 좀 하세요!”

발테리는 그런 그들을 냅다 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잉~ 발테리이~”

그런 발테리의 행동에 피르칸은 콧소리까지 내며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으아악! 저는 그만 먹을랍니다!”

“왜애애~”

그들은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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