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운수 좋은 날 (3)
“피르칸… 피르칸… 으아아아!!! 피르칸!!!”
힘없이 축 늘어져 버린 피르칸의 몸을 붙잡고 오열하는 알렉.
-끼에에에에!
하지만 와이번 무리는 그런 그의 슬픔을 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개자식들!”
알렉 역시도 닳고 닳은 용병 단원이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죽어버린 동료를 부여잡고 우는 것이 아닌, 다른 동료들도 같은 꼴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키모! 엄호해! 저 개자식들 모가지를 다 따버려야겠으니까!”
“크흑… 예, 형님!”
다른 단원들 역시 제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차분히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기에 다들 거친 손길로 눈물을 닦아내 가며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다.
-피슝! 피슝!
키모의 화살이 빠르게 쏘아져 나가고.
-끼에에에! 끼오오오!
그의 화살에 날갯죽지며 다리가 꿰뚫린 와이번이 날뛰기 시작했다.
“조심해!!!”
-콰쾅! 쾅!
와이번의 날카로운 발톱이 마차를 부쉈다.
“아이스 볼트! 아이스 애로우!!!”
폴라의 마법이 와이번의 움직임을 묶자, 빠르게 달려든 알렉이 목덜미에 칼을 꽂아 넣었다.
-끼오오오! 끼아아아아!
와이번의 날카로운 비명이 창공을 가르자, 다른 개체가 강하하기 시작했다.
“개자식들! 차라리 한꺼번에 오라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와이번의 공격에, 단원들은 물론 폴라까지도 지쳐있었다.
“키르! 일어나! 일어나 보라고!!!”
설상가상으로 스키르는 바닥에 널브러져 정신을 잃고 있었다.
“멍청이! 마나를 거기까지 끌어 쓰면 어쩌자는… 꺄악!”
스키르에게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와이번의 날카로운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폴라를 빗겨 나갔다.
“조심하라고 했잖아!”
와이번의 공격 궤도를 바꾼 것은 키모였다.
멀리서 화살을 쏘아대는 그의 엄호사격에, 단원들 역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단장! 앞에 조심!”
-콰콰쾅!
재빠르게 피해낸 알렉에 비껴 나간 와이번의 부리가 땅에 처박히자, 알렉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 등에 재빨리 올라타 검격을 내질렀다.
“개자식!!!”
-끼오오오…….
와이번은 한 마리만으로도 작은 용병단이나 기사단 정도는 쉽게 박살 낼 수 있는 몬스터였다.
그런 와이번이 연이어 한 마리씩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 단원들은 모두 초주검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들 정신 차려!”
벌써 네 마리째였지만 아직도 하늘을 뒤덮은 와이번 무리는 적어도 열 마리는 더 되어 보였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뱉는 용병 단원들.
그들의 뒤편에 선 폴라는 스키르의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 멍청이……!”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폴라.
-끼에에에!
하나가 쓰러지면 다른 하나가 공격을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와이번 무리에, 아마도 그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 끝이야.’
이대로 가다간 모두 죽고 말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발테리! 새먼트! 키모!”
알렉이 제 단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예, 단장.”
한목소리로 대답하는 단원들.
“끝까지 함께해 줘서 고맙다.”
떨려오는 알렉의 목소리를 들은 단원들이 저마다 손에 든 무기를 한번 꽉 그러쥐었다.
“예, 단장!”
“그래도 우리 한번 살아보자!”
그들의 목소리는 죽음의 공포에 절어있었지만, 기세만큼은 절대 누그러지지 않았다.
“예! 단장!!!”
살아남을 것이다. 이 지옥 같고 거지 같은 현실 속에서.
“씨X! 어쩐지, 운이 X나게 좋더라니!!!”
“크하하하! 단장! 그러게 말이오. 우리가 요즘 운이 너무 좋았어. 그치?”
새먼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어딘가 슬피 들리는 순간.
-끼오오오오!
또 다른 한 마리의 와이번이 지상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전원 전투태세!!!”
“으아아아!”
우렁찬 단원들의 고함 소리가 숲을 가득 메우고.
“폴라! 너는 스키르 옆에 서서 지원해!”
“네!”
폴라 역시도 기세만큼은 그들에게 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두 발에 힘을 꽉 준 채 당당히 서 있는 폴라의 모습은 전장에 선 전사였다.
“씩씩하네! 우리 아가씨!”
-끼오오오오!
눈앞까지 달려드는 와이번의 날카로운 발톱에도 숨을 죽인 채 활시위를 팽팽히 당기는 키모.
-피융! 팍!
그의 손을 떠난 화살이 와이번의 어깻죽지에 정확히 박혀 들어가자, 그 뒤를 이어 재빨리 검을 꽂아 넣는 새먼트.
“죽어라!!!”
-콰직!
새먼트의 검이 와이번의 목덜미를 관통해 들어가고.
“개 같은 자식아!!!”
-콰드득!
알렉의 검이 다시 한번 와이번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끼오오… 끼에에에에…….
와이번 한 마리의 숨이 순식간에 끊어지자, 단원들은 절망 속에 피어난 작은 희망을 보았다.
“이 개자식들아! 덩치만 큰 멍청한 새대가리 새끼들!!!”
검을 뽑아 든 새먼트가 하늘에 대고 소리치자, 와이번 무리가 빙글빙글 돌며 괴성을 질러댔다.
-끼오오오오! 끼에에에!!! 끼에에에에!!!!!
그것을 본 폴라가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저것들… 한꺼번에 올지도 몰라요.”
“…아, 안 되는데!?”
조금 전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치던 새먼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
와이번 한 마리가 지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조심해!!!”
-끼에에에에!!!
“이, 이런 젠장!!! 두 마리야!”
-피슝! 피슝!
키모의 손에서 빠르게 화살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파고들어 와이번의 다리를 베는 새먼트.
“끄아아악! 아아아악!!!”
“발테리!!!”
먼저 내려온 한 마리에게 집중하는 사이, 다른 한 마리가 발테리의 어깻죽지에 발톱을 꽂아 넣고 있었다.
“아이스 애로우!!!”
-피캉! 콰지직!
폴라가 재빠르게 시전한 마법이 와이번의 몸을 꿰뚫었지만, 이미 발테리의 어깻죽지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끄아아악… 아악! 어깨… 내 어깨…….”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휘청이며 바닥에 풀썩 쓰러져 버린 발테리의 얼굴이 고통에 물들었다.
“거, 걱정하지 마! 발테리. 우리 이번에 돈 많이 벌었으니까 그걸로 고치면……!”
“아, 안 돼!!!”
폴라의 마법을 맞고 쓰러진 줄 알았던 와이번이 일순 몸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발테리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아이스 스피어!!!”
-콰지지직! 콰득! 콰드득!
하늘에서 내리꽂힌 얼음 창이 와이번의 몸을 꿰뚫었다.
“바… 발테리! 발테리!!!”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듯했다. 와이번의 발톱이 발테리의 몸에 사정없이 박히고 말았다.
살을 꿰뚫는 기분 나쁜 소리가 생생히 울려 퍼지자, 단원들의 얼굴에 좌절이 피어올랐다.
“크윽… 키모! 조심해!!!”
“다, 단장!!! 뒤에!!!”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한 마리씩 내려오던 와이번 무리는 이제 한 마리에서 두 마리로, 두 마리에서 세 마리로 늘어나고 있었다.
“끄아아악!”
와이번에게 붙잡힌 키모가 와이번과 함께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키모!!!”
“아, 안 돼!!”
순식간에 수십 미터 상공으로 치솟은 키모의 비명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멀어져 있던 키모의 비명 소리가 가까워져 오는가 싶더니.
-콰드득! 콰득!
손쓸 새도 없이 바닥에 처박혀 버린 키모의 몸뚱이가 작게 경련하고 있었다.
“키, 키모… 키모! 키모!!!”
알렉은 그런 키모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멀찌감치에서 그의 이름을 외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전장에 남은 사람은 새먼트와 폴라, 그리고 알렉뿐이었다.
“크윽… 단장! 정신 차려!!!”
“새, 새먼트…….”
“폴라! 정신 차려!!!”
“저, 정신… 차려야지.”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현실에 다들 반쯤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들을 일깨우는 새먼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뚝뚝 묻어났다.
제발 이곳에서 살아 나가자는 듯.
“여기서 우리 모두 죽으면… 쟤들은 어떡하라고!!!”
차게 식어가는 동료들의 주검을 가리킨 새먼트가 악에 받쳐 소리치자, 알렉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해. 정신 차려.”
“폴라!!! 정신 차려야 해!”
그들의 희망은 사실 폴라나 다름없었다.
“응. 정신 차렸어.”
폴라의 입이 다부지게 다물리고 꽉 그러진 두 주먹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그러니까… 다들 뒤로 물러나.”
“단장!! 물러나!!!”
폴라의 말에 재빠르게 알렉을 뒤로 물리는 새먼트.
그들의 눈앞에 있는 세 마리의 와이번은 마치 궁지에 사냥감을 몰아둔 맹수처럼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스키르와 알렉, 그리고 새먼트의 앞을 막아선 폴라가 정신을 집중한 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비처럼 쏟아져라. 라이트닝 스톰!!!”
-콰르릉… 콰릉!
하늘이 울리는 어마어마한 굉음에 새먼트와 알렉은 어깨를 움츠렸다.
-콰지지지지직! 콰지직!
무수히 쏟아지는 번개에 하늘을 빙빙 돌던 와이번 무리 역시 재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폴라의 특기는 사실 얼음이 아닌 전격 마법이었다.
하지만 범위가 넓고 대상을 특정하기가 힘들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다칠 것을 염려해 여태까지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눈앞에는 조금 전까지 얼굴을 맞대고 웃던 사람들의 몸이 넝마가 되어 굴러다녔으며, 한 마리씩 오던 와이번들 역시 여러 마리씩 내려와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끼에에에!! 끼엑!!!
순식간에 몸을 관통하는 전기 폭풍에 와이번들은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크흡!”
폴라 역시도 갑자기 빠져나가는 대량의 마나에 몸을 휘청였다.
“아, 안 돼!”
이곳에서 폴라가 쓰러져 버리면 안 된다.
“이래서… 안 쓰려고 했던 건데…….”
강력한 한 방. 하지만 그다음을 기약하기가 어려웠다.
-콰지직! 콰르릉! 콰직!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번개에, 알렉과 새먼트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주변을 살폈다.
“미안해요…….”
폴라의 사과가 의미하는 것은 뚜렷했다. 동료들의 시신을 온전히 보전하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와…….
-풀썩.
자신 역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사과였다.
맥없이 쓰러져 버리는 폴라와 함께 쏟아지던 번개 역시 뚝 하고 멎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대지와 동료들의 시신 역시도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와이번들 역시 까맣게 그을려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다 끝난 거요?”
멍하니 앞을 바라보던 새먼트가 입을 열었다.
“크… 크흑…….”
“이게… 끝이냐는 말이요.”
터져 나온 알렉의 울음에 떨려오는 새먼트의 목소리.
“흐어어어! 어쩌면 좋냐… 어쩌면…….”
“끄, 끄흑… 끝났냐는 거요…….”
“우리 애들 불쌍해서 어쩌냐… 불쌍해서… 불쌍해서!!!”
바닥에 풀썩 무릎 꿇은 알렉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단장… 우리 이제 어쩌면 좋아. 어쩌면… 끄어어어!! 어쩌면!!!”
“우리 애들… 피르칸, 우리 피르칸… 여자 한번 못 만나보고. 크윽! 이제 머리도 났는데 우리 피르칸…….”
“크흑… 키모!!! 발테리!!!”
키모의 시신에게 엉금엉금 기어가는 새먼트.
“으아아아아아!!!”
동료를 잃은 사내들의 울음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일어나 봐라. 응? 일어나 봐. 키모. 이번에… 이번엔 집에 가야지. 응? 일어나라고!!”
새까맣게 타버린 키모의 시신을 붙든 새먼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어나… 제발 일어나라… 네가 달라고 했던 거 줄게. 내가 미안하다…….”
“미안하다… 새먼트. 이게 다 내 탓이다… 내 탓이야…….”
바닥에 엎드린 채 오열하는 알렉이 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끄아아아! 형님!!! 애들 좀 일어나라고 해보쇼. 제발! 애들이 왜 다들 누워서 일어나질 못합니까!!!”
“미안하다… 미안해…….”
“우리 애들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미안해… 미안하다…….”
“발테리… 발테리! 일어나!!! 너 없이 우리가 밥을 어떻게 먹냐… 네가 일어나서 밥 해줘야지… 응?”
발테리의 시신 옆에 앉은 새먼트가 그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속삭이는 새먼트의 음성에 알렉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일어나 봐라… 응? 네가 형님들 밥 해줘야지. 우리 다 늙어서 함께 살면 네가 밥하기로 했잖냐. 우리 다 굶을 수는 없잖아. 너 없으면 어떻게 하냐… 응?”
“끄허어억… 어어억…….”
숨이 넘어갈 듯 오열하는 알렉은 바닥에 머리를 쾅쾅 처박고 있었다.
그는 단원들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있는 제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형님. 애들 좀 일어나라고 해보쇼. 응? 애들이 내 말을 원래 잘 안 듣잖아… 응?”
“으아아아!!!”
“형님!! 제발… 제발 일어나라고 해봐… 애들이 내 말을 원래… 끄흑! 잘 안 듣잖아!!!”
알렉에게 다가간 새먼트가 그의 어깨를 거칠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말 좀 해보라고! 애들한테 일어나라고… 끄흑! 해보라고요!!!”
“미안하다… 미안해…….”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지고 말았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아니길 항상 바라고 바라왔던 그 현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