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부활교 (2)
백작저에 막 들어서던 앨리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마력에 몸을 흠칫 떨었다.
‘뭐야? 누구야?’
마력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앨리는 빠르게 눈을 굴려 그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다.
‘저거?’
앨리의 눈이 멈춰 선 곳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루카스였다.
많아 봐야 열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의 몸에서 분출되는 어마어마한 마력은 그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 어어!? 저거 터지겠는데!”
소년의 몸에서 나오던 마력이 곧 폭발 직전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저 소년을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를 말리는 게 급선무였다.
“그만~”
루카스의 앞을 재빠르게 막아선 앨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타일렀다.
“…이건 또 뭐야?”
“이거라니? 말이 심하네! 우리 도련님이?”
아무리 화가 났어도 그렇지 ‘이거’라는 말은 앨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말리고 봐야지.
“우선 화를 좀 내지 말아봐. 응?”
“됐고, 비켜라. 이 개 같은 것들을 여기서 죽이면 교주가 부활시키러 오는지 봐야겠으니까.”
“어머나, 말하는 것 좀 봐.”
루카스의 앞을 막아선 앨리는 일단 침착하게 그를 진정시켰다.
눈앞에 있는 소년이 가진 마력도 대단하긴 했지만, 그는 자신이 공들이고 있는 백작가의 도련님이 아닌가?
“그쪽들은 일단 보던 일마저 보러 가보시고.”
앨리는 먼저 멀뚱히 서서 벙쪄있는 사제들에게 휘휘 손짓해 보였다.
“누구 마음대로…….”
“진정하라니까.”
루카스의 어깨에 손을 얹은 앨리가 그의 마력을 지그시 눌렀다.
그녀는 여차하면 마나 드레인이라도 써서 그의 마력을 빼앗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마법사?’
하지만 루카스 역시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 어깨를 누르고 있는 여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것은 확실했다.
“진정이 좀 됐나 봐?”
“비켜.”
“어머, 백작님은 안 그런데 도련님은 꽤나 화끈하네.”
루카스의 짜증 난다는 표정쯤은 앨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 봤자 루카스는 한낱 인간이 아닌가.
‘짜증 나는군.’
루카스 역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와 싸워 이길 수 없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덤벼라도 보겠지만, 지금 제 뒤에는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자신의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들까지 모두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루키… 진정해.”
“오빠…….”
제 손을 잡아끄는 넬라를 보자, 순식간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놀랐겠다. 미안.”
넬라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 넘겨준 루카스가 고개를 홱 돌려 앨리를 위아래로 한번 훑었다.
“어머… 눈빛 너무 다르네.”
능청을 떨며 제 손으로 입을 가려 보이는 앨리는 짜증이 나리만큼 누구와 닮아있었다.
“그럼 나는 가볼게, 도련님? 화내지 말고.”
생글생글 웃어 보인 앨리가 사제들을 따라 백작저로 사라지자 루카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활교. 그들의 존재를 맨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하지만 제 눈앞에 나타난 그들을 보자,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번 생이 끝나면 자신 역시도 신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인지, 이상하리만큼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을 흉내 내는 건방진 인간들.
인간들의 종교는 언제나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그 종교가 신들에게 위협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신들 역시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더라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를지도 몰랐다.
부활이라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들어가자.”
평화롭던 오후 티타임이 순식간에 깨지고 말았다.
“루키. 그러지 말고 우리는 나가서 놀다 오자. 광장에 가보고 싶어.”
폴라의 제안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갔다 오는 게 어떻겠는가? 기분도 안 좋은데 나가서 꼬치구이나 먹고 오지.”
“이번에도 술 마시게……?”
넬라의 물음에 스키르는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는지 미간을 찌푸리더니 헛구역질했다.
“우욱…….”
“하하하! 멍청이. 그러니까 내가 너 술 마시지 말라 그랬지?”
순식간에 풀어진 분위기에 루카스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갔다 오자.”
***
“안녕하십니까.”
백작저의 응접실에 들어선 사제들은 조금 전의 일은 모두 잊은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앉으시지요.”
사제들에게 자리를 권한 백작 역시도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얀테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백작이 내민 손을 살짝 잡은 사제 하나가 그의 손에 이마를 가져다 대며 말했다.
“얀테? 그게 뭐래?”
사제의 인사말에 의문을 보인 사람은 앨리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조금 전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그건 그렇고 얀테가 뭐냐구요.”
“아… 얀테는 저희 교주님을 칭하는 말입니다.”
“…풉.”
사제의 대답에 앨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
“아, 미안해요. 아는 사람이 생각나서…….”
사실 아는 사람이 생각난 것은 아니었다.
앨리는 그저 이번에 생겨난 부활교가 너무나도 재밌었다.
신을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자신들이 뭐라도 된 양 행동하는 그 모양새가 귀엽기까지 했다.
“…예.”
앨리의 웃음에 기분이 상했는지 사제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아, 얘기해 보세요. 제가 뭐 시타타의… 재무대신? 같은 거니까.”
백작에게 눈치를 주는 모양새가 마치 자신을 쫓아내려는 것 같자, 앨리가 얼른 말을 붙였다.
“예. 맞습니다. 여기 계신 앨리님께서는 저희 시타타의 재정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시비에 백작 역시도 앨리의 말에 힘을 실어주자, 사제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부활교에서 이곳 시타타에 교당을 짓고 싶습니다.”
“흐음~ 교당이라.”
“흠흠… 교당을 지을 자리를 내어주신다면, 저희 부활교에서 시타타에 도움이 될만한 다른 시설들을 지어 백작령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흐으음~ 도움이라.”
사제의 말이 끝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추임새를 넣는 앨리.
그 때문에 사제들은 표정이 점차 굳어가고 있었다.
“왜 그러시는지…….”
“아니. 그냥 듣다 보니 조금 그래서요. 도움이 된다고요? 우리 시타타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오신 거죠?”
“…그렇습니다만.”
“부활교가 어떤 종교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이게 좀 많거든요.”
앨리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그들 앞에 짤랑짤랑 흔들어 보였다.
“크흠…….”
백작은 앨리가 저런 행동을 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아니, 맞잖아요? 백작님. 우리 돈 많은데. 아닌가?”
“그, 그건 맞지만…….”
“그런데 이 사람들이 금싸라기 같은 우리 땅을 내어주면 다른 데다가 또 뭘 지어서 보답한다잖아요? 도둑놈인가?”
앨리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사제들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 저기…….”
“보세요. 그 뭐야? 부활교고 나발이고 우리한테 진짜 도움이 될만한 걸 가지고 와요.”
다리를 척 꼬며 그들을 깔아보는 앨리의 시선에, 사제들 역시 무척이나 당황한 듯 보였다.
“…저희 부활교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아시는지요?”
“어떤 일은 무슨. 사람들 꼬드겨서 돈이나 받아먹겠지.”
시큰둥한 앨리의 대답에, 붉은띠를 두른 사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말이 지나치십니다!”
“에렌타님! 진정하세요!”
푸른색 띠를 두른 사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정 그러시다면 저희 부활교에서도 방법이 없군요. 시타타에는 교당을 지을 수 없겠다고 옌테님께 전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앨리 역시도 아쉬울 것은 없었다.
뭐 처음에는 종교 하나쯤은 들어와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저 인간들을 꼬라지를 보아하니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사제들이 콧김을 씩씩 불며 방을 빠져나가자, 백작은 멍한 표정이 되어 앨리를 바라봤다.
“저… 앨리님?”
“네, 백작님?”
“부활교를 저희 영지에 들인다고 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음… 그러기 싫어졌어요. 쟤네 마음에 안 들어요. 그리고 백작님 아들내미도 쟤네 마음에 안 드나 보던데?”
시큰둥하게 다리를 바꿔 꼰 앨리가 제 손톱에 난 거스러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
“아니 내가 보니까 앞에서 백작님 아들내미랑 싸우고 있더라고?”
“예!?”
앨리의 말을 들은 백작은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그들을 쫓아 나갈 기세였다.
“키야~ 백작님 아들내미 대단하던데요? 쟤네 다 죽을 뻔한 거 내가 살려서 들어온 거 아냐?”
“그, 그게 무슨……!”
하지만 이어지는 앨리의 말을 듣자, 순식간에 화가 누그러진 듯 보였다.
역시 부모는 제 자식이 누구에게 맞고 들어오지만 않으면 괜찮은 듯싶었다.
“몰라요. 나도 자세한 건 잘 모르겠는데 백작님 아들내미가 화가 많이 났더라고.”
“크흠! 그렇다면 들이지 않기를 잘한 것 같군요. 우리 루카스가 무뚝뚝해서 그렇지 화가 많은 아이는 절대 아니니 말입니다! 저들이 분명 잘못했을 겁니다!”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인 백작은 그들이 빠져나간 문가를 한번 앨리를 한번 바라봤다.
“어머나, 백작님 아들내미 엄청나게 믿으시네. 도련님은 좋겠어요.”
“크흠. 진짭니다. 저희 루카스가 얼마나 순한데요.”
조심스레 제 아들 자랑을 하는 백작의 입가가 씰룩였다.
‘……미친. 제 아들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앨리의 입가 역시 다른 의미로 씰룩였다.
***
“여어! 너희도 놀러 나왔냐?”
“오늘도 한잔해야지?”
광장에 나가자 마주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푸른 늑대 용병 단원들이었다.
그들은 간이 여덟 개는 되는지 매일같이 술을 들이붓다시피 하고 있음에도 언제나 멀쩡했다.
“아, 그리고 물어볼 게 있는데.”
다른 단원들이 스키르에게 다가가 술을 마시자고 하는 사이, 단장이 루카스에게로 살짝 다가왔다.
“예. 말씀하세요.”
“그… 머리 나는 약 있잖아. 그거 어디서 파는지 알아? 저번에 내가 저놈한테 꼭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
“그거 다 가짜 아닙니까?”
“스읍! 가짜라니! 안 그래도 어떤 여자가 저 자식에게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며칠째 죽상이라고!”
루카스의 말에 목소리를 한껏 낮춘 단장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없어?”
“흐음. 저번에 갔던 그 여관 있죠? 그 뒤편으로 돌아가면 작은 상점이 있습니다. 간판이 뭐였더라… 여하튼 작은 글씨로 된 간판이 있는 붉은벽돌 건물이 있어요.”
“응응.”
“그곳에 가서 한번 물어보세요.”
“오오, 고마워.”
루카스가 알려준 곳은 온갖 잡동사니를 다 두고 파는 그런 상점이었다.
하지만 주인장이 물건을 골라오는 솜씨가 꽤 좋은지, 종종 괜찮은 물건들이 있어 루카스 역시도 그곳을 자주 찾았다.
왠지 그곳이라면 단장이 찾는 발모제가 있을 듯도 싶었다. 하지만 루카스도 알고 있었다.
‘발모제는 전부 가짠데…….’
그런 루카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장은 웃는 얼굴로 상점을 찾아 떠났다.
“여어! 먼저 가 있으라고! 나는 어디 좀 들를 데가 있으니 말이야.”
“단장! 그럼 우리 어제 갔던 거기로 가있을게!”
“그래!!!”
멀어지는 단장에게 소리치는 단원들은 어느새 스키르까지 데리고 떠나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아보는 스키르의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구해달라고.
“잘 가 키르! 오늘도 술 많이 마셔!”
“잘 가 오빠!”
손까지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는 넬라와 폴라.
그들을 돌아보는 스키르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멍청이. 그러니까 저번에 왜 술을 마셔서는. 우리도 가자!”
“언니 우리는 어디가?”
“흐음~ 그러게?”
루카스를 돌아보는 폴라와 넬라.
“우리도 그냥 스키르랑 같이 가자. 옆 테이블에서 우린 맛있는 거 먹으면 되지.”
“아, 뭐야! 괜히 인사해줬네.”
“그래. 오빠 불쌍하니까 같이 가주자.”
루카스와 일행들 역시 결국 스키르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