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문제 (1)
콧바람을 씩씩 불며 시타타로 돌아온 앨리는 당장이라도 백작가의 아들내미를 찾아 따져 묻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아만의 표정이 저렇게 죽상이 되었냐며 말이다.
“저건 또 뭐야?”
하지만 앨리의 발길을 잡아끈 것은 다름 아닌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울고 있는 대머리 사내였다.
“왜 울고 난리래? 아저씨, 왜 남의 집 앞에서 울고 난리?”
“크어어엉! 아저씨라니… 아저씨라니!!!”
앨리의 부름에 돌아본 사내는 ‘아저씨’라는 말에 더욱더 세차게 울어 젖히고 있었다.
“아저씨 아니면 뭐야? 머리는 하나도 없어 가지…….”
“끄어어엉! 어어엉!! 단장이 머리나는 약 사준다고 했어! 했다고!”
“풉. 머리나는 약?”
“그래! 이 여자야! 단장이 머리나는 약 사주면 나도 이제 머리 생길 거라고! 나는 꽃다운 스물일곱이야!”
피르칸의 말을 비웃던 앨리는 사내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쓰디쓴 진실 하나를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저씨… 내가 슬픈 얘기 하나 해줘?”
“쿨쩍… 뭔데?”
피르칸의 귓가에 조심스레 입을 가져다 대는 앨리.
“이 세상에는 말이야… 사막에 풀을 자라게 하는 약은 있어도 머리가 자라나는 약은 없어.”
“……!”
“그런 약은 전부 가짜야… 가짜…….”
유유히 돌아서 사라지는 앨리를 바라보던 피르칸은 그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가짜… 가짜라니…….”
***
앨리가 떠나고 난 뒤, 아만은 정신을 차리고 라스칸으로 향했다.
지금은 루카스에게 삐져있는 상태인지라 그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들었던 말과 루카스가 했던 말을 토대로 조사한다면 어느 던전인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했던 말 중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시체가 한 구 놓여있었다…….’
게다가 폴라의 표현에 따르면 그 시체에는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 역시 굉장히 많았다.
“흐음… 여긴가?”
라스칸에 도착한 아만은 아이들이 했던 말과 비슷한 조건의 던전을 찾아낸 듯했다.
입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탐색 마법으로 찾아낸 던전은 생각했던 대로 공간 사이에 틈이 존재했다.
던전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와 더불어 기분 나쁜 기운이 훅 끼쳐왔다.
“하… 진짜 싫군.”
던전은 단조로웠다. 몬스터 한 마리 없었으며, 버려진 지 꽤 되었는지 트랩들조차도 최근에 발동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꽤나 공들여 만들었을 트랩들의 흔적을 살펴보던 아만은 그것들 중 하나를 발동시켜 보기로 했다.
-덜컥
바닥을 밟자 벽돌이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흐음…….”
무언가 굴러오는 소리는 아니었다.
-치이이이익
한참을 기다리자, 어디선가 압축된 공기가 힘겹게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가스?”
벽 틈새를 비롯한 사방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에 아만은 일부러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수면 가스네.”
트랩조차도 별게 없었다. 수면 가스는 말 그대로 잠이 드는 가스였다.
몬스터 한 마리 없는 이곳에서는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면 개운하기만 할 것이다.
“어이가 없네.”
코웃음을 친 아만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이번 트랩은 벽에 위치해 있었다.
“이번엔 좀 제대로 된 게 나오려나?”
-달칵
다시 한번 트랩을 발동시켜 보는 아만.
“뭐야?”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 봐도 트랩은 발동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찌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트랩을 연결하는 무언가가 끊어져 발동되지 않는 듯했다.
“…뭐 이런 재미없는 데가 다 있어?”
싱거운 기분에 입맛을 다신 아만은 다시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넓은 동공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아이들이 말했던 시체 한 구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동공에 들어서자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시체에 가까이 다가서던 아만은, 더욱더 진해지는 기분 나쁜 냄새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단순히 시체 썩는 냄새가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 더러운 것이 섞여 있었다.
“흑마법이라… 그것보다는 뭐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제 품속에서 약병을 하나 꺼내 든 아만이 뚜껑을 열어 두어 모금 들이켰다.
시체에 조금씩 가까워질 때마다 기분 나쁜 냄새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마셔둔 약 덕분에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하…….”
시체에 다가선 아만은 그 기분 나쁜 냄새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마기였네.”
마기. 마족들의 기운이 대표적인 마기중 하나였지만, 이것은 그것과는 또 약간 달랐다.
마치 흑마법이 마력이 기초가 되는 마법 중 하나인 것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마족들이 가진 기운이라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천여 년 전에는 마족들 역시도 지상에 있는 자신들의 땅 위에서 함께 살아가던 종족이었으니 말이다.
“…마기?”
아무렇지도 않게 제 눈앞에 있는 기운만을 생각하던 아만은 그제야 번뜩 정신이 들었다.
마기라니! 분명히 이 땅 위에는 이제 남은 마족이 없었어야 했다.
마족과의 혼혈은 분명히 이 땅 위에 남아있긴 하겠지만, 그들이 이런 순수한 마기를 이곳에 남길 수 있는 시간은 진즉에 지났다.
벌써 몇 세대나 지났을 테니 말이다.
“이런 개 같은!”
만나본 적 없는 존재라 한들, 다른 드래곤들에게 들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적대심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기?! 이런 같잖고 더러운 것들이 어디……!”
분명 마족들은 모두 마계로 쫓겨났다.
순식간에 모든 종족에게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된 마족.
그들이 가여웠던 마신은 주신께 요청해 마계를 부여받았고, 마족들은 모두 마계로 쫓겨나다시피 이주했다.
“마족 놈들이 지상으로 다시 기어 나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시체를 살피던 아만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손까지 떨려오고 있었다.
아만은 시체를 살펴보던 것을 멈추고 시체에 걸린 술식들을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었다.
시체에 걸려있는 술식은 다양했다. 마법부터 흑마법 게다가 주술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마력과 마기가 뒤섞인 채 이루어져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시체에 걸린 술식을 풀어내던 아만의 이마에는 땀까지 맺히고 있었다.
“씨X!”
결국 아만의 입에서 거친 욕지거리까지 튀어나와 동공을 울렸다.
자신이 풀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드래곤이 풀 수 있는 수식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것이었다.
마치 세계의 정상에 선 수학자나 다름없는 종족이 난제를 마주한다면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
누군가는 희열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은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이 혐오하는 마족이 만들어 낸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것은 크나큰 수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족들을 직접 마주한 적이 없는 아만이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했다.
“개 같은 자식들!!!”
지금 아만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제 아버지인 하셀뿐이었다.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단 한 사람. 아니, 드래곤.
-파앗!
생각을 마친 아만은 자신이 선 곳의 좌표를 기억한 뒤 빠르게 텔레포트했다.
***
“너 요즘 자주 온다?”
“도와주세요.”
“하, 어이가 없네? 너 나한테 뭐 부탁 맡겨놨냐?”
자신의 레어에서 고상하게 차를 홀짝이고 있던 하셀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제 아들의 존재가 썩 달갑지 않았다.
“마족입니다.”
“……?”
아만의 말에 마시던 찻잔을 내려둔 하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마족이 다시 나타난 것 같습니다.”
드래곤에게 있어 마족은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마족’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하셀은 즉각 반응했다.
“말도 안 된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직접 보고 판단하세요.”
“하. 이번에 사라진 학생들은 찾았고?”
아만은 루카스와 일행들이 사라졌을 때, 도저히 제힘으로 찾을 수 없을 것 같지 하셀에게 찾아왔었다.
하지만 하셀은 알겠다고 대답만 한 채 사실 찾아보지도 않았다.
“예. 찾았습니다.”
“오, 그래? 다행이네.”
아만 역시도 하셀이 그들을 찾아보지 않은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셀의 저런 뻔뻔한 반응을 보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마족이라니까요?”
“말도 안 된다고.”
하셀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족들은 이미 천 년 전에 모두 마계로 쫓겨났지 않았는가.
그 사실을 모르는 드래곤은 없었다.
물론 인간들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었고 말이다.
“……!?”
그때였다. 아만이 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하셀의 앞에 내려놓자, 하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세요.”
“이, 이게 왜 여기에……!”
“사실 몇 년 전에 발견한 겁니다.”
-쾅!
아만의 대답을 들은 하셀이 티 테이블을 거칠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걸 왜 이제서야 얘길 하는 거냐!”
“그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게 별것 아니야!? 이게!?”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다름 아닌 ‘몰렉의 숨결’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보석이 박힌 팬던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할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하셀은 그 아름다움이 역겨웠다.
“…죄송합니다.”
“너 내가 뭐랬어? 유희를 할 거면 적당히 해야지! 벌써 몇 년째야? 내가 너 사고 치는 거 수습하는 데에 진절머리가 난다!”
“…….”
“이번엔 뭐? 마족? 게다가 몇 년 전!?”
하셀의 반응을 보니 분명 엄청나게 심각한 일이었다. 루카스가 자신에게 보관하라고 했던 몰렉의 숨결이 이 정도의 반응이라니.
“죄송합니다. 제가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죄송!? 죄소옹!? 내가 너 때문에 어디 가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다.”
테이블 위에 팬던트를 거칠게 내려놓은 하셀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이건 그래서 어디서 난 건데?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거다.”
하셀의 으름장에 아만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게…….”
이어지는 아만의 설명을 모두 들은 하셀의 표정은, 천국과 지옥을 열두 번은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변했다.
“그래서 지금 그 시체에 걸린 술식을 풀어달라?”
“예.”
“그 시체는 아이들이 사라졌던 그 던전에 있고?”
“예.”
“그런데 그 시체에 마기로 엮은 술식이 걸려있고?”
“예.”
“그런데 너는 그걸 못 풀겠고?”
“…예.”
되묻는 하셀의 말에 대답을 하는 아만의 표정 역시도 점차 어두워졌다.
하셀은 아들인 아만을 만날 때마다 항상 앵무새처럼 말했었다.
‘유희는 즐거운 만큼만 하는 것이 유희다.’라고 말이다.
드래곤으로서의 삶보다, 인간이나 타 종족의 삶에 더욱 집착하는 듯한 아만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만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희를 즐기다 보면 답답하고 짜증 나는 일도 분명 있다.
하지만 아만은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 참된 유희라고 생각했다.
“너 내가 말했지?”
“…압니다.”
“그걸 아는 자식이 그래!?”
하셀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아만은 저도 모르게 아려오는 귀를 한 번 후볐다.
“…귀를 파?”
“…예?”
“너 지금 듣기 싫다고 시위하는 거야?”
“그, 그게 아니고…….”
큰일 났다. 부탁을 하러 온 아만은 지금 절대 보여서는 안 될 행동을 하셀 앞에서 보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그게 아니라!!!”
그의 손에서 마력이 끓어오르자, 아만은 얼른 제 손을 뻗어 하셀을 만류했다.
“아, 아버지!!!”
“아버지? 그래. 오냐 아들아. 너 오늘 좀 맞아야겠다.”
-쿠르릉!
“아버지! 그게 아닙니다! 제가…… 제가!!”
-쿠르르릉!
“안 맞은 지 오래됐지? 먼저 맞고 시작하자.”
“으… 으아아!!!”
***
먼지 나게 맞았다는 표현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쓰는 것이 분명했다.
아만은 진짜 먼지 나게 두들겨 맞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셀이 본체로 돌아가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막았다는 것이었다.
“끄어어…….”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는 아만을 힐끗 본 하셀이 제 손을 ‘탁탁’ 털었다.
“앞으로 안 그럴 거지?”
“예에에…….”
대답할 힘도 없는지 겨우겨우 대답하는 아만.
“그럼 가자.”
“예?”
“도와달라며? 마족이라며?”
“……예.”
“가야지.”
“……예.”
조금 전까지 신명 나게 자신을 두들겨 팬 하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발을 재촉했다.
어쩌겠는가? 원래 약자는 서러운 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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