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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96화 (96/225)

96화. 돌아온 아이들 (1)

“여어! 잘 잤어?”

점심까지 늘어지게 잔 루카스와 스키르는 제일 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먼저 와있던 용병 단원들이 손을 높게 들어 그들을 반겼다.

“크으! 술은 역시 낮술이 최고라니까!”

도착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용병 단원들의 곁에는 벌써 빈 술잔과 술통이 가득했다.

“폴라 양! 폴라 양은 올해 나이가 몇이라고 했지?”

“열여덟이에요!”

“오오, 그럼 생일은 지났나?”

“음…… 아직이요.”

“아쉽구먼, 생일만 지났으면 이 끝내주는 맛을 내가 오늘 알려줄 수 있을 텐데 말이여!”

무척이나 아쉬운 듯 제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저어 보이는 알렉 단장.

“그럼 거기, 귀족가 자제분? 그쪽은 나이가 다 되어 보이는데. 어때, 한잔할텨?”

“……나는 되었소.”

“크하하! 역시 귀족가 자제분답게 이런 곳에서 술은 입에 맞지 않으시나 보구먼!”

“그, 그런 것이 아닐세! 나는…….”

“혹시 술을 못하쇼?”

“…….”

스키르는 성인이 된 다음 멋모르고 마신 술에 된통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그 뒤로 술은 입에 한 모금도 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몸이 한 수 가르쳐 드려야지! 이쪽으로 와서 앉으쇼!”

제 옆자리를 두드리는 단장을 보는 스키르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단장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굉장히 체면이 안 살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 어서! 앉으래도!”

“알겠소!”

단장의 채근에 스키르는 무언가 결심한 듯 큰 소리로 대꾸했다.

“오, 그렇지! 역시 남자로구먼!”

스키르는 그런 자신을 제 손바닥 위에 두고 가지고 놀 듯하는 단장의 꾐에 그대로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크하하, 꼬마 도련님이 많이 컸네! 여기 맥주 한 통 더 줘요!”

그렇게 스키르는 용병 단원들 무리에 섞여들어 술잔을 받고 있었다.

“야, 저거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거야?”

“알아서 하겠지. 넬라, 식사는 주문했어?”

폴라의 물음에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해 보인 루카스가 넬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응. 오빠는?”

“나도 이제 주문해야지.”

메뉴판을 집어 든 루카스가 찬찬히 메뉴를 훑고 있을 때였다.

“어? 저기, 도련님 아니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불길한 기분이 스쳐 지나갔다.

“맞는 것 같은데… 언제 오신 거지?”

“에이, 아니겠지. 아직 학기 중 아니신가?”

자기들 나름대로 작은 목소리로 떠든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루카스의 귀에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옘병.’

조용히 밥을 먹은 다음 백작저로 떠나려고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한참을 소곤소곤 떠들던 사람들이 식당을 빠져나가자, 이제는 그 이야기를 엿들은 다른 사람들이 흘끔거리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맞네, 백작가 도련님이시네.”

“그렇네. 저기 옆에 계신 분은 아가씨잖아.”

“저쪽에 계신 분은 오닐가 도련님 아니신가? 왜 용병단 사이에 계신 거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술 마시는 데에 정신이 팔린 용병 단원들은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저기…….”

결국 찾아오고 말았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그 순간이.

“무슨 일이시죠?”

루카스에게 다가온 점원의 손에는 시키지도 않은 음식이 한가득 들려있었다.

“저 이거…….”

점원은 쭈뼛거리며 손에 있는 음식을 테이블에 조심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시킨 적이 없는데요.”

“저희 식당이 보이는 성의입니다. 항상 백작가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

난감했다. 금품도 아닌 정성이 담긴 따뜻한 음식을 내온 점원의 얼굴에는 거짓된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감사하는 표정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점원을 지켜보는 사장 내외 역시도 마찬가지였기에, 그가 들고 온 음식을 거절할 수가 없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일행들과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용병 단원들도 그제야 루카스가 앉은 테이블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어디 도련님인데 그래?”

“…….”

낌새를 눈치챈 단장이 그들을 알고 지내던 새먼트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새먼트는 입을 꾹 닫은 채,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뭐, 뭔데 그러십니까?”

“아니, 여기 점원이 안 주던 서비스를 줬어. 그것도 저렇게나 많이.”

“……저걸 서비스로요?”

루카스의 테이블에 산처럼 쌓인 산해진미를 본 단원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뭐 하러 이런 서비스는 줘서!’

사실 엄청 곤란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시원하고 편안하게 ‘내가 로드리고 백작가의 장남이다.’ 하면 되는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틀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한 이들의 마음에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 세상은 완벽한 신분사회였다. 용병단은 루카스가 귀족인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느 집 자제인지까지는 몰랐기에 그나마 일행들을 편안하게 대해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스키르와 넬라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이 모든 상황은 상하관계가 나누어지는 불편한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설마… 로드리고 백작가 도련님?”

단장이 새먼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 그게…….”

말을 잇지 못하는 새먼트.

그런 새먼트를 보는 단원들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들과 섞여 쓴 술을 몇 잔이나 연거푸 마신 스키르 역시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그 역시도 이틀 동안 함께한 용병 단원들과의 관계가 순식간에 불편해지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이렇게 된 거 뭐…….”

루카스가 그들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저희 영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누구 집 도련님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옆에 앉은 스키르 역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지?”

“그렇다.”

루카스의 말에 스키르 역시도 얼른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니 그냥 부잣집 친구들을 좀 알았다고 생각해 주세요.”

“허어… 그게… 어떻게…….”

어버버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단원들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자, 루카스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여기 시타타에서 나오는 의뢰들이나, 괜찮은 골드 나인 의뢰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천연덕스럽게 한쪽 눈까지 살짝 찡긋하는 루카스에, 용병 단원들은 모두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래! 까짓거 뭐. 누가 경을 치지만 않으면 우리도 좋다!”

단장의 시원한 대답에 단원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좋아!”

“그런데 너 이 자식… 어떻게 말 한마디를 안 해 주냐?”

화살은 새먼트에게로 돌아갔다.

“그, 그게 단장…….”

“너는 오늘 두 발로 못 걸을 줄 알아! 자, 마셔! 마셔!”

순식간에 풀어진 분위기. 드래곤으로 지내던 전생에도 수많은 용병단을 만나봤지만, 이들처럼 이렇게 끈끈한 용병단은 보기가 드물었다.

단원들끼리 시기와 질투는 기본이었으며, 단장 몰래 뒤에서 의뢰를 가로채거나 단원들을 빼내어 새로운 용병단을 창설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저들은 마치 형제와도 같은 끈끈함을 보였다.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어.”

“응. 오빠도…….”

“응. 루키도 많이 먹어!”

폴라와 넬라 역시도 풀어진 분위기 속에 식사를 이어갔다.

“이것 좀 먹어봐. 진짜 맛있어!”

“언니도 이거 먹어봐.”

둘은 이제 외모까지 제법 닮아 있을 만큼 친자매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그들이 먹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던 루카스는 옆 테이블에 앉은 스키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거 술 잘 못 먹을 텐데…….’

술을 제대로 마셔본 적도 없는 스키르는 단원들이 주는 술들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었다.

“오오, 공작가 영식님! 아주 잘 먹는데?”

“크으…… 내, 내가 잘 먹는 건가?”

“그럼, 그럼! 아주 잘 마셔! 대단해!”

겉만 멀쩡했지 속은 아직 애나 다름없는 스키르는 단원들의 칭찬에 눈밭 위에 선 강아지처럼 신이 나 있었다.

“그렇다면 한 잔 더 줘보게!”

“키야! 아주 상남자야! 대단해!”

“푸흐흐… 상남자… 그래! 나는 상남자야!”

“그럼, 그럼! 자, 건배!!!”

“건배애!!!”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루카스는 불안한 마음이 더욱 커져갔다.

‘저 뒤처리는 다 내 몫일 텐데. 적당히 좀 처먹지…….’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으로 가져간 루카스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예전에 캠프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또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쾅!

그때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스! 넬라!”

그곳에는 시비에 백작이 상기된 얼굴로 서 있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기 시작했다.

‘젠장.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온 거야!’

***

루카스를 비롯한 모든 일행들은 갑작스러운 시비에 백작의 방문에 놀랄 새도 없이 백작저로 모두 끌려왔다.

가장 긴장한 것은 아무래도 용병단이었다.

“자, 다들 놀라셨을 텐데 어서 앉으세요.”

단원들은 모두 얼큰할 만큼 술을 먹었음에도 백작의 등장에 그 술이 모두 깨고 말았다.

백작저의 안주인인 블레인의 다정한 말에도, 단원들은 모두 쭈뼛거리며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머니, 손님들은 제가 따로 안내를…….”

“루카스! 너는 말도 하지 마라!”

불편해 보이는 단원들을 배려하려던 루카스는 시비에의 외침에 다시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마차를 함께 타고 오면서 시비에 백작의 잔소리를 귀가 터질 만큼 들었던 터라, 여기서 무어라 대꾸를 하는 순간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루카스. 엄마는 너무 서운하구나.”

“그게…….”

“시끄럽다!”

시비에 백작은 아들과 딸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들어 심통이 단단히 나 있는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게 집으로 바로 오지 않을 수가 있느냐!”

“…….”

“시간이 늦어 그랬다는 말은 두 번 다시 하지 말거라! 어느 집 자식이 집에 오는데 시간을 따져가며 온다는 말이냐! 응?”

벌써 열 번도 넘게 들었던 말이었다.

“아니, 도대체! 영지민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벌써 영지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더구나. 백작가 자제들이 여관에서 하루를 묵고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더라는 소문이 말이다!”

“…….”

“넬라는 오빠 따라 그랬다 치자! 그런데 너는 어떻게 집으로 바로 오지 않을 생각을 한 게야!”

삐져도 단단히 삐졌다. 이건 무어라 변명을 해봐도 쉽게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저… 아버지…….”

“뭐, 뭐!”

자신의 소매를 잡아끄는 넬라를 본 백작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넬라가 큰 눈으로 애절한 눈빛을 보내자, 백작은 순식간에 화가 누그러지고 말았다.

“죄송해요… 제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으니 내일 가자고 했어요…….”

“크흠… 그래도 그렇지…….”

“저도 집에 오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래요. 여보.”

넬라의 공격에 이어 블레인까지 지원사격에 나서자, 백작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거라! 알겠느냐?”

“예.”

“……밥은. 먹었느냐?”

백작은 괜히 머쓱한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와중에 끌고 온 것을 잊은 듯 질문했다.

“…….”

그런 백작의 질문에 모두가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바닥만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 소개가 늦었소이다. 시비에 로드리고입니다.”

“여, 영주님을 뵙습니다!”

백작의 갑작스러운 소개에, 용병 단원들은 모두 고개가 땅에 박힐 듯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허허, 그렇게 어려워할 것 없습니다. 저도 대충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을 이곳까지 안전히 데려다주셨다고 말입니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신세를 졌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조금 전까지 토라져 화를 바락바락 내던 백작의 다른 얼굴에 용병 단원들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은 여관이 아닌 이곳에서 편히 쉬다가 가시지요.”

“가, 감사합니다!”

“식사를 준비하게. 손님들께서 불편하시지 않게 저희는 따로 들겠습니다. 내일 아침을 같이 하셔도 괜찮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백작의 인자한 웃음에도 단원들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자, 그럼…….”

로비를 빠져나가는 백작은 루카스를 한번 찌릿 째려봤다.

‘……야단났네.’

아무래도 몇 년 동안은 이 사건을 우려먹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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