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탈출 (2)
“아얏!”
“조심해.”
스키르는 툭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한 폴라의 팔을 빠르게 붙잡았다.
“고, 고마워.”
그의 팔을 어색하게 내려놓는 폴라.
‘뭔가 이상해…….’
던전을 지나오는 내내 루카스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측에서 만들어 낸 던전이라고 한들, 너무나도 평온했다.
초반에 지나왔던 간단한 트랩들과 비슷한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몬스터 한 마리조차 없었다.
“아까와 같아. 내가 밟는 곳만 밟아.”
패턴 또한 비슷했다. 루카스는 이 트랩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라도 한번 밟아보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언제쯤 끝날까……?”
어느새 던전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던전의 길이는 끝나기 전까지 알 수 없어.”
“하아…….”
아이들은 긴장감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조금 쉬었다 갈까?”
“아니. 나는 괜찮아.”
루카스의 말에 폴라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응. 나도 괜찮아.”
“나도 괜찮다.”
폴라의 대답에 다른 아이들 역시도 고개를 저었다.
“그래. 가보자 그럼.”
좁은 골목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여러 번.
어디선가 동굴의 퀴퀴한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으윽…… 이게 무슨 냄새지?”
깊이 들어갈수록 그 냄새는 점점 더 진해지기 시작했다.
“우욱…… 속이 안좋아.”
-사아아
아이들이 괴로워하자, 루카스가 얼른 작은 바람을 일으켜 냄새를 날려 보냈다.
“조금만 참아.”
“으응…….”
냄새가 더욱 짙어져 코가 마비될 때쯤이었다.
“저, 저기……!”
나이아스가 보았다던 사람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체가 여러 구가 아닌 딱 한 구뿐이었다는 것.
“여기서 기다려.”
아이들에게 안 좋은 것을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혼, 혼자 괜찮겠는가?”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린 루카스를 앞세우는 것이 내키지 않았는지 스키르가 얼른 그를 붙잡았다.
“응. 괜찮아.”
루카스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탐색 마법을 넓게 펼친 루카스는 아이들이 서 있는 곳이 안전한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내가 혹시 위험한 것 같으면 도와줘.”
루카스의 부탁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이들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임무를 같이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시체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불쾌한 냄새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단순히 시체 썩는 냄새가 아냐.’
시체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역겨웠다.
하지만 루카스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시체 썩는 냄새가 아니다. 무언가 불순한 것이 섞여 있는듯한 그런 냄새였다.
‘……이게 뭐야?’
시체의 곁으로 다가선 루카스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시체의 다리는 이상하리만큼 바짝 말라 있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 시체의 상태와는 달리 썩는 냄새가 유독 진했다.
시체의 눈꺼풀을 들추자 하얗게 변해있는 눈동자가 자신을 마주했다.
‘맹인……?’
게다가 시체의 손 역시도 괴이하게 비틀려 있었다.
누군가 고의로 비튼 것이 아닌, 원래부터 이렇게 생긴 것처럼 말이다.
그에 이어 다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태어나 한 번도 걷지 않은 사람의 다리처럼 보였다.
‘맹인에… 걷지 못하는 사람이… 이곳 던전까지 들어왔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아무리 버려진 던전이라 한들, 이런 상태의 사람이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들어오는 길에는 곳곳에 함정까지 숨어있지 않았는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교주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오오… 그래. 파멜라. 고맙구나.”
교주의 방에 들어선 여자는 밝은 갈색 머리와 금안에 가까운 눈동자를 가진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중간 사제를 뜻하는 붉은 띠를 두른 여자는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법한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 식사는 요청하신 대로 부드러운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래요… 그래. 오늘은 왠지 속이 불편해서 말이야.”
자비롭게 웃어 보인 남자가 흰머리가 희끗희끗 나 있는 제 수염을 스윽 쓸어내렸다.
교주라는 노인은 처음과는 달리 날이 지날수록 젊어지고 있었다.
“그럼…….”
“파멜라. 내 식사가 끝나기 전에 나가도 좋다고 누가 그랬지?”
식탁 위에 식사를 차린 여자가 몸을 돌려 나가려 하자, 남자의 목소리가 짐짓 날카롭게 변했다.
“그, 그것이…….”
“클클클… 우리 파멜라…….”
노인의 손길이 그녀의 손등을 스윽 쓸어올리자, 파멜라는 몸을 흠칫 떨었다.
“이리 가까이 와보아라.”
“…….”
“가까이 와보래도!”
파멜라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는 교주.
“클클클…….”
제 무릎 위에 그녀를 억지로 앉힌 교주의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방을 울렸다.
“흐으음… 우리 파멜라는 언제나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
“벌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
“대답을 하지 않으면 벌이 더욱 심해지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기어들어 가는듯한 목소리.
파멜라의 몸은 점점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 그래. 착하구나. 말을 잘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네 부드러운 살결에 흠이 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예.”
“오늘은 우리 파멜라가 직접 먹여주는 것이 좋겠구나. 그렇다면 내 기분이 한결 나아지겠어.”
교주의 무릎 위에 앉은 파멜라가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집어 들자, 그녀의 손 떨림에 맞춰 식기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래…….”
그릇에 담긴 스프를 조심스레 뜬 파멜라가,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붙잡은 채 조심히 교주의 입가에 가져갔다.
“윽!”
스프가 뜨거웠던 것인지 교주의 입에서 외마디 신음이 터져 나왔다.
-와장창!
“아악!!”
순식간에 뒤엎어진 테이블과 함께 날아간 파멜라가 바닥에 엎어졌다.
“파멜라……! 내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하는구나.”
교주의 서슬 퍼런 눈빛에, 파멜라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손을 비비고 있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벌을 내려야겠구나. 파멜라…….”
“교, 교주님! 제발… 제발…….”
“나쁜 아이는 벌을 받아야겠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교주의 발끝을 바라보는 파멜라는 공포에 질려 몸을 떨고 있었다.
“내 가르침에 감사하거라.”
“으, 으아악!!”
***
상급반의 시험장에 나와본 아만은 충격적인 소식을 막 전해 듣고 있었다.
“2조 말입니까!?”
“예, 아직 2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들어간 지 곧 2시간 30분이 됩니다.”
다른 조는 모두 시험을 마치고 나왔는데, 루카스가 속한 2조만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작년엔 가장 늦게 나온 조가 네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말입니다.”
아만은 덤덤하게 소식을 전하는 교수의 얼굴에 하마터면 주먹을 날릴뻔했다.
‘개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자신이 아는 루카스와 그의 친구들은 하급 던진 따위에 이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막 부임한 마법 실습 교수인 로날도 하센은 그들을 아직 잘 몰랐다.
그러니 저런 태평한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겠지.
“다른 학생들은요?”
“저쪽에서 쉬고 있습니다.”
로날도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학생들은 조별로 삼삼오오 모여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학생 여러분. 혹시 던전 안에서 2조 학생들을 보았나요?”
그들에게 다가간 아만이 질문하자, 학생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다구요?”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예. 뭐 다른 조를 만나긴 했는데… 2조는 못 본 것 같은데요. 본 적 있어?”
“아니. 나도 못 봤는데.”
“그러게… 이상하네…….”
“너가 3조였지?”
“응.”
아이들은 아만의 질문에 그제야 뭔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서로에게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됨을 느낀 아만이 한달음에 던전 입구에 들어섰다.
트랩을 모두 무시한 채 달리면 10분이면 바깥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던전에 누군가 들어서자 새로이 리셋된 던전 여기저기서 가상의 몬스터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울부터 코볼트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추적마법과 탐색 마법을 넓게 펼친 아만이 던전 전체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없어……!’
없었다. 루카스는 물론 다른 아이들의 기척조차도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
“저쪽이 출구야.”
너무나도 께름칙했던 시체를 뒤로하고 조금 더 걷자, 던전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희끄무레한 빛이 감도는 출구를 본 아이들은 들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던전에 있던 세 시간 정도의 시간이 마치 백 년과도 같이 느껴졌었다.
처음으로 들어가 본 던전에 있으라는 몬스터는 없고 덩그러니 놓여있는 한 구의 시체라니……!
시체의 괴이한 모습이 아이들의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파앗!
“잉?”
함께 던전 출구를 통과한 아이들은 눈 앞에 펼쳐진 색다른 풍경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분명 시험장에서 들어갔던 던전은 입구와 출구가 그렇게 멀지 않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곳은 전혀 딴 세상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숲이 아닌데 여긴…….”
“사막이잖아!”
사막이었다. 분명 숲 한가운데에 위치했던 던전이었건만, 아이들은 생판 처음 보는 사막 한복판에 떨어진 것이다.
‘하아… 옘병…….’
그제야 모든 상황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버려진 던전을 용도에 맞게 가져다 쓰는 것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입구와 출구의 위치를 종종 바꾸기도 하고, 다른 던전과 연결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누군가 임의로 틀어둔 공간으로 아이들이 비집고 들어간 듯 보였다.
“우선 돌아가자.”
이 일은 아만에게 말하는 것이 빠르게 해결될 듯 보였다.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게다가 루카스는 지금 아만의 마나를 가져다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루카스 스스로 서클을 늘리기 위해서 아만에게 마나 공급을 제한할 것을 말해두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여기가 근데 어디야?’
게다가 루카스 역시도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약 대륙 반대편과 같은 곳으로 나온 것이라면, 본인이 가진 마나로 아이들을 모두 텔레포트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아이들을 모두 텔레포트시켰다 해도, 마나가 고갈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가장 안전한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던 루카스가 탐색 마법을 넓게 펼쳤다.
주변에 마을이나 다른 무언가가 있다면, 먼저 그곳으로 가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이런 개 같은! 마을 하나가 없어?!’
한참을 그렇게 탐색 마법을 펼치던 루카스의 미간이 험상궂게 찌푸려지자, 아이들의 표정 역시 덩달아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아! 넬라. 나이아스를 불러줄래?”
“응. 나이아스.”
물은 어디에나 있으니 나이아스 또한 어디에나 있었다.
나이아스를 불러낸 넬라가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루카스를 바라봤다.
“……여기가 어딘지 물어봐 줄래?”
“……아.”
루카스의 말을 들은 넬라가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오빠도 모르는 게 있구나…….’
-여긴 라스칸이야.
“음. 라스칸? 이래.”
처음 듣는 지명에 넬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라스칸. 짐작은 했었지만 진짜 라스칸일 줄이야.
라스칸은 대륙에서 꽤 멀리 떨어진 서쪽에 있는 왕국이었다.
“하아… 라스칸…….”
라스칸 왕국을 떠올린 루카스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라스칸에 위치한 에스테릴 사막은 서쪽 끝을 시작으로 대륙 중간까지 펼쳐진 거대한 사막이었다.
-키이익… 키이이익…….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한참을 고민하던 루카스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에 큰 소리로 욕지거릴 내뱉었다.
“저, 저게 뭐야!?”
“옘병할 바실리스크…….”
루카스는 던전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반죽을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