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90화 (90/225)

90화. 탈출 (1)

‘왠지 들어오는 순간부터 어딘가 찝찝하더라니.’

나이아스의 말을 듣고 충격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죽어있다니……?”

재차 물어오는 스키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나가자.”

루카스는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나이아스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가는 길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 나가자.”

루카스의 말에 폴라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시험이 중요하다 한들,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하, 하지만…….”

“아니, 하지만은 없어. 우선 이곳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우린 먼저 나가는 게 맞아. 나가서 교수님이나 다른 어른들을 불러오자.”

단호한 루카스의 말에 스키르 역시도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젠장…….’

어쩐지 지난 3년 동안 너무도 편안하고 평화롭다 싶었다.

하필이면 아이들이랑 함께 있을 때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아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벽을 조심해.”

지나왔던 좁은 통로를 지나.

“내가 밟는 곳만 밟고 와.”

지나왔던 바닥 트랩도 지났다. 이제 입구가 나타나야 했다.

“……어? 왜 입구가 없지?”

없었다. 분명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입구가 보이질 않았다.

“젠장!”

시험 일부겠지. 겁을 먹고 도망치는 학생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시험의 일부.

상급반의 실기시험인 만큼, 하급 던전에서 개죽음을 당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실전을 가장한 시험이었지만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입장 이후엔 입구가 철저히 봉쇄되는 듯싶었다.

“그럼…… 다음 학생들은 어디로 간 거야?”

생각해 보니 그랬다. 20분에 한 번씩 다음 조가 들어오는데, 돌아오는 길 어디에도 다음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마치 기다란 미끄럼틀을 탈 때 시간차를 두고 태우는 것처럼, 학생들은 20분 간격으로 입장했다.

하지만 미끄럼틀 끝에 다다르면 만날 수 있는 구조여야 했다. 그런데…….

“다들 내 팔 잡아.”

루카스가 제 한쪽 팔을 내밀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텔레포트할 생각이었다.

-파앗!

“……!”

텔레포트가 막혔다.

보이지 않는 장막에 막힌 듯 마나는 분명 소모가 되었지만, 마법은 시전이 되지 못하고 캔슬된 것이다.

누군가 고의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누가……!’

***

“데릭! 아빠 왔다.”

집에 들어선 사내의 손에는 제 아들을 주기 위한 쿠키 봉투가 들려있었다.

“데릭? 여보?”

하지만 집에는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보?”

제 아내를 부르며 방 이곳저곳의 문을 열었다 닫길 반복하던 사내는, 손에 든 쿠키 봉투를 식탁 위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어디 나갔나…….”

정신증을 앓던 제 아들의 병이 말끔하게 나았다.

게다가 아들의 정신증을 알고 난 뒤에 이름 모를 두통에 시달리던 아내 역시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 고위 사제가 아닌 교주가 직접 치료해 준 덕분이었다.

부활교와 교주의 은혜로움 아래 더 이상 고통은 없을 것만 같았다.

사내는 부활교에 들어서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레니엔토…….”

그때를 회상하던 사내가 조용히 자신의 믿음을 읊조렸다.

지참금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신실한 믿음. 그것이면 되었다.

부엌으로 간 사내가 냄비뚜껑을 열었다.

거기엔 아내가 끓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스튜가 가득 들어있었다.

따뜻한 스튜의 향이 제 코끝에 스치자 기분이 좋아진 사내가 싱긋 웃었다.

이윽고 주변을 살피던 사내는,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허, 이 사람이…….”

항상 요리를 하며 중간중간 정리하는 아내의 습관 덕에 주방은 언제나 깔끔했다.

하지만 부엌 여기저기에 아내가 쓰다가 남은 식재료들로 보이는 것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스튜를 끓인 다음 다른 음식을 또 준비 중이었던 것인지, 부엌엔 싱싱한 채소를 비롯한 고기까지 바깥에 나와 있었다.

그것을 본 사내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부엌 옆에 자리한 뒷문을 열었다.

“……여보? 데릭……?”

그곳에는 아내와 아들이 나란히 엎드린 채 누워있었다.

“여보!!!”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선 사내의 손길이 다급했다.

“여보!!! 데릭!!!”

사내는 엎드린 채로 쓰러진 아내의 몸을 황급히 뒤집었다.

핏물을 뒤집어쓴 채 싸늘하게 식어있는 아내의 모습에 사내는 미친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허공에 대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여보!! 일어나봐!!! 여보오…… 여보오오!!!”

아내의 옆에 누워있는 제 아들 역시도 같은 상태였다.

“데릭!! 데릭!! 일어나 봐라… 일어나 봐… 아빠가… 아빠가 왔다…….”

사내는 이미 차게 식어버린 제 아들의 몸을 흔들었다.

“여보……!! 데릭!!”

한쪽 팔에는 아내를, 한쪽 팔에는 아들을 끌어안은 사내가 오열했다.

“도와주세요…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

“부활교?”

“예, 폐하.”

아란트의 황제 그래드 루클라이어.

5년 전쯤에 잠시 정신이 나갔었던 황제.

하지만 제대로 된 후계가 없었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정도의 증상이 아니었기에, 중앙 귀족들이 국정을 맡았었다.

“뭐, 종교가 생겨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은 아니니…….”

서민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이비 종교는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었다.

언젠가 한 번은 강아지를 섬기는 종교까지 나타났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릅니다.”

시큰둥한 황제의 반응에, 비서인 라돌프 켄나는 그동안의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병을 고쳐?”

“예. 그것을 본 사람도, 겪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럼 다행인 거 아닌가?”

3년 전 황궁이 침탈당할 뻔한 사건 이후로, 황제는 어지간한 일에는 시큰둥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원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변한다고 하던데, 황제는 그 정도가 조금 심각했다.

“예……?”

“아니, 다행인 거 아닌가 하고 말일세. 아픈 사람들을 고쳐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정신증도 고치고 걷지 못하던 사람도 걷게 하는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 그 말일세.”

듣다 보니 묘하게 황제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폐하… 다른 신들이 노하면 어쩌시려고…….”

“아니, 다른 신들도 기뻐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신전에 지참금을 아무리 많이 내도 고치지 못하던 병들일세. 대사제가 온다고 하더라도 못 고치는 병이었다 그 말일세.”

“그, 그것이…….”

“그런데 고치지 못하던 그 병을 지참금도 따로 요구하지 않고 고쳐준다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옳은 말이었다. 게다가 부활교라는 자들은 가엾은 자들을 돌본답시고 지참금을 받아 양로원이며 보육원까지 짓고 있었다.

이보다 깨끗하게 운영되는 종교단체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크흠…….”

“더 할 말 없으면 나가보게.”

“예. 폐하.”

황제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라돌프는 왠지 모를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폐하의 말씀이 틀린 것은 없으니…….’

***

“가엾은 자를 구원하려 죽은 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니…….”

“레니엔토.”

“믿음이 행하는 기적을 언제나 바로 보게 해주시고…….”

“레니엔토.”

부활교의 교당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데 무릎을 꿇고 하위 사제인 보테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부활교에는 네 가지의 등급 아닌 등급이 있었다.

사제로서는 고위 사제인 피에렌테.

중간 사제인 에렌타.

하위 사제인 보테.

마지막으로 신도를 가리키는 옌테였다.

교주님을 모시는 사제들은 부활교에 몸담은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으며, 그를 가까이에서 보필할 수 있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신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매일같이 부활당에 와 기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제들의 가르침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 언제나 귀를 기울였다.

절대적인 믿음.

자신들의 신인 교주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어떤 죄를 지었든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내리고 모든 죄를 씻어 새로 태어나게 해주겠다는 교주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의 동아줄과도 같았다.

“오늘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고통받는 자들의 구원에 동참하실 분들은 나가시는 길에 헌금하시면 됩니다.”

“예, 고생하셨습니다. 보테님.”

자신들이 낸 지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는 다른 신전들과는 달리, 부활교는 매달 말에 지참금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여기저기에 땅을 사들여 보육원을 짓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까지도 짓고 있는 부활교의 행보에 지참금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받은 구원의 손길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니 교인들에게 이보다 큰 기쁨은 없었다.

부활당을 나오는 교인들의 얼굴에서 어두운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볼일을 시원하게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처럼 모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늘 말씀도 정말 좋았지 않은가?”

항상 비슷한 맥락의 말들뿐이었지만, 사제들의 가르침을 받고 있노라면 이보다 마음이 편안해질 수가 없었다.

“정말 좋았네. 나는 벌써 내일이 기다려져.”

“자네에게 정말 고맙네. 내게 부활교에 오자고 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하하, 그게 무슨 말인가? 당연히 내 친우인데 같이 구원받아야지!”

하하호호 웃으며 부활당을 빠져나오는 사람들.

‘그래, 클클클…= 많이 웃어둬라…….’

창문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는 노인의 얼굴에 작게 주름이 졌다.

***

“뭐, 뭐 한 거야?”

제 손을 잡으라고 하더니 어느새 심각해진 표정만 지어 보이는 루카스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이 심각했다.

“……아냐.”

폴라의 물음에 루카스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괜한 이야기를 해서 애들을 더 불안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럼 우리 이제 어떡해? 여기서 교수님을 기다릴까?”

“아니, 나가자.”

부딪혀야 했다. 누가 수를 쓴 건지는 모르지만 꽤 높은 클래스의 마법사일 확률이 높았다.

텔레포트를 막아 낼만 한 실력.

게다가 던전의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닌데, 던전 전체에 결계를 쳤다는 것은 엄청난 실력자일 것이다.

루카스는 지금 마음이 급했다.

이 짜증 나는 곳에서 아이들을 얼른 데리고 빠져나가고 싶었다.

“……괜찮을까?”

“응. 괜찮을 거야. 넬라, 나이아스를 불러줄래?”

“으응…… 나이아스.”

-응.

“나이아스에게 이 앞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해줘.”

“부탁해 나이아스.”

-알겠어.

작은 요정의 형상을 한 나이아스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자, 아이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와. 스키르, 뒤를 부탁해.”

“아, 알겠다!”

버퍼인 스키르에게 맨 뒤를 맡기는 것은 스키르를 믿는다는 것이기도 했다.

루카스의 지지에 스키르는 긴장한 기색을 감추려 애를 썼다.

“자, 가자.”

지나온 길은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벌써 세 번째로 지나오는 길에, 아이들은 긴장을 조금 풀어내는 듯싶었다.

“조심해. 아는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야.”

그걸 느낀 루카스가 아이들의 긴장감을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으응……!”

좁은 통로를 지나 다시 한번 동공에 다다르자, 루카스는 추적마법을 더욱 넓게 펼치기 시작했다.

“나이아스!”

동굴 끝까지 다시 한번 돌아본 나이아스가 아이들에게로 돌아왔다.

-달라진 건 없어. 하지만 무서워…….

“……괜찮을 거야.”

“뭐, 뭐라고 하는가! 요정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가!”

-무서워…….

“나이아스가 무서워해.”

자연 그 자체인 정령이 느낀 공포라니.

하위급 정령인 나이아스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심각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젠장.”

루카스의 입에서 작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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