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88화 (88/225)
  • 88화. 평화의 끝.

    “에스카르 산맥이 무슨 누구 집 앞마당쯤 되는 줄 알았나요!?”

    넬라의 다리를 치유마법으로 말끔하게 치유한 보건실 담당 교수의 잔소리는 끝날 줄을 몰랐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아이들은 연신 사과했지만, 보건실 담당 교수는 그걸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일주일간 외출 금지입니다! 네 명 모두!”

    “루카스는 저희랑 같이 안 갔어요…….”

    “친구의 잘못은 함께 짊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알고 가보세요!”

    아이들은 보건실을 빠져나오며 루카스의 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아. 하지만 보건 교수님 말씀이 모두 옳아. 에스카르 산맥은 위험한 곳이야.”

    “하지만…….”

    “아니, 하지만은 없어.”

    “하, 하지만!”

    “그만.”

    루카스는 아이들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루카스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어깨가 축 처지기 시작했다.

    “오빠…….”

    넬라의 나직한 부름에 루카스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 고블린을 만났어.”

    “……뭐?”

    넬라의 말을 들은 루카스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블린 떼가 나왔다.”

    “맞아! 그런데…… 우리가 힘을 합쳐서 무찔렀다고!”

    넬라의 용기에 힘입은 폴라와 스키르 역시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아이들의 힘으로 고블린 한두 마리 정도는 운이 좋다면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블린 ‘떼’라니?

    “나이아스들이 도와줬어.”

    “엥? 하나가 아니었어?”

    ‘들’이라는 말에 폴라가 되물었다.

    “응. 여럿이었어. 눈에 보이는 것만 하나야. 아, 그리고…… 폴라 언니가 전기 마법을 썼어.”

    폴라는 넬라의 말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연습 좀 했지!”

    “아, 그리고 무찌르지 못할 뻔했는데 갑자기 힘이 솟아났어.”

    “아, 맞다. 그거 진짜 이상했어.”

    폴라는 넬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힘이 솟아났다고……?”

    “응!”

    루카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잠시 바라봤다.

    ‘……픽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정신을 집중하던 루카스는 스키르에게서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픽시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 그 쪼끄만 게 베푼 호의가 이거였나.’

    스키르를 찬찬히 바라보던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축하해. 버퍼가 된 것 같네.”

    “……버퍼?”

    “그래, 버퍼.”

    버퍼. 버프를 주는 사람. 공격 마법보다는 방어와 상대의 능력치를 끌어올려 주는 마법을 주로 쓰는 사람을 일컫는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다양한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지만, 저마다 특화된 능력치가 하나씩은 있었다.

    누구는 화염 마법에 강했으며, 누군가는 전격, 누군가는 땅을 움직이거나 또 어느 누구는 물이나 얼음 마법을 잘 다루기도 했다.

    버프 역시도 같았다. 버프에 특화된 마법사는 극히 소수였으며, 그들이 걸어주는 버프를 받기 위해 온 길드며, 마법협회가 안달이었다.

    “스키르. 예전에 캠프에서 받은 마법석 어딨어?”

    “……그건 갑자기 왜?”

    “그냥. 어디에 있어?”

    “여기…….”

    루카스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스키르는 제 품속에 걸린 목걸이 하나를 꺼내어 보였다.

    스키르가 처음으로 얻어낸 작은 성과에, 공작이 직접 주문해 목걸이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때문에 스키르는 항상 그 목걸이를 제 목에 소중히 걸고 다녔었다.

    ‘역시나…….’

    그 목걸이를 한번 만져본 루카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에 걸고 다닌 시간이 오래되어서인지 작은 주술에 불과했던 픽시의 주술은 이미 스키르의 몸에 모두 흡수된 듯 보였다.

    “갑자기 왜?”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이제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하위 마나석에 불과했지만, 그 덕에 스키르가 버퍼로 성장했으니 이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잘됐다. 스키르.”

    “잘됐다!”

    아이들은 스키르가 버프 능력에 특화된 것에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정작 스키르 본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버퍼라니…….’

    스키르는 제 손에서 화염을 불러내 적들을 섬멸하는 꿈을 항상 꿔왔었다.

    제 형보다는 못하더라도 끝내주는 공격을 퍼붓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버퍼라니……!

    “그래… 고맙군…….”

    마지못해 그들의 축하를 받는 떨떠름한 표정의 스키르.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넬라와 폴라는 연신 박수를 쳐대며 축하를 이어갔다.

    ‘버퍼라니… 내가 버퍼라니!!!’

    ***

    방에 돌아온 루카스는 드디어 한시름 덜 수 있게 되었다.

    넬라야 걱정할 것이 없었다. 마법에 재능이 없다면 높은 자연 친화력을 바탕으로 훌륭한 정령사가 될 것이었으니 말이다.

    폴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느린 성장세긴 하여도 그녀의 잠재력은 뛰어났고, 거기에 노력까지 더해지니 폴라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키르는 아니었다. 정말 눈곱만치 있는 재능을 어찌어찌 억지로 끌어올려 초급반을 벗어나긴 했지만, 도통 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우연히 받게 된 이상한 픽시의 호의 덕분에 버퍼로 거듭나게 되었다.

    루카스는 방에 누워 앞으로의 미래를 눈앞에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뒤편에서 아이들을 든든하게 서포트하는 스키르,

    그의 버프를 받으며 전격 마법을 펼치는 폴라와 정령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넬라까지.

    ‘다행이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루카스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

    카페테리아에 모인 아이들은 저마다 음료 하나씩을 들고 햇살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아, 그보다 우리 주말에 나가서 놀까?”

    폴라의 말투가 왠지 어색했다.

    “……으응. 좋아.”

    “그래. 그, 그러는 것이 좋겠군.”

    모두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는 루카스의 미간이 좁아졌다가 이내 풀어졌다.

    ‘뭔가 꾸미나 본데. 뭐…… 괜찮겠지.’

    그래 봤자 아이들 아닌가. 꾸며봤자 아이들이 꾸미는 그 정도겠지.

    ***

    어느새 주말이 다가왔다. 토요일이 되자마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광장으로 향했다.

    “언니! 이것 봐!”

    마도구 상점 앞에 선 넬라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우와 진짜 신기하다. 아저씨 이건 뭐예요?”

    “자, 이건 말이다…….”

    새총같이 생긴 마도구를 손에 쥔 사내가 비어있는 고무줄을 하늘로 튕겼다.

    -피유웅!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간 고무줄이 하늘에 작은 불꽃을 수놓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

    루카스는 눈을 동그랗게 뜬 넬라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줄게.”

    “아, 아니야!”

    넬라는 이제 광장에 나와 거리를 걸어도 꽤 괜찮은 듯 보였다. 가끔씩 어떤 특정한 구간을 지나면 몸을 살짝 떨고는 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넬라를 세심히 보살핀 아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 오빠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아냐! 내가 다음에… 다음에 살게!”

    한사코 거절해 보인 넬라는 폴라의 손을 잡고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조금 전 이거랑 아, 저기 보이는 저것도 주세요.”

    언젠가 폴라가 탐을 냈던 그 램프였다.

    자존심이 센 폴라는 스키르가 저 랜턴을 사준다고 한 이후로,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티조차 내지 않았다.

    하지만 루카스는 알고 있었다. 폴라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랜턴을 흘끗거렸던 것을.

    ‘가지고 싶었겠지.’

    값을 치르고 돌아서는 루카스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기분이 좋았다. 이것을 받아 든 아이들이 기뻐할 생각을 하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건 뭔가?”

    다른 곳에 잠시 다녀온 스키르가 루카스의 손에 들린 작은 상자 두 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냥, 애들 주려고.”

    “……내 껀?”

    “……어?”

    눈에 띄게 실망하는 스키르의 모습에 루카스는 양심이 찔려왔다.

    저보다 나이가 많아, 주지 않는다고 하기엔 폴라 역시도 저보다 두 살이나 많았다.

    “그, 그게…….”

    이마에 식은땀이 삐질 흐를 만큼 당황스러웠다.

    “되었다. 나는… 괜찮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

    점심을 먹고 카페로 들어선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뭐야?”

    그런데 갑자기 점원들이 테이블 주위를 둘러싸자, 놀란 루카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짜잔! 놀랐지!”

    점원 한 명이 손에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자, 폴라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생일 축하해! 루키!”

    “생일 축하한다. 루카스.”

    “오빠, 생일 축하해!”

    아이들이 품에서 저마다 작은 꾸러미를 하나씩 꺼내어 루카스 앞에 내려놓고, 점원들은 손에 작은 악기를 들고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루카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뭔 상황이야?’

    생일이라면 백작저에 있을 때도 언제나 챙겼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몰래 준비한 생일파티라니…….

    가슴에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드래곤으로 살았던 그 오랜 시간에도 이런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수천 년을 살아내는 드래곤에게 생일이란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오랜 시간 유희를 하다 보면 종종 주변에 있는 자들이 생일을 챙겨주고는 했으나, 그것은 진짜 생일도 아닐뿐더러 그저 연기 중인 역할에 부여된 생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랐다.

    “고마워.”

    케이크에 꽂힌 초를 불고 나서야 루카스는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자, 얼른 소원 빌어!”

    폴라의 말에 빙긋 웃어 보인 루카스가 눈을 감았다.

    ‘이번 생을 잘 마칠 수 있게 해주세요.’

    두 손을 꼭 모은 루카스는 처음으로 진심 어린 기도를 했다.

    ‘제발…….’

    ***

    [3년 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아만은 황제인 그래드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승인을 받아내 새로운 학교장이 되었다.

    귀찮은 일이었지만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감시하기에 좋은 자리기도 했고, 문제가 모두 마법에 관련된 만큼 집중적으로 간섭할 계획이었다.

    황제는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오게 되었고, 그동안의 국정은 오닐 공작가를 비롯한 다른 중앙 귀족들이 맡아 잘해나갔다.

    루카스의 집인 시타타는 무역의 요충지로 자리 잡아 중소도시가 되었으며, 백작가의 부는 제국에서 따라갈 자가 없다는 말이 돌만큼 빠르게 축적되었다.

    그에 따라 골드 나인 상단 역시 굴지의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백작가는 공식적으로 폴라를 후원하는 후견인이 되어주었다.

    폴라는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빠르게 성장하여 3서클을 달성하였고, 넬라 역시도 2서클을 달성함과 동시에 중급 정령까지 소환하게 되었다.

    스키르는 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버프 능력을 더욱 각성시켜, 중급에 가까운 버퍼가 되었으며 3서클에 거의 다가가고 있었다.

    이들 중 발전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루카스였다.

    6서클을 겨우 이뤄내긴 했지만, 거의 다 커버린 몸에 비해 터무니없는 수치였다.

    ‘아만 꺼 그냥 쓰지 뭐.’

    아만과 계약으로 인해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짜증 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모두 사이좋게 상급반에 진학했고, 다음 학기에 최상급 반에 가는 것은 정해진 수순과도 같았다.

    강정 삼총사는 더 이상 강정 삼총사가 아니게 되었으며, 대륙이 주목하는 젊은 청년들이었다.

    “야! 루키!”

    폴라의 부름에 돌아보는 루카스.

    “밥 먹으러 가자!”

    “그래.”

    활짝 웃는 폴라와 그녀의 곁에 선 스키르와 넬라.

    스키르는 이제 스무 살이 되었고 폴라 역시도 열여덟이었다.

    완연한 성인이 된 그들은 말 그대로 잘 자라주었다.

    스키르는 작고 말랐던 몸을 벗어나 훌쩍 자란 키에 멋진 백금발을 가진 청년이 되었으며, 폴라 역시도 긴 갈색 머리를 휘날리는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다.

    그중 제일인 것은 단연 루카스였다.

    백작의 훤칠한 키와 부인의 수려한 외모를 닮은 루카스는 어디를 가나 미남자 소리를 들었다.

    칠흑 같은 흑발에 검은 눈동자.

    게다가 부잣집 아들이니만큼 귀족 영애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오빠, 책은?”

    다음 수업에 가져갈 책을 묻는 넬라 역시도 이제 청소년이라 불릴만한 나이인 열다섯 살이 되었다.

    “여기.”

    그런 넬라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는 루카스.

    3년이나 이어진 평화로운 나날들은 정말이지 꿈만 같았다.

    ‘제발…… 이대로 평생 살게 해주세요.’

    루카스의 간절한 바람은 매일 이어지고 있었다.

    ***

    -크르르… 크으으…….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동굴에 울려 퍼지는 괴이한 울음소리.

    바닥을 가득 메울 만큼 커다란 마법진 위에 꿈틀거리는 생명체는 그 모습이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크으으…….

    팔다리는 달렸으나 사람으로 보기는 어려웠고, 목으로 보이는 것 위에 머리는 달려있으나 얼굴은 모두 뭉그러져 그 형태가 없었다.

    콧구멍으로 보이는 부분이 벌름거리기는 했으나 그것이 콧구멍인지 입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으며, 피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흘러내리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크으으… 크르르…….

    생명체가 신음할 때마다 마법진은 희미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동굴을 울리는 괴음.

    괴성을 내지르던 생명체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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