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픽시 팔아요!
픽시 알린과 함께 다시 리타 마을로 돌아온 루카스는 곧장 남작저로 향했다.
남작가와 베네타 일행들 역시 분명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변방의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크기와 호화로운 남작저라니. 찝찝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기 들어가서 잠깐 기다려라.”
루카스는 미리 준비해 둔 상자를 꺼냈다.
“엥? 나더러 지금 여기 들어가라고?”
“그래. 너는 지금 팔리러 온 거다. 그런데 내 손을 잡고 순순히 팔리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나?”
“끄응…….”
들어가기 싫은지 한참을 망설이던 알린은 결국 상자 문을 열고 조심히 몸을 뉘었다.
“조심해 줘요. 은인님! 나 흔들리면 멀미해.”
엘린의 말에 고개를 한번 끄덕인 루카스가 조심스레 상자 문을 닫았다.
품속에 상자를 고이 넣은 채 남작저 문 앞에 다다르자, 그때 보았던 기사 둘이 루카스를 빤히 쳐다봤다.
“어이, 형씨. 우리 마님께 뭘 팔려고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가는 게 좋을 거요.”
“아, 아닌 것 같은데요… 아무리 봐도…….”
선임 기사의 말에 다른 기사 하나가 그를 살짝 저지했다.
루카스의 차림새나 행동이 아무리 봐도 잡상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 듯.
“이곳의 안주인께 전해주시오. 아주 희귀한 것을 가져왔다고 말이오.”
“하! 야, 봤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짜샤!”
자신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되자, 선임 기사는 우쭐거리며 제 후임의 팔을 툭 쳤다.
“뭘 가져왔는데 그래?”
기사의 말에 루카스가 품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들어 보였다.
“작은 상자 안에 은발. 이렇게만 말해도 아실 겁니다.”
루카스의 말에 기사 하나가 씨익 웃었다.
“맨입으로?”
“그럴 리가요.”
루카스가 품속에서 10골드짜리 금화 하나를 꺼내 기사의 손에 슬쩍 쥐여주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킥 하고 웃어 보인 기사가 제 후임에게 손짓했다.
“야, 이따 술 한잔할 수 있겠다. 뭐 해, 얼른 안쪽에 말 전하고 와.”
“예.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으로 들어갔던 기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오세요.”
제 안주인의 허락이 떨어진 것일까.
기사는 루카스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픽시가 든 상자를 안아 든 루카스가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덜컹! 콩! 콩! 콩!
잠시 스텝이 꼬여 상자가 거세게 흔들리자, 상자 안에선 어김없이 불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저택 내부는 외부보다 더욱 화려했다.
곳곳에 놓인 조각상과 정중앙에 위치한 분수대에는 금박과 은박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대단하군. 이런 촌구석에…….’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보이는, 곳곳에 놓인 장식품들은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하, 아주 황궁이 따로 없군.’
정말이지 얼핏 보아서는 어느 나라 황궁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화려함이었다.
“여기부터는 이 사람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저택 중간쯤 다다르자, 내부에서 나온 사용인이 루카스를 맞았다.
“따라오시지요.”
안내를 받아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 화려함은 정점을 찍었다.
벽은 온통 황금빛이었으며, 저택 내부에 세워진 기둥엔 보석과 수정이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골드 드래곤도 이런 짓은 안 하겠군.’
정말 보석과 아티팩트에 반쯤 미쳐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골드 드래곤도 안 할 짓이었다.
‘눈이 부셔 죽겠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보석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래,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게다가 남작 부인이 입은 드레스마저 황금색이니… 배경에 파묻혀 사람 얼굴만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예.”
겨우 웃음을 지어 보인 루카스가 대답했다.
“흠. 은발이라? 얼마를 원하는가?”
루카스 손에 들린 상자를 알아본 부인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부인과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만.”
남작 부인을 똑바로 쳐다본 루카스가 활짝 웃자, 부인은 순식간에 볼이 붉어져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조용한 곳이라?”
“부인과 제가…… 통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곧장 바라보는 루카스의 모습에 남작 부인은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꼈다.
‘흔치 않은 미남자로구나… 게다가 흑발이라니…….’
제 속에서 끓어오르는 소유욕에 부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저 변태 같은 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녀의 께름칙한 눈빛에 루카스 역시 몸이 흠칫 떨렸다.
“그래. 좋다. 나도 너와 통하는 것이 많을 듯싶구나.”
응접실 뒤편으로 난 문을 열자, 더 은밀해 보이는 작은 응접실이 하나 나타났다.
자리에 앉은 루카스가 테이블 위에 상자를 조심스레 내려뒀다.
“사실 제가 찾아온 것은 부인께 제 마음을 전하고자 온 것입니다.”
루카스의 말에 부인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마, 마음?”
“그렇습니다. 흔치 않은…… 귀한 안목을 가지신 분이라 들어 알고 있습니다. 밝힐 수는 없지만, 저 역시 변방에 작은 귀족가 사람입니다.”
“호오…… 그런가. 그렇다면 내가 결례를 범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
그제야 부인은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지금과 같이 편히 대해주십시오.”
“흐음…… 알겠네.”
부인은 루카스의 태도가 퍽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 주변엔 부인만큼 높은 안목을 가진 이가 없기에, 이렇게 선물을 전하고자 찾아왔습니다. 부담 갖지는 마십시오. 그저 부인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루카스의 작전은 이러했다.
자신 역시 희귀한 이종족을 모으는 괴상한 취미를 가진 콜렉터인 양, 부인을 속여 모든 정보를 캐내는 것.
이 정도의 허영심을 가진 이라면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일 테니, 칭찬 몇 마디면 모든 것을 술술 털어놓을 것이다.
게다가 변방의 귀족이라 이야기도 해뒀으니,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지는 위치의 사람이라면 더욱 털어놓기도 수월할 것이다.
“그래?”
아니나 다를까 부인은 벌써부터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루카스에게 호의를 내비치고 있었다.
‘귀가 얇다는 말이 사실이군.’
“예.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호호호! 영광은 무슨. 나 역시 변방에 작은 남작령에 있는 안주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남작령이라. 리타를 이들에게 내려준 것인가.’
루카스의 기억 속에 리타 마을은 누군가의 영지가 아니었으나, 지금은 남작령이 된 듯 보였다.
“아닙니다. 그보다 저택의 아름다움에 너무 놀랐습니다. 부인의 안목이신지요.”
루카스가 밑밥을 뿌렸다.
“호호. 아직 한참 멀었다. 요즘 수금이 영 시원찮구나. 그대 쪽 사정도 비슷한가?”
이번엔 부인이 미끼를 던졌다.
“저희 쪽도 별반 다를 것이 없지요. 영지민들이 게으른 탓에 말입니다.”
루카스가 그 미끼를 살짝 물어줬다.
“호호호! 역시,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구나. 나와 생각이 같은 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야.”
“하하,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리타는 그래도 충직한 영지민들이 꽤 있는 모양입니다. 부인의 안목을 만족시킬 물건들이 들어온 것을 보면 말입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루카스가 미끼를 던졌다.
“호호. 충직은 무슨. 그저 내가 일을 몇 가지 맡겼더니 저들 알아서 잘 꾸린 것이지.”
그러자 부인은 덥썩 물었다.
일을 몇 가지 맡겼다? 저 말인즉 영지민의 세를 걷거나, 무역상의 통행세 따위를 다른 이가 걷고 있다는 말이었다.
작은 영지에 이 호화로운 남작저는 영지민과 상인들의 피를 빨아 세운 것이다.
“혹시 남작님께서는 부재중이신지요?”
“흥, 그 양반은 신경 쓸 것 없네. 없는 사람이라고 보면 되네.”
저 말인즉 남작은 이 영지의 실세가 아니라는 뜻.
“자, 길게 이야기할 필요 뭐 있겠는가? 따라오게.”
“예.”
남작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루카스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응접실을 빠져나와 후원으로 가자, 작은 창고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들어오게. 참고로 이곳은 아무나 들이는 곳이 아닐세.”
“하하. 영광입니다. 부인.”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안에는 잡동사니로 보이는 것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비밀 통로가 있는 건가.’
-덜컥. 쿵!
그때 바닥에 널려있는 것으로 보였던 농기구 하나를 부인이 슥 들자,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벽 선반이 스륵 하고 열렸다.
“귀한 구경 시켜주는 걸세. 자네도 이런 장치쯤은 해두는 것이 좋을 거네.”
남작 부인은 굉장한 팁을 알려준다는 듯 우쭐거렸다.
“역시, 부인이십니다. 저 역시 참고하겠습니다.”
비밀 통로에 들어서자, 지하로 향하는 계단 벽 곳곳에 박힌 야광석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뭐, 자네는 뭘 모으는지 모르겠지만…….”
지하로 내려가자 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 앞에 서서 열쇠를 꺼내 드는 남작 부인.
“나는 아름답고 희귀한 것들을 모으네. 그렇기에 이런 장치는 꼭 필요하지.”
-드르륵…… 쿵!
육중한 문이 열리자,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자, 상자를 줘보게.”
비밀 공간의 전실인 듯 보이는 작은 공간.
그곳엔 비어있는 케이지가 양옆으로 주욱 쌓여있었다.
“여깄습니다.”
루카스가 상자를 건네자, 그것을 받아 든 부인은 한쪽에서 튼튼해 보이는 케이지를 하나 꺼냈다.
“픽시 맞는가?”
“그렇습니다.”
남작 부인은 케이지 문을 열고 그 안에 상자를 집어넣더니.
-퉁! 탕! 퉁! 탕! 퉁! 탕!
위아래로 거세게 흔들었다.
‘저게 뭔……!’
그러고 나서 재빨리 상자의 문을 열어 픽시를 던져넣었다.
-퉁! 탁!
그다음 부인은 재빨리 상자를 빼내고는 문을 닫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도 있어서 말이야. 다시 잡으면 되지만, 귀찮은 일이 벌어지거든.”
그러고는 이 또한 자신만의 꿀팁이라도 되는 양, 루카스에게 전수했다.
케이지 안에 널브러진 알린은 상자 안에서 여기저기 부딪힌 탓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호오…… 진짜 은발이로군. 날개도 아주 크고 말이야.”
알린을 한번 살펴본 부인이 감상을 뱉어냈다.
“으어어… 우욱! 아으… 머리야…….”
“말도 잘하는 걸 보니, 튼튼해 보이는군.”
그런 그녀의 모습에 루카스는 치가 떨렸다.
‘말까지 하는 걸 보고도 한 치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가 보군.’
“호호,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 좋을까.”
“이런 우라질!!!”
“호호호! 아주 튼튼하고 재밌는 픽시로군. 길들이는 맛이 나겠어. 선물은 정말 고맙네.”
알린의 욕지거리에도 그저 좋은지 부인은 박수를 쳐 보였다.
“자, 들어가지. 너도 같이 가자꾸나. 나의 새로운 귀염둥이야.”
부인은 픽시를 보며 귀엽다는 듯 중얼거렸다.
“제가 들겠습니다.”
“호호. 고맙네.”
그녀의 손에서 케이지를 받아 든 루카스가 알린을 찬찬히 살폈다.
루카스를 본 알린은 울상을 지으며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루카스가 괜찮다는 뜻으로 한쪽 눈을 찡긋 해 보이자, 그제야 알린의 눈동자가 구르는 것을 멈췄다.
-철컥! 드르륵…… 쿵!
부인이 열쇠를 몇 번이나 바꿔가며 돌리기를 반복하자 마지막 문이 열렸다.
‘꽁꽁 숨겨놨군.’
그녀 역시도 이종족을 사들여 수집하거나 노예로 부리는 것이 불법인 것을 알기에, 이렇게 꽁꽁 숨긴 것이겠지.
한 손에 케이지를 든 루카스가 부인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아주 보기 드문 어마어마한 썅X일세. 이거?’
“어떤가? 자네 취향에도 알맞은가?”
루카스를 돌아보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악마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