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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82화 (82/225)
  • 82화. 픽시 사세요!

    루카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보고 잠시 고민했었다.

    ‘전부 죽일까.’

    하지만 잠시간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는.

    “슬립-.”

    -털썩! 풀썩! 쿠당탕!

    광역 슬립 마법으로 모두 재우는 것.

    그러고 나니 모두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가능했다.

    “가주인가.”

    숨어있는 가주 둘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으헉!”

    불쑥 나타난 루카스의 모습에 놀란 그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놀랄 것 없다. 오늘 이곳에서 누구도 죽지 않을 테니.”

    “누, 누구시오.”

    “나는 아란트 제국의 태양이신 그래드 황제 폐하의 뜻을 전하러 왔다.”

    루카스의 말을 들은 가주들은 사신을 마주한 듯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예를 갖춰 네 신분을 밝혀라.”

    “트래버 놀란입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전언을 받듭니다.”

    “펠릭스 바르커입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전언을 받듭니다.”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일까. 그들은 나라에서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루카스의 말을 따라 순순히 예를 갖췄다.

    “반란을 꾀한 너희의 생각은 모두 알고 있다. 그 일에 로드리고 백작가를 끌어들이려 한 것도.”

    “…….”

    “지금 멈춘다면 출혈은 여기서 그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모두 죽을 것이다.”

    “다, 당신이…… 아란트 황실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지?”

    “흠. 뭐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겠지. 믿기 어렵겠다면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떤가?”

    루카스의 비릿한 조소가 낮게 울렸다.

    “로드리고 백작가. 그들은 언제나 아란트 황실 감시 아래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이것이 루카스가 택한 가장 평화롭고 완벽한 방법이었다.

    더 이상의 살육도 없으며, 누구에게도 의심의 화살을 마음대로 돌릴 수 없는 상황.

    아란트 황실의 이름을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뜻에 동조하지 않은 아스트리드 가문과, 로드리고 백작가 역시 함부로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네놈들이 하는 파렴치한 짓을 알고 있다. 겨울 여우족 그 신성한 종족을 건드리는 것 역시 멈추는 게 좋을 거다.”

    “그것은 아란트 황실에서 참견할 것이 아니다.”

    바르커의 가주가 이죽였다.

    “이건 내 계약자의 참견이라고 해두지.”

    루카스가 손등에 걸린 폴리모프를 풀어내자, 아만의 표식이 나타났다.

    “……!”

    은푸른 드래곤의 인장. 그 아래 용언으로 새겨진 계약자의 진명.

    ‘드래곤의 계약자라니……!’

    그것을 본 가주 둘은 숨을 삼켰다.

    “다시 한번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땐 내가 아닌 내 계약자가 직접 올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선 루카스가 텔레포트했다.

    ***

    정말이지 폭풍 같은 나날들이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기습을 당해 죽을 뻔하고, 뜻하지 않게 제국 황실의 이름을 팔아 일을 해결하기도 했다.

    손등에 새겨진 문장을 잠시 보던 루카스가, 다시 그것을 숨겼다.

    “어쨌건 고맙긴 하군.”

    이번엔 팔에 있는 작은 하트모양 붉은 반점을 쳐다봤다.

    계획과는 달랐지만, 어쨌건 대부분의 일은 해결이 된 듯 보였다.

    “자, 그럼 마지막 하나를 해결하러 가볼까.”

    루카스가 들어선 곳은 덩굴이 무성하게 자라난 숲길 한복판이었다.

    “누구냐! 이곳은 이방인을 반기지 않는……! 어!? 은인님!!!”

    구석에서 위엄 있게 들려오는가 싶던 목소리는, 루카스를 알아보자 순식간에 까랑까랑하게 바뀌었다.

    “족장은 있는가?”

    “꺄아!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잡혀간 저희 종족을 또 찾으신 건가요?”

    호들갑을 떨며 루카스에게 날아오는 작은 생명체는 픽시였다.

    지난번에 픽시 하나를 구해 데려다줬기 때문일까.

    그들은 루카스에게 ‘은인’이라는 칭호를 붙여 숭배하다시피 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 말이야.”

    “물론이죠! 자, 이쪽으로 오세요!”

    앞장서는 픽시를 따라가자, 작은 나무 덩굴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이 나타났다.

    루카스는 몸을 최대한 숙여 덩굴을 해치지 않게 조심하며 걸어 나갔다.

    “어!? 은인님이시다!”

    그러자 인기척을 느낀 픽시들이 덩굴 사이사이에서 하나둘 머리를 내밀었다.

    “은인님! 은인님!”

    “은인님이 오셨어!”

    루카스의 방문이 알려지자, 어느새 어린 개체로 보이는 수많은 픽시들이 루카스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은인님! 저번에 저 구해주신 거 기억하세요? 저 이제 날개도 다 나았다구요!”

    “은인님! 은인님! 이번엔 좀 더 놀다 가시는 거죠?”

    “맞아요! 이번엔 일찍 가지 마세요!”

    “후…… 다들 저만치 가보겠나? 정신이 사납군.”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정신이 사나워진 루카스가 인상을 찌푸리자, 어린 픽시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흐엥… 가래…….”

    “우리 가래…….”

    “정신이 사납다고 하셨어…….”

    “그러니까 내가 너 날갯짓 좀 천천히 하랬잖아!”

    “나 때문 아니거든? 너 때문이겠지!”

    루카스의 말에 시무룩하던 픽시들은 어느새 저들끼리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만! 다들 들어가!”

    결국 참다못한 루카스가 버럭 소리치자, 픽시들은 풀죽은 날갯짓 소리를 내며 덩굴 사이로 쫄래쫄래 몸을 숨겼다.

    “헤헤, 죄송해요. 다들 반가워서 그런가 봐요. 족장님! 은인님께서 오셨어요!”

    안내를 맡은 픽시가 사과와 함께 족장을 불러냈다.

    “오오! 은인님 아니십니까!”

    그러자 커다란 고목을 휘감은 덩굴 사이에서 흰 수염을 제 무릎께까지 땋아 내린 픽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예. 잘 지내셨는지요.”

    “은인님 덕분에 저희 아이들이 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어찌나 빨리 떠나셨는지, 안 그래도 서운했던 참이었습니다. 저희 픽시들이 모여 축복 주술을 걸어드리려 했는데…… 아니, 오늘은 시간이 부디 되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아니, 그런데 저희 부족에서 제일가는 픽시가 지금 자리를 비운 탓에…….”

    픽시들은 누구나 이렇게 말이 많았다.

    “저,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결국 족장의 말을 끊어낸 루카스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이쿠, 제가 너무 말이 많았지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보다 무슨 일로… 아니, 아니지요. 무슨 일이든 방문을 해주셨으니 제가 무슨 대접을 해드려야…….”

    “크흠. 흠…….”

    정말이지 픽시의 수다는 말릴 길이 없었다.

    “제가 또 말이 많았군요! 홀홀홀! 나이가 드니 주책입니다.”

    “조금 어려운 부탁입니다만, 들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이쿠. 물론입니다. 얼른 말씀해 보시지요.”

    “부족원 중 하나를 제가 잠시 데려가도 되려는지요. 노예로 팔 생각입니다.”

    루카스의 말을 들은 족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 그게 무슨…….”

    그를 본 루카스는 깨달았다. 정신이 없어 말이 앞뒤 없이 헛나왔다는 것을.

    “아, 말이 헛나왔습니다. 정신이 좀 없었던 탓에 말입니다. 제 말은 노예상으로 위장해서 다른 일족을 구해낼 생각인데, 제 작전에 함께해 줄 일원 하나가 있을런지요.”

    “허어……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런 문제라면 물론 지원자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희 일족을 구하기 위함이시니 용맹한 저희 픽시족 전사가 필시 나서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희 전사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말입니다…….”

    너무나 놀랐다던 족장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픽시족 전사의 위대함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전사는 어딨습니까?”

    “홀홀홀! 제가 또 주책을 부렸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탐낼만한 일족이면 좋겠군요. 희귀한 머리 색과 아름다운 날개. 흠… 오, 그렇지! 알린! 알린을 데려오너라!”

    “네! 족장님!”

    족장의 말에 곁에 서있던 픽시 하나가 얼른 날아갔다.

    “저희 일족 중에 가장 희귀한 색을 지닌 아이입니다. 어찌나 희귀한지 평소엔 물을 들여 색을 바꾸고 다닐 정도입니다.”

    픽시의 머리색과 눈동자 색은 대부분 자연과 유사한 색이었다.

    가장 흔한 색은 초록색과 갈색으로, 나무에 몸을 숨기고 살기에 적합한 색이었다.

    “족장 할배! 왜 또! 나 이번엔 안 나갔다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부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목소린데.’

    고개를 돌리자,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오는 은빛 머리칼에 초록 눈동자를 지닌 픽시가 보였다.

    ‘확실히 희귀한 색이군. 돌연변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픽시가 가까이 다가오자, 루카스는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 일전에 스키르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그 픽시로군. 그때의 초록색 머리는 물을 들였던 건가.’

    세상이 좁다 좁다 해도 이렇게 좁을 수가!

    “아니, 할배 왜!”

    “습! 그 경박한 말투부터 어떻게 좀 할 수 없겠느냐? 지금 이곳에 와계신 손님은 네 눈에 보이지도 않느냐?”

    “아, 나도 보여! 눈깔이 두 개라 나도 잘 보인다고! 은인님이라며. 나도 알아. 안녕하쇼. 우리 일족을 구해줘서 고맙수다.”

    족장이 버럭 소리치자, 알린은 고개를 까딱하며 루카스에게 인사를 전했다.

    “자, 네가 해줄 일이 좀 있겠구나.”

    “아, 싫어! 안 해!”

    족장의 말에 알린은 고개를 홱 저었다.

    “무엇인지 듣지도 않고? 바깥세상에 나갈 수 있는데도?”

    “진짜? 뭔데? 나 할래.”

    ‘바깥세상’이라는 말에 알린은 순식간에 반색을 하며 날개를 신나게 파닥거렸다.

    “은인님께서 노예상에 있는 일족을 구한다고 하시더구나. 때문에 작전에 함께해 줄 용감한 픽시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크으! 은인님 정말 픽시 하나 잘 고르셨네. 내가 바로 그 용감! 용맹!의 아이콘 알린 살레르모 아니겠수? 강인한 날개! 결의에 찬 눈빛!”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보인 픽시가 루카스의 어깨에 앉았다가 눈앞으로 다시 날아들어 제 날개를 뽐내며 눈을 부릅떠 보였다.

    “크흠, 흠! 알린? 그 경박한 태도를 좀…….”

    “아니, 할배! 맞잖아? 그리고 노예상한테 쓸 미끼가 필요하다 그 말 아냐? 그럼 나만 한 픽시가 또 어딨어? 이 은발 머리. 이게 어디 흔해?”

    “알린! 말을 조심해라. 미끼라니?”

    루카스는 눈앞을 신나게 날아다니는 알린을 보며 생각했다.

    ‘침묵 마법을 써서 데리고 가야 하나.’

    “크흠… 은인님. 이 아이가 70년 정도밖에 살지 않은 철없는 아이인지라… 하지만 바깥세상을 항상 꿈꿀 만큼 용맹한 것은 맞습니다. 밖에 나간 것을 종종 잡아 오기도 했고 말입니다.”

    “좋습니다. 알린이라고 했나. 나와 함께 가겠는가?”

    “아잇! 두말하면 잔소리, 세말하면 입 아프죠! 아니, 근데 나 돌아올 수 있는 건 맞죠? 나 진짜 내다 팔려는 거 아니죠?”

    “알린!!!”

    결국 참다못한 족장이 버럭 소리치자, 알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치, 맞잖어? 인간 조심하라더니 은인님은 뭐 인간 아닌가?”

    “그래. 좋은 태도다. 인간을 항상 의심하고 조심해라.”

    “그치? 은인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알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가 족장을 바라봤다.

    “걱정 마십시오. 잡혀간 일족들과 함께 알린 역시 마을로 잘 돌려보낼 테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희 일족의 짐을 은인님께 자꾸만 지워드리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인간이 저지른 일이니, 같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제 어깨에 살포시 앉은 알린은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자, 이제 갑시다!”

    “그래.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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