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80화 (80/225)
  • 80화. 참교육

    처음 드는 생각은.

    “또?”

    그래. ‘또’ 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얼마 전 아만과 함께 털어버린 그 노예선과 아주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자신이 잡혀 오다니?

    “어이가 없군.”

    게다가 자신이 마법사인 것도 모르는지, 마나 제어 팔찌는커녕 평범한 밧줄로 손발을 꽁꽁 묶어놓은 것이다.

    안대를 벗었어도 눈이 부시지 않을 만큼 주변은 어두웠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그때 배를 부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똑같은 환경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세이렌이 담긴 수조가 없다는 것 정도.

    인기척이 들리자 잡혀있던 엘프들이 몸을 들썩이며 웅성이기 시작했다.

    “으읍! 읍!”

    “기다려라.”

    “읍! 읍!”

    그와 함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니, 어김없이 토토족이 있었다.

    “다양하게 잘도 모았군.”

    작게 읊조리는 루카스의 말을 들은 엘프들의 움직임에 불안이 묻어났다.

    “걱정하지 마라. 구해줄 테니.”

    그러자 엘프 무리는 순식간에 평온을 되찾았다.

    “인간을 좀 안 믿을 수는 없는 건가?”

    그런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철컥! 철컥!

    그들을 묶은 속박을 풀어내자, 안대와 재갈을 벗어낸 엘프들은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기다려라.”

    엘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카스는 토토족이 갇힌 철창의 자물쇠도 풀어냈다.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토토족 역시 작은 몸을 한껏 구부려 감사를 전했다.

    “엘프들과 함께 있어라.”

    루카스의 말에 토토족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철컹! 철컹! 철컹!

    이번엔 구석에 묶여있는 드워프가 제 존재를 열심히 알리고 있었다.

    “풀어주겠다. 하지만 하나 약속해라.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겠다고 말이지.”

    루카스는 드워프의 불같은 성정을 알기에 먼저 그들에게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드워프들 역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드워프 셋까지 모두 속박을 풀어낸 루카스가 다시 한번 주변을 확인했다.

    엘프 셋에 토토족 셋, 거기에 드워프 셋, 픽시 하나까지.

    지난번보다 확실히 줄어든 숫자였지만, 픽시가 하나 끼어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잡힌 건 너희뿐인가? 그리고 이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가?”

    루카스의 물음에 토토족이 나섰다.

    “이 배는 이그노스에서 출발한 배예요. 우리는 트린 섬에서 잡혔어요.”

    “그리고 다른 동족들은 이미 팔려갔어요.”

    “전부 합쳐 스무 명이에요.”

    토토족들은 작은 몸집을 내세우며 저마다 한마디씩 뱉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요. 이그노스에서 잡혔소.”

    “우리 동족들도 벌써 모라인에 다섯이나 팔려갔소.”

    이그노스는 남동쪽에 위치한 대륙에 있는 드워프 자치구였다.

    불의 신이 사랑하는 지역이라 알려진 이그노스.

    그곳의 중앙에는 활화산이 있었다.

    언제나 끓어오르는 용암과 유황은 드워프가 예술혼을 불태우기에 적합한 환경이었기에, 그들은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갔다.

    “이그노스라. 그렇다면 지금 여기는 어디쯤인가?”

    “선생님께서 들어온 항구는 라스칸 북항이라고 들었어요.”

    “출발한 지 얼마나 되었지?”

    “이틀……정도요.”

    “후…….”

    감을 잃어도 너무 잃었다.

    ‘죽지 않은 게 감사한 건가.’

    그들이 자신에게 쓴 독은 분명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니, 어지간한 몬스터 역시 한 방에 저승길로 보내버릴 독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아모레가 제게 심어주고 간 아티팩트가 한몫 단단히 했다는 뜻이리라.

    “이틀이라.”

    이그노스에서 출발한 배는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항해 중이었다.

    “목적지가 어딘지 아는가?”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루카스가 탐색 마법을 펼쳐 배 내부 상황을 관찰했다.

    ‘……모르겠군.’

    자신이 있는 지하층에 차단마법이 걸려있는 건지, 바깥 상황을 쉽게 관찰할 수 없었다.

    “다들 날뛰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혹시 위험한 상황이 와도 절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속박을 풀어준 덕일까.

    아홉 명의 이종족들은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루카스는 지금 매우, 몹시 언짢은 상태였다.

    뭐 하나 해결될 새도 없이 줄줄이 터지는 사건에 정신마저 혼미했다.

    ‘오랜만이군. 이렇게 몰아치는 유희… 아니, 상황은.’

    위로 향하는 계단을 잠시 바라본 루카스는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최대치의 재미를 뽑아낼 수 있을까.’

    마치 드래곤이었던 전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언짢은 기분을 풀어낼 가장 좋은 방법이자 해결책.

    ‘건방진 것들에게 내리는 참교육만큼 좋은 것이 없지.’

    -고오오오오오

    루카스의 손에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앙!

    손에 모이던 마력은 점점 커지더니, 거대한 폭풍이 되어 갑판 위로 쏘아졌다.

    “수, 숙여! 숙여! 우리 이러다 다 죽어!”

    토토족의 외침에 엘프와 드워프들까지 모두 한데 모여 서로를 감쌌다.

    -콰쾅! 콰콰쾅!

    “끄아아악! 토토족 죽네!!!”

    한 번에 최상층까지 뚫어낸 마력 폭풍에, 놀란 이민족들은 제 머리를 감싼 채 몸을 웅크렸다.

    “기, 기습이다!!! 기습이다!!!”

    폭풍에 휘말리지 않은 선원 하나가 소리쳤다.

    “다들 정신 차려!!! 기습이다!!!”

    그러자 갑판 위에서 분주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래야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발소리를 듣는 루카스의 모습은, 흡사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듯 여유로웠다.

    -파스스스스

    그때 루카스의 위로 하얀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파앗!

    단박에 갑판 위로 텔레포트한 루카스.

    “……빛이 되어 내리리라!”

    루카스를 마주한 잿빛 로브의 사내는 광역 버프를 걸고 있는 마신교의 사제였다.

    “타라스의 종놈이 여기 또 있구나.”

    “고, 공격하세요!!!”

    사제는 허둥대며 루카스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돌아 달렸다.

    “그래. 도망쳐야지.”

    그 모습에 루카스는 즐겁다는 듯 조소했다.

    “그래야… 사냥하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쾅! 콰쾅!

    그때 루카스의 등 뒤로 날아든 썬버스트의 폭발.

    “며, 명중했다!”

    버프를 받은 마법사가 시전한 썬버스트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신이 쓴 마법이 루카스에게 정확히 명중한 것을 본 마법사가 자신의 로브 자락을 탁탁 털어냈다.

    “분명 죽었을 겁니다.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마법이 썬 버스트……!?”

    하지만 아직 사그라들지도 않은 불길 사이에서 루카스가 유유히 걸어 나왔다.

    “아쉽게 됐군. 내가 죽지 않아서 말이야.”

    씨익 웃어 보인 루카스가 제 소맷자락을 탁탁 털어냈다.

    “가장 자신 있는 마법이라…….”

    루카스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쿠오오오오오

    “그렇다기엔 실력이 조금 모자라군.”

    루카스의 손끝에 모이는 화염. 가장 자신 있다던 마법을 선보인 마법사는 생각했다.

    ‘X됐다.’

    “남은 마나가 있다면 탈출해라. 그게 아니라면…….”

    -쿠아아아아앙!

    화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자, 갑판에 선 다른 이들 역시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죽겠구나.’

    “도, 도망쳐!!!”

    죽음을 직감한 선원 하나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너희 모두 죽을 수 밖에.”

    -콰콰콰콰쾅!

    지옥 불. 그것이 이것일까.

    순식간에 갑판을 뒤덮은 화염. 그 위에 우뚝 선 한 사람은 웃고 있었다.

    “보고 있나, 타라스? 오늘 한 놈 올려보낸다.”

    하늘을 한번 올려 본 루카스의 손이 허공을 가르자, 한줄기의 번개가 내리꽂혔다.

    -콰직!

    “끄아아악!”

    제 몸에 방어 버프를 칭칭 감고 바다로 뛰어든 마신교 사제는 썬더 스피어를 정통으로 맞고 전기 통구이가 되었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인 루카스의 손이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

    -콰지직! 콰직! 콰직!

    물 위로 몸을 던진 선원들에게도 자비는 없었다.

    “속이 다 시원하군.”

    분명 타라스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자 루카스는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다 시원했다.

    갑판 아래로 내려가자, 아직도 머리를 감싼 채 벌벌 떨고 있는 이민족들이 보였다.

    “너희 역시 특별 교육을 좀 받아야겠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아무런 재주 없는 토토족입니다! 제 귀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토토족이 얼른 제 귀를 숨기며 소리쳤다.

    “맞아요! 제 발은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요!”

    “후… 그러니 특별 교육이 필요한 거다. 나는 너희를 잡아먹지도 않을 것이고, 노예로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저, 정말이십니까?”

    루카스의 말에 드워프가 나섰다.

    “그래. 집에 돌아가고 싶다면 다들 한데 잘 뭉쳐라.”

    이민족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옹기종기 뭉쳤다.

    ‘가여운 종족들 같으니라고.’

    -파앗!

    그들을 데리고 텔레포트 한 곳은 마레 호수였다.

    “……여기가 어디예요?”

    “마레 호수다. 지금부터 속성으로 특별 교육에 들어갈 테니 모두 경청해라.”

    루카스의 대답에 이민족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안 잡아먹는 건 맞겠지……?’

    ‘노예로 팔리는 게 차라리 나은 건 아니겠지…….?’

    “첫 번째 가르침이다. 세상에 이유 없이 친절한 인간은 없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의심부터 해라.”

    그렇게 루카스의 알짜배기 강좌가 시작되었다.

    ***

    모든 강의를 마친 루카스는 그들을 하나하나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간 이민족들은 감사를 표시하겠다며 저마다 소중한 물건들을 꺼내와 건넸다.

    하지만 모든 호의를 거절한 루카스는 모두에게 같은 당부를 했다.

    ‘인간을 믿지 말라’고 말이다.

    그들이 잃어버린 다른 일족을 찾는 것은 분명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원이었으며, 누구 하나 노예로 부려지거나 신체 일부를 잘린 채 죽임을 당하기 위한 자들이 아니었다.

    전생에서도 그런 이들을 종종 구해주곤 했었지만, 아무리 그들을 구해내도 인간들의 악행을 영원히 멈출 수는 없었다.

    인간에 비해 그들은 너무나도 순진했으며, 세대를 거듭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만이 구해주었던 이민족 마을과 겹치는 곳에서는 자신을 어렴풋이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그럼 뭣 하나. 또 잡혀갔는데.’

    잡혀갔던 동족 모두를 구해주지 못해 찜찜하긴 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이틀이 흘렀으니…….’

    베네타 일행의 흔적을 추적한 루카스는 지금 그들이 탄 마차 앞에 서있었다.

    -이히히힝!

    길 한가운데 우뚝 선 인영에 마부가 급히 말 고삐를 당겨 마차를 세웠다.

    “형씨! 길 한가운데서 뭐 하는 거요? 죽고 싶어 환장했어?!”

    마부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마차를 좀 얻어타고 싶은데… 돈은 내겠소.”

    “하! 이 사람이? 마차를 얻어타고 싶으면 안전하게 길가에 서서 손을 흔들어야지! 그러다 치이면 어쩌려고 그래!?”

    “거 무슨 일이오?”

    마부의 말을 들은 사내가 마차 안에서 물었다.

    “마차를 얻어타고 싶다는뎁쇼. 나는 손님 하나 더 받으면 좋긴 한데…….”

    “마차도 좁은데 거참…….”

    마차 안에서 마부와 말을 나누던 사내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거 어디까지……!?”

    루카스와 눈이 마주친 사내는 마치 귀신이라도 마주친 양 낯빛이 창백해졌다.

    “거 뭔데 그래? 웬만하면 태워 주… 저, 저 자식은!”

    이어 고개를 내민 사내 역시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루카스를 바라봤다.

    “어디까지 가냐라…….”

    루카스가 마차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네놈들 가는 저승길 배웅까지는 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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