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함정 (1)
붉은 보석이 박힌 작은 상자.
그 상자 안에 들어갈 만한 작은 생명체는 딱 하나 뿐이었다.
‘픽시.’
일전에 스키르를 돕겠다고 나섰던 작은 요정 픽시 그것이었다.
옛날엔 작고 귀여운 모습에 픽시를 잡아다 애완용으로 길렀던 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안 좋은 말로를 맞으며 픽시는 재수 없는 생물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픽시를 잡아다 파는 자가 있다니.’
상자 위에 마나 제어석까지 박아 넣은 것을 보니, 그들 역시 픽시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
숲의 주술사라 불리는 그들은 축복과 저주를 내릴 수 있었다.
주술의 능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픽시는 마을을 이뤄 사는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술 위에 주술을 쌓는 식으로 그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그렇기에 픽시의 저주를 겹겹이 받은 인간은 안 좋은 말로를 맞이한 것이었고.
인간들의 이상한 소유욕과 집념은 끝이 없었다.
굳이 저주를 내린다고 소문이 자자해 ‘길 가다 픽시나 마주쳐라!’라는 소문까지 있는 저 생명체를 잡아다가 키우겠다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저렇게 잡혀간 픽시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인가?
‘애완동물의 범주 안에서만 키울 수는 없는 것인가.’
루카스는 사실 동물을 사고파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간 역시 한낱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데, 조금 더 고등생물이랍시고 자신들의 화폐로 생명에 가치를 매겨 사고판다니?
노예 역시 마찬가지.
루카스는 그런 인간이 같잖았다.
어느새 남작저로 보이는 곳에 도착한 루카스가 저택을 한번 슥 훑었다.
이런 변방에 있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고급스러운 외관. 이곳은 제국도 아닌 작은 왕국이었다.
“흠…….”
대문 앞에서 한참이나 그곳을 살피자, 경비를 서던 기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루카스의 모습이 평민처럼 보이지는 않았는지, 기사가 존대를 하며 물어왔다.
“이곳의 안주인을 만나고 싶군.”
“……?”
마치 당연히 만날 수 있다는 듯 말하는 루카스의 말에 기사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이곳의 안주인은 그쪽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분을 먼저 밝히세요.”
“야, 딱 보면 몰라? 우리 마님 귀 얇다는 소리 듣고 온 잡상인이잖아. 어이, 형씨. 뭘 팔러온 지는 몰라도 얼른 꺼져.”
그에 선임 기사로 보이는 자가 나서더니 삿대질을 하며 루카스에게 얼른 꺼지라는 듯 손짓했다.
“형님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후임 기사가 당황한 듯 얘기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그 모습에 루카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픽시 하나 구하겠다고 이곳을 다 때려 부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곳에 하루 더 묵어야 하는데, 그런 소동을 벌여 좋을 것도 없었다.
“알겠다.”
고민을 마친 루카스가 몸을 돌려 다시 걸어가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얘기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짜식아! 하마터면 우리 둘 다 X될 뻔했네. 에이, 퉤!”
베네타쪽 일행들이 마을로 들어선 것을 느낀 루카스는 우선 돌아간 뒤 다시 이곳을 찾을 생각이었다.
‘이따 다시 와야겠어.’
***
베네타에서 온 일행들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고급 여관을 찾았다.
“역시 규모가 작아 그런지 여관도 작네요.”
“그래도 이게 어디냐.”
“그래. 야영 안 하는 게 천만다행이지.”
여관에 들어서는 일행들의 모습을 본 루카스 역시 그들을 따라 같은 여관에 방을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층으로 내려온 사내들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채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봤죠? 내 말 맞죠?”
“그렇네. 아니, 그런데 진짜 괜찮겠어?”
“이미 수정구로 연락은 모두 취해둔 상탭니다. 그러니 저 자식이 이곳에서 음식을 시키기만 하면 끝!”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그들은 연신 주변을 살피며 대화를 이어갔다.
“캬. 이 동생은 진짜… 같은 일행이라 다행이지 적이었으면… 으으!”
생각만으로 소름이 끼친다는 듯 조니가 몸을 부르르 떨자,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인 세라노가 눈앞에 놓인 주스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 그리고 여기에 거래처가 있다고 했죠?”
“응. 큰 거래처야. 아주 좋은 호구……. 아니, 좋은 고객이 계시지.”
세라노의 질문에 하워드가 대답했다.
“그렇지. 희귀한 거라면 아주 환장을 하는 미친 여자지.”
“크, 저도 형님들을 일찍 만났더라면 베네타에서 그런 개고생은 안 했을 텐데. 진짜 저는 맨 처음에 깜짝놀랐다니까요?”
“크하하! 그래,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지. 그러니 일찍부터 우리 쪽에 붙지 그랬어?”
세라노의 말에 조니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니 형님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다 살려고 하다 보니 그런 거 아니겠냐? 우리라고 뭐 그러고 싶었나. 맨 처음엔 우리도 힘들었다. 죄책감도 막 들고 응? 근데 그거 다 잠깐이더라 그거야.”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조니는 제 가슴을 한번 부여잡아 보였다.
“맞아. 어휴, 나도 맨 처음엔 잠도 잘 못 자고 악몽 꾸고 막 그랬어. 근데 사람이 이 짓 덕에 배부르고 등 따스워지니까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더라고.”
“진짜, 존경스럽네요. 그리고 죄책감이 뭐랍니까? 아니, 저라도 제 식구들 굶고 있으면 당연히 그랬겠습니다. 게다가 같은 종족… 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크- 나는 이래서 이 동생이 참 마음에 들어. 너무 솔직하잖아.”
“나도 그래. 진짜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싶다니까.”
한참이나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사내들은 루카스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자, 얼른 입을 닫고 화제를 돌렸다.
“어휴! 오늘도 고생했네. 내일은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우리도 얼른 밥 먹고 들어가서 쉬자고!”
“예. 그럽시다.”
사내들을 흘긋 돌아본 루카스가 그들과 두 테이블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하시겠어요?”
“식사가 될만한 간단한 걸로 부탁합니다.”
“그럼 빵과 오믈렛, 오늘의 스튜로 준비해 드릴게요.”
루카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한 모금 들이킨 루카스는 귀를 세워 베네타 일행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딱히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주문한 메뉴가 상 위에 차려지자, 그제야 허기를 느낀 루카스가 빵을 집어 한 조각 입에 가져갔다.
부드러운 빵에 향긋한 버터 향.
입에서 한참 그것을 느끼던 루카스가 폭신한 오믈렛을 포크로 잘라 입에 가져갔다.
‘음식이 꽤 괜찮군.’
주방장의 솜씨가 나쁘지 않았다. 달걀은 적당히 익어 부드러웠으며, 그 속에 채워진 토마토와 양파는 아삭했다.
‘무슨 향이지?’
하나 이상한 점은 빵과 오믈렛에서 왠지 모르게 같은 향이 느껴진다는 것.
오믈렛을 씹어 넘긴 루카스가 숟가락을 들어 스튜를 한 숟갈 떠먹었다.
‘토마토와 소고기인가.’
조화로운 맛이었다. 토마토와 잘 익은 소고기.
‘여기서도 같은 향이 나는군. 이곳만의 특제 허브 소스 같은 건가.’
그렇게 맛있는 음식에 취해 한참을 허기를 달래던 때였다.
‘흠… 조금 알딸딸한 기분이 드는 것 같은데…….’
술에 취한 듯 잠시 세상이 핑 돌았다.
‘배가 많이 고팠나…….’
스튜를 떠서 입에 가져가는 손짓이 느려졌다.
‘아닌… 가…… 잠이 오는… 건가…….’
-쨍!
그때, 루카스의 손에 들려있던 숟가락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털썩!
기다란 벤치 위로 힘없이 쓰러진 루카스.
‘아… 당한 건가…….’
생각마저 느려지는 기분에 루카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누워있을 뿐이었다.
‘감을… 잃었네…… 감을… 잃었어…….’
힘없이 움직이는 눈꺼풀이 느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암전이 찾아왔다.
***
“어휴, 씨X 무거워. 아니, 그냥 대충 묻으면 되지 뭘 산맥 아래까지 가서 묻으래?”
“몰라, 나도 그냥 돈 받았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어휴 씨X. 바다도 가까운데 뭘 또 묻어, 묻기는.”
“내 말이. 이 새X. 가진 것도 없더구만… 어휴!”
누가 봐도 사람이 든 것 같은 모양새의 포대 자루를 옮기는 사내 둘.
“아니, 근데 이 새X 안 뒈졌던데. 이대로 묻어도 되는 거야?”
“엥? 안 뒈졌어?!”
“안 뒈졌더라니까? 아까 숨 쉬더라고. 내가 확인해 봤어.”
사내의 말에 다른 사내가 손에 힘을 풀어냈다.
-툭!
사내가 들었던 부분이 바닥에 툭 떨어지자, 다른 사내 역시 손에 힘을 풀었다.
-털썩!
그러자 사내 하나가 포대 자루 입구를 툭 풀어냈다.
“봐봐. 뒈졌나.”
“에에!? 진짜 안 뒈졌네!? 야, 이거 이대로 묻으면 나중에 땅 파고 나오는 거 아니냐?”
사내는 포대 자루에 든 것이 시체가 아닌 산 사람임을 확인하고는 놀라 펄쩍 뛰었다.
“그럼 진짜 X되는 거지. 야, 너가 죽여.”
“뭐!? 이런 씨X 나는 원래 개미도 못 죽여. 너가 죽여.”
“나는 씨X 엄마가 누구 죽이지 말랬어. 그러니까 너가 죽여.”
사내들은 포대 자루에 든 것을 시체로 만들기 위해 서로에게 살인을 강요하고 있었다.
“아니, 나는 진짜 못 죽인다니까?”
“나도 진짜 못 죽인다니까?”
한참을 그렇게 투닥이던 사내들이 다시 한번 포대 자루를 들췄다.
“야, 근데 이거 흑발이지?”
“어? 그렇네. 캬- 흑발. 흔치 않지.”
“게다가 얘 좀 예쁘게 생기지 않았냐?”
“어? 그렇네! 캬- 이만하면 여자라고 해도 믿겠네.”
말을 주고받은 사내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진짜?”
“야, 뭐 어때. 어차피 뒈졌다고 알 텐데 우리가 좀 팔면 안 되냐? 그리고 이 자식도 좋을 거야.”
“그, 그런가? 하긴 안 죽고 살았는데 당연히 좋긴 하겠다. 그치?”
“그치. 게다가 부잣집에 팔려가서 예쁨도 듬뿍 받고. 엉?”
다시 한번 눈빛을 교환한 사내들은 무언가 결심한 듯 포대를 열어 루카스의 손발을 꽁꽁 묶기 시작했다.
“킥킥… 야, 안 그래도 이번에 돈 나갈 데 많았는데, 잘 됐다.”
“누가 아니래?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딱 맞다니까? 봐라, 건질 게 없는 줄 알았더니, 따악! 이렇게 건질 걸 통째로!”
사내들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낄낄거리더니, 손발이 잘 묶였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포대를 여몄다.
“야, 근데 얘는 어떻게 산 거래?”
“나야 모르지. 근데 아직 안 죽었으면 계속 살지 않을까?”
“뭐 가다가 죽으면 바다에 그냥 넣고 오면 되지.”
“그래, 그래.”
포대를 다시 든 사내들이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속이 울렁거렸다.
정신 역시 전날 술을 많이 마신 것처럼 몽롱했으며, 눈앞은 캄캄했다.
‘감을 잃었어…….’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누군가를 쫓으면서 그들이 모를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이 눈치챘을 수도 있는데 같은 공간에서 멍청하게 남이 주는 밥을 먹었다.
‘내가 시킨 밥이긴 하지만.’
오랜만, 아니 처음이었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기습에 당한 것은.
어디선가 맡아본 적 있는 것 같았던 향기. 모든 음식에서 똑같이 나던 그 향기는 다름 아닌 독향이었다.
히드라의 독액을 비롯한 바실리스크의 눈물. 그것들이 합쳐진 독의 향.
너무 오래되어 잊었던 그것의 향이었다.
‘이제야 생각나면 뭣 하겠나.’
점차 정신이 돌아오자, 루카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움직이고 있군. 마차는 아니고… 배인가.’
불규칙한 움직임. 멀지만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루카스는 지금 이곳이 바다 위인 것을 알아차렸다.
‘손과 발은 묶여있군. 그렇다면 마나는…….’
손발이 묶였어도, 마나만 쓸 수 있다면 어디서든 탈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나도 쓸 수 있군.’
-투툭!
손에 묶인 밧줄을 쉽게 풀어낸 루카스가 눈을 덮은 안대를 벗어냈다.
“허.”
루카스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