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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77화 (77/225)
  • 77화. 갱생 실패.

    악몽이었다.

    휘몰아치는 마나 폭풍 속에 우뚝 선 사내.

    칠흑 같은 흑발은 한밤중의 스산함을 더했으며, 달빛을 머금은 그의 안광이 빛날 때마다 생명은 빛을 잃었다.

    -파직… 파지직…….

    까맣게 타버린 시체 위로 스파크가 튀었다.

    “가끔 나도 착각을 하고는 한다.”

    차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인간은 본디 선하다.”

    -콰직!

    그가 한 걸음 뗄 때마다 떨어지는 번개는 땅을 울렸고.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콰직!

    아직 숨이 붙은 자들의 목숨을 거둬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콰직!

    악몽을 정면으로 마주한 붉은 머리 사내는 뒤로 물러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며, 축축하게 젖어오는 제 바지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기에 내가 말했잖나. 나의 믿음을 배신하지 말라고 말이야.”

    “자, 자비를…….”

    붉은 머리 사내의 말에 루카스의 눈이 주변을 한번 슥 훑어냈다.

    “자비라.”

    “제발…….”

    “네 부하들이 모두 죽었건만, 그들을 이끄는 자가 혼자 남아 목숨을 구걸하는가.”

    공기를 베는 듯 섬찟한 목소리.

    “제가 아닙니다! 제가, 제가 이자들의 수장이 아닙니다!”

    사내는 공포에 질려 힘도 잘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끌며 허겁지겁 기어왔다.

    “그런가.”

    “예, 예. 그렇습니다. 저는, 저는 그저 이 길드에 중간, 아니 그보다 못한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목숨만은…….”

    루카스의 말에 사내는 바닥에 이마를 쾅 찍고서 손을 싹싹 비벼댔다.

    “가엾군.”

    “마, 맞습니다. 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니, 네 놈이 아닌 널 믿고 따른 자들이 가엾다. 널 믿고 이들을 맡긴 자가 가엾다.”

    사내의 말을 자른 루카스가 안타깝다는 듯 읊조렸다.

    “…그, 그렇지. 저희 집, 아니, 제 가족들은 제가 없으면 모두 죽고 말 겁니다. 다들 굶어 죽고 말 거예요… 그러니 제발… 제발…….”

    급히 가족을 팔며 처절하게 비는 사내의 말에 루카스의 고개가 모로 틀어졌다.

    “그럼 이곳에 있는 다른 자들은 가족이 없는가. 네 놈만 가족이 있느냐 그 말이야.”

    “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루카스의 손끝이 빛났다.

    “네 놈만 살려주면 이미 죽어버린 네 동료들이 억울하지 않겠는가.”

    “으으… 으아아……! 제발, 제발!!!”

    손 끝에 모인 빛이 점점 커지자, 사내의 몸부림 역시 커져갔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아쉽군.”

    -화륵!

    루카스가 말을 마치자, 사내의 몸에 빛이 옮겨붙었다.

    “으아악! 아아악!!!”

    새하얀 빛에 뒤덮인 사내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갱생은 실패로군.”

    아쉽다는 듯 말을 마친 루카스가 돌아섰다.

    ***

    모두 새까맣게 타버린 현장에 잡혀 온 경비대장은 벌벌 떨고 있었다.

    “네 놈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겠다.”

    자신이 있는 경비 초소에 갑자기 들이닥친 루카스. 경비 대장은 그에 놀랄 새도 없이 텔레포트당해 이곳으로 끌려왔다.

    “그, 그, 그게…….”

    경비대장은 어찌나 몸을 떨어 대는지 목소리까지 벌벌 떨려왔다.

    산산조각 나버린 마나 제어 그물. 그 옆에 늘어진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경비 대장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자들에게 줬던 것처럼 네게도 같은 기회를 주겠다는 말이다.”

    “가, 감사, 감사합니다.”

    사내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저 ‘기회’라는 말에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다음에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이자들과 같은 짓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네 놈에게 줬던 기회 역시 없던 일이 될 것이다.”

    경비대장은 루카스의 말에 잠시 눈을 굴려 생각을 하더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물론입니다. 물론이고 말고요.”

    “이 마을에 사는 케이틀린. 그 아이의 아비가 다시 도박을 해도 너는 죽는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이름에 경비대장은 당황한 듯 잠시 말을 잃었다.

    “……!”

    “그 케이틀린이라는 아이가 길을 가다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그것은 네 잘못이다.”

    “……!?”

    황당했다. 아무리 목숨을 빌미로 협박을 당하는 입장이라지만, 스스로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제 잘못이라니?!

    “알아들었는가?”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 경비대장은 얼른 차려 자세를 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 자들은 갱생의 기회를 날린 우매한 자들이다. 네 놈은 그러지 않길 바라지.”

    경비 대장은 그가 누구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파앗!

    연신 고개를 숙여대는 경비대장을 뒤로한 루카스가 텔레포트했다.

    ***

    여관으로 돌아온 루카스는 기분이 묘했다.

    전생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넘치는 마나.

    때문에 오늘 하루 전생과도 같은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고 말았다.

    “후우…….”

    심장이 두근거렸다.

    온몸을 휘감은 마나 폭풍.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대어로 외우는 주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대어로 외우는 주문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아만은 괜찮으려나.’

    사실 이 정도까지 마음껏 마나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만이 아무런 제약을 걸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약자에게 마나를 나누어 주는 것은 드래곤의 호의일 뿐. 그렇기에 모든 드래곤은 계약자에게 나눠주는 마나에 제한을 뒀다.

    그런데 아만은 아무런 제약도 걸어두지 않고 자신에게 마나를 나누어 준 것이다.

    -파앗!

    “……로드?”

    생각을 마치기가 무섭게 아만이 나타났다.

    조금은 창백해진 아만의 낯빛에 루카스의 눈이 잠시 갈 곳을 잃었다.

    “아만.”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갑자기 마나가 쭉쭉 나가던데…….”

    “크흠… 그, 그게…….”

    “저는 괜찮습니다만. 지금 로드의 상태를 보니… 그냥 낭비하신 거네요.”

    찔렸다. 사실 깔끔하게 공격만 했으면 아만이 느낄 수 있을 만큼 마나가 빠져나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까 그들을 상대했을 때 넘치는 마나에 조금은 신이 난 루카스는 마나 폭풍을 일으켜 몸에 둘둘 감고 날뛰었다.

    “……낭비라니. 위험한 상황이었다.”

    “위험하셨다기엔 너무 멀쩡하신 거 아닙니까? 지금 옷에 먼지 하나 없으신데.”

    “…….”

    할 말이 없었다.

    “괜찮으시다면 됐습니다만… 낭비는 좀 그렇네요. 그리고 제가 말씀 안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

    “제 레어에서 골드 한 뭉치 가져가셨죠?”

    이건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보석도 아니고 골드인데……. 설마 그 많은 걸 다 기억하는 건가?’

    예전에 아만의 레어에 갔을 때 비상시를 대비해 골드 한 뭉치 가져간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도 100골드짜리로 한 뭉치.

    하지만 드래곤의 레어란 골드 한 뭉치가 사라졌다고 해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쌀이 가득 쌓인 커다란 동굴에서 쌀 한 줌을 주워오는 것과 같은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가져가셨네.”

    “…….”

    “아니, 그냥 달라고 하면 되지, 왜 그걸 슬쩍 가져가십니까?”

    “어떻게 알았느냐?”

    “어떻게 알긴요. 로드 주머니에 골드 든 거 봤습니다. 백작가에서 로드께 용돈을 그만큼 줬을 리는 없고, 비밀 창고에 골드 따위를 넣어두셨을 리도 없잖습니까?”

    똑똑한 놈. 아니, 그보다 제 주머니를 언제 봤다는 말인가?

    루카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흠흠. 너도 예전에 내 레어에 와서 이것저것 많이 가져가지 않았느냐? 그때도 나는 네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아만의 레어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골드를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거였다.

    전생에 아만은 루카스를 찾아올 때마다 제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말없이 뽀려(?)가고는 했었으니.

    “흠흠. 제, 제가 언제 말입니까?”

    “네 팔에 채워진 그거. 백 년 전에 내 레어에서 사라진 팔찌 같은데.”

    루카스의 말에 아만이 얼른 태도를 바꿔 자세를 낮췄다.

    “아유, 로드도 참. 제 말은 앞으로는 언제든 편히 가져다 쓰셔라~ 뭐 그런 말입니다. 혹시 오해하신 건 아니죠?”

    “그래. 고맙구나.”

    그런 아만의 태도에 루카스 역시 싱긋 웃어 보였다.

    ‘그래. 너도 양심은 있겠지.’

    “일정이 길어지실 것 같으십니까?”

    “그래. 꽤나 길어지겠어.”

    “알겠습니다. 제국 분위기도 지금 심상치 않은 것이 어차피 아카데미 이번 학기는 여기서 마칠 것 같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안 그래도 일정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에 아카데미가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이었다.

    “다행이군.”

    “예. 일단 아이들과 주변에는 급히 제가 심부름을 보냈다고 해두었습니다.”

    “고맙군.”

    “아카데미 방학이 시작되면 백작가에도 제가 잘 말해두겠습니다.”

    루카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핑계가 무엇인지 다음에 내게도 말해주게. 지난번에 조금 곤란했던 기억이 나서 말이야.”

    “하하. 알겠습니다.”

    아만은 그 일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 또한 높았다.

    “직접 뵈니 걱정할만한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래도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제가 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낭비는 조금 참아주세요.”

    “크흠.”

    -파앗!

    말을 마친 아만은 찡긋 윙크를 해 보이더니 텔레포트해 사라졌다.

    다시 방에 혼자 남은 루카스는 침대에 누워 하루 일을 곱씹기 시작했다.

    ‘이만큼 했으니 한동안은 이곳도 조용할테고…….’

    전생에 이런 일들은 인간 세상에 나와 돌아다닐 때면 언제나 겪는 작은 사건이었다.

    인간사에 참견을 하는 일은 언젠가부터 잘하지 않게 되었지만, 가끔 감정이 동하거나 흥미가 일면 종종 끼어들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 유희의 일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말이지.’

    처음엔 흥미가 일어 그저 작은 참견을 한 것뿐이었다.

    ‘건방진 놈들을 좀 혼내주고 싶기도 했고.’

    제 방을 털러 도둑이 들었을 때 역시 그저 그놈만 멀리 던져두었다면 지금처럼 귀찮은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루를 되짚어보던 루카스의 머릿속에 결론이 내려졌다.

    ‘그냥 힘 좀 쓰고 싶었던 거였군.’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

    “끄으으… 죽겠네…….”

    숙취에 허덕이는 사내들은 지난밤의 지나친 음주를 후회했다.

    “이거나 드세요.”

    마법사인 세라노가 건넨 약병을 받아 든 사내가 뚜껑을 열어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으! 역시 자네가 만든 숙취해소제는 대륙, 아니 세계 일품일세!”

    “나도 한 병 줘. 어휴, 그보다 동생 술 잘하더구먼. 왜 지난번엔 안 마셨어?”

    “참나. 형님들을 어떻게 믿고 술을 마신답니까?”

    지난밤 사내들은 술을 마시며 형님, 아우 하는 돈독한 사이가 된 듯 보였다.

    “크하하! 그래, 네 말도 맞지. 네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만데.”

    “어휴, 숙취가 싹 가시네 그래.”

    다른 사내 역시 약을 들이켜자마자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기지개를 켰다.

    “조니 형님. 어제 제가 한 말 기억하시죠? 그 검은 머리 놈.”

    세라노의 말에 조니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기억하고 말고.”

    “아무래도 다음 마을에서 떼어 놓는 게 좋겠습니다. 거기에 제가 아는 애들도 좀 있고.”

    “어이, 동생. 그런데 그놈도 마법사라고 한 거 아니었어?”

    세라노의 말에 다른 사내가 반문했다.

    “하워드 형님도 보셨다시피 제가 약을 좀 만들거든요.”

    하워드라는 사내의 말에 세라노가 자신 있다는 듯 웃어 보였다.

    “게다가 그 자식 누구 미행해 본 적 없는 초짜입니다. 분명 백작가에서 보낸 놈일 거고요.”

    “흐음…….”

    “그리고 여행길은 위험한 법 아니겠습니까?”

    “여행길은 위험하지. 그럼.”

    사내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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