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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68화 (68/225)
  • 68화. 상상도 못 한 정체 ㄴㅇㄱ (2)

    ‘하! 거래를 하자고? 거래를 하자는 놈이 내 마력을 전부 봉인해?‘

    “옘병 떨지 말고 죽여라.”

    [하하, 역시 쉽지 않을 것 같긴 했는데.]

    “하, 쉽지 않다? 어이가 없군. 보아하니 내가 누군지 알고 온 것 같은데. 내게 거래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 알지. 알고말고. 그런데 잠깐이면 되니까 한번 들어나 봐. 그다음에 죽든지 말든지 결정해도 되잖아?]

    싱긋 웃어 보인 타라스가 지상에 발을 딛자, 어둠뿐이던 아공간이 환하게 밝혀졌다.

    [아, 내가 어두운 거 싫어해서.]

    미친 자식. 사제들이 어둠 속에 빛이 있니 어쩌니 중얼거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거래 내용은 이래. 내가 널 도울게. 그러니 너도 날 도와야겠어.]

    “미친 건가? 신이나 되는 작자가 인간 따위에게 받을 도움이 있나?”

    [물론 있지. 네가 왜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환생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타라스의 질문에 루카스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인간으로 살면서 수십, 아니 수백 번 궁금했던 것이었다.

    도대체 저 망할 천사들이 왜 이런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는지,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수작을 부린 것인지.

    게다가 천사고 나발이고 누구 하나 나약한 인간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단 한 번도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주신이 고르고 골라낸 아주 소중한 영혼이라고 떠들어댈 때는 언제고.

    인간의 삶에 진절머리가 날 때마다 궁금했다. 가끔은 이게 전부 아주 기나긴 꿈이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세상이 뒤집힐 거야. 아주… 아주 크게. 너는 종말에 맞설 중요한 열쇠…라고나 할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라.”

    [지금은 이렇게밖에 설명 못 해줘. 하지만 그때가 오면 내 편에 서서 날 도와.]

    -피식

    루카스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가 없군. 세상이 뒤집히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다. 너도 잘 알 텐데?”

    [알지.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솔깃할걸?]

    “…….?”

    [영면. 그리고 영멸. 그걸 너에게 주지.]

    그의 말은 정말이지 달콤했다. 지난 오천 년의 긴 세월 동안 원하고 또 원했던 것.

    영원히 죽는 것. 긴 삶을 그만 끝내고 영면에 드는 것.

    [잘 생각해봐. 그리고 지금 당장 내게 분풀이를 하겠다고 목숨을 끊는다면… 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깔끔히 없앨 거야. 영혼조차 남지 않게 말이야.]

    주변에 있는 모든 것. 그 말을 듣는 찰나, 수많은 인물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지금 제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게 지금 내게 협박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 웃기는군.”

    완전 허풍이었다. 사실 자신이 내린 결정 때문에 그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그래? 그렇다면 뭐. 지금 당장 죽여주지. 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말이야.]

    “그러든지.”

    강수를 뒀다.

    사실 신이나 되는 놈이 인간인 저에게 와 거래를 제안했을 땐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신이 된 후의 자신이 아니라, 인간인 자신을 원한다?

    제게 분명 중요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겠지.

    [하하, 역시 안 통하네.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니야.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마신전으로 와.]

    “되도 않는 소릴 하는군. 지랄 그만 떨고 꺼져라.”

    [뭐 때가 되면 너도 어딘가에 서야겠지. 인간의 몸이든… 신이 되어서든.]

    “꺼져.”

    최대한 담담히 말해봤지만, 사실 다행이었다.

    “쿨럭!”

    그때 타라스의 신력을 이기지 못한 루카스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너무 오래 있었나 보네.]

    ‘개자식. 알면 얼른 꺼져!’

    죽을 것 같았다.

    지금 루카스는 ‘아! 이런 게 죽는 거구나, 전에 죽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 그리고… 신계에 사랑을 내세운 미친놈이 하나 있는데… 걔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타라스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진짜, 진짜 조심해. 그리고 잘 생각해 보고!]

    저 때문에 인간인 자신은 피를 토하며 곧 죽게 생겼는데 마지막까지 쫑알거리는 타라스.

    “컥! 내가… 저 자식은… 꼭…….”

    타라스의 몸이 서서히 흩어지더니, 이내 아공간에 다시 어둠이 찾아들었다.

    “꼭… 죽인다…….”

    -털썩!

    결국 견디지 못한 루카스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

    “……드! 로드!!!”

    눈을 떴을 땐 아만이 자신을 흔들며 하염없이 부르고 있었다.

    “크윽…….”

    몸을 일으키자 내장이 뒤틀린 듯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내상이 심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아공간은 열리지도 않고……!”

    어찌나 걱정을 했는지 아만의 눈가가 새빨갰다.

    “……괜찮다.”

    최대한 덤덤히 말해봤지만, 목이 상했는지 쇳소리가 났다.

    “치유 마법을 퍼부어 봐도 소용이 없었다구요! 도대체 무슨 일이……!”

    “조금 쉬면 괜찮을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아만의 걱정에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고통에 입가가 떨려왔다.

    “그보다 어떻게 된 거지?”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아니, 대사제는 잿더미가 되어있고, 다른 사제 둘도 죽어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드께서는 여기 쓰러져 계시고…….”

    “그렇군.”

    “아니, 그런데… 로드께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루카스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아만에게 모두 말해야 좋을지, 아닌지 말이다.

    “……힘들구나. 먼저 쉬어야겠다.”

    “하지만 치료는 하셔야…….”

    “치료로 될 일이 아니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괜한 걱정은 넣어둬라.”

    “……알겠습니다.”

    루카스의 일갈에 아만은 묻고 싶은 말들을 꾹 눌러 참아냈다.

    ‘……언젠가 말씀해 주시겠지.’

    아만이 루카스를 부축해 일으켰다.

    “때가 되면 모두 말해주마.”

    아만의 축 처진 눈을 본 루카스가 결국 한마디 덧붙였다.

    “네. 로드.”

    ***

    생각보다 내상은 더욱 심각했다.

    “후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오는 신음을 애써 눌러 참아낸 루카스는,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갔다.

    마신의 등장과 그의 달콤한 제안.

    영멸과 영면. 그가 속삭였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그런데 인간인 나에게 원하는 게 뭘까.’

    마신의 등장? 그래 거기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이해해 볼 수도 있었다. 대사제가 죽게 생겼으니 뭐 엉뚱한 놈이라 치면 현신도 할 수 있지.

    그런데 한낱인간의 몸인 자신에게 원하는 게 도대체 뭐라는 말인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죽을 텐데 말이야.’

    속이 답답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무리 이런저런 가능성을 모두 생각해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게다가 얼마 뒤에 세상이 뒤집히는 것과 인간인 자신의 도움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세상이 뒤집힌다라… 그런데 내가 열쇠라…….’

    생각을 거듭할수록 복잡해지는 머리는 곧 김이라도 폭폭 올라올 것 같았다.

    ‘안 되겠군.’

    결국 침대에서 일어난 루카스가 곧장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파앗!

    “크헉! 컥!”

    땅에 발이 닿자마자 루카스의 입에서는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이런 젠장!”

    거칠게 입가에 피를 닦아낸 그가 욕지거릴 내뱉었다.

    “무슨 씨X 텔레포트 한 번 했다고…… 컥!”

    다시 한번 왈칵 쏟아지는 피.

    “후우…….”

    길게 한숨을 뽑아낸 그가 체념한 듯 눈앞에 있는 호수에 눈을 가져갔다.

    ‘오랜만이군.’

    마레 호수. 대륙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이곳은 끝이 보이지 않아, 맨 처음 이곳을 발견한 사람은 이곳이 바다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전생에도 고민이 있거나 복잡한 일이 생길 때면 이곳 마레 호수를 종종 찾고는 했었다.

    언제나와 같이 호수 앞에 놓인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앉은 그가, 잔잔한 물 위를 조용히 응시했다.

    “하아아…….”

    몇 번이나 긴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던 그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주욱 둘러봤다.

    넓은 호수 주위는 마치 어떠한 것도 살지 않는 듯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조금 낫군.”

    달빛이 비치는 잔잔한 물. 그 주변을 둘러싼 크고 울창한 숲.

    풍경만 두고 본다면 완벽하리만큼 아름다운 장관이었지만, 이곳은 상위 몬스터의 빈번한 출현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

    사색에 잠겨 주변을 주욱 훑던 그의 눈이 거대한 나무 하나에 멈춰 섰다.

    “……?”

    제 눈이 이상한가 싶어 주변에 있는 다른 나무와 비교하기를 여러 번.

    “……야광수?”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는 그 나무는 분명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저게 왜 여기 있어?”

    잊힌 마족의 땅인 디아칸에만 있는 야광수가 도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루카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끄응!”

    뒤틀리는 듯한 복부를 부여잡고 바위에서 내려선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맞는데?”

    나무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밝아지는 빛. 뿌리에서부터 올라가는 물줄기가 보이는 듯한, 희미하지만 밝은 연둣빛은 그것이 야광수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서자, 마치 그를 반기는 듯 야광수의 가지가 차르르 흔들렸다.

    “도대체 이게 왜 여기 있어?”

    그러거나 말거나 루카스는 미간을 좁히며 야광수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어이가 없네. 설마 그 자식이 여기에 이걸 가져다 놨나?”

    잊힌 마족의 땅 디아칸. 그곳은 마족들이 지상에 살았을 때 그들의 터전이었지만, 마계로 모두 쫓겨난 뒤엔 누구도 찾지 않는 땅이 되고 말았다.

    가끔 찾는 것은 그들의 후손이라고 알려진 반쪽짜리 마족들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루카스는 지금 이곳에 야광수를 가져다 둔 것이 마신의 장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족의 땅에 있는 야광수를 이곳에 가져다 둠으로써 자신의 관심을 다시 한번 끌려는 수작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개 같은 자식!”

    -쾅!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짜증이 난 루카스가 죄 없는 야광수에게 마력을 쏘아 보냈다.

    -차르르륵! 차륵!

    그러자 야광수는 마치 고통을 호소하듯 가지를 양옆으로 거세게 흔들며 강한 빛을 뿜어냈다.

    “뭐, 이 자식아! 네 땅으로 돌아가 임마!”

    -차라라랏! 차라랏!

    어이가 없었다. 야광수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소리는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이건 뭔 또 옘병할…….”

    그때였다.

    “……!?”

    야광수의 가운데 나 있던 틈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크윽!”

    갑작스레 터져 나온 밝은 빛에 그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얼마 뒤 빛이 사라지고 손을 내리자, 그곳엔 아직 잔잔하게 빛을 뿜어내는 물건 하나가 놓여있었다.

    “……찝찝한데.”

    은색 바탕에 핑크색과 붉은색 보석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그것은 팔찌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야광수에 이어 그 속에서 나온 알 수 없는 물건까지.

    찝찝해도 이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후…….”

    그것에 손을 가져가다 말기를 반복하던 루카스.

    “……옘병할 호기심.”

    -텁!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손이 팔찌에 닿았다.

    -쨔르르릉~ 쨔르릉~

    그러자 팔찌에서 종이 울리는 듯한 요란하고 청명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런 씨X.”

    그 소리를 듣자마자 루카스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띠로로롱~ 띵! 똥! 띵!

    경쾌하고 어딘지 모르게 짜증 나는 음악. 더 짜증 나는 것은 팔찌에 닿은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젠장!!!”

    아무리 손을 떼려 노력해 봐도 마치 강력 접착제로 붙여놓기라도 한 듯 딱 붙어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때, 요상스럽던 음악이 끊기더니.

    - 사랑의 힘을 얻은 자여!

    갑자기 팔찌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돌아버리겠네.”

    일전에도 말하는 아티팩트를 수도 없이 보았지만, 이토록 경망스러운 말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 그대에게 사랑의 힘을 나누어 주~ 리라!

    “…….”

    말을 마친 팔찌가 포스스 흩어지기 시작했다.

    -달칵!

    흩어졌던 팔찌는 순식간에 루카스의 팔목에 안착(?)했다.

    “하아…….”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루카스는 정말이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녕? 내 팔찌를 얻었구나?]

    팔찌를 멍하니 내려다보던 그때 열려있던 나무 구멍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 홍! 홍!]

    경박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곳을 힘겹게 비집고 나오는 건장한 사내의 모습에, 루카스는 그 자리에서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 저런 미친…….’

    온몸이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뒤덮인 사내는 그에 어울리지 않는 길게 늘어뜨린 실크 같은 금발을 어깨 뒤로 차르륵 넘기며 윙크를 보냈다.

    [어쩜! 너~ 무 반갑다앙~!]

    ‘차라리… 죽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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