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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67화 (67/225)

67화. 상상도 못 한 정체 ㄴㅇㄱ (1)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 이것 또한 이 자의 운명이었겠지.”

싸늘하게 식어버린 브랑디의 시신을 바라보는 루카스와 아만의 표정은 참담했다.

저주에 걸려 새까맣게 변해버린 브랑디의 시신.

“안타깝군요…….”

“그래, 결국 이루지 못했군. 제 손으로 불러낼 작은 불씨 하나를… 결국 보지 못했어.”

-화륵!

루카스의 손바닥 위로 작은 불꽃이 일었다.

“우리에겐 이리도 쉬운 일인 것을……. 결국 이 가여운 인간은 그토록 염원했던 마법에 목숨을 잃었구나.”

루카스는 제 손끝에 일렁이는 불씨를 잠시 바라봤다.

“이렇게 보낼 줄 알았다면 한 번쯤 이기게 해줄 것을…….”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그해엔 도서관을 찾아 브랑디와 함께 종종 체스를 뒀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찾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루카스는 지금 그 사실이 조금은 후회스러웠다.

종종 찾아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줄 것을. 그와 함께 두는 체스에서 한 번쯤은 져줄 것을…….

게다가 노인과 했던 약속마저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마법을 쓸 그날까지 돕겠다고 했었건만…….’

전생이었다면 그가 죽는 날까지 이 약속을 지키려 아득바득 노력했을 테지만, 인간이 되어버린 지금 그때만큼 약속을 중시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입이 쓰고 목구멍이 칼칼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가슴 한편에 돌이 얹힌 것처럼 불편하고 묵직했다.

“…….”

“가족도 없는 자다. 네가 잘 수습해 보내주어라.”

루카스가 주먹을 꽉 쥐어 불씨를 흩어버렸다.

“예. 로드.”

“브랑디의 영혼은 이미 천계로 인도되었을 것이다. 평생을 선하게 살았으니……. 좋은 곳으로 갔을게다.”

“그럴 겁니다.”

“그리고…… 영역을 침범한 무뢰한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는 없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그의 말에 얼른 나서던 아만.

“아니. 이번엔 내가 직접 하지. 마신의 개들에게 내가 직접 지옥을 보여주겠다.”

하지만 분노에 찬 루카스의 말에 그는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마신놈의 개들은 이제 X됐네… X됐어…….’

루카스의 살벌한 눈빛을 본 아만의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

아만의 집무실.

그곳엔 마신교의 사제 둘과 대신관이 와있었다.

“제가 이곳으로 왜 모셨는지 혹시 아십니까? 대신관님.”

“허허… 그저 와달라 부탁을 받고 온지라…….”

아만의 물음에 시침을 뚝 떼 보이는 대신관.

“하하, 그렇습니까. 오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저희 아카데미에는 도서관이 하나 있습니다.”

“예. 좋은 책이 아주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만…… 그곳의 사서가 죽었지 뭡니까?”

순간 아만의 매서운 눈길이 그들을 주욱 훑었다. 너희가 한 짓인 것을 모두 안다는 듯.

“어이구… 저런… 어쩌다가…….”

“그래서 제가 조사를 해봤는데…… 마신교의 저주가 쓰였더군요. 하하! 이거 너무 허술하신 것 아닙니까?”

크게 웃어 보인 아만이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댔다.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듯.

“마신교의 저주요? 허참… 그것참 알 수 없는 일이군요. 마신교의 저주가 쓰였다니…….”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는 대신관. 그의 뒤에 선 사제들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저희 마신교는 그런 일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게다가 뻔히 이곳에 저희가 있는 것을 아시는데……. 저희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듯했다. 아만이 샤모스의 영혼에 대해 몰랐다면 말이다.

“오, 정말 그렇군요. 하하 그렇다면 누가 음모를 꾸몄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마신교를 음해하려는 자들이 도처에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마신교의 저주를 흉내 내어 사서님을 해한 것이 아닌가 싶군요.”

대신관의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에 아만의 인내심에 점차 한계가 찾아왔다.

루카스의 부탁을 받아 그들을 한데 모았지만, 이들은 정말이지 마신의 개가 아닌 악마의 개나 다름없었다.

아니, 세상에 어떤 사제가 신을 모시는 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살육을 저지르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조사가 더 필요하겠군요. 늦은 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억지웃음을 짓는 아만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을 무참히 찢어발겨도 시원찮았겠지만, 이번엔 참아야 했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명복을 빕니다.”

대신관의 인사에 사제들 역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참자… 참아야 된다…….’

어디선가 이성의 끈이 투둑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건만 아만은 가까스로 참아냈다.

이제 이들이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공간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곳엔 루카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금스흡느드…….”

이를 꽉 물고 감사의 말을 전한 아만이 손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럼…….”

그들이 문을 나서자, 돌아선 아만이 긴 한숨을 주욱 뽑아냈다.

‘잘 참았다 아마록. 대견하다 아마록!’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넨 아만이 문을 닫았다.

이제 저들은 분노에 이글거리는 루카스와 맞닥뜨릴 것이다.

***

대신관과 사제들은 아만의 집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느껴진 이상한 기운에 뒤를 돌아봤다.

“무, 문이?”

“문이 없습니다! 대신관님!”

분명 방금 문을 빠져나왔는데 문은 온데간데없고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앞을 보아도, 옆을 보아도 온통 어둠뿐인 공간.

“크윽! 같잖은 마법쟁이 놈이!”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아챈 대신관이 분개했다.

“그 작자가 수를 쓴 것이 분명합니다!”

“닥쳐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여기 있는 줄 아느냐!?”

사제는 대신관의 호통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어딘가 틈이 있을 것이다! 흩어져 그것을 찾아라!”

“네!”

아무리 견고하게 만들었다 한들, 아공간은 아공간이다. 분명 어딘가 틈이 있을 것이다.

“감히 나를 가둬? 위대하신 타라스 님의 총애를 받는 종을!?”

사제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대신관은 눈을 얇게 떠 주변을 살폈다.

어느덧 어둠에 적응한 눈이 점차 주변을 식별하자, 그는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며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턱!

그때 그의 앞을 가로막는 무언가.

“웬, 웬놈이……! 크어억!!!”

그것을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느껴지는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크아아악!!!”

고통을 이기지 못한 대신관이 바닥을 굴렀다.

“……어떤가. 네놈들이 쓴 수를 내가 한번 흉내 내봤는데.”

낮고 차게 가라앉은 음성에 대신관은 고개를 들어 그 주인공을 바라보려 했다.

“크악……. 어억!!”

하지만 한층 더 강하게 찾아온 고통에 그는 바닥을 구르며 그저 울부짖을 뿐이었다.

“이것이 맞나 모르겠군.”

상대를 고문하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너무나도 여유로운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마치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을 내뱉는 듯 공허하기까지했다.

“크어억… 어억…….”

점차 잦아드는 고통에 대신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기습을 하다니……! 하지만 이렇게는 안 되지!’

그는 그래도 명색이 대신관이었다. 그저 기습에 당황했을 뿐, 당장이라도 그에게 똑같은 고통을 선사할 수 있었다.

“그래, 그래도 명색이 타라스의 종놈인데…… 어디 한번 보여봐라. 같잖은 재주를 말이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수를 모두 꿰뚫고 있다는 듯 비아냥거리며 수를 내어주는 여유로움까지.

한 나라의 황제도 무시하지 못하는 지위가, 바로 모든 신전의 대신관이었다.

그들이 가진 고유 능력은 하나하나가 무시하지 못할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여유로운 태도라니?

“크, 크하하하! 그래… 크윽…….”

고통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대신관은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네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내게 틈을 준 것을 평생… 아니, 지금 후회하게 해주마.”

-고오오오오오

대신관의 손에 검은 구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연륜은 무시 못 하네. 한 방에 끝내겠다는 건가.’

그의 손에 모인 구체는 ‘어둠의 심판자’.

대신관에게만 내려오는 고유 능력으로 강한 저주를 내리는 마력(魔力)이었다.

“빛을 지키는 어둠이여, 내 앞에 있는 적을…… 크아아악!!!”

다시금 찾아오는 고통에 점점 커져가던 구체는 삽시간에 흩어지고, 대신관은 다시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적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지 않나. 대신관.”

사실 비겁했다. 전생의 그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지금의 그는 나약한 인간이었고 대신관과 1대1로 맞붙어 이길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니 조금은 비겁한 수를 쓰는 수밖에.

“그래, 네놈들이 원하던 것은 잘 찾았느냐?”

“크아아악!”

“억울한가? 그럼 네놈이 신관인 것을 잊었으면 안 됐지. 마법사와 딱 붙어 이길 수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가?”

루카스의 비릿한 목소리가 대신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럼 네놈이 모시는 잘난 신에게 가서 주둥이를 나불거리지 않고도 마력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빌어봐라.”

대신관은 억울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그의 말대로 마법사와 딱 붙어 싸울 생각을 했다니……!

“그래, 오늘 잘 배웠으니 다음엔 그러지 말도록. 아, 다음은 없던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웃는 루카스.

“가는 길에 한 가지 말해주자면… 그거 내가 훔친 거다.”

바닥을 구르는 대신관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이는 루카스.

“……?!”

“맞아. 오백 년 전쯤에 내가 훔쳤다고 그거. 샤모스의 영. 혼.”

싱긋 웃어 보인 루카스가 손에 화염을 불러냈다.

어둠 속에서 들끓는 새하얀 염화에 루카스의 얼굴이 드러나자, 대신관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저 꼬마는…! 결국… 타라스 님의 뜻대로 되는구나…….’

“네 놈의 잘난 마신께 가서 전해라.”

-퍼엉!

대신관의 몸 위로 새하얀 불덩이가 떨어지고.

“끄아아아악!!!”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대신관.

“훔쳐서 미안했다고.”

제 몸 위로 일렁이는 화염에 얼핏 비춘 그의 얼굴은 괴로움을 마지막으로 드러내고, 대신관은 숨을 거뒀다.

“이제 남은 두 놈…….”

그를 뒤로한 채 몸을 돌려 가려던 루카스는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에 가슴을 붙잡았다.

“끄… 윽…….”

무릎이 저절로 꿇어질 만큼 엄청난 기운.

[너무하네. 내가 그래도 아꼈던 앤데.]

들려오는 이질적인 음성에 루카스는 겨우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바라봤다.

어둠으로 가득 찬 아공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질적인 존재.

[반가워. 기운을 줄인다고 줄였는데……. 이제 좀 괜찮나?]

“허억……!”

누군가 제 목을 움켜쥔 듯 쉬어지지 않던 숨이 드디어 조금 트이기 시작하자, 존재의 모습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칼을 허리까지 내려뜨린 미남자. 그의 양옆에 선 것은 새까만 날개를 단…….

‘천사? 씨X 지금 대신관 하나 죽였다고 신이 내려왔어?’

[나는 너 아는데. 너도 나 알지?]

“타라스냐?”

[하하! 역시. 다르긴 달라.]

너무나도 여유로운 타라스의 모습에 울화가 치밀었다.

“씨X. 대신관 하나 죽였다고 신이나 되는 게 현신을 해?”

[역시. 달라도 너무 달라. 이제 의심이 아니라… 확신해도 되겠네.]

지금 루카스는 짜증이 나도 너무 났다.

어차피 죽으면 신계로 올라가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인데, 그럼 백 년 안에 동등한 입장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저깟 신력에 꿇어앉은 무릎을 펼 수도 없다니. 차라리 당장 죽여줬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심정이었다.

“죽일 거면 빨리 죽여. 넌 씨X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어.”

[미안. 그건 안 되겠다. 지금 너 죽이면 나한테 화가 돌아올 것 같거든. 아, 그리고 나도 너 마음에 안 들었거든?]

“아가리 닥쳐. 어디 새까만 박쥐 같은 놈이 와가지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쥐어짜 봐도 목소리는 너무나도 떨려왔다.

[하하! 욕 잘하는 건 여전하네.]

‘개자식 넌 뒈졌어.’

짜증 나는 목소리에 당장이라도 목숨을 끊으려는 때였다.

[우리 거래하자.]

저건 무슨 개 같은 소리?

[거래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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