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66화 (66/225)
  • 66화. 브랑디

    하셀에게서 가까스로 도망친 아만은 자신의 집무실에 숨어 도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후우…….”

    숨 고르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방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아만.

    일단 정리해 보면, 몇백 년 전 루카스가 마신교의 성유물인 ‘샤모스의 영혼’을 훔쳤고, 그것을 넘겨받은 제 아버지인 하셀은 아무 생각 없이 가여운 인간, 즉 사서 브랑디에게 그걸 줘버렸다.

    그리고 사서 브랑디는 도서관 사서에게 주어진 공간에 그것을 숨겼고, 마신교의 사제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브랑디가 직접 열어주지 않는다면 사제들이 죽이고 열겠지.’

    그렇다면 지금 아만이 내릴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브랑디를 설득해 ‘샤모스의 영혼’을 받아낸 다음, 순순히 그들에게 넘겨주는 것.

    다른 하나는 브랑디를 보호하며 그들이 ‘샤모스의 영혼’을 절대 얻지 못하게 막는 것.

    전자를 선택한다면 괜히 배알이 꼴릴 것 같지만, 브랑디는 확실하게 보호될 것이다.

    그리고 물건이 본래의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니 사실 그게 맞기도 했고.

    ‘흐음……. 마신의 개들이 뺑이를 더 치는 걸 보고 싶긴 한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마신교를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니, 아니지……. 이미 몇백 년 고생했다고 하잖아? 그냥 줄까?’

    아까 보니 사서 브랑디 역시 그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여태 가지고 있었던 듯 보였다.

    ‘그럼 왜 그걸 걔들한테 안 줬을까?’

    자꾸 이런저런 생각에 고민을 멈출 수 없자, 아만은 자리에 우뚝 섰다.

    “로드께 물어보자. 그래.”

    ***

    다시 루카스의 방을 찾은 아만은, 마치 매를 맞기 전 학생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알아 왔나?”

    “그, 그게…….”

    자신의 아버지인 하셀이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낱낱이 고해바쳐야 하는 상황. 어찌 보면 고자질 같기도 하지만, 곧이곧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피해를 볼 것만 같았다.

    “저…… 그게…….”

    “……?”

    “저, 저희 아버지인 하셀 테리디어를 아시지요?”

    드디어 미친 건가. 하셀을 아냐니?

    “흐음, 어디 보자……. 하셀, 하셀이라…… 오, 오! 그래 생각이 나는군. 그런데 안 지 얼마 안 돼서 별로 친하진 않아. 삼천 년쯤 됐나?”

    어이없는 아만의 질문에 루카스 역시 고개를 모로 하며 비꼬았다.

    “크흠, 흠……. 그게…… 에라 모르겠다! 예! 맞아요! 저희 아버지가 그걸 십여 년 전에 지나가던 불쌍한 인간에게 줘버렸답니다! 그게 바로 브랑디고요.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불쌍해서 줬답니다!”

    체념이라도 한 듯 두 눈을 꼭 감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아만.

    “그래?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루카스는 덤덤했다.

    “그게…… 전부입니까?”

    “그럼 내가 달리 뭘 더 할 수 있는가? 게다가 이미 내 레어는 내가 직접 하셀에게 주었다. 그러니 그 안에 있는 물건들 역시 내 것이 아닌 하셀의 것이지.”

    “…….”

    “물건의 주인 되는 자가 제 마음대로 했다는데.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나.”

    “그, 그렇지요.”

    아만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고자질하는 것 같아 마음 졸이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렇게나 덤덤한 반응이라니…….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 아…… 그, 그게…….”

    아만은 머릿속이 일순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오늘은 말이 더디군. 아직 발달이 덜 되었을 나이긴 하다만…….”

    “그,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그게…….”

    “그래, 떠오르는 단어가 생각나거든 그때 말하려무나.”

    인자하게 웃는 루카스의 모습에 아만은 소름이 돋아났다.

    ‘도, 도대체 왜 저러시는 거지? 일부러 나를 지금 놀리시려고 저러시나!?’

    정확한 진단과 판단이었지만, 지금 아만은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루카스를 바라보며 입만 달싹이길 수 분.

    “후우…… 제 생각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호오…… 드디어…… 그래, 기특하다. 어서 말해보렴.”

    어서 말하라며 손으로 부추기는 루카스. 이쯤 되니 그가 자신을 놀리는 것은 분명했다.

    “……예. 먼저 사서 브랑디를 설득해 샤모스의 영혼을 마신교에게 돌려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의 단점은 배알이 꼴린다는 것이고, 장점은 평화롭게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렇겠군. 두 번째는?”

    “브랑디를 보호하며 그것의 존재를 끝까지 숨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장점은?”

    “뭐, 마신의 종놈들이 몇백 년 더 고생을 하겠지요.”

    “단점은?”

    “브랑디가 죽을 수도 있겠지요.”

    아만의 말을 들은 루카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루카스는 몇백 년 전, 그들에게서 ‘샤모스의 영혼’을 훔쳐 왔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를 떠올렸다.

    ‘아주 기분이 좋았지. 신났고.’

    하지만 그들의 물건을 훔쳐 숨긴 것은 명백히 나쁜 짓이었다.

    ‘그러니 더 기분이 좋았지.’

    그런데 그들에게 지금 돌려주지 않으면 정을 붙였던 인간인 브랑디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건 안 되지.’

    그렇다고 돌려주자니? 아주 기분이 나빴고.

    “브랑디를 끝까지 보호할 자신은?”

    “아카데미 내에서는…… 사실 없습니다. 지금도 경계 마법을 발동해 두긴 했습니다만, 축제 기간이라 정신이 없으면 제가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군. 그럼 적당히 때를 봐서 브랑디를 설득해. 그리고 마신교 놈들에게 돌려줘라.”

    의외였다. 루카스라면 마족을 지상에서 몰아낸 장본인이나 다름없는데, 순순히 돌려주자고 하다니.

    “하지만 브랑디가 이미 부인한 뒤라…… 저에게 솔직히 털어놓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털어놓게 만들어라.”

    “한번 해보지요. 그런데…… 정말 돌려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하,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

    “그 멍청이들에게서 언제든 다시 뺏어오면 되는 것을.”

    “아.”

    루카스의 한쪽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가자, 아만은 생각했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

    아만의 집무실.

    “그럼 오크는 준비가 완료된 것인가요?”

    “예, 하지만 오크들을 가둔 우리가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지능이 꽤 높은지라……. 오크들이 탈출 시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대회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아만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 지경이었다.

    “흠…… 탈출 시도라……. 슬립 마법으로 재우지 그러셨습니까?”

    “슬립 마법으로 아무리 재워도 금세 깨어나는 바람에…….”

    -쾅!

    그때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사내가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오크들이 탈출했다고 합니다!”

    “이크! 결국 사고를 치는구먼! 아만 교수님!”

    어쩐지 느낌이 쎄하더니, 결국 오크들이 탈출에 성공하고 말았다.

    “네. 가시지요.”

    앞장서는 아만을 뒤따르는 사람들은 마법사가 아닌 아카데미 고용인들이었다.

    “저, 저쪽입니다!”

    아만은 짜증이 치솟았다.

    ‘아니, 일개 오크 따위가 감히 탈출을 시도해?’

    야생이었다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드래곤인 아만이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는 몬스터가 아닌가!

    -쿠에에엑! 꾸에엑! 인간!!! 꾸엑!!!

    현장에 가까워 오자 오크의 포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꾸에에엑! 꾸에에에에! 인간!!!

    어찌나 화가 났는지 그들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자,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가겠습니다.”

    싱긋 웃어 보인 아만이 고용인들을 저지했다.

    “그, 그래도……. 혼자서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여러분들은 학생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대피시키세요.”

    입은 웃고 있었지만,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오크라는 아이디어를 낸 마법 응용 담당인 데시아를 당장이라도 묵사발을 내버리고 싶었다.

    “그럼 교수님 몸조심하십시오!”

    사용인들이 후다닥 물러나자, 아만은 몸을 돌려 현장으로 향했다.

    “개 같은 데시아…….! 뭐? 자신 있어?”

    현장이 가까워 오자 오크 일곱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리저리 날뛰며 벽이며 땅을 미친 듯이 박살 내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아만 주위의 기류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꾸… 꾸엑…… 취익… 취이익! 와, 왕이다…… 취익!

    그러자 오크 무리들은 날뛰는 것을 멈추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누가 우리를 부수고 나왔느냐.]

    -취, 취이익! 취이익! 왕……! 취익! 취익!

    아만의 용언에 오크 무리는 땅에 고개를 처박고 그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네 놈들은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니 명예롭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취, 취익… 왕…… 우리는 취익… 죽어…….

    [그래. 다시 한번 소란을 일으킨다면…….]

    -취익…….

    [네 놈들의 일족을 모두 몰살시켜 주마.]

    -취… 취익… 알겠다…….

    오크는 지능이 높은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완벽하진 않아도 인간의 말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다.

    때문에 오크들의 저런 모습을 볼 때면 가끔 불쌍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바로 약육강식 아니겠는가.

    그런 그들에게서 돌아서려던 때였다.

    ‘……경계 마법이 깨졌어?’

    도서관에 시전해 두었던 경계 마법이 깨졌다.

    ‘울린 것도 아니고 깨졌다니……! 젠장! 오크 놈들에게 신경 쓰는 사이에……!’

    이것은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파앗!

    뒤를 수습할 정신도 없이 도서관으로 텔레포트한 아만.

    “씨X…… 늦었군.”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사서 브랑디는 저주에 걸렸는지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린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벽난로에 숨겨져 있던 통로는 열려있었다.

    “하…….”

    바닥에 널브러진 브랑디를 뒤로하고 통로로 향하는 아만.

    계단대신 사다리가 놓인 통로는 깊이가 꽤 깊어 보였다.

    -타악!

    통로로 순식간에 뛰어내린 아만이 주변을 살폈다.

    벽면에는 뜨문뜨문 발광석이 박혀있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하…… 없군.”

    그들은 이미 그것을 챙겨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밀 공간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그곳은 그저 창고나 다름없었다.

    브랑디가 생전에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들인지 잡동사니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물건이 잡다하게 쌓여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텅 비어있는 공간 하나.

    저곳이 분명 ‘샤모스의 영혼’이 놓여있던 자리일 것이다.

    “X됐네……. 로드한테 뭐라고 설명하냐…….”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X됐다’였다.

    ‘샤모스의 눈물’은 이미 그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 난 것이니 없어졌어도 상관없지만, 죽어버린 브랑디는 어떡한다는 말인가.

    멍하니 서서 비어있는 공간을 바라보던 아만은 이제 화가 스멀스멀 치밀기 시작했다.

    “주려고 했는데…… 감히 내 구역에서 깽판을 쳐?”

    지금 아카데미는 엄연히 아만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감히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마신의 종놈들이 와서 깽판을 쳤다.

    “잘근잘근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개자식들…….”

    아만이 이를 꽉 물었다.

    “내가 X된 만큼…… 너네도 다 X됐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