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아카데미 축제 (5)
사제들이 떠나고 도서관에 남은 아만은 벽난로에 가까이 다가섰다.
‘여기에 뭐가 있나 본데…….’
벽난로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아만이 탐색 마법을 펼쳤다.
‘흐음… 뭐가 있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벽난로에서 느껴지는 마법의 기척은 미미했다.
‘쉬운 암호인가? 어디 누를만한 곳이 있나?’
벽난로 앞에 서서 뜯어보길 한참.
‘어? 이건가?’
그때, 아만이 벽난로 아래에 살짝 솟아있는 돌 하나를 발견했다.
아만은 지금 당장이라도 저 돌을 눌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지금 이곳엔 자신뿐 아니라 브랑디도 함께였다.
지금 눈 앞에 있는 돌멩이가 진짜 비밀 통로로 향하는 버튼이라면, 브랑디가 알아차리고 말 것이다.
‘재우고… 눌러봐?’
투명화 마법을 시전한 자신의 모습이 보일리 없지만, 그래도 아만은 최대한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브랑디를 바라봤다.
브랑디는 사제들이 나간 뒤로 줄곧 저 상태였다. 의자에 앉아 무어라 궁시렁거리다 말기를 반복하는 상태.
처음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들어봐도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 듣기를 포기했다.
“그때… 내가 그걸 괜히… 괜히…….”
무어라 중얼거리는 브랑디를 잠시 바라보던 아만이 결국 수면 마법을 시전했다.
-사아아
무거운 기운이 브랑디를 감싸자 이내 브랑디는 까무룩 기절하듯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럼!”
브랑디가 잠이 들자마자, 아만은 눈앞에 있는 수상한 돌멩이를 냉큼 눌렀다.
-달칵! 드르륵…….
“역시! 이런 요망한 돌멩이 같으니라고! 아래에 이런 걸 숨겨놨어?”
돌멩이를 누르자 잿더미 사이로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공간은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했다.
“뭐가 이렇게 얕아?”
공간으로 떨어진 잿더미를 손으로 슥 훑어 치워낸 아만이 라이트 마법으로 그곳을 비추자, 암호로 보이는 무언가가 드러났다.
석판에 둥그렇게 새겨진 암호 사이에 있는 동그란 공간.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곳에 맞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
“흠… 고대어라…….”
한참이나 그것을 내려다보던 아만의 표정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이 공간은 오로지 문지기에게만 허용되는 공간이다. 공간을 열려거든 문지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을 잇는 문지기는 그의 영혼을 받들어 자격을 얻으라.]
“하, 문지기를 죽이라는 뜻이야?”
굳이 풀어서 쓸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저 말인즉 문지기를 죽이든지 아님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의 문지기가 문을 열어준다면 필요 없는 절차겠지만.
곤히 잠들어 있는 브랑디를 잠시 바라본 아만이 다시 버튼을 눌러 공간을 닫았다.
‘위험하겠어.’
이러다간 사서 브랑디의 목숨이 위험했다. 그들은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온 것처럼 곧장 벽난로에 대해 물었다.
그렇다면 마신교의 사제들이 이 버튼을 찾는 것 역시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샤모스의 영혼이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지.’
저들이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할 샤모스의 영혼이 사라진 지금이라면, 브랑디 아니, 그게 뭐가 됐든 죽이고 가져가려 할 것이다.
‘경계 마법을 걸어둬야겠군.’
벽난로를 비롯한 도서관 전체에 경계 마법을 발동한 아만이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
루카스의 방을 찾은 아만.
“시험은 어떠셨습니까?”
“1더하기 1보다 쉬웠다.”
아만의 물음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루카스.
“20분이나 걸리셨던데요?”
하지만 아만은 루카스가 시험장을 나온 시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수식을 입력해 둔 게 없어서 그렇다. 새로 만들어서 푸느라… 가 아니지. 그래서,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아뇨, 아뇨! 불만이라뇨. 절대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변명을 하던 루카스가 인상을 찌푸리자, 아만은 냉큼 뒤로 물러나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 혹시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도록. 그보다 왜 온 거지? 시험 얘기나 하자고 온 건 아닐 테고.”
“역시… 로드는 다 알고 계시는군요. 사실 제가 뭘 좀 들었습니다.”
“뭘 말인가?”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마신교의 사제들을 봤습니다. 웬일인지 도서관으로 향하더군요.”
“마신의 개들이?”
역시 루카스도 그들을 ‘마신의 개’라고 칭하며 치를 떨고 있었다.
“네. 그래서 제가 따라 들어갔더니… 아니, 사서에게 샤모스의 영혼이 여기 있냐고 묻더라고요?”
“…!!!”
‘샤모스의 영혼’을 들은 루카스가 흠칫 놀라며 눈을 돌리자, 아만의 고개가 모로 삐뚤어졌다.
“어어? 왜 이런 반응이시지?”
“크, 크흠… 그저 여기서 찾을 물건이 아닌데 찾으니… 그런 것이다.”
“어어~? 아닌 것 같은데에~?”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갸웃거리는 아만의 고개를, 정말이지 똑 꺾어 따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샤모스의 영혼’은 루카스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말씀해 보십쇼. 로드께서 왜 그런 반응인지 말입니다!”
“…….”
“샤모스의 영혼을 어떻게 하신 겁니까! 예!?”
“그, 그게…….
”
사실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 중 하나였다. 아니, 자신은 죽었고 그 물건은 분명 오백 년도 더 전에 봤던 게 마지막이니 당연했다.
“괜찮습니다. 마신의 개들 물건 따위 어떻게 했던 무슨 상관입니까? 그냥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크흠… 그냥 뭐 유희 중에 일어난 작은 장난이었다.”
“무슨 장난이요? 예? 어서 말씀해 주세요!”
아만의 부추김에 하는 수 없다는 듯 입을 여는 루카스.
“한 오백 년쯤 전인가… 아니, 마신의 개들이 무슨 축제를 연다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나가던 길에 구경이나 할까 했는데…”
“했는데…?”
“교단 위에 그 책이 떡하니 놓여있더군. 그래서 뭐… 내가 잠시 빌렸지.”
“훔치셨다 그거네요?”
“훔치다니! 언젠가 내가 돌려주려고 했는데…!”
“…했는데?”
되묻는 아만의 말에 루카스는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박수를 한 번 쳐 보였다.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그래! 내가 죽었잖아? 내가 죽어서 못 돌려줬다. 그래, 내가 죽어서 그랬군.”
루카스는 자신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까지 끄덕여 보였다.
“거짓말… 처음부터 돌려주실 생각도 없으셨잖습니까!”
“크흠…! 어찌 됐건! 그런데 왜 그걸 여기서 찾지? 나는 분명 레어에 고이 모셔놨는데… 어…?! 그, 그 큐브…!”
“예? 무슨 큐… 엥!? 설마 시험장에 있는 그 큐브 안에 넣어두셨던 겁니까!?”
둘은 어찌나 놀랐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그 큐브 혹시 하셀에게서 받아온 건가?”
지난 첫 암호 해독 시험에서 보았던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던 큐브. 그 거대한 큐브가 왜 익숙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 꺼였으니까.’
그런데 그 큐브가 웬일인지 이곳 제국의 아카데미 시험장에 와있었다.
“…네. 제가 열었을 땐 아무것도 없길래…….”
게다가 아무것도 없었다니? 자신이 그 큐브에 암호를 걸었을 땐 분명 ‘샤모스의 영혼’이 고이 들어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고?”
“예…….”
분명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그것은 레어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죽고 나서 없어졌다?
“하셀이 그걸 열어서… 여기에 가져다 뒀다고?”
“에이, 아버지께서 그런 일을 하실 리가요.”
“…그럼?”
루카스의 질문에 아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책을 훔친(?) 사람은 바로 눈앞에 있었고, 그 책을 마지막으로 넘겨받은 사람은 하셀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 아카데미에 와있을 수도 있다. 이건 하셀 말고는 범인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 와라.”
“넵.”
-파앗!
대답과 함께 빛처럼 사라진 아만.
“짜증 나는군.”
마신의 성유물 따위? 그래, 누가 가지던 어디에 있든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고, 그 물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빴다.
“옘병. 그니까 그냥 뒈졌으면 좋았을 건데…!”
이게 다 환생 때문이다. 그냥 생을 마감하고 죽었더라면 그깟 물건들 따위 알 게 뭐라는 말인가?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
하셀의 레어.
“아버지!!! 아버지이!!!”
“…거 좀 얌전히 올 수는 없는 게냐?”
경망스러운 아만의 부름에 하셀은 미간을 찌푸렸다.
“급합니다. 아주 급한 일이에요.”
“뭔데?”
텔레포트로 왔을 텐데 숨까지 헐떡이는 아만을 보는 하셀의 시선이 고까왔다.
“후우! 그 큐브 말입니다. 그거 원래 비어있었습니까?”
“아니?”
다급한 아만의 태도와는 달리 너무나도 태연한 하셀.
“…뭐가 있었는데요?”
“마신의 개들이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었지.”
루카스의 말이 맞았다.
“혹시 그게… 샤모스의 영혼?”
“그랬던가? 뭐 책 한 권이 들어있었지. 성유물일 거다. 그건 왜?”
“그거 혹시 어디에 두셨습니까?”
아만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하셀.
“흐음… 십여 년 전쯤인가… 뭐 마법을 쓰고 싶어서 안달하는 가여운 인간이 하나 있길래 걔한테 줬다.”
아만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제발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지 않았기를 빌었는데!
“…왜 그러셨는데요?”
“불쌍해서? 아니, 잠깐 유희를 나갔는데 인간 하나가 마법을 쓰고 싶다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길래 내가 좀 줘봤어. 사기도 당하는 것 같았고.”
하셀은 아만의 비통한 표정엔 관심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거 사실 마법이랑은 상관없는 물건 아닙니까?”
“그렇지? 근데 뭐 전대 로드가 남기고 간 큐브였는데 그걸 열어보니 그게 있더라고? 내 레어에 두자니 찝찝~ 하고 그렇다고 마신교에 가져다주자니 짜증 나고. 그래서 줬다.”
“…….”
들어보니 하셀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뭐. 마신의 개들이 그걸 찾아서 이미 몇백 년을 뺑이 쳤다고 들었는데… 대충 풀어두면 몇백 년 안에는 찾겠지~ 싶어서 내 나름 호의였는데?”
이제야 아만은 루카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신이 제 아비인 하셀을 많이 닮았다던 그 말이.
“그렇군요…….”
“아니, 그보다 왜? 그건 왜 갑자기 찾는데?”
“아닙니다. 제가 유희 중인 아카데미에 마신교가 후원을 하는데… 그걸 찾아서 아카데미를 뒤지더라고요.”
“흐음… 그래? 다시 숨겨주리?”
머리가 아파왔다. 하셀은 문제 해결 방법 역시 자신과 많이 닮아있었다.
단순했고… 또 단순했다.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큐브에 있었던 건 어떻게 알았는데?”
하셀의 눈이 순간 매섭게 변하자, 아만은 다시 한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예? 제가 언제 그게 큐브에 있었냐고 물었습니까?”
“하하, 아들아. 너는 자꾸 한 가지를 잊더구나.”
“뭐, 뭘 말입니까?”
“네가 내 아들인 걸 말이다.”
하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뒷걸음질을 치는 아만. 저도 모르게 발동된 방어태세였다.
“그, 그게 갑자기 왜…….”
“네가 커서 된 게… 나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하셀이 눈을 접으며 웃자 아만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당장 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