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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60화 (60/225)
  • 60화. 어린 양을 혼자 내버려 두오! (2)

    “빠, 빨리!”

    연달아 들려오는 폭발음에 그래드는 기사 단장인 커시스를 재촉했다.

    그를 재촉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커시스가 황제를 업고 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황제의 집무실에 있는 책장을 밀어내자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황제의 인장이 있어야만 열리게끔 설계되어 있는 비밀통로였다.

    “폐하, 이미 마탑에서 사람들이 와서 방어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방어? 방어라고 하였느냐? 그 작자들이 여태껏 방어를 그리 잘해서 지금 성벽이 무너지고 황제궁이 이 꼴이 되었느냐!?”

    “죄송합니다. 통로가 좁으니 조심…….”

    “되었으니 물러나라!”

    그 와중에도 황제는 제 품 안에 물건 여러 개를 소중히 챙겨 넣었다.

    수정구를 비롯한 인장, 그리고 주머니 몇 가지를 챙긴 황제는 바쁜 걸음으로 통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내려가자 나타난 것은 황궁에서 가장 철벽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지하 벙커였다.

    이곳 역시도 황제의 인장이 있어야만 열리는 것은 같았다.

    처음부터 이곳에 벙커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황가의 소중한 물건이나 국가의 보물 같은 것을 보관하는 금고였으나, 계시를 받은 그날 이후 벙커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모여 설계와 보안을 끝마친 이 벙커는, 속된 말로 ‘드래곤이 와도 뚫을 수 없는 벙커.’라고 했다.

    그만큼 최고의 방어를 자랑하는 지하 벙커.

    그곳에 도착한 황제는 서둘러 문 옆에 놓인 마법진에 인장을 가져다 댔다.

    -스르릉…….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황제는 재빨리 벙커 안으로 들어섰다.

    “너는 이 앞을 지켜라!”

    “……예. 명을 받듭니다.”

    커시스에게 매몰차게 소리친 황제가 안쪽에 난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아버렸다.

    지하 벙커는 황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멀쩡할 것이다.

    하지만 그 흔적에 기사 단장이 포함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문이 닫히자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인 커시스가 문 앞에서 제 검집을 바로잡았다.

    ***

    -쿠콰쾅! 쾅!

    아만은 일부러 황성과 황제궁을 향해 몇 번이나 더 마법 써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이제 가볼까?’

    마법사와 기사들이 정신이 없는 틈을 타 황제궁으로 잠입한 아만은 추적마법을 펼쳤다.

    ‘이럴 줄 알았지.’

    하지만 황제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래, 너네도 애써 만든 건데…….’

    아만은 황제의 흔적을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신이 났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 온통 어떻게 하면 이 미친 황제를 협박하고 겁박해 볼까! 하는 그런 생각들뿐이었다.

    ‘하… 너무 재밌다……!’

    작게 한숨을 내쉰 아만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한번 부여잡았다.

    텅 비어있는 황제의 집무실을 한번 스윽 둘러본 아만은 너무나도 쉽게 벙커로 향하는 입구를 찾아냈다.

    “창의력 없긴…….”

    -콰쾅!

    손짓 한 번으로 책장을 말끔히 부숴버린 아만이 지하 통로를 내려봤다.

    “어휴, 깊어.”

    ***

    벙커 입구를 지키는 커시스는 들려오는 발소리에 검집에 든 검을 조심히 빼 들었다.

    일정하게 들려오는 발소리는 너무나도 경쾌했다. 마치 무도회장 위에 선 자가 춤을 추는 소리처럼.

    “……누구냐.”

    커시스의 낮은 음성이 지하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걸음 소리는 더욱 경쾌해질 뿐.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준 커시스는 언제든지 상대를 베어버릴 태세였다.

    “까꿍!”

    커시스는 통로에서 튀어나온 은푸른 머리의 사내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양손을 번쩍 들어 아이를 놀리듯 하는 사내의 행동에 하마터면 경계를 풀어버릴 뻔했다.

    “누구냐! 네 놈이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허! 네 놈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리도 경거망동하는 것이냐!”

    커시스는 자신의 말을 딱 잘라버린 사내의 당당한 태도에 한 발짝 물러서고 말았다.

    “야, 긴장 풀어. 내가 너 누군지 대충 아는데… 진짜 죽이기 싫어서 그래. 그냥 못 본 척해주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아만은 이미 통로를 내려오며 슬립 마법을 시전해 봤지만, 벙커에 꽤나 강한 무효화 마법이 걸려있는지 슬립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흐음… 그럼 나랑 협상할래?”

    “그따위의 말을 내가 들을 것 같은가?”

    아만의 말에 커시스는 코웃음을 쳐 보였다. 아무리 못난 황제라 한들 그는 제국의 기사이자, 그 기사들의 우두머리였다.

    “자, 그럼 내가 하나 말해줄 테니까 네가 결정해.”

    “하! 어처구니가 없군.”

    어처구니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이상한 등장도 등장이었지만, 사실 커시스는 눈앞에 있는 상대가 보통 실력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검을 몇 번이고 고쳐 잡으며 상대를 파악하는 중이었다.

    “네 누이. 누가 죽인 건 줄 알아?”

    “……네놈 따위가 입에 담을 아이가 아니다.”

    커시스의 음성이 낮게 그르렁거렸다.

    “잘 생각해 봐. 누구인지. 답은 네 뒤에 있네.”

    싱긋 웃어 보인 아만이 벙커로 향하는 문을 향해 턱짓했다.

    “듣고 싶지 않군……. 물러나지 않겠다면 나 역시도 방법이 없다.”

    검을 그러쥔 커시스가 아만에게 돌진해 왔다.

    -스르릉

    그러자 아만의 손에 한 자루의 검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

    아만의 손에 생겨난 검을 보고 놀란 것도 잠시.

    “나도 방법이 없네, 그럼!”

    -퍽!

    달려드는 커시스의 뒤편으로 순식간에 이동한 아만이 그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풀썩!

    “무력엔 나도 무력이지!”

    쓰러져 버린 커시스를 바라보는 아만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올랐다.

    ***

    “하아~ 어렵네.”

    한참이나 벙커 앞에 서서 수식을 풀어내던 아만이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무언가가 안 풀릴 땐 역시… 무력이었다.

    -콰콰콰쾅!! 콰쾅!!

    벙커의 문에 쏟아지는 수많은 마법은 그칠 줄을 몰랐다.

    -콰콰콰콰쾅! 꽈르릉! 꽝!

    미동도 없던 문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찌그러지는가 싶더니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쾅! 콰쾅! 쾅!

    “으…… 으아!!! 누구 없느냐!!!”

    점점 벌어지는 문틈에 황제는 멀찌감치 떨어진 채 소리치고 있었다.

    “누구 없긴~ 나 있는데에~”

    살짝 벌어진 틈으로 눈만 빼꼼 들이민 아만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황제는 벌벌 떨고 있었다.

    “네, 네 이놈!! 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당장 뭼추지 않으뭰~”

    황제의 말을 얄밉게 따라 해 보인 아만이 다시금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콰쾅! 쾅!

    미친 듯이 쏟아지는 마법에 두꺼운 문과 방어 마법은 점차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엔 최후의 보루가 숨어있었다.

    “이, 이거 항마 유리야! 이 개XX야!!!”

    “풉. 항마 유리래…….”

    벙커에 숨겨진 최후의 보루. 그것은 다름 아닌 드워프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항마 유리!

    현존하는 마법 방어 수단중 최고라고 일컫는 유리였다.

    “자. 잘 봐…….”

    수없이 쏟아지는 마법 세례에 문은 결국 무너지고 있었고, 유리에도 역시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한 듯한 황제가 주춤거리며 물러나고.

    -콰쾅! 쩌저적!

    결국 문 한 가운데가 크게 떨어져 나가고, 유리 역시 깨어지기 직전이었다.

    “아직... 한 방 남았는데?”

    그 틈으로 활짝 웃어 보이는 아만. 그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콰쾅! 쨍그랑!!!

    “짜잔! 열렸네!”

    “……사, 살려주십시오!”

    “벌써? 이건 너무 이른데에~”

    제 앞에 드리운 죽음의 공포에 황제는 넙죽 엎드려 제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빠른 태세 전환에 아만 역시도 조금은 놀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

    그런 그의 앞에 한 발짝 다가선 아만.

    -서겅!

    황제는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제품에서 검을 꺼내 아만에게 재빠르게 휘둘렀다.

    “봐, 이럴 줄 알았어.”

    “으으윽……!”

    그런 황제의 검을 날렵하게 피해 보인 아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는… 진짜 많이 혼나야겠다.”

    “으으으으… 으아아아!!”

    제 귓가에 울리는 아만의 서늘한 목소리에 황제는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좋은 말로 하려 했는데… 넌 진짜…….”

    차분히 읊조리는 아만이 황제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넌 진짜…….”

    다시 한 발짝.

    “혼나야겠어…….”

    ***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아만의 눈앞에 있는 황제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갖 협박과 겁박은 다 당한 듯 보이는 황제는, 온 얼굴에 눈물과 콧물을 범벅 한 채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고 있었다.

    일루전 마법.

    하지만 아만이 황제에게 한 짓은 그것이 전부였다.

    ‘흑마법을 한 스푼 섞은 것뿐이지 뭐…….’

    환상을 보여주는 일루전 마법에 흑마법 한 스푼. 그거면 충분했다.

    황제가 가진 가장 원초적인 공포의 대상을 끊임없이 보여준 아만의 일루전 마법은 그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기에 충분했다.

    제 형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래드의 원초적인 공포.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었다. 거미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온통 거미뿐인 세상에 남겨지게 될 것이며,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온갖 뱀이 나오는 환상에 시달리게 되겠지.

    현실에서 10분밖에 되지 않았던 그 시간은 황제에게 10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자, 정신이 좀 들어?”

    “으어어… 살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끊임없이 제 목숨을 구걸하며 손바닥을 연신 비벼대는 황제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아만의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럼 잘 들어. 나는 이 짓을 몇백 년이고 할 수 있어.”

    “으어어…….”

    “그러니 착하게 살아. 네가 하려던 짓이 뭐였던지 말이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잘 기억해야 할 거야. 네놈이 다시 한번 나쁜 생각을 먹어도.”

    아만은 거뒀던 일루전 마법을 다시 한번 시전했다.

    “으아아악!! 가!! 저리 가!!!”

    “다시 한번 못된 짓을 해도.”

    “아아악!! 안 돼!! 으아아악!!!”

    황제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내가 다시 올 테니 말이야.”

    마법을 거둔 아만은 황제의 풀려버린 동공을 뒤로한 채 벙커를 빠져나왔다.

    “나를 다시 보는 그날엔 그 지옥이 현실이 될 거다.”

    ***

    “로드?”

    “어, 어.”

    넋이 나간 듯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루카스를 부른 아만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돌려보내.”

    루카스를 찾아온 아만은 감금하다시피 해둔 스턴의 처분을 묻고 있었다.

    “진짜 그래도 되겠습니까?”

    “알베르토가 죽었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알베르토의 시신을 황제 앞으로 떡하니 배달했으니 제국민이 마탑주의 죽음을 아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스턴이 제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 생각할 테고.

    “욕은 먹겠지만. 그보다 스턴의 상태는 어떤가?”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자꾸 알베르토를 찾고… 복수를 한다는 둥 헛소리를 합니만…….”

    스턴의 상태는 말 그대로 그다지(?) 좋지 않았다. 허공을 보며 중얼중얼 헛소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 부모가 아닌 알베르토의 이름을 자꾸 부르는 것이 미친 사람 같았다.

    “그런데?”

    “제 생각엔 덜 맞아서 그런 것 같은데 좀 더 팰까요?”

    “…….”

    솔직히 루카스는 아만의 답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냉큼 ‘그러라’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패지는 말고… 그냥 납득을 좀 시켜봐.”

    “어떻게 납득을 시킨답니까?”

    루카스는 그의 질문에 명쾌한 해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부분적으로 기억이 지워진 스턴에게 모든 것을 납득시키기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스턴은 원래부터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지 않은가.

    “……그럼 두어 대만 때려.”

    “아무래도 그게 낫겠죠?”

    “……그래.”

    루카스의 허락에 아만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황제는?”

    “뭐, 소문에는 똥오줌도 잘 못 가린다는 말이 있던데요.”

    “잘됐네. 한동안 조용하겠어.”

    “그렇겠죠.”

    이렇게나 쉽게 정리될 일인 것을! 아만과 루카스는 여태껏 속을 끓인 것이 분할 지경이었다.

    “그럼 대충 정리도 다 됐겠다… 이제 슬슬 가지.”

    “예. 그건 그렇고 창고는 언제쯤…….”

    루카스를 따라나서는 아만이 고개를 숙이며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죽을 때 준다고! 죽을 때!!!”

    예고 없이 훅 들어온 아만의 공격에 소리를 버럭 지른 루카스의 동공이 갈 곳을 잃었다.

    “……소리는 지르고 그러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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