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56화 (56/225)
  • 56화. 몰렉의 숨결 (3)

    “넬라, 오늘 수업 어땠어?”

    “재밌었어.”

    기초반을 모두 사이좋게 벗어난 아이들은 다 함께 초급반 수업을 듣게 되었다.

    또한 어린 넬라를 위해 폴라와 같은 방을 아카데미 측에서 배정해 준 덕에 둘은 무척이나 가까워졌다.

    “다행이군. 나는 조금 어려웠다.”

    스키르는 기초반과는 달리 조금 어려워진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벅찬지, 뾰로통하게 입이 나와있는 일이 잦아졌다.

    가장 연장자인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언제나 예습 복습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엄살 좀 부리지 마! 그래도 제일 잘하면서 그래?”

    “그래. 스키르. 너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런가?”

    아이들의 칭찬에 배시시 웃어 보인 스키르는 머릴 긁적였다.

    꽤 괜찮은 나날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사이가 좋았으며, 서로를 다독이며 함께 성장해 가고 있었다.

    “그럼 내일 봐! 가자, 넬라.”

    넬라와 폴라가 먼저 여자 기숙사로 들어가자, 스키르와 루카스 역시도 서로의 방으로 돌아갔다.

    ***

    방으로 돌아온 스키르는 이상하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풍겨오는 싸늘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하는 때였다.

    “잘하고 돌아다니는군…….”

    “혀, 형님?”

    방문을 닫고 돌아서자 눈앞에 스턴이 있었다.

    그에 놀라는 것도 잠시, 오랜만에 본 형님의 상태가 이상했다.

    “형님? 누가 네 형이지? 나는 너 같은 동생을 둔 적이 없다.”

    “죄, 죄송합니다…….”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사과에 스키르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마지막 인사라도 할까 싶어 왔더니……. 개 같은 꼴은 여전하군. 역적의 집안과 잘 놀아나는 꼴이 아주…… 네 애비와 똑같구나.”

    자신과 같은 아버지를 둔 스턴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말에, 스키르의 몸이 흠칫 떨려왔다.

    하지만 병아리 때 쫓긴 닭이 장닭이 되어서도 쫓긴다는 말처럼, 그는 제 앞에 선 형님의 커다란 존재에 그저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살려주지. 옛정을 봐서 하는 마지막 충고니 잘 들어라. 다시 한번 로드리고 백작가와 놀아나는 꼴을 보였다간… 황제 폐하께서도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

    -짜악!!!

    “내 말에 토 달지 말아라. 건방진 건 여전하군.”

    갑작스레 얻어맞은 뺨이 얼얼한 것도 잠시. 몸을 돌려 나가는 스턴을 바라보던 스키르가 용기를 냈다.

    “괘, 괜찮으신 겁니까?”

    그의 말에 걸음을 멈춘 스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크… 크하하하! 괜찮냐고? 괜찮냐고 물었느냐?”

    스턴의 광기 어린 웃음에 한걸음 뒤로 물러난 스키르가 떨려오는 손을 꽉 쥐었다.

    “귀엽구나. 아주… 아주 귀여워.”

    “…….”

    “괜찮냐… 괜찮냐라……. 크하하! 나는 지금보다 더 좋았던 때가 없다. 아주… 아주 좋지.”

    입가에 붙은 피딱지 하며 흙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옷을 입은 제 형의 모습에도, 스키르는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부어오르는 뺨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어서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잘 기억해라…… 내 마지막 말을. 다음엔 네놈도 무사하기 힘들 테니.”

    스턴이 방을 빠져나가자 다리에 힘이 탁 풀려버리고 말았다.

    어찌나 몸에 힘을 주고 서 있었던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가, 가야 하는데…….’

    가야 했다. 제 아버지인 시러스 공작이 되었든, 그게 아니라면 아만 교수에게라도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좀처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 가야 해… 가야 하는데……!’

    ***

    -똑똑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루카스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방에 노크를 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스키르?”

    아무런 의심 없이 방문을 연 루카스는, 스키르가 있어야 할 눈높이에 자연스레 눈을 맞췄다가 흠칫 놀랐다.

    “안녕? 네가 루카스니?”

    싱긋 웃어 보인 사내는 입 주변에 피딱지가 눌어붙어 그 모습이 기괴하고 소름이 끼쳤다.

    “누구냐.”

    “크하핫! 건방진 꼬마구나.”

    -콱!

    “크윽!”

    사내는 손을 뻗어 루카스의 목을 거칠게 잡아 들어 올렸다.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경우야!?’

    갑작스레 목을 붙잡힌 루카스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자식은 진심이고, 제 무덤을 파러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다.

    하지만 이곳은 아카데미였고, 기숙사였다.

    -파앗!

    판단이 선 루카스는 제 목덜미를 붙잡은 사내와 함께 그대로 텔레포트했다.

    “이, 이건 무슨 또!!!”

    스턴은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레 텔레포트한 것도 당황스러운데, 자신을 데리고 여기까지 온 주인공이 제 앞에 꼬마라는 사실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켁! 켁!”

    목덜미를 잡혔던 루카스가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야, 이 개자식아.”

    제 목덜미를 한번 어루만진 루카스가 스턴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이런 씨X!!!”

    거칠게 욕을 내뱉은 스턴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감히 욕을 해?”

    어이가 없는 듯 코웃음을 친 루카스가 그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콰쾅!!!

    스턴의 손에서 빠르게 쏘아진 마력이 그대로 루카스를 덮쳤다.

    이 정도면 먼지가 되어야 맞았다. 저런 같잖고 조그만 꼬맹이 정도는…….

    “하!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다 봤나.”

    하지만 루카스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이, 이런! 죽어!! 죽어라!!!”

    -콰쾅!! 쾅! 쾅!

    그 모습에 당황한 스턴의 손에서 연속으로 마법이 쏘아졌다.

    “눈깔이 맛이 갔군……. 죽고 싶은가?”

    어이가 없었다. 감히 제 방에 찾아와 목덜미를 붙잡은 것도 모자라 공격까지 해?

    그것도…… 두 번이나?

    “씨, 씨X!!!”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분명 제 눈앞에 있는 꼬마는 로드리고 백작가의 자식이 맞았다. 그가 아는 루카스는 초급반이나 겨우 다니는 그런 같잖은 꼬마였다.

    그런데 제 공격을 모두 막아낸 것은 물론이고 저런 여유로운 태도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은백색 머리라…… 스키르의 형인가?”

    “…….”

    주변에 뿌옇게 일어난 먼지 속을 헤치고 유유히 걸어 나오는 루카스. 그런 그의 질문에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서있는 스턴.

    “맞나 보군. 내게 용무가 있으면 나를 찾아오면 될 것인데……. 감히 신성한 아카데미에 와서…… 지X을 떨었다?”

    “……크윽!”

    “이런 쥐X만 한 자식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보구나.”

    분했다. 어떻게 손에 넣은 힘인데, 그 힘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눈앞의 꼬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아까는 그렇게도 잘 나불거리던 주둥이가 어찌 지금은 미동조차 없느냐? 응?”

    루카스 역시도 자신을 찾아온 저 같잖은 인간 놈을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고 있었다.

    저자가 스키르의 형인 것을 알게 된 이상 죽이기가 꺼려졌다.

    “……하? 누가 네게 그딴 걸 줬지?”

    스턴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그걸 알아차리자 분노가 치밀었다.

    -쾅! 콰쾅!!!

    “누가! 줬느냐!!!”

    제 옆으로 난 커다란 구멍에서 뿌연 연기가 올라왔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저 꼬마가 숨긴 힘은 진짜였다.

    ‘한 방… 한 방에 보낸다.’

    고개를 푹 숙인 스턴은 조용히 주문을 읊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

    제 모든 힘을 쥐어 짜내서라도 저 꼬마를 꼭 죽이고 말 것이다.

    “……내 부름을 받아 적을 섬멸하라!!! 커억!”

    모든 주문을 끝마친 스턴의 입에서 붉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하늘이 울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쿠궁… 콰직! 콰지직!

    “썬더 스피어?”

    새까맣게 변해버린 하늘에서 번개가 일어나고 있었다.

    “지랄도 풍년이군.”

    순식간에 제 코앞까지 다가온 번개를 모두 흩어버리기엔 마력이 아직 모자랐다.

    “앱솔루트 배리어.”

    피식 웃으며 여유로운 표정과 함께 시전한 방어마법. 하지만 불안했다.

    ‘씨X…… 못 막는 거 아냐!?’

    -콰르르릉!! 콰콰쾅!! 콰직! 콰직!

    온 대지에 번개가 몰아치고, 그 위에 선 루카스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크윽…….”

    아직 이 많은 마법을 막아내기엔 무리였는지 힘에 부쳐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법을 시전한 스턴의 상태 역시도 좋지 않다는 것.

    “커억! 큭! 크하하… 네 놈도 결국은… 크헉! 거기까지인가 보구나!”

    스턴은 검은 피를 울컥울컥 쏟아 내면서도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쩌적… 쩌저적…….

    연이은 타격에 방어막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크으윽…….”

    한계에 다다른 듯한 루카스의 방어마법이 거의 다 깨어져 가고 있을 때였다.

    -콰콰쾅! 쾅!

    “로드!!!”

    “……아만?”

    루카스의 뒤에서 나타난 아만은, 순식간에 하늘에서 쏟아지던 썬더 스피어를 흩어버렸다.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게다가 이 자식은…… 스턴?”

    “크어억! 컥!”

    갑작스레 캔슬된 마법에 내장이 모두 뒤틀린 스턴은 이제 피를 쏟아 내다시피 하고 있었다.

    “같잖고… 건방진… 인간이…….”

    분노에 차 그르렁거리는 아만.

    -쿠쿵…… 쿠르릉!

    그의 손에 얼음 창이 생겨나자, 루카스는 아차 싶었다.

    “아만!! 안 된다!”

    아만의 손에 생겨난 얼음 창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절대 곱게 죽이지 않겠다는 것.

    얼음 창을 사지에 꽂아 넣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아만의 신호나 다름없었다.

    “안 된다뇨? 이 자식이 스키르를 겁박하고 로드까지 죽이려 들었습니다.”

    “크어억… 로, 로드……?”

    “하하! 그래. 열린 귀라고 들을 건 또 다 듣고 있네?”

    아만까지 나타난 지금, 스턴에겐 더욱 희망이 없었다. 루카스조차도 이기지 못한 몸이지 않은가.

    “자, 어떻게 죽여줄까. 응?”

    “아만, 안 된다. 참아.”

    -쿠쾅! 쾅!

    손에 든 얼음 창을 신경질적으로 던져 바닥에 꽂아버린 아만이 루카스를 홱 돌아봤다.

    “왜 또 안됩니까?!”

    “저 녀석 몸에 뭐가 있는지 봐라.”

    “저놈 몸에 뭐가… 저건……!?”

    루카스의 말에 반박하려던 아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짜증 나는 것들이……! 아직도 이런 게 남아있어?”

    천여 년 전의 사건을 계기로 드래곤의 마족 혐오는 시작됐다.

    제발 자신들을 혐오하는 것을 멈춰달라 부르짖던 마족들 역시,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아무런 잘못 없이 핍박받는 자신들의 처지에 분개했다.

    결국 보다 못한 마신이 주신께 청하여 새로운 마계를 부여받았지만, 그들은 마계로 쫓겨나면서도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당시엔 인간과 혼인을 해 사는 마족의 수 또한 많았으며, 드물지만 다른 종족과 인연을 맺은 마족들 역시 많았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두고 생이별을 하게 생겼으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하, 이런 개 같은 걸 누가 너에게 줬지? 응?”

    바닥에 널브러져 간간이 피를 토해내고 있는 스턴에게 다가간 아만이 이죽거렸다.

    “응? 누가 줬냐고. 아, 해결 먼저.”

    이대로 가다간 중요한 단서가 죽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사아악

    아만이 손을 뻗어 스턴에게 가져가자, 그의 손에서 빛이 일었다. 그러자 스턴의 몸속에 흡수되었던 ‘몰렉의 숨결’이 둥실 떠올랐다.

    “끄아아악!”

    몸에 흡수되었을 때와는 비교되지도 않을 만큼의 고통이 스턴을 덮쳐왔다.

    고통에 울부짖는 스턴을 바라보는 아만의 표정은 건조했다. 아니, 마치 더러운 것을 본 사람처럼 역겨워하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검지와 약지로만 아티팩트를 집어 든 아만은, 그것을 제 몸께에서 최대한 떨어트리려 노력 중이었다.

    지저분한 것을 집어 올리듯 들어 올려진 아티팩트는 찬란했다.

    검붉은색이 도는 커다란 수정 주위로 붉은 보석이 수없이 박혀있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팬던트.

    “……몰렉의 숨결.”

    “몰렉? 옛날 그 마왕 말입니까?”

    “그래, 그게 어째서 여기에 와 있는지 모르겠군.”

    몰렉의 숨결을 알아본 루카스의 표정이 어두웠다.

    “네가 보관해 둬라.”

    “예!? 아, 싫습니다아! 이거 지지한 거 아닙니까!?”

    사실 아만은 마족을 실제로 만난 적도, 그들에게 나쁜 짓을 당한 적도 없었다.

    이제 겨우 700살이 되어가는 아만은 드래곤들에게 구전처럼 전해 들은 옛날이야기만으로 마족을 혐오하고 있었다.

    모든 드래곤이 같았다. 지상 최강의 생명체에게 반기를 든 개 같은 것들.

    그들의 고고하고 지체 높은 자존심을 건드린 대가는 엄청났다.

    “보관해. 더러운 거 아냐.”

    “하……. 알겠습니다. 그보다 얘는 이제 죽여도 됩니까?”

    “아니. 이걸 준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야 한다.”

    “오호, 그건 또 제가 잘하지 않겠습니까?”

    아만은 루카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싱긋 웃어 보였다.

    “자, 이제 입을 열 시간이에요.”

    -사아아아

    스턴에게 다가선 아만이 치유마법을 시전했다. 치유마법이 끝나자, 아만의 손가락이 그에게 향했다.

    -투캉!

    “끄아아악!!”

    아만의 손에서 얇게 쏘아져 나간 마력이 스턴의 어깨를 관통하자, 고통스러운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나는 이 짓거리를 삼만 번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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